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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72화 (372/529)

<-- 372 회: 15권 - 7장. 대면(1) -->

잠시 후, 하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감시자 7명이 우르르 잡혀왔다. 어스 핸드나 워터 핸드에 붙잡힌 채 맥없이 끌려온 사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정체를 밝혀라.”

잡혀온 사내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답했다.

“저, 저희는 그저 궁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일 뿐인데 어찌…….”

“발뺌하면 곤란한데.”

내 가슴에서 샐러맨더가 얼굴을 배꼼 내밀었다.

-잘 타겠다. 크헤헤.

사람 몸속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는 흉악하게 웃는 샐러맨더. 사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자상한 말투로 샐러맨더를 타일렀다.

“안 돼, 얘야. 죽이면 안 되잖니.”

-안 죽게 잘 태울 수 있다!

이젠 푸르죽죽해진 감시자들의 얼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얼굴색이 재미있다.

악마인지 정령인지 나조차도 헷갈리는 샐러맨더 앞에서는 그 누구도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시종장인 라벨 백작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간드 후작님, 진정하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번 일은 후작님께서 오해하신 듯합니다.”

“이들이 평범한 하인이라고 말하고 싶소?”

“아닙니다. 그들은 저희 혼트 황실의 감시인입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온 타국의 사신을 사람을 풀어 감시했다니 심히 불쾌하군.”

“아, 아닙니다. 그들은 혹시나 궁전 내에서 불온함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는지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리간드 후작님을 예의주시한 것도 혹시나 후작님을 음해하려는 자들이 있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으니 모쪼록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잘 말씀하시는군. 그런데 아까는 왜 모른다고 발뺌을 했소?”

일부러 발뺌이란 표현을 써봤더니 대번에 라벨 백작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그건 그들의 신분이 밝혀지면 계속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됐소, 됐소. 귀찮으니 그만 다 데리고 가보시오.”

더 듣기도 전에 나는 귀찮다는 듯이 손짓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라벨 백작은 언짢은 표정으로 감시인들과 함께 사라졌다.

왜 모르겠나.

카르스 황제가 붙인 감시자들이겠지.

모른척하고 그들을 붙잡아 실랑이를 벌인 건 혼트 황실과의 기 싸움이었다.

유치한 수작은 부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난 얕은 속임수에 빠질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

밤늦은 시각.

시종장 라벨 백작은 홀로 측백나무 정원을 서성거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 라벨 백작의 얼굴에 초조함이 보였다.

그때였다.

“라벨 백작.”

“헉.”

갑자기 뒤에서 들린 낮은 음성에 라벨 백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돌아 상대를 확인한 라벨 백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오셨습니까.”

상대는 할슈타인 후작이었다. 카르스 황제의 그림자인 그가 라벨 백작과 은밀히 만난 것이다.

“어찌 됐소?”

할슈타인 후작이 물었다.

라벨 백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붙여놓은 감시자 7인을 반나절 만에 전부 찾아냈습니다. 그리 힘들게 찾은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마나나 오러를 가지지도 않았는데, 몸의 훈련 상태나 행동거지가 빤히 파악되는 모양입니다. 정령의 감각이 보통이 아닌 듯합니다. 이곳은 리간드 후작의 거처에서 2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지만, 솔직히 저희의 대화도 듣고 있는 게 아닐지 의심스럽습니다.”

“몸 상태와 행동거지를 보았다고 했소?”

“예.”

“그럼 그자가 사용하는 정령의 감각은 아주 뛰어난 눈썰미라고 정의를 내려도 되겠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워낙 무슨 생각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카록의 태도에 이미 낮에 곤욕을 치렀던 라벨 백작이었다. 보는 앞에서 대뜸 감시자 7명을 순식간에 잡아낼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려되는 것은 정령의 감각이 외형적인 형태로 사람을 파악하는지, 아니면 정령 특유의 어떤 신비한 감각으로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기척을 파악해내는지요. 후자라면 이번 일은 실패하겠으나, 전자라면 승산이 있소.”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시도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할슈타인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할슈타인 후작이 이렇게 나서는 목적은 한 가지. 당연히 카르스 황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카록 리간드를 포획할 함정은 파놓았다.

그러나 상대는 함정에 순순히 걸려들 위인이 아니었다. 이미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곳에 온 작자였다.

더욱이 그의 상급 정령술은 실로 골치 아픈 능력이다. 그 위력은 륭겐 후작을 힘으로 압도했을 정도였다.

레던 왕성까지 찾아가 카록 리간드를 직접 만나고 온 롬펠 대공도 ‘나 아니면 당해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물론 그런 점을 감안해서 함정을 파놓았다. 함정에 걸려들기만 하면 제압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딱 한 가지.

함정에 빠뜨리려면 미끼가 필요한데, 그 미끼 역할이 될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카르스 황제가 아니면 카록 리간드는 함정에 제 발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카르스 황제와 카록 리간드가 함께 함정에 들어가면 양상이 조금 달라진다.

카록 리간드는 함정에서 빠져나가려고 저항하는 대신, 카르스 황제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다. 그땐 결과가 어찌 될지 장담 못한다. 할슈타인 후작 자신이 황제를 지킨다 해도 말이다.

그래서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혼트 황실의 마법병단에서 준비를 한 게 있었다.

‘그자가 폐하의 대역에 속아 넘어가야 할 텐데.’

비슷한 체형을 가진 자를 찾아서 마법으로 외모를 카르스 황제와 똑같이 변형시켰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행동거지와 말투까지 똑같이 연기하도록 교육시켰다. 특유의 무감정한 눈빛을 따라하게 하느라 무던히 고생했다.

물론 눈치가 귀신 같이 빠른 카록 리간드라면 마주앉아 대화를 나눠보면 5분도 안 되어서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첫인상만 속일 수 있다면 충분하다.

함정에 들어온 순간 카록 리간드의 신변은 혼트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그것이 혼트 제국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

홀로 있는 동안 나는 실프를 소환해 일종의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명상이라고 해봐야 별 것 아니었다. 실프와 마주앉아서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전생의 나와 똑같이 생긴 실프.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정령은 정령사가 원하는 모습으로 소환된다. 실제로 노움과 운디네는 화목한 가족을 원했던, 특히 귀여운 딸을 갖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이뤄주었다. 좀 찜찜한 막장정령 샐러맨더조차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 전생의 내 망나니 아들에 대한 미련이 낳은 결과였다.

그렇다면 실프는?

한마디로 내가 전생의 나를 그리워했다는 뜻이 된다.

말이 되나?

전생의 나든 현재의 나든 똑같은 나다. 나로 인해 전생과 현생의 역사가 크게 달라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90년을 살았던 전생의 내 인생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그 90년의 삶을 직접 겼었고 내 기억 속에 담겨 있다.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그리워할 리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있으니까!

전생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질색하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1억 레디나를 줘도 안 돌아가!

불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무릇 인생이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딱히 내 전생이 불행하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가정에 대한 실패는 분명 날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그런 한 측면만 가지고 내 인생 전체를 외롭고 불행한 삶이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도 분명 있었고, 그래서 죽으면서도 그럭저럭 만족한 인생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미 걸어온 길을 또 걷고 싶지는 않다.

현재, 나의 두 번째 삶을 봐라!

전생보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나?

한 번 겪었던 인생을 또 똑같이 답습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새로운 삶이다.

죽고 나서 열여덟 살 시절로 회귀한 나지만, 역설적으로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새롭게 돌아온 과거도 더 이상 전생 때와 똑같은 과거일 수는 없었다. 똑같은 과거의 그 시점으로 돌아갔다 해도, 삶의 주체인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넌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난 문득 실프에게 물었다.

실프는 그런 날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한숨을 푹 쉬는 게 아닌가. 다 귀찮다는 의욕 없는 모습이었다.

아 화딱지나.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약간은 그리운 추억을 느끼기도 했다.

아…….

혹시 추억인가?

내 무의식의 한편에서 추억을 그리워했던 건가?

나는 다시금 실프를 빤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추억이나 되새기던 노인네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영원한 것이 없이 모두 변한다는 것을 죽음에 이를 때에 충분히 느낀 나다. 어쩌면 그러한 나의 집착 없는 마음이 정령술의 급성장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실프가 일종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싶었다.

대자연의 의지가 나에게 낸 화두(話頭).

최상급 정령술, 그리고 대자연과 하나로 동화되는 정령술의 극의에 이를 수 있는 화두 말이다.

나의 명상은 거기까지였다.

시종장 라벨 백작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프를 소환해제 시키고 라벨 백작을 맞았다.

“리간드 후작님, 밤새 불편하신 점은 없으셨는지요?”

“오늘은 없었소.”

“다행입니다. 또 무슨 불만이 있으시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뼈 있는 말을 하는 라벨 백작.

나는 웃어넘기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오?”

“황제 폐하께옵서 리간드 후작님의 알현을 허락하셨습니다. 준비가 되셨다면 따라오시지요.”

“지금 말이오?”

내 물음에 라벨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폐하께서는 대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호오, 황제 폐하께서 대전에 계신다?”

“그, 그렇습니다.”

내가 눈웃음을 짓자 라벨 백작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정말 대전에 계시는지 한 번 확인해봅시다.”

“예엣?!”

찔끔한 표정이 된 라벨 백작.

난 노움에게 마음속에서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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