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86화 (386/529)

<-- 386 회: 경영의 대가 16권 -->

2장. 학생회의 궐기

하루가 지날 때마다 쥬르덴 후작이 이끄는 7만 군단은 레던 왕실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이에 따라 레던 왕국 각지를 다스리는 영주들도 시급히 움직였는데,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조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왕립학교에 재학 중인 자식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왕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이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었다. 그들이 혼트 제국군에게 붙잡혀버리면 나라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엄청난 인질이 되는 셈이었다.

레던 왕성의 민간인들이 구역별로 차례대로 피난을 감에 따라, 왕립학교 또한 휴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앞의 레던 왕성이 전쟁터가 될 판에 학생들을 기숙사에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장인 듀론 후작은 교사진과 회의를 한 끝에 휴교를 결심했다. 그리고 휴교를 발표하기 전에 학생회와 최종적으로 상의를 하기로 했다.

“학생회장 미첼 로도크입니다.”

“부회장 존 스페이입니다. 부르셨습니까, 교장님.”

미첼과 존 두 사람이 부름을 받고 교장실을 방문했다.

“어서 오게.”

듀론 후작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현재 이 나라가 처한 상황은 자네들도 잘 알 걸세. 내 어제 자네들이 제출했던 연구 과제물을 다시 읽어보니 놀랍더군. 혼트 제국군이 불시에 레던 왕성을 공격해올 것이라고 자네들은 예상했나?”

이에 미첼은 옆에 있는 존을 가리켰다.

“저는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고, 존의 강력한 주장으로 그러한 상황에 대비한 전략을 부록에 첨부했던 것입니다.”

“호오, 사실인가 부회장?”

존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이라면 어떻게든 불시에 레던 왕성을 공략해 개전 초기에 승기를 잡으려 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건…… 감입니다.”

그리 말하며 존은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듀론 후작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제 보니 부회장은 지휘관으로서의 천재적인 자질을 타고났군.”

“아,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가 맞춘 것뿐인데요.”

“아닐세. 부회장은 오늘날 벌어진 일을 정확하게 내다봤네. 머릿속에 이론적으로는 정리되지 않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네의 감각이 적의 의도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걸세.”

“자, 잘 이해가 안 됩니다만…….”

“천재라는 말일세. 아직 배움이 부족해 천재성을 이론이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지. 오랜만에 천재의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구먼, 허허허.”

“존 말고 또 다른 천재의 탄생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미첼이 관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듀론 후작은 씨익 웃었다.

“있네. 카록이라는 괴짜 청년이었지.”

“아!”

“재상 각하……!”

두 사람은 탄성을 터뜨렸다.

“리간드 후작과 처음 만났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군. 한창 흑혈병이 돌아서 전 대륙이 위기에 잠겨 있던 시기에, 우리 왕실만은 그의 진언으로 흑혈병 치료제인 작셀을 다량 보유한 덕에 무사했었지.”

듀론 후작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듀론 후작이 카록이란 인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직접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카록이 펼친 주장은 듀론 후작을 감격시켰다.

보유한 작셀을 육제후에게 팔고 그 대가로 곡물을 얻어내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바덴 강 통행세를 하향 동결시키는 협상을 통해 육제후의 자금줄을 압박해야 한다.

이어서 오리엔 왕국과 관세협정을 맺어 물가를 잡고 경제를 활성화한 뒤, 상공업을 진흥해 상공업계층을 왕실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란즈헬 백작가를 왕실의 편으로 끌어들여 육제후의 공조를 깨야 한다.

나아가 오리엔 왕국과 동맹을 맺어서 혼트 제국의 침략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때 나는 이 나라를 짊어질 천재의 등장에 전율했었네. 어떤가?”

처음 듣는 비사를 듣고 미첼은 감격하여 말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오늘날 전부 그 말대로 실현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전부 당초에 구상되었던 장대한 계획이었다니! 실로 재상 각하께서는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듀론 후작은 씨익 웃었다.

“그럼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미첼과 존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경청했다.

듀론 후작이 말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서 리간드 후작이 뒤늦게 내게 고백하더군. 사실 그때 이야기들은 전부 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지껄여본 말들이고,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더군.”

“아……!”

“전부 즉흥적으로?!”

미첼과 존은 경악했다.

“그래서 리간드 후작은 아직도 스스로는 천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난 이미 그때 그 친구가 천재라는 것을 알았네. 그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미 본능적으로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네. 이제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가?”

듀론 후작은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난 자네들도 그와 같이 이 나라를 짊어질 동량이라고 생각하네. 이 나라는 카록 리간드라는 인재를 얻어서 간신히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고비만을 남겨두고 있지. 미첼 로도크, 존 스페이, 자네 두 사람이 이 고비를 넘길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네.”

왕립학교의 교장이자 전 재상인 듀론 후작의 엄숙한 당부에 미첼과 존 두 사람은 무거운 의무감을 느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필코 이 나라를 지켜 보이겠습니다.”

미첼과 존의 대답에 듀론 후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듀론 후작은 화제를 돌려서 본론을 말했다.

“교사진과의 협의를 끝마쳤네. 본교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기로 했네. 이 사실을 통보하고 학생들을 해산시키려 하는데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에 미첼도 동의했다.

“지당하신 결정입니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가 주요 귀족가문의 일원이므로 안전상 서둘러 각자의 가문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존은 이에 호응하지 않고 무언가 골똘히 딴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듀론 후작이 말을 건넸다.

“부회장?”

“예? 아, 예, 교장님.”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저는…….”

존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연히 휴교하고 학생들은 각자 가문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혼트 제국군에 깡그리 붙잡혀 인질이 되었다가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의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선뜻 동의하기가 망설여졌다.

그의 본능이 이대로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회장?”

듀론 후작이 재차 묻자 고민에서 깨어난 존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교장님.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강당에 집합시키고 제게 발언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듀론 후작도 미첼도 의아해졌다.

존이 말했다.

“저희가 제출한 연구 과제를 읽어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그 과제물에 적군이 불시에 레던 왕성을 공격할 시 이를 방어할 전략을 기술한 바 있습니다.”

“읽어보았네. 인상 깊더군.”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이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존은 재차 말했다.

“레던 왕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힘을 모으면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저희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제야 미첼도 듀론 후작도 존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설마 리간드 후작부인 줄리아가 비밀통로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이걸 염두에 두고……?’

그 순간 미첼은 줄리아를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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