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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95화 (395/529)

<-- 395 회: 경영의 대가 16권 -->

니젤은 잠잠한 저택의 반응을 보며 혀를 찼다. 

‘생각 외로 침착한데?’ 

첫 실전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과도한 흥분상태로 대응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대응하지 말라고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상 저렇게 잠잠할 리가 없었다. 

‘내 생각을 읽은 거냐? 아니면 움츠러든 거냐?’ 

압도적인 병력차이 때문에 화살을 아끼겠다고 일부러 대응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한 번 시험해볼까?’ 

니젤은 제대로 붙기 전에 한 번 존 스페이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보고 싶었다. 

이윽고 니젤이 주간 조의 네 천인대에 명령을 내렸다. 직접 공격해 성벽을 공략하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혼트 제국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패와 검으로 무장한 돌격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한 손으로는 방패를 들어서 적의 궁시에 대비하고, 다른 손은 동료 전우들과 함께 기다란 사다리를 짊어진 공성 전문 병과(兵科)였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격병들이 경보(競步)로 전진을 개시했다. 돌격병들이 동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뒤에서 궁병들도 성벽 위로 화살을 쏘아대며 엄호해주었다. 

‘자, 어쩔 셈이냐?’ 

니젤은 상대측의 대응을 기다렸다. 

한편, 리간드 후작가 저택 측은 소란이 벌어졌다. 지금껏 화살만 날려대던 적들이 본격적으로 달려오니 바짝 긴장한 것이었다. 

“설마 벌써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건가?” 

존은 놀랐다. 

“이젠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버나드가 옆에서 조언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존은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 궁시 준비!” 

그러자 사병들도 학생들도 부랴부랴 화살을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존이 재차 말했다. 

“지척까지 다가오면 쏠 거야!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 발사하지 마라!” 

일단 적을 방심시키고 가까이 다가오면 일시에 화살을 날려서 예봉(銳鋒)을 꺾을 참이었다. 

그런데 혼트 제국군의 돌격병들이 성벽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였다. 

피잉―! 

아직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한 사람이 화살을 쏘고 말았다. 화살을 돌격병들의 방패에 튕겨나갔다. 그런데 그 화살 한 발을 신호가 되었는지 다른 몇몇 이들도 따라서 화살을 쏘는 것이었다. 

“뭐야? 누구야?! 쏘지 말라니까!” 

존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 사격 명령 아직이었어?”

“미, 미안. 내가 실수로 활시위를 놔버렸어.” 

“에이 씨, 헷갈리게 만들지 마!” 

여기저기서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이었다. 존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멍청이들……. 이래서야 더 가까이 오면 쏘겠다고 미리 예고해준 꼴이잖아.”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뿌우우우―! 

혼트 제국군 진영에서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것을 신호로 접근해오던 혼트 제국군의 돌격병들이 썰물처럼 후퇴하는 것이었다.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말이다. 

“뭐야?” 

존은 황당해졌다. 

경비대장 버나드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쎄요. 화살 쏠 까봐 무서워서 돌아가는 건 아닐 텐데요.” 

상대는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성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임무를 가진 최정예 병사들이 아닌가. 반격이 무서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존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냥 우릴 한 번 테스트해본 모양이네요.” 

“간 본 겁니까?” 

“아마도요. 전투 시작되고서 우리가 줄곧 엄폐물 뒤에 웅크리고만 있었잖아요. 제대로 공격하면 어찌 대응할지 한 번 본 것이겠죠.” 

“우리들의 수준을 한 번 본 것이라면…… 좋지 않겠군요. 적을 앞에 두고 사격 명령 없이 실수로 화살을 날리고 엉망진창인 꼴을 보였잖습니까. 우릴 우습게보겠군요.” 

그러나 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가 오합지졸이라는 것쯤은 적도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그보다는 우리가 겁먹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으니 그걸로 됐어요.” 

존의 추측은 정확했다. 

‘병력차이에 주눅 든 게 아니었군.’ 

저택 측의 반응을 살펴보았던 니젤은 존 스페이를 얕봐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물론 돌격병들이 성벽으로 돌입할 때 화살 몇 발이 실수로 날아온 광경에서는 피식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그걸 보고서 니젤은 존이 가까이 다가오면 일제사격을 가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즉시 뿔 나팔을 불어서 철수하게 했다. 

일제사격이 두려운 게 아니라, 존 스페이가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한 것이었다. 

‘어이어이, 너무한 거 아냐? 이러면 내가 시샘하게 되잖아.’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중책을 맡아놓고도 어찌 저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은 니젤도 저 나이였을 때 저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샘이 났다. 승부욕이 치솟았다. 

상대가 어려서 긴장감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존과 승부를 겨루기로 마음먹었다. 

니젤은 주간 조 14, 15, 16, 17천인대의 천인장들을 불렀다. 

“지금처럼 계속 시간차를 두고 화살을 쏘고, 때때로 돌격병들을 공격시켰다가 후퇴시키기를 반복하면서 놈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해라. 진짜 싸움은 밤에 시작될 것이니 쓸데없는 피해는 없게 하도록.” 

“옛!” 

그렇게 지루한 공방은 해가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긴 시간차를 두고 가끔씩 화살이 날아들다가, 지루할 때쯤이면 불시에 돌격병들이 동산을 올라와서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성벽에 사다리도 걸치지 않고 그냥 되돌아가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쯤 되면 학생들도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새끼들 대체 뭐야?” 

“덤빌 테면 한 번 화끈하게 덤벼보든가!” 

“김빠지게 만드네. 지금 사람 갖고 장난 하나.” 

제대로 유혈이 낭자하는 전투 없이 공방이 계속되니 처음에는 겁먹었던 학생들도 차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존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아직 두려움은 사라진 게 아니야.’ 

난생 처음으로 전쟁을 치르게 된 학생들. 지금이야 적이 시원찮게 한 번 툭 건드려보고 빠지기를 반복하니 지루해졌겠지만, 결코 전쟁의 공포가 머릿속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밤부터가 진짜야. 진짜 혈투가 벌어지면 두려움이 생겨버릴 거야.’ 

지금까지는 그저 싸우려다 말고를 반복했을 뿐이지만, 적들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 올라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다리나 로프를 성벽에 걸친 채 자신을 죽이겠다는 명백한 살의를 품은 이들이 떼 지어 기어 올라오는 풍경을 본다면 어떨까? 경험이 풍부한 백전용사가 아니고서야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징그럽다 못해 끔찍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긴장감이 풀려 있으면 안 된다. 체력은 비축해두되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 

존은 다시 학생회 멤버인 로이드와 믹을 불러서 학생들에게 당부를 전달했다. 

“지금은 적의 공격이 없을 테니 기운 빼지 말고 체력을 아끼도록 해.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돼. 진짜 피 튀기는 싸움은 밤부터 시작될 거야. 셋이서 조를 짜서 한 명씩 낮잠을 자도 괜찮으니 밤을 대비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 

그렇게 3인 1조의 체계가 이루어졌다. 

한 명씩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잠을 자고, 식사 시간에도 한 명씩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다. 적의 차륜전에 대비해 존 역시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만든 것이었다. 

또한 존은 현재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러 가지 훈련을 하였다. 

돌격병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사격준비만 하고 기다리는 훈련, 명령을 내렸을 때 지체 없이 일시에 사격하는 훈련, 한쪽 병력을 떼어 다른 구역으로 지원하는 훈련 등등……. 

턱없이 부족한 조직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존은 진짜 전쟁 속에서 훈련을 진행하였다. 

경비대장 버나드의 통솔을 받고 있는 사병들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존의 의도를 이해하고 협조해주었기에 훈련은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다. 다들 무과 학생이라 군사학을 배웠기에 조직력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 되니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하여 치고 빠지고 화살을 쏘는 혼트 제국군의 행동은 오히려 훈련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 진짜 적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훈련 효과가 매우 좋았다. 

이를 보며 경비대장 버나드는 더더욱 존의 지휘관으로서의 재능에 감탄하게 되었다. 

‘정말 천재구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지휘관의 통제 하에서 전쟁을 치르게 되어서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용병생활과 수도경비대 군복무를 거쳐 경험이 풍부한 버나드는 어떤 인물이 훌륭한 지휘관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에 존은 승리를 만들어낼 줄을 아는 명장이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었다. 

해질녘의 붉은 황혼이 하늘을 물들이더니, 이내 지상 만물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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