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 회: 경영의 대가 16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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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간드 후작가 저택 공략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니젤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큰 전략의 틀은 지켜지고 있지만, 작은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노림수를 존이 곧잘 선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서로가 각자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100%의 최선을 다하는 싸움이었다.
들은 바 있었다. 라이벌을 만나 자신의 모든 역량을 폭발시키는 대결이 있다고 했다. 그런 상대를 만난다면 무인으로서는 더없는 행운이라고 했다. 니젤은 자신이 바로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좋다. 훌륭하다, 존 스페이. 너나 나나 아직 어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훗날을 기약할 필요는 없지. 이 자리에서 한 번 끝장을 보자.’
니젤은 명령을 내렸다.
“투석기와 마법사를 준비해라. 성벽에 타격을 가한다.”
역시나 존이 우려하는 대로 행동하는 니젤이었다. 실로 라이벌이 아닐 수 없었다.
마법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공병들도 조립해두었던 투석기를 끌고 왔다. 투석기가 돌을 날리기 시작하자, 마법사들도 타이밍에 맞춰서 일제히 마법을 펼쳤다. 화력을 집중시켜 성벽을 깨부수겠다는 각오였다.
콰콰쾅―! 콰르릉!
거대한 충격과 함께 강타당한 성벽이 진동했다.
니젤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정규군이 아니지. 급조된 병력. 당연히 투석기 같은 중병기도 없을 것이다. 뾰족한 대응책이 없을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저택 측은 달리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존은 손 놓고 구경만 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사격준비! 전원 적군 마법사들을 조준해!”
날아오는 마법과 바위에 당하지 않기 위해 엄폐물에 숨어 있던 학생들은 지시가 내려지자 화살을 시위에 걸어 높은 각도로 조준했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법사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가깝지 않은 만큼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일제히 사격하면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존의 판단이었다.
존은 혼트 제국군의 마법사들을 지켜보았다. 마법사들은 다시 마나를 모아서 마법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아,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존이 명령을 내렸다.
“발사!”
쉬쉬쉬쉭―!
수백 발의 화살이 마법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물론 혼트 제국군 측에서는 커다란 방패를 든 병사들이 보호해주었지만, 그것만으로 완벽하게 보호되지는 않았다.
“실드!”
두려움을 느낀 몇몇 마법사가 방어마법을 펼쳤다. 화살은 실드를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첫 번째 사격은 아무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하지만 존은 그걸로 됐다고 여겼다.
“좋아, 다시 사격준비!”
그러자 옆에 있던 경비대장 버나드가 걱정스레 물었다.
“대장님, 화살을 쏴봐야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만…….”
“아뇨, 효과가 있습니다.”
존이 설명했다.
“마법사들의 집중을 방해할 수 있고, 몇몇 마법사는 공격마법 대신 실드를 써서 마나를 소비했잖습니까. 이렇게 계속 하면 결과적으로 적의 화력을 다소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버나드는 무릎을 탁 치며 존의 임기응변에 감탄했다.
“발사!”
다시 명령이 떨어지자 화살세례가 마법사에게 쏟아졌다. 마법사들은 이번에도 몇몇이 실드를 쳐서 막았고, 나머지 마법사들은 그 속에서도 공격마법을 완성했다.
“파이어볼!”
“윈드 스톰!”
불덩어리와 폭풍의 망치가 성벽을 다시 한 번 강타했다. 충격의 여파로 성벽이 들썩거리자 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화살의 사정거리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투석기들은 그 와중에도 꾸준히 바위를 날리며 저택을 괴롭혔다.
‘여건이 불리해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해야 돼. 게다가 우리가 꼭 불리한 것만도 아니고.’
존은 성벽의 상태를 보며 생각했다.
집중 공격을 당했음에도 성벽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생각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져서 오래 버틸 것 같았다.
한편,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니젤은 혀를 쯧쯧 찼다.
“나 참, 과연 대정령사 카록 리간드의 저택이다 이건가. 뭐 하나 간단한 게 없군.”
존의 훌륭한 대응은 둘째 치더라도, 성벽이 비상식적으로 튼튼했다.
무슨 국경선에 지어진 험준한 요새도 아니고, 일개 가문의 저택 담벼락이 저따위란 말인가? 이걸 만든 카록 리간드라는 작자의 낯짝을 한 번 보고 싶은 니젤이었다.
“그럼 나도 생각을 달리 해야지.”
니젤은 천인장들에게 지시했다.
“마법사들을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로 물려라. 그리고 투석기의 발사각을 상향 조정한다.”
“상향 조정 말씀이십니까?”
천인장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투석기의 발사각은 이미 정확히 성벽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
니젤은 계속 말했다.
“마법사들은 바람 계열의 마법으로 투석기가 쏜 바위가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지원한다. 성벽이 아니라 저택 본 건물을 노리는 거다. 저 성벽보단 저택 건물이 더 부수기 쉽겠군.”
“아…… 옛!”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제야 천인장들은 니젤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윽고 마법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공병들은 투석기의 발사각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저택을 직접 타격해 파손시켜 피해를 입히고 혼란을 유발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공격.
투석기가 바위를 쏘자 마법사들이 타이밍을 맞춰서 마법을 시전했다. 돌풍이 바위를 높게 띄워 올렸다.
“어, 어?!”
“뭐야!”
학생들은 성벽 너머로 날아오는 바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윽고,
콰앙―!
바위가 저택을 강타했다.
“무, 무너진다!”
“위험해!”
저택 내부에서 일대 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택은 멀쩡했다.
존은 이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짓까지 하다니.”
“적장이 보통 내기가 아닙니다. 저택이 무너져 사상자가 생기면 큰일인데요.”
‘니젤 쥬르덴!’
일전에 맞닥뜨린 바 있었던 적수를 떠올리며 존은 이를 악물었다. 아픈 곳만 악랄하게 찔러오는 상대의 악의에 적개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건 대책이 없네요. 어떻게든 견디는 수밖에요.”
“크윽…….”
버나드도 침통한 얼굴로 혼트 제국군 진영을 바라보았다.
혼트 제국군은 계속 바위를 성벽 너머로 날려댔다. 그때마다 저택 건물이 바위에 얻어맞아 굉음이 울렸다. 존은 학생들에게 되도록 바위가 날아오는 쪽으로는 통행하지 말라고 주의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같은 국면은 계속되지 않았다.
“……저택도 튼튼한데?”
가만히 전황을 보고 있던 니젤이 중얼거렸다.
그랬다.
리간드 후작가는 저택 본 건물마저도 성벽 못지않게 비상식적인 튼튼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날아오는 바위에 세차게 충돌 당했음에도 크게 파손된 부위가 없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기껏해야 3백 명도 안 되어 보이는 인원이 지키고 있는 저택 한 채가 이렇게 점령하기 힘들 수 있다니……. 아버지 쥬르덴 후작으로부터 1만 병력의 지휘권을 받은 니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자신이 무능하게 보일 게 아닌가.
“아무래도 시설을 파괴하는 방식의 공격은 통하지 않겠군.”
역시 저 지긋지긋한 성벽을 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니젤은 결론을 내렸다. 저택 수비군 측에서 화살과 식량이 기다리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혼트 제국군 역시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돌격병으로 하여금 성벽을 올라 공격하게 하자니 병력 피해가 누적된다.
“역시 공성탑이 필요해.”
공성탑은 간단히 말해 바퀴 달린 탑이다. 성벽보다 높게 지어진 탑에 병력을 태우고 성벽에 가까이 접근시킨다. 그러면 탑에서 화살을 쏴서 성벽의 엄폐물에 숨은 적을 사살할 수도 있고, 다리를 성벽 위로 연결해 점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리간드 후작가 저택이 작은 동산 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무거운 공성탑을 밀고 경사진 산을 오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불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니젤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