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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16화 (416/529)

<-- 416 회: 경영의 대가 17권 -->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니 시스와 줄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일어난 모양이었다.

오랜만의 숙면이라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정령친화력도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이렇게 몇 밤을 더 자면 완전 회복될 듯했다.

운디네를 잠깐 소환해서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옷도 운디네의 힘으로 말끔하게 빨고 말려서 새 옷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같은 옷만 입은 지 꽤 됐군.

침실을 나서니 마침 시녀 한 명이 곧 식사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마침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서 일어났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점심식사였다.

오전 내내 퍼질러 잔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리 게을러도 15시간이나 자버리다니. 정말로 내가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늘 운디네를 몸속에 깃들게 하고 다녔기 때문에 피로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운디네의 힘으로 육체의 피로가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밤에는 정령친화력 회복에 주력하느라 모든 정령을 소환해제 했더니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정말인지, 전생 때는 정령 없이 어떻게 살았던 거지?

식당으로 내려가니 모두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간밤에는 편안하셨나요?”

시에나 왕비가 특유의 상냥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해왔다. 정말 아침부터 싱그럽군. 왕국 최고의 미녀의 미소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많이 배려해주신 덕에 아주 편안했습니다. 체면불구하고 정신없이 자고 말았습니다.”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그럴 수밖에요.”

“피로도 피로지만 잘 자고 있는데 자꾸 누가 깨우는 바람에 말이죠.”

시스와 줄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내 말뜻을 알아들은 시에나 왕비는 두 여자를 보며 나직이 웃었다.

“아빠!”

지스가 힘차게 날 부른다.

“어 그래, 우리 아들.”

“아빠, 정령! 아빠정령!”

실프랑 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지스.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겠지.

정령이란 말에 지렌 왕자도 눈빛이 반짝반짝해졌다.

난 웃으며 지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래그래. 밥 먹고 정령이랑 놀자.”

“응!”

식사가 코스대로 나오기 시작하자 지스는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튼튼한 지스는 먹성도 좋았다.

음, 엄마 닮았나. 맞은편을 보니 시스도 그에 못잖게 열심히 먹는다.

참 묘한 일이란 말이야.

지스를 임신했을 때의 시스는 오히려 식사량이 정상인의 수준으로 감소했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나서부터 다시 먹성이 좋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뱃속에 애가 없으니까 허전(?)해진 건가? 아하하하.

뭐, 아무렴 어떤가.

음식을 폭풍 흡입하는 시스도 귀여운걸.

“언제 봐도 참 잘 먹네요.”

시에나 왕비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어요.”

시스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아 귀여워, 귀여워, 우리 시스! 나는 저 귀염둥이 아내 때문에 황홀해졌다. 어서 밤이 됐으면 좋겠다. 또 품에 꼭 끌어안고 자게.

“후작부인 시스 덕분에 우리 지렌 왕자도 식사를 잘 하게 되었어요. 후작부인 시스와 지스가 잘 먹는 걸 보고 따라하나 봐요. 그 전까지는 먹기 싫다고 보채며 속 썩이더니.”

시에나 왕비는 그렇게 말하며 지렌 왕자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렌 왕자와 지스는 내가 소환해준 실프와 함께 앞뜰 정원으로 뛰어나갔다. 어린아이들이라 활기차구나. 난 이제 배가 부르면 졸린데 말이지.

식사 후에는 티타임을 가져서 어제처럼 신나게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무서울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나왔고 시에나 왕비는 맞장구치며 즐거워했다. 시스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간간히 지렌 왕자와 노는 지스를 살필 뿐이었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아보였다.

세 여자와 조금 어울려주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집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여자들 노는 데 남자가 너무 오랫동안 끼어 있으면 안 되지. 적당히 빠져줘야지. 사실 지겹기도 하고 말이다.

대체 어떻게 잡담만 가지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까. 여자들은 참 신기하다니까.

저택으로 가서 전투로 인해 부서진 곳도 수리하고 관리를 해야겠다. 어차피 곧 레던 왕성을 떠나야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살아야 할 보금자리니까.

단숨에 날아갈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실프는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운디네를 불러야겠구나.

“운디네.”

-응.

허공에서 물방울이 맺히더니 운디네가 나타났다. 운디네는 내 몸속의 체액에 깃들어 나를 공중에 띄워 올렸다. 체액이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라 살짝 불편하긴 하다. 역시 하늘을 나는 데는 실프를 쓰는 게 더 쾌적하구나.

저택으로 날아갔다.

동산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우리 저택은 파손된 곳이 거의 없었다. 내가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탓에 성벽도 살짝 균열 간 부분만 있을 뿐 부서진 곳은 없었다.

저택 본관도 투석기가 쏜 바위에 맞은 모양이나 멀쩡했다. 오러 엑스퍼트 급 무인이 오러로 부서도 잘 안 부서지게끔 강도를 튼튼하게 해놨기 때문이다. 평소에 시간이 남을 때마다 틈틈이 손본 보람이 있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저택 앞뜰에 착지하니, 우리 가문의 집사인 니벨 영감이 인사했다.

“뭐 하고 있었어?”

“하인들과 함께 저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 마님과 도련님은 계속 궁전에 계실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저택 관리는 제 책임이 아닙니까.”

“역시 니벨 영감이군. 책임감이 있어. 내가 도와줄 건 없고?”

“일단은 저 바위를 치워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옮기기에는 무리라서 말입니다.”

니벨 영감은 정원 한복판에 놓인 거대한 바위를 가리켰다. 혼트 제국군의 투석기가 쏜 바위였다.

“알았어. 노움!”

-응, 아빠!

땅속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 노움이 내 품에 안겨들었다. 나는 노움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휴, 내 새끼 정말 오랜만이구나!”

-26시간 39분만이야!

“이 아빠가 정령친화력을 회복하느라 너희들 얼굴을 못 봤구나. 아빠가 다 회복하고 나면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꾸나!”

-응! 영원히 아빠랑 놀 거야!

“어휴 뉘 집 자식이 이렇게 귀여울꼬!”

-헤헤, 나 귀여워.

노움은 웃으며 좋아했다.

“그래, 우리 노움. 일단 이 바위부터 치우자.”

-맡겨줘.

우리 귀염둥이 노움은 팔을 걷어붙이고 바위 앞에 섰다. 두 손으로 자기 덩치만 한 삽자루를 꽉 쥐더니, 힘껏 삽을 풀 스윙했다.

터엉!

바위가 성벽 너머로 휙 하고 날아가 버렸다. 니벨 영감도, 하인들도 그것을 보며 넋을 잃었다.

“자, 이제 동산도 정리하자. 못된 애들이 우리 예쁜 동산에다가 흙을 퍼부어서 이상하게 만들어놨어요.”

니젤 쥬르덴이라고 했던가? 쥬르덴 후작의 아들놈이 저택 성벽까지 공성탑을 올리겠다고 흙을 쌓아서 길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머릿수가 많은 혼트 제국군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짓거리였다.

아무튼 보기 좋지 않으니 빨리 치워야겠다 싶었다.

-응!

노움은 산으로 달려가 삽질을 시작했다. 혼트 제국군이 쌓아놓은 흙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담한 동산만이 보기 좋게 남았다.

“이번에는 우리 집 울타리에 흠집 난 것 좀 없애자.”

-응! 맡겨줘!

투석기나 마법에 맞아 상한 성벽들이 원상복구 되었다. 그렇게 정령술을 발휘하여서 저택은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였다.

학생들과 사병, 용병들이 주둔하면서 어질러진 저택 내부는 니벨 영감과 하인들이 청소했다.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군.”

“예, 주인님 덕분에 빨리 끝났습니다.”

“달리 파손된 것들은 없고?”

“아무래도 전투를 치른 이들이 주둔한 뒤라 가구나 카펫이 좀 상했고 커튼도 붕대 대신 썼는지 많이 뜯어져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그리고 와인저장고에 있던 술들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큭. 괘, 괜찮아.”

와인저장고에 위치한 비밀통로를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혈기왕성한 학생들과 거친 용병들이 말이지. 술이 남아날 리가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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