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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96화 (396/529)

<-- 396 회: 경영의 대가 16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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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쥬르덴 후작의 본진 병력 6만과 레던 왕실 측의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쥬르덴 후작의 군대는 분해된 상태로 어렵게 가져온 공성병기를 조립하게 했다. 투석기가 급히 조립되어서 돌을 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사공학전문가와 공병(工兵)들, 그리고 마법사들이 합심하여서 인근 숲의 나무를 베어다가 공성탑(攻城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혼트 제국군의 정규 설계에 따라 공병들이 재빨리 작업했고,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지원하여서 레던 왕성의 성벽보다 높은 공성탑이 만들어졌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에 레던 왕실측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잘 훈련시키는 것 또한 군 지휘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저런 엄청난 군단을 키워낸 쥬르덴 후작의 역량은 비록 적이긴 하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쥬르덴 후작과 레던 왕실이 모든 공성병기를 동원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리간드 후작가 저택과 니젤의 전투는 낮과 마찬가지로 소소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저럴 생각일까, 저 자식들.” 

“지휘관이 또라이 아냐?” 

“저러다 지들이 먼저 지치겠다.” 

학생들은 하품을 하며 한 마디씩 했다. 이제 엄폐물 너머로 날아오는 화살은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 심심해. 잠이나 한 숨 자고 싶다. 내 차례는 언제야?” 

“흐흐, 내 차례는 10분 남았어.” 

그렇게 긴장의 끈이 풀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라? 저것들 움직임이 이상한데?” 

줄기차게 치고 빠지는 헛짓을 계속하던 혼트 제국군 4천여 병력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정말이네. 쟤네들 어디 가는 거야?” 

“오늘은 이제 그만하겠다는 건가?” 

“설마. 지금껏 한 게 뭐 있다고. 밤부터가 진짜 싸움이라고 존이 말했잖아.” 

학생들이 수군거릴 때였다. 

혼트 제국군 진지에서 새로운 병력이 출현했다. 아까보다 더 많은 병력이었다. 

그제야 학생들은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교대다.” 

“낮에 알짱거리며 삽질하던 놈들은 이제 쉬러 가고 다른 놈들이 온 거야.” 

“밤부터가 진짜 싸움이라고 했었지?” 

학생들은 서서히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적들이 제대로 싸우기 위하여 오고 있는 것이었다. 

때마침 존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전군 전투 준비! 정신 바짝 차리고 낮에 훈련했던 대로만 한다!” 

“오케이!” 

“우오오!” 

“한 번 덤벼봐라!” 

“우리도 이제 몸 좀 풀자!” 

학생들은 저마다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이윽고 혼트 제국군이 움직였다. 전술은 낮에 보여준 것과 동일했다. 돌격병들이 방패와 사다리를 짊어지고 돌격. 궁병이 화살을 쏘아대며 엄호. 

이에 맞서서 존이 외쳤다. 

“전군 사격준비!” 

낮에 실컷 훈련했다. 학생들도 사병들도 엄폐물에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당겼다. 날카로운 화살촉은 엄폐물에 뚫린 화살구멍을 통해 적군을 겨냥했다.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화살을 쏘는 법이 없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마침내 동산을 올라온 돌격병들이 사정거리에 이르렀다. 짊어지고 있던 사다리를 성벽 위로 올리려는 순간, 존이 소리쳤다. 

“사격개시!” 

파파팟― 

콰콰콱! 콰직! 콰악! 

“으악!” 

“큭!” 

일시에 날아드는 화살의 비. 화살에 적중당한 돌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동산을 올라올 때 쏘았더라면 그들의 견고한 방패 가드에 화살이 가로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방패 가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격명령을 내렸다. 실로 감각적인 타이밍이었다. 

“다시 사격준비!” 

존이 다시 명령했다. 

“일제사격!” 

다시금 화살이 돌격병들에게 쏟아졌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선두에 있던 돌격병들이 픽픽 쓰러졌다. 

하지만 혼트 제국군 정예들은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한 명이 앞장서서 방패로 방어를 굳히고, 그 뒤에서 다른 동료들이 사다리를 올렸다.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인하여 사다리들이 하나둘 성벽 위에 걸쳐졌다. 

“자유사격!” 

존의 지시가 떨어졌다. 학생들도 사병들도 이제 명령에 상관없이 화살을 닥치는 대로 쏘기 시작했다. 당장 적들이 올라오려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명령을 기다리며 타이밍을 맞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쏟아지는 화살. 터지는 비명. 흐르는 유혈. 코를 찌르며 풍기는 피비린내. 

진짜 전쟁이 모두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더욱 압도한 것은 단지 그런 잔인한 풍경만이 아니었다. 

“올라라!” 

“성벽을 점령해라!” 

혼트 제국군 돌격병들은 사다리뿐만이 아니라, 로프를 던져서 성벽에 걸었다. 학생들과 사병들은 열심히 로프를 자르고 사다리를 치웠지만, 적군은 꿋꿋하게 기계처럼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옆에서 동료가 화살에 맞아 죽어도, 잘린 로프와 함께 추락하는 동료가 보여도, 흔들림 없는 냉정한 태도로 공격해왔다. 싸우기 위해 태어난 귀신들 같았다. 그것은 리간드 후작가 저택을 지키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로프를 타고 오르는 병사들은 성벽의 돌 틈새에 단검을 박아 넣어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위에서 로프를 자르려 하면 재빨리 로프를 포기하고 단검으로 만든 발판을 이용해 성벽에 맨손으로 매달렸다. 

뒤 이어 올라오는 돌격병들 또한 성벽에 여기저기 앞선 전우들이 박아놓은 단검을 타고 성벽을 등반했다. 

“씨, 씨발, 저게 뭐야?” 

“지독한 새끼들! 바퀴벌레처럼 잘도 기어 올라오고 있어!” 

“겁먹지 마, 새꺄! 저 자식들이 우리가 쫀 줄 알잖아!” 

사다리와 로프를 제거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심지어는 맨손으로 성벽을 올라오기까지 하다니?! 지독한 훈련을 거쳐 탄생한 최정예들의 위용에 무과 학생들은 경악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어느 병과보다도 죽음의 위험에 노출된 돌격병들은 필연적으로 정찰병과 함께 가장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정예들일 수밖에 없었다. 

성벽에 바짝 붙어서 기어오르는 돌격병들은 엄폐물에 뚫려 있는 화살구멍으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몇몇 학생들이 엄폐물에서 나와 아래쪽으로 직접 화살을 겨누었다. 그러다가 후방에서 혼트 제국군 궁병들이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쏜 화살에 맞고 말았다. 

콰직―! 

“끄악! 아, 아파……!” 

마침내 학생들 중에서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루, 루이스가 당했어!” 

“씨, 씨발! 이,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이게 전쟁이지!” 

친구들 중에서 사상자가 나오자 학생들은 비로소 진정한 전쟁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존이 우려했던 대로였다. 

눈에 보이는 까마득하게 많은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하나 같이 저들처럼 날랜 정예라면? 그렇다면 승산이 없다. 놈들은 모두 프로다. 아직 성인도 안 된 우리와는 격이 다르다! 

귀족으로서의, 무인으로서의 자부심 뒤에 가려져 있었던 10대 중후반 소년들의 덜 여문 감성이 두려움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 존의 목소리가 오러를 타고 울려 퍼졌다. 

“무서워할 것 없어! 전 병력이 다 저런 특수훈련을 받았을 리가 없잖아! 일부를 제외하면 보잘 것 없는 일반 보병들이야! 군사학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알 거 아냐!” 

학생들은 두려움 속에서 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너희는 무인이야! 저따위 하찮은 놈들과는 격이 다른 무인들이다! 저딴 놈들에게 겁먹으려고 오러 컨트롤을 배우고 가문의 비전 검술을 갈고 닦았냐?!” 

그제야 학생들은 공포에서 깨어났다. 

아니, 공포는 공포.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는 마음가짐이 학생들에게 퍼졌다. 고작 일반병사들 따위를 상대로 겁먹고 있으면 가문의 수치였다. 

“그래 씨발 싸우자!” 

“어디 한 번 와봐라 바퀴벌레 새끼들!” 

“네놈들이 단체로 오러 컨트롤이라도 익혔냐?!” 

학생들이 투지를 되찾자 존이 재차 소리쳤다. 

“2인 1조로 호흡을 맞춰 움직여. 한 사람은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고, 다른 사람은 올라오는 적을 공격한다!” 

“우오오!” 

“그리고 한 명은 다친 동료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응급처치를 해줘!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오오오오―!”

모두들 함성을 내지르며 호응했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함성이었지만, 덕분에 기세가 올랐다. 

‘다행히 위기는 모면했다.’ 

간신히 아군을 독려하는데 성공한 존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존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했던 말들 중 일부는 사기진작을 위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쥬르덴 후작이었다면, 사전에 돌격병의 비율을 대폭 높였을 거야. 레던 왕성 공략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으니까.’ 

혼트 제국군 중 돌격병의 숫자는 상당히 많은 게 분명했다. 저렇게 귀신처럼 성벽을 잘 올라오는 공성전의 전문가들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그래도 지지 않겠어.’ 

존은 이를 악물었다. 15세 소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길 거다. 나는 이길 거다. 기필코 살아남아 승자가 되겠다. 모두와 함께!’ 

스스로에게 쉼 없이 최면을 걸었다. 

레던 왕성,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어린 신성(新星)이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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