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63화 (363/529)

<-- 363 회: 15권 - 4장. 후작부인 줄리아 -->

두 손님의 방문에 리간드 후작가의 주방이 바빠졌다. 평소에는 카록의 취향대로 간소한 식사를 해왔지만, 손님에게 리간드 후작가의 식탁이 빈약하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대하게 차려진 식탁에 세 식구와 두 손님이 앉았다.

지스를 위한 스프도 있었다. 지스가 스프를 향해 맨손을 뻗자 전담시녀가 급히 말리고는 스푼으로 조금씩 떠먹여주기 시작했다. 엄마를 닮아서 식성이 좋은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이를 빤히 지켜본 시스는 자신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전광석화처럼 포크와 나이프가 찜닭 다리 한 쪽을 잘라냈다. 옛날처럼 눈이 뒤집혀서 먹어치우지는 않지만 원채 좋은 그 식성은 어딜 가지 않았다.

“옛날에 레스토랑 운영할 때부터 느꼈지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저 조그만 몸집에 들어갈 데가 어디 있다고 저렇게 잘 먹지?”

줄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레스토랑을 하셨습니까?”

미첼의 물음에 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도 레던 왕성 바닥에서 줄리아 사장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때 단골이 시스 쟤였는데, 대흉년 때문에 어려워진 레스토랑을 시스 혼자서 먹여 살릴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니까.”

존과 미첼은 하하 웃었다. 물론 두 사람은 그게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줄리아는 카록과 만나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함께 떠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냉큼 정리하고 따라가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쫄딱 망할 뻔했어. 대흉년은 물론이고 그 끔찍한 흑혈병까지, 어휴!”

“정말 다행이군요. 당시에 흑혈병 환자가 처음 발견된 곳도 바로 이곳 레던 왕성이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 이곳을 떠나셨으니 천만 다행이지요.”

“그랬니?”

“당시에 흑혈병 발발을 알아낸 왕실 관리가 바로 지금 재정부상서로 계시는 루이 콘체른 자작님이십니다.”

“어머머.”

줄리아는 손뼉을 쳤다.

그러다가 그녀는 미첼을 스윽 보더니 대뜸 말했다.

“네 롤 모델이 루이 콘체른 자작님이구나? 굉장히 잘 알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미첼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와 사정도 비슷했고, 탁월한 업무 능력 하나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라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에 줄이라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 워낙 부하들에게 깐깐하고 지독한 워커홀릭으로 유명해서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차기 재상이라고까지 불리시는 데에는 그분의 뛰어난 능력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차기 재상이라…….”

줄리아가 중얼거렸다.

미첼은 아차 싶어서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실수를 했습니다.”

카록과 루이는 나이가 비슷하다. 루이가 재상이 되려면 카록이 일찍 재상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줄리아는 손을 휘휘 저었다.

“뭘, 그이가 일 하기 싫어하는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뭐. 의욕 없는 걸로 따지면 제론 데커드 자작이랑 막상막하라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은 웃었다.

저녁 식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줄리아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두 소년은 위대한 줄로만 알았던 재상 카록의 여러 가지 일면을 알게 되어 즐거워했다. 대화에 끼지 않고 식사에 열중하는 시스는 열심히 포크와 나이프를 쓰다가도 이따금씩 지스를 돌봐주었다. 지스는 배부르지도 않는지 전담시녀가 떠먹여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으며 어머니를 빼닮은 식성을 자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줄리아가 물었다.

“두 사람은 왕립학교를 졸업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저는 왕실군에 입대할 겁니다. 왕실군 총사령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존이 대답했다.

미첼 역시 말했다.

“왕실 관리로 입관할 생각입니다.”

줄리아는 미첼에게 흥미가 생겼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가문과는 정치노선이 달라질 텐데?”

“사정상 저는 가문의 도움 없이 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독립자금을 지원받아서 사업을 하는 길도 있지만, 저는 사업보다는 정치에 더 흥미가 갑니다. 게다가 홀로서서 제가 가장 빠르게 출세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왕실이지요.”

미첼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 국왕 폐하께서는 왕실을 개혁한 후로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찾고 계시고 왕립학교의 설립 또한 그런 일환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류를 타서 제 능력을 어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대로 수석으로 졸업해서 작위를 수여받으면 왕실에 입관해도 말단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되니 남들보다 더 유리할 테고?”

“그렇습니다.”

“호호, 그 나이에 벌써 그런 플랜이 갖춰진 걸 보니 확실히 정치 방면에 재능이 있어 보이네. 계획대로 착실히 노력하면 최고위관리까지 무난하게 오를 것 같아.”

재상은 무리였다.

왜냐하면 차기 재상인 루이 콘체른 자작이 이제 겨우 20대 중반. 미첼과의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았다. 루이가 왕실에 버티고 있는 한, 미첼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는 재상 바로 아래인 최고위관리였다.

“절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첼은 화색이 되었다.

상대는 현 재상의 아내. 그것도 보통 재상이 아니라, 그 카록 리간드 후작의 부인이다. 그녀에게 잘 좋게 보인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미첼이 열심히 자신의 장래계획을 소개하며 어필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줄리아는 그런 미첼의 의중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경청하겠습니다.”

“우리 그이는 마흔에 은퇴할 계획이야. 일을 관두고 조용히 살기를 간절히 원하니 늦어도 40대 중반에는 반드시 은퇴하겠지?”

그 말에 미첼의 눈이 빛났다.

미첼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졌다.

향후 20년 안에 리간드 후작이 은퇴하면, 뒤를 이어 재상이 되는 것은 단연 루이 콘체른 자작.

그것은 즉, 루이 콘체른 자작의 직책이었던 재정부상서 자리가 공석이 된다는 뜻이었다.

수석졸업하면 왕실로부터 명예작위를 받는 특전이 주어진다. 명예작위라 해도 작위는 작위. 작위를 갖고 왕실에 입관하면 6,7급 관리로 시작할 수 있다.

리간드 후작이 은퇴하기 전에 1급 관리가 된다면, 루이 콘체른 자작의 후임으로 재정부상서가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후보자들과 재정부상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줄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의 왕실은 능력을 매우 중시해. 현 국왕 폐하께서 통치하는 동안에는 능력 위주로 인사가 이루어지겠지. 지금 폐하를 보필하는 왕실의 핵심인사들이 다들 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미첼도 동의하는 바였다. 카록 리간드, 루이 콘체른, 제론 데커드, 헤이젤 듀론 등 에릭 국왕의 최측근들은 하나같이 젊다.

“능력 있는 젊은 인재로 폐하의 눈에 든다면 재정부상서 직책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아.”

“폐하의 눈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립학교 수석입학에 학생회장 등 지금처럼 인상적인 경력을 쌓는 것도 좋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제 2의 루이 콘체른’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거야.”

‘제 2의 루이 콘체른?!’

미첼의 눈이 크게 떠졌다.

루이 콘체른 자작.

날카로운 안목과 남다른 정치 감각을 지닌 천재. 무엇보다도 그의 악마적인 업무처리속도는 오랫동안 무능한 고위 관리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왕실 정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제 2의 루이 콘체른’이란 타이틀은 그처럼 천재적인 젊은 인재에게 주어질 터였다.

‘그 타이틀을 얻는다면 능력을 인정받음은 물론이고 콘체른 자작의 후계자적인 위치까지 구축할 수 있다!’

콘체른 자작을 롤 모델로 삼고 있던 미첼은 그 타이틀이 무척 탐났다.

줄리아는 그런 미첼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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