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60화 (360/529)

<-- 360 회: 15권 - 3장. 왕립학교의 축제 -->

‘하지만 무슨 수로 무과 축제를 성공적인 축제로 바꿔놓지?’

행사비를 되찾고도 왕실에 기부할 정도로 성공하려면, 돈 벌이가 좋은 축제를 만들어야 했다.

웬만큼 재미있지 않고서는 학생들도 돈을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귀족이라 돈을 아까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 또한 꺼리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미첼은 이윽고 모종의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왕실에 기부하려면 한두 푼 벌어서는 턱도 없지. 아주 돈을 많이 벌어들일 축제여야 해.”

“그야 그렇겠지. 쥐꼬리만 한 푼돈을 기부해봐야 적선밖에 안 될 테니.”

존이 동의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학생회 멤버 모두가 미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첼이 말했다.

“도박이다. 그거라면 문과와 무과를 막론하고 모두가 환장할 테지.”

“도박?”

“그거 괜찮을까?”

“확실히 과를 막론하고 다들 좋아하긴 하겠네.”

학생회 멤버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미첼은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걸로 끝이 아냐. 도박에 참가할 자격은 문과 학생으로 한정한다.”

“그럼 거꾸로 무과 애들이 난리 칠 텐데?”

존의 물음에 미첼은 히죽 웃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해. 문과 학생은 이기는 쪽에 돈을 걸기 위해 무과 학생들에게서 정보를 얻으려 할 테고, 무과 학생들은 문과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간접적으로 도박에 참가할 테니까.”

존은 박수를 쳤다.

“문과와 무과가 편 가르기 없이 함께 축제를 즐기겠군!”

“그래. 이 취지를 설명하면 교장님도 허락해주실 거다.”

그렇게 학생회는 성대한 축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축제의 이름은 ‘왕립학교 무투회’라 명명되었다.

존은 오러 유저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학생들을 추려서 명단에 넣고, 되도록 승부를 가늠하기 힘든 상대끼리 붙인 대진표를 짰다.

미첼은 재정부장 로이와 함께 행사비용과 도박 중개료, 예상수익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그밖에도 행사부장 믹 루벤은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최대한 저렴하게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등 학생회 멤버 전원이 매달렸다.

그렇게 완성된 ‘왕립학교 무투회 기획안’은 교장인 듀론 후작에게 올려졌다.

아무래도 도박까지 곁들여진 대규모 행사이다 보니 교장의 허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미첼의 계산이었다.

기획안을 읽어본 듀론 후작은 놀란 얼굴로 미첼을 바라보았다.

“이게 자네들이 짠 기획안인가?”

“그렇습니다.”

“이건 썩 훌륭하군. 애매한 부분 없이 철두철미하게 계획된 점이 놀라울 정도일세.”

“과찬이십니다.”

“다만, 규율부장.”

“예!”

규율부장 로이드 딕슨이 앞으로 나섰다.

“축제의 특성상 큰 소란이 일어날 지도 모르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규율부의 철저한 통제를 부탁하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장.”

“예, 교장님.”

듀론 후작은 미첼에게 물었다.

“이 기획은 자네가 주도한 것 같은데 맞는가?”

“맞습니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시기에 축제로 분위기를 전환하자는 의도는 좋으나, 일류 정치가의 수단이라 보기도 어렵네.”

“예?”

“무투회와 도박이라면 확실히 성공적인 축제가 될 걸세. 학생들도 즐거워할 테고, 돈도 많이 모여 왕실에 기부금을 전달할 수 있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투회와 도박이라는 자극적인 행사로 잠시 현실의 불안을 외면할 뿐 아닌가.”

“아…….”

미첼은 미처 생각 못했다는 표정이 되었다.

“눈앞에 닥친 문제로부터 잠시 대중의 시선을 돌려놓는 수단은 삼류 통치자의 발상일세. 일류가 되고 싶거든 그 축제가 모두에게 시련을 타파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게 만들 수 있어야 하네. 내 말 이해하는가?”

“교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반성까지야. 아직 어리니 그렇게까지 사려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건 무리지. 그래서 내가 전교생에게 과제를 하나 내겠네.”

“과제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연구과제일세. 주제는 ‘혼트 제국 침공 시 레던 왕국의 전략에 대하여’일세. 최소 6인 최대 12인이 한 팀이 되어서 과제를 하되, 문과생과 무과생이 절반씩 포함되도록 팀을 짜야 하네. 알겠나?”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지금부터 축제가 끝날 때까지로 하겠네. 한 달의 여유가 있으니 충분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전교생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미첼 일행은 듀론 후작의 허가를 받은 후 학생회실에 돌아왔다.

“역시 교장님의 현명함은 명불허전이었어.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정확하게 짚으셨다고.”

존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미첼이 말했다.

“예전에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적을 증오할지언정 외면하면 안 된다’고 말했었지. 우린 도박을 곁들인 무투회로 잠시 문제를 잊고 즐기고자 했는데, 교장님은 아예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연구하게 했다. 우린 그 점을 본받아야 해.”

“아무튼 칭찬은 받았잖아. 반성은 이쯤 하고 각자 할 일을 하자고. 축제 준비에 연구과제까지 하려면 할 일이 태산이야.”

행사부장 믹 루벤이 말했다. 축제 준비 같은 일은 행사부의 일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가장 바쁘게 된 믹이었다.

그날 오후, 학생회는 전교생에게 공지를 내렸다. 하나는 왕립학교 무투회 개최 건, 다른 하나는 교장이 직접 내린 연구과제였다.

학생들은 무과생과 문과생이 절반씩 팀을 이루어서 연구과제에 몰두하였다.

팀원들 간의 친분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무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연구 과제를 계기로 축제까지 함께 즐기며 문과와 무과의 화합을 이루게 하는 듀론 후작의 안배대로였다.

한편, 학생회 멤버 6인은 축제 준비는 물론 연구과제도 함께 하기로 했다.

재정부장, 서기장, 규율부장, 행사부장 등이 함께 축제준비에 몰두하는 동안 연구과제는 미첼과 존이 맡았다.

존은 군 지휘관 지망생답게 전략과 군사학적으로 해박한 견해를 내놓았고, 미첼은 레던 왕실의 지난 행적을 조사·분석하였다.

그런데 연구를 거듭할수록 두 사람은 놀라움을 느껴야 했다.

“레던 왕성을 포기하려 하고 있군.”

미첼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존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걸 봐봐.”

미첼은 자신이 조사해온 내용을 보여주었다.

“겨울에 레던 왕성의 빈민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켰어.”

“제대로 된 주거지가 없는 빈민들에게는 너무 혹독한 겨울이었으니까. 엄청난 폭설이었잖아.”

“그래. 그런데 그때 재상 각하의 행적을 보면, 여러 지역을 날아다니며 임시주거지를 만드셨어. 빈민들 모두를 수용하고도 훨씬 남는 대량의 주거지를 말이야.”

두 사람은 지도를 펼쳐놓고 토의를 계속했다.

미첼은 카록이 만들었던 주거지를 지도에 표시해놓았다. 존은 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위치 선정이 절묘한 구석이 있군. 혼트 제국군의 침공루트가 될 만한 장소는 최대한 피했어. 아마도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내 예상이 맞지?”

“그런 것 같아. 왕실은 레던 왕성을 포기할 거야. 확실히 국왕 폐하께서 레던 왕성을 지키느라 발이 묶여있는 것보다는 포기하고 전역(全域)을 통제하는 게 더 효율적인 판단이야.”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린 것 같군. 우리 팀 과제는 교장님께 제출할 때까지는 비밀로 하는 편이 낫겠다.”

“동감이야.”

그들의 과제는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했다.

‘확실히 이 정도까지 조사한 미첼의 수완은 대단하지만, 미첼이 알아낸 걸 혼트 제국이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존은 심각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레던 왕성에서 대피할 때까지 뮤트 공작 전하가 혼트 제국군을 막아내며 시간을 번다는 시나리오인데. 그런데 만약 시간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물론 뮤트 공작이 무너지지 않는 한 혼트 제국군은 레던 왕성으로 진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뮤트 공작은 어떤 강대한 적을 맞이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굴지의 뮤트 공작과 그의 제자들이 버티고 있는 템플 오브 나이트는 튼튼한 아성이니까.

하지만 만약 자신이 침략자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예상을 깨고 허를 찌를 것이라는 생각이 존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무모한 짓을 해서라도 기필코 승리를 따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카르스 황제도 같은 생각일 터였다.

존은 교장이 낸 이번 과제가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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