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59화 (359/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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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왕립학교의 축제

레던 왕립학교는 순탄하게 운영되었다. 개교 첫 해이니만큼 모든 게 낯설었지만, 교장 듀론 후작은 물론 교사진들도 하나같이 유능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다들 금세 적응했다. 왕립학교는 훌륭한 교육 커리큘럼을 선보여 명성을 높여나갔다.

무엇보다도 왕립학교의 순조로운 첫 출발에는 훌륭한 학생회의 공로가 컸다.

육제후의 일가(一家)인 로도크 백작가의 삼남이자 입학성적 종합 수석인 미첼 로도크.

로열나이츠 부단장 랜달 스페이 백작의 아들이자 15세의 나이에 오러 엑스퍼트가 된 검의 천재 존 스페이.

철두철미한 학생회장 미첼과 다재다능한 재능이 화려하게 빛나는 존의 결합은 학생회의 수준을 당초 교사진의 예상을 크게 상회하게 했다.

카록의 중재 덕택에 아무 갈등 없이 서로를 인정하게 된 두 사람은 출신 가문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학생회 멤버로서 힘을 모았다.

학생회 멤버는 모두 6인.

미첼과 존의 휘하에는 재정부장, 서기장, 규율부장, 행사부장 이렇게 네 사람이 있었다.

재정부장과 서기장 직책은 미첼의 친구들인 로이 맥도웰과 조이 앤소니가 차지했다. 그들은 각각 입학 성적에서 종합 2, 5등을 차지한 문과의 수재들이었다.

규율부장과 행사부장은 존의 친한 친구들 중에서 임명되었다. 로이드 딕슨과 믹 루벤. 두 사람 다 장래가 유망한 무과의 학생들이었는데, 특히 로이드 딕슨은 카록이 학생회장을 선별할 때 적극적으로 존을 두둔할 정도로 신뢰가 싶은 친구였다.

그렇듯 학생회 멤버는 미첼 일당과 존 일당으로 나뉘어 대립할 듯한 구성을 띄었다. 그러나 미첼과 존이 이런저런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신뢰로 대하자, 자연히 4인 또한 잘 화합되었다.

그리고 멤버들끼리 사소한 신경전이나 벌이고 있기에는 학생회의 업무가 무척 과중했다.

학생회는 강의 시간 이외의 학교를 통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칙에 준수하는 한 학생회는 학교라는 나라의 왕실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에게 그런 권력을 맡기는 것에 대하여 교사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미첼이 이끄는 첫 학생회는 충분히 책임감을 갖고 훌륭하게 학교를 이끌었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학생회의 주된 권력은 바로 재정.

숙식 및 강의를 제외한 학생들의 활동에 필요한 비용 전액에 대한 결제 권한을 학생회가 갖고 있었다. 학생회의 결제를 받지 못하면 숙식과 강의 외의 일체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전원이 귀족. 개개인 모두가 젊고 의욕 넘치고 진취적이며 야망이 있었다.

사비를 털어 사적인 파티를 벌이는 건 물론이고, 예술가를 초정해 음악회나 전시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는 등 갖가지 사교활동으로 교내 사교계의 중심인물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한 행사에 필요한 경비를 학생회가 결제해주니, 학생회를 거역하고서는 사교계를 주도할 수 없었다.

물론 학생회는 아무 행사나 다 결제해주지 않았다. 학생들의 제안을 검토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행사에만 결제를 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달 가지 못하고 학생회에 할당된 재정이 바닥날 터였다.

“이 학교에 겁쟁이들이 우글거린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다!”

학생회실.

한 학생이 씩씩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과 쩍 벌어진 어깨는 그가 무과 학생임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임박하여서 나라 전체가 국운을 걸고 싸울 준비를 하는 이때에! 이 나라의 귀족이란 놈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징징거리지를 않나, 레던 왕국도 이제 끝이라며 꼴 같지 않은 비관론이나 공공연하게 해대는 놈이 있지를 않나……!”

“자자, 진정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야? 규율부를 총동원해 겁쟁이를 때려잡을까?”

존이 농담을 했다. 학생회 멤버들이 나직이 킥킥 웃었다.

덩치 큰 무과 학생은 존을 노려보았으나, 불끈 쥔 주먹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분을 삭였다. 오러 엑스퍼트의 천재인 존을 주먹질로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대신 무과 학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댔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물론 아니다.”

“그럼?”

“이런 시기야말로 모두의 사기를 고취시킬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난 무과 축제를 기획했지! 자, 봐라! 여기 기획안이다.”

무과 학생은 기획안을 존에게 건넸다.

존은 슥 훑어보는 시늉을 하더니 휙 하고 학생회장 미첼에게 던져주었다.

미첼은 혀를 찼다.

“좀 대강이라도 읽어보시지? 업무는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분담하기로 되어 있을 텐데.”

“읽는 시늉은 했잖아.”

“근무태만이다.”

“돈 들어가는 종류의 일은 로도크 백작가의 혈통만큼 잘 하는 사람이 없다던데?”

“왕실파 가문 출신에게 칭찬을 듣다니 영광이군.”

아닌 게 아니라, 로도크 백작가는 육제후 중에서도 유독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는 가문이었다. 그러한 강점은 미첼 또한 지니고 있었다.

미첼은 기획안을 빠르게 읽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안 된다.”

“어째서냐!”

무과 학생이 버럭 소리쳤다.

“무과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너먼트로 실력을 겨루고 우승자를 뽑는다고 되어 있군. 무과 학생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너도 잘 알 테지. 일일이 토너먼트를 벌였다가는 하루 이틀 갖고는 끝나지 않겠군.”

“그래서 축제 전에 예선전을 치러서 본선 진출자를 미리 선발하는 게 아니냐.”

“무과 축제 행사비 및 우승자에게 줄 상금은 관람권을 학생들에게 팔아서 충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관람권이 꽤 비싸군. 과연 그 관람권을 사서 무과 축제를 관람할 학생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거의 모든 녀석들이 관람할 것이다. 누가 제일 강한지 우열을 가리는 자리 아니냐!”

“여기서 첫 번째 문제점이 나오는군. 이 학교에서 누가 최고인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자리에 있지.”

모두의 시선이 존에게 향했다. 존은 싱긋 웃어보였다.

미첼의 설명이 이어졌다.

“둘째로, 무예대결은 식상하다.”

“식상하다고! 사나이들의 진검승부가?!”

무과 학생이 또 벌컥 화냈다.

미첼은 덤덤히 말했다.

“너희가 평소에 훈련하는 연무장은 탁 트인 교내 한복판에 위치하지. 모든 학교 강의실 창가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문과 학생들이 평소 쉬는 시간에 강의실에서 뭘 할 것 같나?”

“……구경?”

“그렇다. 너희 무과 녀석들은 쉬는 시간에 재미 삼아 겨루기를 하더군. 우리 문과는 늘 그걸 구경하지. 너희들의 대결 따위, 거창한 축제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이미 매일매일 보고 있단 말이다.”

“큭!”

“셋째로, 무예를 잘 모르는 일반인 눈에는 칼싸움이 다 거기서 거기더군. 본선 진출자만 뽑아서 경기를 치른다 해도 족히 수십 전은 치를 텐데,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진득하니 앉아서 마지막까지 관람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결승전을 치를 땐 관중이 텅 빌 테지.”

“끄응!”

무과 학생은 뭐라고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에 중재를 하듯이 존이 끼어들었다.

“자자, 그래도 축제로 불안한 분위기를 전환해보자는 의견 자체는 나쁘지 않아. 요컨대 문제는 문과든 무과든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축제여야 한다는 점이니까 잘 궁리해봐. 우리도 한 번 생각해볼 테니까.”

“아, 알았다.”

무과 학생은 수긍하고는 학생회실을 떠났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존은 씨익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냥 할까? 무과 축제. 학생회가 상금을 부담하고, 내가 참가해서 가볍게 우승해버리는 거지.”

“네 용돈 헌납을 위해 분주하게 축제 준비를 하는 학생회라니, 퍽 서글픈 광경이군. 용납 못해. 그 축제를 한다고 해도 넌 참가금지다.”

“불공평하잖아? 나도 이 학교 학생이라고.”

“넌 심판을 봐라. 어느 한 쪽이 다치기 전에 경기를 중단시키는 역할을 맡는 거다.”

“잠깐, 잠깐! 기다려봐. 정말 그 축제를 할 건 아니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재정부장인 로이 맥도웰이었다.

“학생회에 주어진 재정은 그렇게 풍족하지 않아. 가뜩이나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온갖 쓸데없이 돈 드는 행사나 열고 싶어 하고, 불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걸 다 해결해주려면 한 달도 못 버티고 파산이야.”

로이는 재정 문제에 무척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입학성적이 종합 2위였을 정도로 수재였지만 성격이 소심한 로이는 모험을 극히 꺼려했다.

미첼이 말했다.

“걱정 마. 지금으로서는 별로 무과 축제를 할 생각이 없어. 좀 더 쓸모가 있는 행사가 된다면 모를까.”

“잠깐, 그렇게 접어버리기에는 아깝잖아. 무과 축제라는 발상 자체는 꽤 좋았다고 보는데.”

“그건 너도 무과이기 때문이겠지, 존 스페이.”

“알았어, 난 불참하고 심판이나 보면 되잖아. 하지만 다들 전쟁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이때에 그런 행사를 열면 꽤 좋을 것 같단 말이야.”

“그게 꼭 무과만의 축제일 필요는 없겠지. 무과만의 파티를 벌이고 나면, 소외된 문과 쪽에서도 자극 받아서 더 거창한 이벤트를 벌이고 싶어 할 거야. 가뜩이나 편 가르고 경쟁하길 좋아하는 게 인간인데, 거기에 부채질 할 필요는 없어.”

“그러니 문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야지.”

“어떻게?”

“음, 글쎄. 그건 돈벌이에 일가견이 있으신 로도크 백작가의 삼남께서 생각해봐야지.”

미첼은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없군. 그럴 필요도 못 느끼고.”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봐.”

존은 미첼에게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엄청난 축제를 벌여서 전교생에게 비싼 입장권을 잔뜩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거야. 그리고 그 돈을 군자금에 보테도록 왕실에 기부하는 거지!”

“호오?”

“축제를 성공시킨 건 물론이고 왕실에 기부금까지 전달하면, 전쟁을 앞두고 모두의 사기까지 진작시켰으니 우리 학생회가 대단한 공을 세운 셈이라고. 잘 하면 국왕 폐하께서 직접 와서 치하해주실 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겠다.”

완강히 반대하던 로이까지도 존의 제안에 멍한 표정이 되었다.

미첼은 눈을 번뜩였다.

“그건 정말 구미가 당기는데.”

왕립학교의 기념적인 첫 학생회장으로서, 왕실에 공헌하여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분명 사교계에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은 앞으로 가문에서 나와 홀로 서야 하는 미첼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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