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회: 14권 - 9장. 봄 -->
듀론 후작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칙상 종합 1, 2등을 한 두 학생에게 각각 학생회장과 부회장의 직책을 맡길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종합성적의 상위권자가 문과 학생들로 치우쳐져서 무과 학생들에게 불리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무과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진은 문과 1등과 무과 1등을 각각 후보로 뽑고,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학생회장이고 부회장인지를 교사진의 평가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과와 무과 둘 중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않은 공평한 학생회를 위해서였다.
설명을 듣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듀론 후작님. 그런데, 이 정도 문제면 굳이 저를 부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학교장으로서 듀론 후작님께서 알아서 하시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문과 1등이자 종합 성적 1등을 차지한 입학생이 누구인지 아는가?”
“이번에도 쇼킹한 인물의 아들인가요?”
“그렇다고 봐야겠군. 이름은 미첼 로도크일세.”
미첼 로도크?
로도크?!
육제후의 한 가문인 로도크 백작가의 인물이란 뜻이었다.
“로도크 백작의 삼남일세.”
조선소 설립 투자를 놓고 육제후의 네 가문과 협상을 벌였을 때에 로도크 백작을 만나봤다. 육제후 중 가장 상재에 밝은 인물로 기억된다.
육제후의 일가인 로도크 백작가의 자제이니 종합 1등을 할 정도의 엘리트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육제후와 왕실파의 대결이 되어버렸군요.”
육제후파를 대표하는 엘리트 미첼 로도크.
왕실파의 천재 존 스페이.
둘 중 누구를 학생회장으로 임명하느냐를 놓고 듀론 후작과 교사진은 갈등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줘도 반대쪽은 반말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단 교사진과의 회의를 통해서 문과 1등과 무과 1등을 학생회장, 부회장 후보로 선출하는 것으로 합의는 했네. 문제는 둘 중 누구를 학생회장으로 임명하느냐 일세.”
존 스페이를 학생회장으로 임명하면 육제후파의 학생들이 반발할 것이다. 심하면 왕실이 설립한 교육기관이라서 왕실파를 우대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미첼 로도크를 선택하자니 육제후 눈치를 봐서 역차별을 하냐고 왕실파 학생들이 반발할 지도 모르는 노릇. 미첼 로도크도 물론 우수하지만, 15세에 오러 엑스퍼트가 된 존 스페이의 천재성이 너무 임팩트가 큰 것이다.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하면 어떻겠습니까?”
듀론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편 가르기에 숫자싸움밖에 더 되겠는가? 합리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머네.”
“끙, 그도 그러네요.”
“양측 모두 납득할 만한 결정이 필요해서 자네를 불렀네. 레던의 현자라 명성을 떨치는 자네의 판단이라면 다들 수긍하지 않겠는가.”
“으음…….”
대체 왜들 나한테 많은 걸 기대하는 거야? 밖에서 현자, 현자 하니까 정말 내가 현자인 줄 아나!
나는 머리를 싸쥐고 열심히 생각을 했다.
한참 후에야 나는 간신히 한 가지 방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듀론 후작님. 일단은 두 사람을 테스트해서 보다 더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인 사람을 학생회장으로 임명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
미첼은 자신의 인생에 불만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왜 좀 더 일찍 태어나지 못했을까!’
로도크 백작가.
육제후의 일가로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가문에서 태어난 것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축복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미첼은 로도크 백작이 뒤늦게 본 셋째 아들이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맏형과 둘째 형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다. 너무 늦게 태어난 미첼은 그 경쟁 대열에 낄 자격조차 없었다.
두 형들에게는 경쟁 및 분발을 촉구하는 아버지도 미첼에게만은 이렇게 당부하곤 했다.
“이 애비가 네 인생까지 제시해줄 수는 없구나. 넌 너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때문에 미첼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장래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풍문으로 왕립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유명한 카록 리간드가 이 나라 최고 최대의 교육기관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카록 리간드!’
하찮은 가문의 삼남 서자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미첼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만든 교육기관이라면 분명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첼은 왕립학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 왕립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버지 로도크 백작의 허가가 떨어지자 열심히 공부해서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렀고, 그 성적은 문과계열 학생들 중 수석이었다.
덕분에 가문의 체면이 섰다고 기뻐하는 아버지로부터 하인 세 명과 엄청난 돈을 받은 미첼은 레던 왕성으로 상경하여 왕립학교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의 길을 찾겠다.’
첫 번째 목표는 왕립학교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는 것이었다.
최우수 졸업자는 작위를 하사받는다는 사실을 왕립학교 소개서를 읽어서 기억하던 미첼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첼에게 교장이 보낸 서류 한 장이 건네졌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본교(本校)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행정활동을 위하여 학생회를 발족한다. 학생회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학생회장.
부회장.
재정부장.
서기장.
규율부장.
행사부장.
이 중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교장 및 교사진의 결정에 의해 선출되는데, 올해의 후보는 문과 수석 미첼 로도크와 무과 수석 존 스페이 두 사람이며, 교장과의 면접을 통해 두 사람을 학생회장과 부회장으로 임명한다.
학생회의 임원이 되는 네 부장은 학생회장이 인사권을 갖되, 부회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위의 내용을 숙지하였다면, 저녁식사 후 7시까지 자신의 힘이 되어줄 친구와 함께 교장실로 오도록 한다.」
‘기회가 왔구나.’
미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학생회에 대한 사항도 소개서를 통해 알고 있던 미첼이었다.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입학시험을 위해 미친 듯이 공부했다. 톱의 성적을 거두면 학생회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강적이 나타나긴 했지만, 이 정도 경쟁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어.’
존 스페이.
자신과 같은 15살의 나이에 오러 엑스퍼트가 된 엄청난 놈이었다.
아직 성인도 안 되었으면서도 벌써 일류 무인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미첼로서는 그런 존이 부럽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질 수 없다. 넌 이미 충분히 많은 걸 가진 놈이니 학생회장 자리 정도는 내게 양보해라.’
힘이 되어줄 친구와 함께 교장실에 찾아올 것. 이것은 학생회장을 뽑기 위한 테스트임이 분명했다.
이 테스트에서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친구를 많이 데리고 가서 자기 세력을 과시해보라는 취지는 아닐 거다.’
서류의 내용을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미첼은 생각에 잠겼다.
‘포인트는 학생회장으로서 임명할 수 있는 네 명의 학생회 임원. 그리고 그 인사권은 부회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즉, 사실상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인사권 문제에서 동등한 파워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듀론 후작과 함께 교장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재미있는 과제였네.”
듀론 후작은 이번 테스트를 발상해낸 나를 칭찬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제가 낸 과제에 대하여 두 사람은 분명 자기 스타일대로 답을 가져올 겁니다.”
“기대되는구먼.”
“슬슬 7시네요.”
내가 회중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1학년 존 스페이 외 11인이 교장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