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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13화 (413/529)

<-- 413 회: 경영의 대가 16권 -->

“그보다 재상이 데려온 두 사람을 소개시켜다오. 짐도 아는 얼굴로 보이는데.”

옳지.

기회가 왔군.

나는 존과 미첼의 공적을 에릭 국왕에게 말해서 왕실에 입관시키기로 하였다. 추가로 적의 식량을 끊은 에반의 숨은 공적도 챙겨줘야지. 에반의 성격에 별로 바라는 건 없겠지만, 작위나 한 단계 승작시켜주면 활동하기도 편할 터였다.

“이 두 사람은 왕립학교의 학생회장과 부회장으로 일전에도 폐하께 치하 받은 바 있었던 미첼 로도크와 존 스페이입니다.”

에릭 국왕도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손뼉을 쳤다.

“그렇군. 미첼 로도크와 존 스페이였어.”

에릭 국왕이 이름을 기억해주니 두 소년 미첼과 존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대의 저택을 수비한 지휘관이 바로 여기 있는 존 스페이라고 들었다. 맞느냐?”

“예. 맞습니다, 폐하.”

존이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짐이 기억하기로 로열나이츠가 성에서 나가 진지를 구축하는 혼트 제국군을 쳤을 때, 쥬르덴 후작의 술수에 넘어가 포위당할 뻔했다. 그때 기지를 발휘하여서 위험을 알려주어 무사히 귀환하게 해준 것도 존 스페이 그대다. 짐의 말이 맞느냐?”

“마, 맞습니다. 하,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폐하.”

음, 칭찬에 약한 타입이군. 존 녀석. 이점은 다소 안면이 두꺼운 아버지 랜달 스페이 백작과 다르군.

값비싼 퀸즈블러드를 내놓으라고 주정을 피우던 랜달을 떠올리며 나는 내심 키득거렸다.

“하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리가 있나. 하물며 학생들을 결집하여서 리간드 후작의 저택을 지킴으로서 혼트 제국군의 공격을 방해한 공적은 매우 크다. 아직 어린 그대들이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또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짐은 궁금할 따름이다.”

“들으시면 놀랄 겁니다, 폐하.”

내가 한마디 덧붙이면서 두 사람을 띄워주었다.

“하핫, 이 둘은 꽤나 겸손해 보이니 재상 그대가 한 번 설명을 해보아라.”

“그러겠습니다.”

말발은 내가 두 번째로 자신 있는 특기였다. 참고로 첫째는 게으름피우기, 정령술은 셋째다.

나는 미첼과 존이 이뤄낸 공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쥬르덴 후작이 레던 왕성을 기습적으로 공격할 것이란 걸 사전에 알아챈 존이 내 저택을 거점으로 삼아 레던 왕성 수비를 돕는 전략을 수립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에릭 국왕은 크게 놀랐다.

“쥬르덴 후작이 올 줄을 알고 있었다고? 그 말이 사실이냐? 재상이 허풍을 치는 게 아니고?”

이 양반이? 내가 언제 허풍을 쳤다고 그래!

“사실입니다, 폐하. 예전에 학교에 제출하였던 저희의 연구과제물을 보시면 증명될 것입니다. 당시 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존은 반드시 상황이 이리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미첼이 대신 대답했다.

에릭 국왕은 그만 멍해졌다.

그냥 재능 있는 소년인 줄 알았더니, 이미 충분히 훌륭한 군 지휘관이었다는 걸 알게 된 충격. 나도 상당히 놀랐으니 저 기분 이해한다.

에릭 국왕은 놀라다 못해 탄식을 했다.

“허어……. 존 스페이가 진즉에 짐의 곁에 있었더라면 이토록 힘들게 싸우며 고생하지도 않았을 게 아니냐!”

“우, 우연에 불과합니다. 근거가 없이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냥 소발에 쥐 잡듯이 우연히 결과가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존이 겸양을 했지만 에릭 국왕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인재를 귀신 같이 알아보는 에릭 국왕이 존이 타고난 천재임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대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더냐. 이것 참 놀랍군! 코앞에 인재가 있었는데도 몰라보고 있었다니.”

아직 두 사람의 공적에 대해 할 말이 많았는데, 보아하니 더 입 아프게 떠들 필요가 없어보였다.

에릭 국왕이 말했다.

“안 되겠다. 비록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미 충분히 제몫을 해낼 동량임을 알았으니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존 스페이!”

“예, 폐하.”

“그대에게 남작의 작위를 수여하며, 동시에 수도방위군의 천인장으로 임명하겠다.”

“예, 옛?!”

존은 깜짝 놀랐다.

“자세한 보직이 정해질 때까지는 항시 짐을 수행토록 하라.”

이어지는 말에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정말 대단하군. 에릭 국왕의 용인술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도방위군의 천인장이라는 직책은 물론이고, 국왕을 수행케 하다니. 전쟁 내내 존을 곁에 두고 쓰겠다는 의미였다.

에릭 국왕은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존을 옆에 두어서 다용도로 쓰려는 모양이었다. 참모로도 쓰고, 호위로도 쓰고, 병사를 주어서 군사임무를 수행케 할 수도 있고.

생각해보니 정말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존은 그 세 가지를 모두 해낼 역량이 있음을 입증되지 않았는가.

“제가 폐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어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에릭 국왕이 짐짓 장난스럽게 묻자, 퍼뜩 놀란 존은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래, 그래야지.”

흐뭇하게 웃은 에릭 국왕은 이번에는 미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로도크 백작의 아들 미첼.”

“예, 폐하.”

“그대는 육제후의 일인인 로도크 백작의 아들인데, 왕실에 투신하여 짐을 가까이서 보필할 의지가 있느냐?”

“제 길은 제가 직접 찾아서 걸을 뿐, 아버님과는 상관없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이 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겠나이다.”

말이 청산유수다. 자기어필에도 능숙한 걸 보면 확실히 정치에 적성이 맞아 보인다.

“그대를 보고 있으니 재정부상서의 어린 시절이 이러했을까 싶구나. 내 그대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수여하고 7급 왕실 관리에 임명하여 재정부상서 루이 콘체른 자작을 보필하게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미첼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미첼은 분명 레던 왕실 관리를 자신의 진로로 삼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목표가 이렇게 단시일에 이루어졌으니 기쁜 것도 당연하리라.

작위나 지위나 존보다는 낮았지만, 그것은 당연했다. 미첼에게 부족함이 있다기보다는 이번 전투에서 존이 너무 미친 활약을 펼쳤다.

아참.

한 사람을 빼먹을 뻔했군.

나는 급히 에릭 국왕에게 말했다.

“폐하. 공을 세운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제 심복 에반 테일러 남작이 혼트 제국군에게 식량을 대려고 했던 상단을 공격해 보급을 끊었습니다.”

“그랬던가? 하하! 카르스 황제의 의도를 알아차린 사람이 또 있었군!”

“‘또’라니요?”

“군사부상서 제론 데커드 자작이 뒤늦게 쥬르덴 후작 군단의 보급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네. 하지만 손을 쓰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서 도리가 없었는데, 그대의 오른팔인 에반 테일러 남작이 해냈군.”

오늘은 놀라는 일뿐이로군. 제론도 뒤늦게나마 카르스 황제의 생각을 알아차렸단 말이야? 역시나 제론이다. 전생에 ‘오리엔의 마지막 장벽’이라 불렸던 사내다워.

“그런데 재상, 그자에게는 어떤 상을 주어야 할 것 같으냐? 그대의 심복이라 관직을 주어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고, 돈이 궁할 리도 없으니.”

“승작을 시켜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 그렇군. 그렇다면 자작으로의 승작을 명한다는 문서를 따로 작성에서 그대에게 주겠다.”

“예, 폐하.”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이 재상 그대의 공로구나.”

“예?”

저건 또 뭔 소리래?

“이번 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 전부 그대로 인해 얻은 인재들이니, 그대는 카르스 황제에게 속았으면서 동시에 카르스 황제의 음모를 막은 게 아니냐.”

“아…….”

또 그렇게 되는군.

에릭 국왕은 하하 웃었다.

“역시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로구나.”

***

황도 티베리우스.

카르스 황제는 출진을 하기에 앞서 카록 리간드가 부숴놓은 성문을 수복하는데 힘과 시간을 쏟았다.

원정길에 오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내 안정이었다.

군주가 나라를 비운 동안 불순한 무리가 고개를 내밀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잘 다스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부서진 성문은 그 자체로 민심을 동요시키기 때문에 출진하기 전에 수복한 것이다.

그런데 성문 수복이 끝났을 무렵, 할슈타인 후작이 한 가지 소식을 가져왔다.

“안 좋은 소식입니다. 쥬르덴 후작이 레던 왕성 공략에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카르스 황제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카르스 황제는 감정이 없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원인을 알고 있었다.

“카록 리간드가 제때 도착했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카록 리간드가 이를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터. 다른 누구도 아닌 쥬르덴 후작이 그때까지 레던 왕성을 공략해내지 못했다니, 예상보다 레던 왕실의 역량이 대단했던 모양이군.”

“그런 듯합니다.”

“이전의 레던 왕실은 역량이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카르스 황제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과연, 카록 리간드가 뿌려놓은 안배들이 오늘날 레던 왕실을 크게 성장시킨 모양이군.”

“…….”

할슈타인 후작은 침묵했다.

원정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걸 예고하는 패전소식. 그럼에도 카르스 황제는 개의치 않은 듯했다.

‘아니.’

할슈타인 후작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생각을 속으로 곱씹었다.

‘오히려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이전까지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괴물로 보였던 카르스 황제였다. 아무리 그림자처럼 가까이에 있어도 주군의 감정을 좀처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카록 리간드. 네놈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

얼마 전에 카록 리간드와 대화를 나눈 후부터 카르스 황제의 변화는 더욱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모르지만 평생을 곁에 있었던 할슈타인 후작은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가자.”

카르스 황제의 말에 할슈타인 후작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내일 날이 밝으면 출발한다.”

무표정 무감정의 절대군주가 말했다.

“세상을 가지러.”

-16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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