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79화 (379/529)

<-- 379 회: 15권 - 11장. 함정(2) -->

그것은 유목민족의 습성에서 힌트를 얻은 전략이었다.

혼트 제국의 초원지대를 살아가는 유목민족의 전사들은 식량을 개개인이 휴대하고 다닌다.

보급을 따로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롭게 초원지대를 휘젓고 다니니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신출귀몰한 기동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간 혼트 황실이 유목민족을 복속시키지 못했던 주된 원인도 바로 이 점이었다.

그 점에서 착안된 카르스 황제의 전략을 쥬르덴 후작이 실행에 옮겼다.

각종 곡물과 바짝 말린 고기를 빻아 만든 휴대식량을 각 병사들이 휴대하게 한 뒤, 템플 오브 나이트를 크게 우회하여 좁고 험한 산길을 넘었다. 따로 물자를 실어 나를 필요가 없었기에 가능한 강행군이었다.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수성전을 대비하고 있었던 뮤트 공작가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물론 힘겹게 산길로 7만 대군을 무사히 통과시킨 데에는 쥬르덴 후작의 탁월한 통솔력이 큰 역할을 했다. 쥬르덴 후작은 일부 병력을 남겨두어 뮤트 공작을 견제하여서 산길을 넘는 동안 공격을 받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산길을 다 건넜을 때쯤, 뒤를 이어 륭겐 후작의 군단이 도착하여서 템플 오브 나이트의 공성(攻城)에 들어갔다. 그로서 뮤트 공작은 레던 왕성으로 쾌진격 하는 쥬르덴 후작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쥬르덴 후작의 7만 군단이 진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은 레던 왕성을 크게 뒤흔들었다.

에릭 국왕은 긴급히 대전회의를 소집하여서 대책을 논의하였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피하여야 합니다!”

“애당초 계획된 완전철수는 불가능하나, 폐하만이라도 왕실군을 이끌고 퇴각하셔서 후일을 기약하셔야 합니다!”

고위 관리들 대부분이 대피를 주장했다.

에릭 국왕이 레던 왕성에 상주하고 있는 주요 전력을 이끌고 대피하여야 전쟁에 승산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레던 왕성의 주민들은 포기하고 왕실의 주요 인사들, 즉 에릭 국왕과 자신들만 도망치자는 속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비겁함의 발로였지만, 주장 자체는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에릭 국왕의 심사를 복잡하게 했다.

한편 왕실군의 고위 장교들은 항전(抗戰)을 주장했다.

“레던 왕성의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났다가는 사기만 저하되어서 전쟁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싸워야 합니다! 그깟 7만 병력이 온다고 해도 쉽게 함락될 레던 왕성이 아닙니다!”

“왕실군 군단들의 지원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그때, 루이가 발언을 요청했다.

“말하라.”

에릭 국왕이 발언을 허락했다.

루이가 중앙으로 걸어 나오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동행정 전략의 발안자이자 카록이 없는 현재 이 왕실의 2인자인 루이의 위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레던 왕성을 굳게 걸어 잠그고 항전을 하게 되면 쥬르덴 후작의 7만 군세에 포위되어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왕국령 각지에 배치되어 있는 군단들을 불러들인다면 레던 왕성을 지켜낼 수 있으나, 아마 그때쯤이면 혼트 제국 또한 추가병력을 보내어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겠지요. 그리 되면 레던 왕성이 전쟁 전체 국면을 좌우하는 격전지가 되어버립니다.”

“당초에 구상한 기동행정이 무너지는군.”

에릭 국왕의 대꾸에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고위 관리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루이의 의견이 항전하지 말고 달아나자는 쪽으로 기울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루이의 말은 그들의 기대를 짓밟았다.

“그렇다고 레던 왕성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리석은 하책 중의 하책입니다.”

고위 관리들의 얼굴에 큰 실망과 좌절이 어렸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에릭 국왕이 물었다.

“물자입니다. 쥬르덴 후작 군단의 진격속도를 보아하니, 레던 왕성의 모든 물자를 가지고 철수하기는 틀렸습니다. 그럼 상당량의 물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인데, 포기한 물자는 고스란히 적의 수중에 넘어갑니다.”

루이는 침착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마 뮤트 공작가를 경원하고 곧장 이곳으로 진군하면서, 쥬르덴 후작은 보급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군량이 바닥나 굶주리기 전에 레던 왕성을 공략하고 현지보급을 하겠다는 의도인데, 우리가 적을 도와주는 꼴이 됩니다.”

“으음, 그렇겠군.”

수긍을 한 에릭 국왕.

그런데 고위 관리들이 연달아 이의를 제기했다.

“가져갈 수 없는 물자는 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불태워버리면 됩니다!”

루이가 답했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레던 왕성의 백성들은 무방비상태요. 혼트 제국군은 백성들을 수탈해서 군수품을 충원하고 말 것이오.”

“그럼 백성들이 가진 식량도 전부……!”

“미쳤소?”

실언을 한 고위 관리가 루이의 일침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루이가 말했다.

“우리 백성을 우리가 수탈한다는 도의적인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세월에? 그 시간에 차라리 백성들도 피난시키는 편이 더 빠를 텐데, 문제는 그 전에 쥬르덴 후작이 이곳에 당도한다는 것이오.”

고위 관리들은 단체로 침묵하게 되었다.

에릭 국왕은 골치가 아파서 물었다.

“콘체른 자작, 그럼 그대는 어찌 해야 한다고 보느냐?”

“백성들을 먼저 피난시키고 우리는 이곳에 남아서 싸워야합니다.”

“그리 되면 당초 구상한 기동행정이 무너지지 않으냐.”

“다행히 적은 현재 군수물자의 보급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군량이 고갈될 때까지만 버틴다면 결국 적은 물러날 수밖에 없고, 그 틈에 우리도 레던 왕성에서 완전 철수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적의 병력은 7만에 달하고 적장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쥬르덴 후작이다. 가능하겠느냐?”

“뮤트 공작 전하께서 버티고 계시는 한 원활한 보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적의 보급에 문제가 있는 한, 장기전이 되면 우리가 유리합니다.”

“흐음, 그렇군. 짐도 그 편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에릭 국왕은 말끝을 흐리며 문득 우측을 바라보았다. 군사부상서 제론 데커드 자작이 보였다.

오늘 대전회의에서 그만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에릭 국왕이 말을 건넸다.

“군사부상서.”

“예, 폐하.”

상념에서 깨어난 제론이 답했다.

“그대는 좀처럼 발언이 없군. 그대는 재정부상서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타당합니다. 지금은 싸우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 군사부상서도 같은 생각이군.”

루이와 제론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에릭 국왕도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론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보급이 없느냐 입니다. 저는 자꾸 그 점에 마음에 걸립니다. 카르스 황제가 그걸 고려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에릭 국왕은 한숨이 나왔다.

다시 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쥬르덴 후작은 신속하게 진격해오고 있었다.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었다.

에릭 국왕이 말했다.

“백성들을 피난시키고 우리는 남아서 항전, 적의 약탈로부터 백성을 지키겠다! 단, 노약자를 우선적으로 피난시키고 15세 이상, 40 미만의 남자는 징집하여 농성에 동원할 것이다. 이의는 용납하지 않는다!”

“옛, 폐하!”

대전의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 와중에도 제론은 계속 고민했다.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데. 어딘가에서 따로 보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렇게 기세 좋게 진군해오는 것일 텐데. 그게 뭐지? 내가 모르는 보급루트가 따로 있나?’

제론은 대전회의가 종료되고 대신들이 퇴장하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깊이 생각했다.

온힘으로, 사력을 다해 깊이 생각하자 조금씩 실마리가 잡힐 듯 말듯이 아른거렸다.

‘내통인가? 이곳 북부의 영주들 중에서 혼트 제국과 협력하기로 내통한 영주가 있나?’

내통한 영주가 식량을 가져다 바친다면 말이 된다. 그리 되면 군량을 확보한 쥬르덴 후작이 레던 왕성의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북부 영주들은 전부 왕실파다. 특히 레던 왕성과 가까운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일수록 충성심도 강하다.

그러한 아군의 내통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보았었다.

‘가만…… 내통?’

제론은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통!

답은 내통이었다.

‘꼭 귀족만 내통하라는 법은 없다!’

같은 시각, 카록은 이제 막 맥델 백작과 함께 황도 티베리우스에 도착했을 무렵에 벌어진 일이었다.

***

뮤트 공작을 배후에 남겨둔 채 곧장 레던 왕성에 진군한다.

실로 과감 무쌍한 전략.

성공만 한다면 카르스 황제의 전략적 과단성이 역사에 길이 남겠지.

근데 보급이 문제란 말이야, 보급이.

밥 굶고 싸우려고?

아무리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독하다지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악 쓰고 싸울 수가 있겠나?

병사 개개인이 식량을 휴대해서, 그 휴대식량이 고갈되기 전에 레던 왕성을 점령해버린다는 생각인 듯한데, 그건 성공확률이 낮은 모험수다.

그 정도 도박수를 던져놓고 저렇게 의기양양해할 카르스 황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나는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되짚어보기로 했다.

애당초 혼트 제국의 전쟁자금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꾸준히 전쟁준비를 해온 혼트 황실의 야욕이 그것.

하지만 대흉년과 흑혈병의 피해는 그 정도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짜 원인은 바로 배신한 두 육제후 가문이다. 안타레스 백작가와 린델 백작가가 엄청난 자금을 지원함으로서 전쟁 물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맞서서 우리 레던 왕실은 바덴 강의 통행을 차단하여서 식량 및 전략물자가 안타레스 백작가, 린델 백작가를 통해 혼트 제국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게 막았다.

하지만 그러한 제제에도 불구하고 혼트 제국은 전쟁 준비에 성공했다.

안타레스 백작가와 린델 백작가를 따르는 상인들이 몰래 식량공급을 계속 했기 때문이다. 그간 레던 왕국의 경제를 쥐고 흔들었던 육제후 중 두 가문이니, 밀매를 수행할 상단 수십 개쯤은 거느리고 있는 게 당연할 터.

용의주도한 안타레스 백작은 레던 왕실을 배반하기 전에 착실히 준비했을 터였다.

……어라?

나 방금 정답을 알아냈잖아?

“상인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카르스 황제는 손뼉을 치는 시늉을 했다.

“드디어 도달했나.”

“크윽…….”

나는 신음했다.

설마 이런 책략이었을 줄은 몰랐다.

철저히 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부터…… 안타레스 백작과 린델 백작을 회유했을 때부터 꾸미신 일입니까?”

“그렇다.”

누구보다도 깊은 아픔을 간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인간 카르스 혼트가 갑자기 괴물처럼 보였다.

괴물 황제!

병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대륙의 절반을 휩쓸었던 정복군주!

그랬다.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런 남자였다.

안타레스 백작가와 린델 백작가. 바덴 강의 물류를 틀어쥐고 있던 여섯 가문 중 두 가문. 그 두 가문이 보유한 재산은 짐작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군소 상단을 만들 수 있을까?

두 가문은 드러나지 않은 휘하의 군소 상단들로 전쟁에 필요한 식량 등의 군수물자를 확보하였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나도 충분히 감지했다. 때문에 에반의 첩보조직을 앞세워서 단속에 나섰고, 혼트 제국에 밀무역을 하는 두 가문의 끄나풀 상단들을 수없이 적발했다.

물자를 가지고 국경을 몰래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발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거였다!

실은 굳이 국경을 넘어서 혼트 제국으로 식량과 물자를 가져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혼트 제국군이 국경을 넘고 침략해왔을 때 주면 되니까!

그때까지는 잠자코 확보해둔 물자를 숨겨두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야말로 탁월한 현지보급이다!

카르스 황제는 처음부터 이걸 계획했던 것이다. 안타레스 백작가와 린델 백작가를 복속시켰을 때부터!

“그래서 저를 불러들이셨군요.”

“그렇다.”

내가 레던 왕성에 있으면 안 되니까! 내가 정령술로 저항하면 제 아무리 많은 병력을 보유한 쥬르덴 후작이라 해도 레던 왕성 공략에 어려움을 받을 테니까.

그래서 날 이리로 불러들인 것이다.

진짜 목적은 날 포획하는 게 아니라, 레던 왕성을 공략할 때까지 날 붙잡아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이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은, 이제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그래, 인정해.

카르스 황제, 당신 정말 대단해!

“휴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를 어쩌지?

지금 레던 왕실에서는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적의 군량이 고갈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지금쯤 쥬르덴 후작의 공격을 열심히 막아내고 있을 터였다. 병력차가 크니 고전을 면치 못할 테지.

그리고 왕성 바깥에 있는 우리 집은…….

내 아내들과 아들 지스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물론 방어도 튼튼히 해놓고 비밀통로까지 파놓았으니 무사히 대피했겠지만, 그래도 걱정된다. 혹시라도 비밀통로로 빠져나가기 전에 혼트 제국군이 들이닥친 건 아닐지!

……안 되겠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 레던 왕성까지 가려면 최대속도로 날아가도 닷새는 족히 걸릴 테지만. 지금이라도 가면 아슬아슬한 때에 도착해서 구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카르스 황제의 등 뒤에 서 있는 할슈타인 후작.

각 창문마다, 각 통로마다 배치된 기사들과 마법사들.

충격을 받아 고민하느라 미처 눈치를 못 챘는데, 그새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그래.

날 못하게 붙잡아두려고 이런 배치를 했구나.

이게 나를 위해 준비된 진짜 함정이었다 이거지?

그래도 난 가겠어.

내 가족이, 내 주변 사람들이 걱정된단 말이다!

끝내 날 못 가게 붙잡는다면, 당신의 목숨을 노려서라도 가겠어.

나는 카르스 황제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폐하.”

“돌아가려고 하는가?”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또 내 얼굴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었냐.

“그렇습니다.”

“벌써 보내기에는 아쉽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폐하의 존안을 뵐 수 있어서, 또한 폐하의 크고 깊은 심모원려를 알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이고말고.

정말 빌어먹게도 영광이다.

내가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간신히 모아놓은 천재들을 한꺼번에 뒤통수쳐버렸으니까.

“카록 리간드 후작.”

“예, 폐하.”

“나는 그대가 좋다.”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조롱과 진심이 모두 섞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카르스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괴이하게 일그러진 인형의 미소였다.

“그대가 쭈욱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한다. 그러니 좀 더 나와 함께 이곳에 머물지 않겠느냐?”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는 법입니다. 이별을 할 때마다 사람은 성숙하고,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어른이 됩니다.”

“그런가. 그럼 아직 난 어른이 되지 못했나보구나.”

“누구나 결국은 어른이 됩니다. 그럼 전 이만.”

나는 별궁을 탈출할 태세를 완료했다. 노움, 운디네, 샐러맨더가 모두 대기 중이었다.

그러자 카르스 황제가 뜬금없이 시를 읊듯이 말했다.

“인간만이 자신의 죄를 아는구나, 가장 슬픈 짐승이여.”

시와도 같은 그 문장은 감정 없는 목소리를 타고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크로센트 베잘리우스.”

정답, 이라고 말하듯 카르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운디네의 능력으로 체액을 움직여 허공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차합!”

동시에 할슈타인 후작이 검을 뽑으며 도약해왔다.

바깥에 대기하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안으로 물밀 듯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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