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회: 경영의 대가 16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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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간드 후작가 저택 공략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 니젤은 공성 준비를 하면서 곤란한 얼굴로 저택을 살폈다.
“지형이 참 골치 아프군.”
작은 동산 위에 있어서 점령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성벽은 높고 해자도 깊었다.
첩보에 의하면 카록 리간드 후작이 정령술로 그렇게 만들었다는데, 점령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실로 골치 아팠다. 아니, 가족의 안전을 위해 자기 집을 요새로 만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얼마나 지독한 안전주의자라는 뜻인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저택을 수비하는 병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또한 적군이 전쟁 경험 없는 애송이들이라는 점도 한 번 찔러볼만한 약점이었다.
‘첫 실전이라…….’
니젤은 전투에 처음 투입되었던 옛 추억을 떠올렸다. 유목민족의 반란 때 아버지의 휘하에서 싸웠는데, 짧게 끝난 전투였음에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었다.
‘처음으로 전투를 경험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큰 피로를 느낄 것이다.’
정신의 소모가 얼마나 육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니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서 며칠간 저택의 애송이들은 그걸 뼈저리게 느끼리라. 그리고 전투와 피에 익숙해지면 피로는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전투 시작 직후 며칠간, 녀석들이 정신적인 피로를 가장 심하게 느끼는 때에 총공세를 펼쳐야겠군.’
전투 직후부터 며칠간, 애송이들이 가장 피로를 크게 느끼는 기간에 공격을 집중시켜서 큰 피해를 입히겠다는 의도였다.
압도적인 병력과 전투력으로 기선제압을 해서 정신적으로 위축되게 만들면,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머릿속으로 전략의 밑그림이 그려진 니젤은 즉시 휘하의 천인장 열 명을 집합시켰다.
“오늘 정오가 지나면 리간드 후작가 저택 공략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100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격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작전이다.”
니젤의 폭탄 발언에 천인장들은 깜짝 놀랐다.
100시간이라니? 나흘이 넘는 시간을 쉬지 않고 공격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니젤이 말을 이었다.
“병력을 주간 조와 야간 조로 나누겠다. 14, 15, 16, 17천인대는 주간 조, 18, 19, 20, 21, 22, 23천인대는 야간 조다. 질문 있나?”
그러자 한 천인장이 손을 들어 발언을 요청했다.
“말해라.”
“예. 주간 조가 야간 조보다 적은 천인대가 배정되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 겁니까?”
“물론이다.”
니젤의 의도는 간단했다.
낮에는 가벼운 견제성 공격으로 저택을 지키는 레던 왕국군으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진짜 본격적인 공략은 밤에 시도할 참이었다.
상대측은 지휘관은 물론 병력의 태반이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애들이었다. 야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싸워본 경험이 없을 터.
밤낮을 싸워서 지치게 할 생각이었다. 상대는 병력이 적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피로가 쌓이고 쌓이면 마음은 비관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투지가 꺾이고 절망이 피어난다. 정신적인 피로로 인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자포자기로 싸움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네 최후다, 존 스페이.’
니젤은 즐겁게 웃었다.
병력도 훈련 상태도 경험도 모두 우위에 있었다. 절대로 질 수가 없는 싸움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야간 조의 여섯 천인대는 야전(夜戰)을 대비하여 휴식에 취했고, 주간 조로 배정된 14, 15, 16, 17천인대가 전투에 나섰다. 네 개 천인대의 병력은 도합 4천여 명.
아마 리간드 후작가 저택 측에서는 자신들이 1만에 달하는 적군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를 터였다. 니젤은 바로 그 점을 노려서 야간 조에 더 많은 병력을 배정한 것이다. 얼마 안 되는구나, 충분히 해볼 만하겠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고서는 밤부터 진짜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참이었다.
그렇게 사소한 부분까지도 적의 약한 부분을 찔러 들어가는 습성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니젤의 강점이었다.
네 개 천인대는 저택을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 방식은 궁시(弓矢). 제대로 싸우지 말고 가볍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정도로만 공격하라는 니젤의 사전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시작했다!”
“조심해! 엄폐물 뒤에 숨어!”
존이 소리쳤다.
잔뜩 긴장해 있던 학생들은 적의 공격에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다행히 눈 먼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리간드 후작가 사병들은 저택 수비에 익숙해서 엄폐물에 잘 숨었고, 학생들은 전원이 오러 유저라서 곧잘 날아드는 화살을 검으로 쳐낸 것이다.
어깨를 살짝 긁힌 학생이 나온 것이 피해의 전부였다. 그러나 적의 궁시는 한 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파파파팟―
또다시 비처럼 내리는 화살세례.
존은 소리쳤다.
“억지로 쳐내려 하지 말고 안전하게 엄폐물에 숨어! 쓸데없이 체력 낭비를 하면 안 돼!”
그제야 학생들은 성벽 뒤에 숨었다.
방어에 용이하게 잘 만들어진 성벽이라 숨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적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도 화살을 쏴서 반격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비대장 버나드가 엄폐물에 숨은 채 존에게 물었다. 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화살을 아끼죠.”
“하지만 일방적으로 공격만 받으면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지…….”
“적은 아직 제대로 된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어요. 이건 가벼운 첫 인사에 불과하죠.”
존은 엄폐물의 구멍 너머로 혼트 제국군을 살피며 이어서 말했다.
“제대로 공격을 하려거든 궁시로 엄호하는 동시에 직접 병력을 돌격시켜서 성벽을 공격해왔겠지요.”
제대로 저택을 점령하고자 한다면 사다리나 로프를 걸어서 성벽을 기어 올라올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저 여유를 두고 화살만 간간히 쏘고 있었다.
“악수하자고 손 내미는데 화들짝 놀라서야 체면이 서지 않죠. 이 정도 인사에 놀라 과도한 대응을 하면 화살과 체력만 낭비됩니다. 우리는 적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해요.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면서 흥분을 가라앉게 해야 해요.”
“그, 그렇군요. 듣고 보니 대장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대장님이요?”
놀란 존의 물음에 경비대장 버나드는 씨익 웃었다.
“‘스페이 도련님’보다는 그편이 더 적당한 호칭 같아서 말입니다. 혹여 듣기 거북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영광이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존은 학생회의 규율부장 로이드 딕슨과 행사부장 믹 루벤을 불렀다.
웅크려 엄폐물에 몸을 가린 채 다가온 두 사람에게 존이 말했다.
“애들한테 전달해. 흥분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아직 적은 시작도 안 했고, 시작할 생각도 없어.”
“정말?”
로이드가 의아해했다.
적이 아직 제대로 된 공격을 시작할 생각도 없다고 확신하는 존의 태도에 궁금증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을 근거로 저리 장담을 한단 말인가?
존이 말했다.
“내가 쥬르덴 후작이라면 저것보다 더 많은 병력을 집중시켜서 최대한 빨리 이 저택을 점령할 거야. 그런데 공격하는 적의 숫자가 저것밖에 없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우리를 겁줘서 피곤하게 만들 속셈이니까 녀석들 술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해.”
“응!”
“알았어!”
로이드와 믹은 성벽 위를 분주하게 이동하며 학생들에게 존이 한 말을 전달했다.
존은 혼잣말처럼 경비대장 버나드에게 말했다.
“이 저택은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있어서 레던 왕성의 성벽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요. 레던 왕실군의 병력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고지죠. 레던 왕성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여길 점령해야 해요. 고작 5천도 안 되는 병력만으로 공격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그럼……?”
“아마도 밤이 깊으면 진짜 싸움이 시작되겠죠.”
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어쩌면 차륜전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기야 병력차가 워낙 압도적이니 그것도 가능할 테죠. 24시간 싸울 수 있도록 편제를 다시 짜야할지도 모르겠어요.”
“……대장님.”
“예?”
그제야 존은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경비대장 버나드가 놀란 얼굴로 탄사했다.
“대장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런가요?”
“용병노릇도 했고 수도경비대에서도 복무했습니다만, 대장님처럼 어린 나이에 그리 침착한 분은 처음입니다. 과연 스페이 백작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버나드는 눈앞의 소년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