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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39화 (339/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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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두 사람의 세월

겨울에 접어들었다.

왕립학교는 입학시험을 치렀다. 수백 명의 입학 희망자가 바글바글 모여서 응시했다고 한다. 귀족가문의 자제들답게 대부분 합격. 기본적인 소양은 있다는 뜻이었다. 봄이 되면 무사히 1학기가 시작되리라.

루이는 기동행정의 총괄책임자로서 준비에 들어갔다. 기동행정에 따른 행정체계를 편성하고 각 부서에 하달, 왕실 내의 모든 관리가 전시에 계획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덕분에 혼트 제국의 동향에 따른 불안감도 많이 해소되고, 이제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대응체계와 각 개인의 역할이 뚜렷하게 정해지자 다들 의욕이 생긴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

나의 가족도 평화 그 자체였다.

사랑스런 내 아들 지스는 이제 무척 활발해졌다. 여기저기 저택 곳곳을 잘도 아장아장 돌아다닌다. 그러다 넘어지는 일도 빈번해졌다.

넘어질 때마다 운디네가 붙잡아줄 수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줄리아가 강력히 주장했다.

“넘어지고 아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키워야지 매번 싸고돌고 보호해서 어쩌자는 거예요?”

“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그래도 다치면 가엽잖아.”

“크게 위험할 때만 운디네가 보호하게 하세요. 넘어져서 까지는 상처쯤은 운디네가 치유해줄 수 있어요.”

“아, 그게 좋겠다. 시스, 너도 찬성이지?”

“응.”

그리하여서 지스의 교육방침이 다시 정해졌다. 보다 강하게 키우기로.

그런데 우리의 기우였을까?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우량아였던 지스는 넘어져도 엉엉 울거나 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일어서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뉘 집 자식인데 저렇게 튼튼할까. 아버지 말마따나 진짜 마스터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왕궁에서 제법 모범적으로 일했다.

이래봬도 무단으로 지각이나 결근을 한 일은 없다. 기회만 생기면 뺀질뺀질 놀지만 할 땐 하는 사람이거든.

그렇게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기.

그런데 이때 레던 왕성에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던 왕성이 아니라 나에게 닥쳤다.

저녁 6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재빨리 일을 정리했다.

“그럼 내일 봐!”

에바에게 간단히 인사한 뒤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노움을 시켜 만들어둔 어스 핸드를 타고 저택으로 바람처럼 날았다. 1초라도 빨리 퇴근하고픈 것이 직장인의 마음이거든.

그런데 저택에 가까워지자 문득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물론 동산 위에 지어진 우리 저택이 워낙 아름다워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중 한 사람의 기척이 묘하게 내 감각을 자극했다.

노움과 공유된 감각으로 더욱 집중해보았다.

그리고 난 깜짝 놀랐다.

거대한 바다와 같은 어마어마한 오러량이 그 사람의 안에 내제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 점의 파문도 없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형태라니.

엄청난 수준의 기척 죽이기. 하마터면 상급 정령사인 나조차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이런 게 가능한 건 오러 마스터밖에 없다!

아버지나 릭 형님도 아닌데 누구지? 많은 오러 마스터를 만나봤지만 이 기척은 처음 느껴본다.

게다가 엄청난 거구다. 키가 2미터가 넘고 대단한 근육질이다.

“노움, 그쪽으로 가자.”

-응, 아빠.

나는 정체불명의 오러 마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후드가 달린 낡은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어서 생김새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머리칼도 덥수룩한 수염도 허옇게 샌 노인. 보통 나이가 들어도 중년 정도의 젊은 외모를 유지하는 오러 마스터답지 않게 굉장히 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나이는 엄청난 고령일 거란 계산이 나온다.

누구일까? 생각해보자.

낡은 로브로 모습을 가리고 혈혈단신으로 찾아온 고령의 오러 마스터.

게다가 이런 엄청난 거구라면……?

한 인물의 이름이 뇌리에 스친다.

이윽고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롬펠 대공 전하.”

“……!”

노인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정답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다소 수상한 행색으로 저를 찾아오실 만한 연세 많으신 오러 마스터라면 한 분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정탐이라도 하러 오신 겁니까?”

“정탐은 무슨. 그냥 흥미다. 그런데 내 나이가 많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그렇게 보이니까요.”

“하하하, 이것 참!”

롬펠 대공은 낡은 로브를 벗어던졌다.

우람한 체격과 덥수룩한 수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등에 걸린 흉악한 배틀 액스가 달빛에 빛난다.

“이거야 원. 작심하고 기척을 지워버렸는데도 자넨 로브를 뒤집어 쓴 덩치 큰 사람을 보고 나인 줄 알아버리는군.”

“눈치 빠르단 이야기는 많이 듣습니다. 그거 하나로 재상까지 해먹는걸요.”

“푸하하! 과연 황제 폐하께서 주목하는 인물이다!”

“그 ‘황제 폐하‘ 얘기는 너무 큰 소리로 하지 마시죠. 주목 받습니다.”

“아아, 그런가?”

롬펠 대공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안으로 드시죠. 식사는 하셨습니까?”

“요 사흘간 물밖에 안 마셨다.”

“혼트 제국의 경제 사정이 좀 어렵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내 말에 롬펠 대공은 또 크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어렵고말고. 그래도 너무 흉보지 마라. 자넬 만나러 물만 마시며 말 타고 달려온 손님 아니냐.”

“알겠습니다. 아무튼 저도 마침 저녁식사를 하려던 참이니 함께 하시죠. 귀빈을 맞을 준비는 못했지만 거하게 차려드리겠습니다.”

“오, 좋지. 적국 사람인데도 환대해주는 게 마음에 드는군. 배포가 커.”

“본국과 혼트 제국이 적대관계였던가요?”

내 반문에 롬펠 대공은 피식 웃었다.

“그렇군. 아직은 아니지.”

“그때까지는 섣불리 적으로 단정 짓지 않기로 하죠.”

“알겠다. 군인으로 평생을 보낸 터라 실례를 했군.”

“별 말씀을. 자, 따라오십시오. 지금쯤 대공 전하를 위해 식사를 차리고 있을 겁니다.”

이에 롬펠 대공은 또다시 놀랐다.

“날 위해? 날 만난 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령을 통해 지시해두었습니다.”

“과연. 말로 하지 않아도 정령에게 지시를 할 수 있나보군.”

“예. 제 감정 상태까지 상세히 전달할 수 있죠.”

“친절하구먼. 내게 자기 능력을 이렇게 가르쳐줘도 되겠느냐?”

“뭐, 혼트 제국의 마법병단이 지난 수년간 돈을 퍼부으며 절 연구했으니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

“호오, 모르셨습니까?”

“처음 듣는 얘기다.”

롬펠 대공의 대꾸에 나는 씨익 웃었다.

“모르시는 걸 보니 연구의 성과가 별것 없었던 모양입니다.”

내 말에 롬펠 대공이 깜짝 놀랐다.

“어,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냐?”

“정령술 대책에 큰 성과가 있었다면, 아무리 기밀이라도 설마 핵심 인사인 대공 전하께 까지 비밀로 했겠습니까? 별로 알려줄 만한 성과가 없으니 모르시는 거지요.”

“그렇군!”

롬펠 대공은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아이고, 실수다!”

“하하하,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자자,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안으로 드시죠.”

“전혀 사소하지 않다. 군인이 되어서 국가기밀을 흘려버리다니. 이 일은…….”

“비밀이죠? 물론입니다.”

“이럴 땐 눈치 빨라서 좋군. 나도 체면이 있거든. 내 제자 놈이 이 사실을 알면 날 놀릴 게 분명해.”

“제자라면 륭겐 후작 말씀이시죠?”

“아아, 그래. 그 약해빠진 녀석. 얼마 전에 너한테 맞고 왔다던데 사실이냐?”

“좋은 승부였지요.”

“원래 좋은 승부는 이긴 승부밖에 없지.”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크하하하!”

롬펠 대공은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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