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회: 경영의 대가 16권 -->
‘뭔가 이상하군.’
전황을 지켜보던 니젤은 의문을 느꼈다.
저택 수비군의 저항이 예상 외로 완강했기 때문이다.
처음 예정했던 100시간을 넘어서 거의 일주일간을 괴롭혔다. 존 스페이라는 변수 탓에 시간이 지체됐으나, 결국 의도대로 저택 수비군은 상당히 지쳤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혹사되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저항이 상당히 격렬했다.
‘내가 너무 얕봤나? 아니야. 정예 군대도 아닌데 저럴 수가 있다니, 무언가가 있다.’
전우애와 애국심으로 정신적으로도 강력하게 무장된 정예 군대라면 때때로 초인적인 위력을 발휘해 활약을 하기도 한다. 군(軍)의 사기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리간드 후작가 소속의 사병들을 제외하면 왕립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조직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데다가, 아직 성인도 안 된 애송이들 아닌가.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하자.’
니젤은 관측병을 불러다가 명령했다.
“너희는 지금부터 저택의 적 병력 숫자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해 실시간으로 계속 보고해라.”
“옛!”
관측병들은 저택의 동서남북 네 방면을 분담하여서 각자 맡은 구역의 적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헤아린 수를 합산해서 니젤에게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적 전력을 세밀하게 분석하겠다는 니젤의 의지였다.
관측병들은 계속 숫자를 헤아리고 합산된 수를 수시로 보고해왔다.
‘숫자가 안 줄잖아?’
니젤은 확신을 했다.
‘원군이 있다!’
수시로 지친 병력을 교대해주는 모습이라던가, 숫자가 줄지 않아 방어가 탄탄한 걸 보니 확실했다.
니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처음보다 병력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병력 수급은 대체 어디서 이루어진 거지?’
현재 혼트 제국군이 저택을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니젤의 용인 없이 저택을 드나들 수 없다. 하지만 저택의 수비 상황을 보았을 때, 처음보다 병력의 여유가 더 생긴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했다.
‘그렇군. 어딘가에 비밀통로가 있는 거야. 그곳으로 지원이 이루어진 거야.’
리간드 후작가쯤 되는 가문의 저택이라면 비밀통로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택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이미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기였다. 카록 리간드가 저택을 만들면서 유사시를 대비한 비밀통로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저런 저택을 하루아침에 만드는 대정령사가 뭔들 못 만들겠나.
그렇다면 문제는 그 비밀통로의 출구가 어디냐는 점이었다.
‘생각해보자. 카록 리간드는 우리 혼트 제국이 이곳을 침공했을 때를 대비해서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지금처럼 저택이 포위당해도 탈출 할 수 있도록 말이지.’
그렇다면 최소한 비밀통로가 레던 왕성 내부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랬다면 애당초 저택 수비군이 병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리도 없다. 레던 왕성의 군대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테니까.
게다가 저택이 공격받을 땐 이미 레던 왕성도 공격 받고 있을 텐데 그쪽으로 탈출하라고 비밀통로를 뚫을 리가 있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던 니젤은 병사들에게 시켰다.
“지도를 가져와라!”
“옛!”
이윽고 병사 하나가 레던 왕성 인근을 그린 군사지도를 가져왔다. 니젤은 지도를 펼쳐 유심히 살폈다.
일단 혼트 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레던 왕성 인근과 정찰대가 다니고 있는 지역은 제외했다.
카록 리간드가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만든 비밀통로. 그렇다면 가족을 어디로 피신시키려 했을까?
‘북쪽은 아니다.’
아무런 연고지도 없는 북부 지역으로 피신 보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비밀통로는 동쪽이나 남쪽으로 연결되었을 거라고 니젤은 생각했다.
카록 리간드라면 가족을 자신의 고향인 쿤트 백작가의 영지로 피신시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력한 방향은 남쪽이다.
하지만 지도를 본 니젤은 고개를 저었다.
‘남쪽은 평원이로군. 이쪽으로 피신하다가는 기병대가 많은 우리 혼트 제국군에게 사로잡힐 위험이 높지. 역시 동쪽인가?’
니젤은 지도의 동쪽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어떤 장소에 머물렀다.
‘응? 학교?’
순간 니젤은 직감했다.
왕립학교!
현재 저택을 지키고 있는 존 스페이와 학생들은 왕립학교의 무과생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리간드 후작가 저택도, 왕립학교도 카록 리간드가 정령술을 발휘해 지은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너무 먼데?’
일개 저택의 비밀통로치고는 너무 길지 않나 싶었지만, 이내 니젤은 고개를 저었다.
‘대정령사 카록 리간드를 상식적인 관점으로 보면 안 되지.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카록 리간드의 스케일이라면 이 정도 비밀통로도 그리 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추측은 점점 강한 확신이 되었다.
“19, 20, 21, 22, 23천인대는 기병대를 100명씩 차출하라. 내가 직접 이끌고 가볼 곳이 있다.”
니젤은 다섯 천인대로부터 기병 500명을 차출했다. 그리고 열 명의 천인장 중 최고참인 17천인대의 천인장에게 지휘를 맡긴 뒤에 말에 올랐다.
“나를 따라라!”
“옛!”
니젤은 기병대를 이끌고 북부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성벽 위에서 열심히 혼트 제국군과 맞서 싸우던 존의 눈에도 들어왔다.
‘니젤 쥬르덴? 대체 어디로…… 설마!’
니젤이 기병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자 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다. 동쪽은 왕립학교가 있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제길, 니젤 쥬르덴이 눈치 챈 모양이에요!”
경비대장 버나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 아, 설마?”
“원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어요. 제길, 최대한 숨기려 했는데도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다니.”
“과연 쥬르덴 후작의 아들이로군요. 무서운 자입니다. 그럼 지금 기병들을 끌고 가는 것은…….”
“비밀통로의 출구를 찾으러 가는 거겠죠.”
“저자가 비밀통로의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입니까?”
“대충 추측을 했겠지요. 왕립학교 어딘가에 있다는 것까지 추측해낸 모양이에요.”
존의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지금쯤 애들이 식량과 화살을 가지고 오고 있을 텐데 니젤의 눈에 띠면 큰일이에요.”
미첼과 함께 용병과 보급품을 구하러 따라 나섰던 학생들이 식량과 화살을 잔뜩 싣고 오고 있었다. 그들은 싸울 줄도 모르는 문과 학생들이었다. 니젤에게 사로잡혀서 심문을 당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비밀통로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실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시 지휘를 맡아주세요.”
버나드에서 전투 현장을 맡기고 존은 저택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첼!”
“왜 그래?”
부상자의 응급치료를 돕고 있던 미첼은 존이 다급한 얼굴로 부르자 의아해했다.
“식량과 군수품을 가지고 오는 애들, 지금쯤 어디까지 도착했을까?”
“서둘러 오고 있을 테니 아마 지금쯤 한나절 거리까지 왔겠지.”
“이런 빌어먹을.”
“무슨 일인데?”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아.”
미첼의 안색도 굳었다.
“절대 적에게 잡히게 해서는 안 되겠군.”
“응. 내가 직접 가볼 생각이야. 니젤 쥬르덴보다 먼저 애들에게 가서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해야 돼.”
“혼자?”
“수백 명의 기병을 동원해서 샅샅이 수색할 거야. 혼자서 움직이지 않으면 놈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어.”
“……다른 방법이 없군.”
“잠깐 나랑 같이 가자.”
존은 미첼과 함께 지하 와인저장고로 향했다. 와인저장고의 비밀통로 입구에는 여러 척의 조각배가 묶여져 있었다. 존은 배 한 척을 풀고 노를 잡았다.
“어서 타.”
“난 왜?”
“나만 내려주고서 배를 가지고 돌아가야지. 연못에 조각배가 떠다니면 놈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듣고 보니 그렇군. 나는 또 같이 가자는 줄 알았지.”
“미쳤어? 헤엄도 못 치는 도련님에게 위험천만한 모험을 강요하진 않아.”
“거 참 고마운 말씀이시군.”
미첼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조각배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