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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89화 (389/529)

<-- 389 회: 경영의 대가 16권 -->

존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저택 지하에 비밀통로가 있다.”

“뭣?!”

“비밀통로?”

“리간드 후작가에?”

존의 발언에 학생들은 경악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리간드 후작가쯤 되는 가문의 저택이라면 유사시를 대비한 비밀통로쯤은 있을 법했다. 정령술로 저택도 하루아침에 만들어버린 재상 카록이 아닌가. 전쟁을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리라.

그런데 문제는 그 비밀통로의 존재를 존이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존은 리간드 저택을 방문하여 줄리아와 식사를 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왕립학교 내부와 연결된 비밀통로로 돌아온 것까지 설명했다. 물론 그 비밀통로의 출입구가 연못이라는 것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학교 안에 비밀통로의 출구가 있어?”

“그게 어딘데? 되게 궁금하네.”

존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제 내 말의 요지를 좀 알겠지? 우리는 그 비밀통로를 통해 식량도 화살도 보급을 받을 수 있고 위험해지면 도망칠 수도 있어.”

“잠깐, 보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비밀통로가 있다고 해도 누가 우리에게 보급을 해준다는 거야?”

한 학생이 또 문제를 제기하자 이번에는 미첼이 대신 말했다.

“교장님께서 학교 운영비 잔금 2천 2백 레디나를 지원해주셨고, 우리 또한 학생회 재정 570레디나를 전쟁에 쓰기로 했다. 그리고…….”

미첼은 허리춤에 있는 돈주머니를 툭 강당 앞에 던졌다.

“내 사비 2백 레디나도 기꺼이 자금으로 쓰겠다. 이 돈으로 필요한 보급품을 구입하고 용병을 고용할 예정이다.”

“난 돈이 얼마 없는데. 아마 45레디나 정도 될 거야.”

존은 그러면서 돈주머니를 툭 던졌다.

다른 학생회 멤버 4인도 제각각 가진 돈을 털어서 강당 앞에 던져두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존이 말했다.

“이제 선택해. 나는 이 나라의 귀족으로서 혼트 제국군을 물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학교가 개학하면 우리들의 후배들도 입학하게 될 거야. 후배들은 말하겠지. 왕립학교의 초대 재학생 선배들은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었다고. 우리는 비록 어리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런 우리를 보면 이 나라의 다른 귀족들도 감명을 받아 분발하지 않을까? 이제 남은 것은 너희들에게 그만한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뿐이야.”

말을 마친 존은 학생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안 되면 용병을 고용해서 나 혼자라도 싸우겠어.’

어차피 로열나이츠의 부단장인 아버지를 둔 존은 레던 왕성에서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

아버지 랜달 스페이 백작과 함께 로열나이츠에 임시로 소속되어서 싸워도 되지만, 존은 그보다 자신이 지휘관이 되어서 능동적으로 싸우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학생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바르카였다.

“난 가진 돈이 별로 없다.”

바르카는 돈주머니에 있는 걸 모두 강당 앞에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매인 검을 툭툭 쳤다.

“대신 몸으로 때우겠다.”

“언제든지 환영이야.”

존은 씨익 웃었다.

“좋아, 나도 싸우겠어!”

“나도 몸으로 때운다!”

“나도 돈 없어. 몸뚱이와 검술 실력이 내 재산이야.”

무과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싸우겠다고 나섰다. 문과 학생들은 싸울 수 없는 대신 가진 돈을 모두 강당 앞에 내놓았다.

“난 싸워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 대신 가진 돈을 전부 줄게.”

“난 사냥을 좋아해서 활을 잘 쏴. 활과 화살을 마련해주면 싸울 수 있어.”

“에이 제길. 내 돈도 다 가져가라!”

놀라운 일이었다.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협조해주기로 결의했다. 무과 학생들은 모두 싸우겠노라고 나섰고, 문과 학생들도 가진 돈을 전부 털어서 군자금을 보태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판이 벌어졌는데 겁이 나서 물러서면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었다.

존과 미첼은 서로를 보며 밝게 웃었다.

생각 외로 일이 잘 풀렸다. 늘 불만만 제기하고 말썽을 피워대던 학생들이 이렇게 잘 협조할 줄은 몰랐다.

무과생 188명은 모두 싸우기로 결정했고, 문과생들은 싸움에 직접 참전하지 못하는 대신 군자금을 보탰고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미첼은 다른 학생회 멤버들과 함께 강당 앞에 쌓인 돈을 수습하며 말했다.

“모두 도움을 줘서 고맙다. 나는 오늘 곧장 이 돈을 가지고 식량과 활, 화살, 용병을 구하러 떠날 거야. 나 혼자서는 조금 버거운데 혹시 함께 동행해줄 사람은 없나?”

미첼이 아무리 똑똑해도 아직 미성년자였다. 혼자서 그런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문과생들 중에서 몇 명이 지원했다. 물론 학생회 멤버들 중에서도 문과생인 재정부장 로이와 서기장 조이도 돕기로 했다.

“좋아, 싸우기로 한 녀석들은 모두 각자 짐을 챙겨서 집합해. 지금 곧장 리간드 후작가로 갈 거야!”

자연스럽게 대장이 된 존이 지시를 내렸다. 모두들 기숙사에 있는 짐을 챙기기 위해 강당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강당 문이 열리고 11인의 무리가 등장했다.

“어머, 너희들 모두 여기 모여 있었구나.”

활기찬 여자의 목소리.

모두들 의아해져서 귀족부인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칼의 젊은 여성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어? 난 저 사람 본 적 있는데. 누구더라?”

“파티에 가면 항상 보이는 얼굴이었어.”

“아! 난 알아. 리간드 후작부인이야!”

“리간드 후작부인 줄리아다.”

줄리아가 열 명의 하인과 함께 왕립학교에 나타난 것이었다. 줄리아는 휙휙 학생들을 훑어보다가 강당 위에 미첼과 존이 있는 걸 발견했다.

“잠시 비켜주겠니?”

학생들이 썰물처럼 좌우로 갈렸다. 줄리아는 유유히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강당으로 갔다.

미첼과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줄리아에게 다가갔다.

“강녕하셨습니까, 리간드 후작부인.”

“그렇지 않아도 뵈려고 했습니다.”

“호호, 반가워. 그런데 그 돈은 뭐니?”

줄리아는 강당 앞에 잔뜩 쌓여 있는 돈주머니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미첼이 답했다.

“군자금입니다.”

“어머, 군자금?”

미첼은 학생들이 모두 결의해서 싸우기로 한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리간드 후작가를 혼트 제국군에 맞설 방어시설로 쓰고자 하는데 부인의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

“흐응, 저게 군자금이라 이거지?”

“……저기, 후작부인?”

“저거 얼마쯤 될까?”

줄리아가 자꾸 돈에 관심을 보이자 미첼은 식은땀을 흘렸다.

“글쎄요. 자세히 집계해봐야겠지만 아마 4천 레디나를 조금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거 가지고 되겠니?”

“일단 식량과 무기는 구입할 수 있겠지만 용병을 고용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전쟁이라 몸값이 상승했을 테니 어려울 듯합니다.”

“식량은 충분할 거야. 식료품창고에 잔뜩 쌓여 있어. 그리고 저택에 우리 가문의 사병들 1백 명이 주둔해 있는데, 걔네들도 함께 싸우게 한다면 병력 부족 문제도 조금은 충당되겠지?”

“아, 정말입니까? 그럼 문제가 한결 줄어들겠군요.”

미첼과 존의 안색이 밝아졌다.

줄리아가 계속 말했다.

“그래도 싸울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전쟁이 이번 싸움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고.”

줄리아는 하인 한 명에게 손짓했다.

하인은 들고 있던 돈주머니를 공손히 내밀었다. 줄리아는 돈주머니를 향해 턱짓했다.

“얼마 안 되지만 쓰렴.”

미첼은 돈주머니를 하인에게서 건네받았다. 상당히 묵직했다. 금화가 족히 3,4천 레디나쯤은 들어있을 듯했다.

“한 번 열어보렴.”

미첼은 시키는 대로 돈주머니를 풀어보았다.

“헉!”

“그, 금화가 아니었잖아?!”

돈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은 귀금속이었다. 보석과 반지, 목걸이 등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전쟁 땐 귀금속이 최고잖니. 어음은 통용이 안 될지도 몰라서 현물로 준비했어. 아마 2만 레디나쯤 될 거야.”

“저희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맡기셔도 되겠습니까?”

미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줄리아는 웃으며 미첼과 존의 뺨을 한 번씩 어루만졌다.

“아직 어른도 되지 않은 너희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나섰는데, 그런 순수하고 위대한 정신을 어떻게 값으로 매길 수 있겠니? 정말 고마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으니 너희가 이해해주렴.”

“후작부인의 원조에 감사드립니다.”

“기필코 이기겠습니다.”

미첼과 존의 눈빛이 결연한 의지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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