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44화 (344/529)

<-- 344 회: 14권 - 6장. 저택 공사 -->

다행히 샐러맨더가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면서 정령친화력이 대폭 상승했기 때문에 여유가 넘쳤다.

쭉쭉 땅굴을 파던 중에, 문득 정령과 공유된 감각에 이상한 것이 포착됐다.

“물? 이 밑에 지하수가 있나?”

땅굴을 약 2킬로미터 쯤 판 시점이었다.

이 아래에 다량의 지하수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노움, 서두르자. 일단 땅굴부터 마저 다 파는 거야!”

-응!

노움의 삽질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렇게 땅굴은 왕립학교 건물의 아래까지 이어졌다. 노움의 감각으로 지상을 살펴보니 교내의 드넓은 정원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정원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누구지? 아직 개교 전이라 학생들도 없을 텐데.

좀 더 감각을 집중해보니 그는 다름 아닌 듀론 후작이었다.

왕립학교의 교장으로서 업무를 보다가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모양이었다.

비밀통로는 말 그대로 비밀로 해야 하지만, 듀론 후작이라면 상관없겠다 싶었다. 마침 상의하고 싶은 문제도 있었고.

나는 노움과 함께 땅굴을 위로 뚫고 지상으로 나왔다.

“듀론 후작 각하!”

“허억!”

아차.

기겁을 하여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한 듀론 후작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난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바보 같으니!

땅속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나? 가뜩이나 나이 드신 분인데 심장마비라도 일으켰다간 큰일이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난 황급히 달려가 듀론 후작을 부축했다.

듀론 후작은 멍하니 날 보더니 슥슥 눈을 비볐다. 헛것을 봤나 의심이 든 모양이었다.

진정이 되고서 이성이 들자 비로소 듀론 후작은 몸을 추스르고 기가 찬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설마 이 늙은이를 골려주려고 일부러 땅속에서 나온 겐가? 장난이라면 너무 심했네.”

“서, 설마요. 정말 죄송합니다, 후작 각하. 그런데 이런 곳에 혼자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날 놀라게 하려던 게 아니라면 땅속에서 뭘 하고 있던 겐가? 아니, 그보다 지금은 업무시간일 텐데 왕궁에 안 있고 왜 여기에 있나?”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다가 비밀통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비밀통로?”

“예. 리간드 가문의 저택에서 이곳까지 비밀통로를 뚫어놓았습니다.”

“자네 집에서 여기까지라면 실로 엄청난 거리의 땅굴을 뚫은 셈이로군. 병가를 낸 사람치고는 대단한 능력일세.”

듀론 후작은 재상으로서의 업무를 내팽개치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니냐는 책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몸은 괜찮습니다만, 심적으로 조금 불편해서 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가?”

나는 한숨을 쉬고는 롬펠 대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실로 무서운 인물이로군.”

“예. 아버지와 릭 형님 둘이 합세해도 그자를 이길 수 있을지는 솔직히 불안할 따름입니다. 대체 그 누가 그 괴물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껏 준비한 모든 게 다 무의미한 저항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마저 들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불안해하니 롬펠 대공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는 알 것 같네. 허허허, 나도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네만 110살이라니, 괴물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겠구먼.”

그러나 듀론 후작은 나와는 달리 그다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후작 각하께서는 두렵지 않으신 겁니까?”

“두렵지 않네.”

잘라 말하는 듀론 후작이었다.

“어째서입니까?”

듀론 후작은 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시간을 내서 자네 아버지와 형을 만나보게나. 내가 왜 두려워하지 않는지 깨닫게 되길 빌겠네.”

이미 충분히 살아서 여한이 없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았다.

“……예.”

하아.

따지고 보면 나도 10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아직도 미숙한 젊은이에 불과한 것 같다. 한심하군, 나란 녀석도.

“그런데 그것 때문에 끙끙 앓다가 갑자기 비밀통로라니. 허허헛, 자네답구먼. 두려움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다니 단순하고도 엉뚱해.”

“두려움의 표출이라…….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나는 쑥스러워서 머리를 긁적였다.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비밀통로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제 보니 그 걱정의 원천은 롬펠 대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슨 두더지도 아니고…….

“그나저나 이곳에다가 비밀통로의 출구를 만들 셈인가?”

“예. 그것과 관련해서 후작 각하의 허락을 받고자 합니다.”

나는 정원 한복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다가 연못을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연못?”

“예. 마침 지하수를 발견했거든요. 그걸 끌어올려서 비밀통로를 연못까지 이어지는 수로로 만들 참입니다.”

지하수를 발견하고서 얻은 내 아이디어의 정체가 바로 이거였다.

내가 발견한 지하수의 수원(水原)은 꽤 저장량이 많아서 비밀통로를 꽉 채우다 못해 와인저장고와 식료품창고까지 물바다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연못을 만들어서 수위(水位)를 적당히 조절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배 몇 척을 갖다놓아서, 유사시 다 같이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탈출하는 것이지.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가면 걷는 것보다 훨씬 짐을 옮기기에 적당할 터였다.

“흐음. 연못이 있는 풍경도 나쁘지 않겠군. 허락하겠네.”

“감사합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을 하는구먼. 역시 자네답네.”

“하하하. 그럼 잠시 물러나계십시오.”

듀론 후작을 물러나게 한 뒤에, 나는 비밀통로의 출구와 이어진 부근에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노움이 삽질 몇 번을 하자 순식간에 넓은 구덩이가 파였다.

지하수의 저장량을 생각하면 대략 이 정도면 적당하지 싶었다. 너무 많이 팠다 싶으면 조금 매워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다시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 지스를 돌보고 있던 운디네를 불렀다.

나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운디네는 잠든 지스를 요람에 눕히고 나에게 왔다.

“자! 가자, 얘들아. 재미있는 걸 만들 거야.”

-응!

-응.

노움과 운디네를 양 어깨에 태우고 어스 핸드를 타고 움직였다.

지하수가 있는 위치에 도달하자 운디네에게 지시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학교의 연못을 채워 넣자.”

-응.

운디네는 아래로 양손을 뻗었다.

두두두두두!

지진이라도 난 듯이 비밀통로가 흔들렸다. 오러로 공격해도 끄떡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쏴아아아― 콰콰콰콰!

지하수가 솟아나 비밀통로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운디네는 솟아오르는 물을 학교를 향해 흘려보냈다.

우리는 어스 핸드를 타고 빠르게 흐르는 물을 따라 이동했다.

콸콸콸콸!

비밀통로의 출구로 쏟아진 물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를 채우기 시작했다.

“운디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니?”

운디네는 고개를 저었다.

-물이 많아. 조금 더 깊게 파야 돼.

“알았어. 노움!”

-응!

노움이 삽을 꼬나 쥐고 물이 계속 차오르는 연못에 뛰어들었다.

첨벙!

이윽고 연못의 수위가 점차 내려갔다. 노움이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디네가 내 어깨를 살짝살짝 찌르며 말했다.

-그만. 이제 됐어.

“오케이, 노움!”

-응, 아빠!

촤악!

물속에서 노움이 튀어나왔다. 푸르르 강아지처럼 물을 털어낸 노움은 내 어깨에 올라탔다.

어휴, 뉘 집 새낀데 이렇게 귀여울꼬. 나는 노움을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운디네도 머리를 스윽 내밀었다. 자기도 쓰다듬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운디네도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정령들과 노닥거리는 사이에 어느 새 연못이 다 채워졌다.

어스 핸드를 타고 비밀통로에 들어가 확인해보았다.

내가 만든 비밀통로의 높이는 총 3미터.

그중 1미터 정도가 물로 차올라 있었다. 딱 적당한 수위였다.

지하수를 끌어올린 거라서 물도 맑고 깨끗했다.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몹시 만족스러웠다.

나는 다시 비밀통로에서 빠져나와 연못을 구경하던 듀론 후작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후작 각하?”

“훌륭하네. 다만 그 비밀통로 출구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잘 숨겨놓아야겠군.”

“알겠습니다.”

나는 노움을 시켜서 비밀통로의 출구를 적당히 숨겨두도록 했다.

듀론 후작과 작별하고 레던 왕성에 돌아간 나는 목수를 수소문해 오늘 밤까지 길이 3미터, 폭 1.5미터의 작은 보트 한 척을 만들도록 시켰다. 돈을 듬뿍 주자 목수는 팔을 걷어붙였다.

나의 공사는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실력발휘를 한 김에 우리 저택의 방어력도 좀 더 보강하기로 했다.

동산을 감싸고 있는 담장부터 손봤다.

높이 2.5미터 정도에 불과했던 담장을 10미터짜리 웅장한 성벽으로 탈바꿈시켜버렸다. 사병을 50명 정도 추가로 고용해서 수비하게 할 참이었다.

게다가 성벽 아래로는 깊은 구덩이를 팠다.

“이, 이게 뭐야?!”

“리간드 백작가가 갑자기 요새가 되어버렸어!”

“리간드 백작님이 조화를 부린 거야!”

우리 리간드 저택이 순식간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돌변하자 북부대로를 지나던 사람들이 경악하였다. 갑자기 성벽이 나타났으니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저택을 빙 두르고 있는 튼튼한 성벽과 구덩이.

혼트 제국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단숨에 함락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 정도면 가족들이 비밀통로로 피신할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겠어.”

하늘에서 저택의 풍경을 바라보니 이제야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 시스와 줄리아에게 자랑하는 일만 남았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