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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레던 왕성 공방전
미첼은 몇몇 학생들과 함께 자금을 가지고 무기와 용병을 구하러 떠났다. 귀중한 자금을 약탈당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줄리아가 데리고 온 하인 10명을 붙여주었다.
존은 무장을 하고 나타난 무과생들과 함께 리간드 후작가 저택으로 갔다.
“자, 따라오렴.”
줄리아는 존에게 저택 내부 구조와 식료품창고 등을 안내해주었다. 와인저장고에 있는 비밀통로까지 보여주고, 와인저장고 열쇠를 넘겨주었다.
리간드 후작가 저택은 상당히 넓어서 수백 명이 충분히 주둔할 수 있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줄리아는 존에게 저택을 경비하는 사병의 책임자를 소개시켜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리간드 후작가 저택을 지키는 경비대장 버나드입니다.”
버나드는 40대 초반의 사내로, 용병생활을 하다가 왕실군에 입대해서 수도경비대의 백인장까지 지내다가 리간드 후작가에 고용된 인물이었다.
“존 스페이입니다.”
“그 랜달 스페이 백작님의 아드님이셨군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존은 검술천재로 유명했기에 경비대장 버나드도 잘 알고 있었다.
줄리아가 말했다.
“존이 이곳의 총책임자가 되어서 싸움을 지휘할 거야. 버나드 너는 존의 부관이 되어서 돕도록 해.”
“예, 마님. 맡겨주십시오.”
다행히 버나드는 어린 존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있어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비록 어리지만 오러 엑스퍼트의 천재였기 때문에 수긍하는 모양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존이 손을 내밀었다.
“저야말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버나드는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시설과 무기 보유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군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함께 저택의 방어시설을 전부 둘러보았다. 리간드 후작가가 보유한 사병의 무기보유현황도 확인해본 존은 무척 밝은 얼굴이 되었다.
“생각보다 여건이 아주 좋군요. 이 정도면 충분히 싸워볼 만합니다.”
“그래? 다른 문제는 없니?”
줄리아가 물었다.
“예, 아무 문제없습니다. 혼트 제국의 대군을 상대하려면 화살이 보다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그건 미첼이 구해오길 바라야겠지요.”
“화살이라……. 왕실이 비축한 화살이 꽤 많을 것 같은데 좀 달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줄리아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성문을 지키던 사병 하나가 달려와 보고했다.
“마님, 왕실에서 오신 분이 있습니다.”
“응? 누가?”
줄리아는 불러오라고 했다. 곧이어 왕실에서 왔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광택이 흐르는 은빛 갑옷으로 무장한 사내는 바로 로열나이츠 소속의 기사였다.
“줄리아 리간드 후작부인이십니까?”
“그런데요?”
“폐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서둘러 부인을 왕궁으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시스 리간드 후작부인과 아드님께서도 왕궁에 머물고 계십니다.”
에릭 국왕이 직접 로열나이츠의 정예기사를 보내서 데려오게 한 것. 왕실이 얼마나 리간드 후작가에 신경을 써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이만 가봐야겠네. 더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줄리아는 미안한 얼굴로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걱정 말라는 듯이 가슴을 탕탕 쳤다.
“걱정 마십시오. 충분히 과분한 도움을 받았고, 이제부터는 이 존 스페이의 역량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러자 줄리아를 마중 온 로열나이츠의 기사가 놀란 얼굴로 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부단장님의 아드님이셨군요.”
“예. 아버님은 잘 계시지요?”
“물론 전쟁 준비로 한창 바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단장님께서 가능하면 왕립학교도 들러서 아드님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습니다.”
존은 고개를 저었다.
“전 가지 않겠습니다. 아버님께 전해주십시오. 이 아들은 싸울 곳을 찾았다고요.”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예, 무운을.”
기사는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가시지요. 마차를 준비해뒀습니다.”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아는 기사와 함께 왕궁으로 떠났다.
존도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자, 가죠. 혼트 제국군이 오기 전에 병력 배치를 끝마쳐야 합니다.”
“예!”
존은 어느새 지휘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
로열나이츠의 기사는 줄리아를 시에나 왕비와 지렌 왕자가 있는 궁전으로 안내해주었다. 시스와 지스도 그곳에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시에나 왕비 혼자 있기는 불안하겠지.’
젊고 혈기왕성하며 오러 엑스퍼트의 무인이기도 한 에릭 국왕은 아군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한다. 싸움이 시작되면 가족을 돌봐줄 틈도 없을 것이다.
전쟁 통에 마음 여린 시에나 왕비가 어린 아들과 둘이 있으면 많이 불안해할 터.
물론 시에나 왕비는 이미 에릭 국왕이 왕위계승 문제로 동생 브란도 왕자와 내전을 치렀을 때 전쟁을 겪은 바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싸우다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불안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에릭 국왕은 그 점을 염려해서 리간드 후작가 식구들과 함께 지내도록 조치를 한 모양이었다. 줄리아가 시에나 왕비와 절친하니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우리도 환영할 일이지.’
왕실 일가와 지내면 그만큼 보호받을 수 있으니 좋으면 좋지 나쁠 것 없었다. 어린 지스도 지렌 왕자와 둘이 어울리면 심심하지 않을 테고 말이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세 사람이 타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시스와 시에나 왕비, 그리고 에릭 국왕이었다. 지스와 지렌 왕자는 각각 시스와 시에나 왕비 품에 안겨 있었다.
에릭 국왕은 왕실 문장이 화려하게 새겨진 금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크고 훤칠한 체격과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 무척 잘 어울려서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 같은 위엄이었다.
줄리아는 내심 감탄하며 예를 갖췄다.
“위대하신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잘 오셨소. 많이 걱정했소.”
에릭 국왕은 줄리아를 환대했다.
“오늘따라 정말 멋져 보이시네요, 폐하.”
“그렇다고 반하지는 마시오.”
에릭 국왕의 농담에 줄리아도 농담으로 받아쳤다.
“이를 어째. 우리 남편보다 잘생겼어요.”
“그건 너무 당연해서 칭찬 같지 않군.”
한차례 웃고는 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싸움이 시작되면 왕비를 돌봐줄 틈이 없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부인들이 와주어서 정말 다행이오.”
“저희야말로 이렇게 왕실에서 보호해주셔서 감사해요.”
“재상의 가족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요. 이번 싸움은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말고 기다리시오.”
“그리 말씀해주시니 든든합니다. 저…… 그런데 저희 남편 소식은 없었나요?”
줄리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릭 국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오만 아직 소식이 없소. 하지만 다치거나 사로잡힐 사람이 아니니 심려치마시오. 레던 왕성이 공격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돌아올 거요.”
카록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쥬르덴 후작이 감히 레던 왕성을 공격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카록이 없는 틈에 레던 왕성으로 빠르게 진격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노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다른 신하들의 말대로 혼트 제국으로 가지 못하게 말렸어야 했다.’
꼭 카르스 황제를 만나봐야겠다는 카록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보내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회되었다. 설마하니 뮤트 공작을 그냥 지나치고 곧장 레던 왕성을 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전략만 보아도 카르스 황제가 얼마나 무서운 심계를 가진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믿어야지.’
에릭 국왕은 카록이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혼트 황실이 함정을 만들어놓았을 위험을 알면서도 찾아간 카록이었다. 함정에서 빠져나와 무사 귀환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바빠서 이만 일어나겠소. 모쪼록 왕비를 잘 부탁드리오.”
“예, 폐하.”
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릭 국왕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에릭 국왕은 탁자에 올려둔 투구를 집어 들어 옆구리에 끼고는 궁전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