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37화 (337/529)

<-- 337 회: 14권 - 4장. 괴물 대공 -->

이윽고 카르스 황제는 롬펠 대공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대의 무위에 경외를 표하는 의미에서, 한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어떤 선택권입니까?”

“뮤트 공작. 카록 리간드 백작. 쿤트 부자.”

레던 왕국을 대표하는 4인의 강자가 언급되자 롬펠 대공의 눈빛이 강한 흥미로 빛났다.

카르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골라라. 셋 중 어느 쪽과 싸우고 싶은지.”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싸우고 싶은 상대와 정말 싸우게 해주시는 겁니까?”

“그리 될 것이다.”

단언하는 황제를 보며 롬펠 대공은 가슴이 설레었다.

오러 마스터가 되고 대공의 지위에 오르면서 적수가 사라진 지 오래. 그런 롬펠 대공에게 상대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목마름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갈등이 되는군요. 레던 왕국을 대표하는 뮤트 공작과 근 10년 사이에 가장 유명인사가 된 정령사 카록 리간드, 그리고 바스크 쿤트와 릭 페르난도 부자. 어느 쪽도 흥미로운 상대임은 확실한데 말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그럼 내일 다시.”

말을 마치고 카르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슈타인 후작을 대동한 채 훌쩍 대전을 떠나버렸다.

황제가 퇴장하자 묵묵히 침묵하던 카이슨 후작이 롬펠 대공에게 다가왔다.

“대공 전하, 어느 쪽을 선택하실 요량이십니까?”

“글쎄다. 그보다 폐하의 의중을 더 알고 싶은데 말이야. 대전사 결투를 생각하시는 것도 아닌데, 싸울 상대를 고르라는 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에 카이슨 후작이 답했다.

“전쟁 발발 시 어느 방면으로 침공하느냐를 결정하시려는 겁니다.”

“오, 그런가?”

“예. 잘은 모르지만 아마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침공 루트는 두 갈래. 북부대로와 바덴 강 유역입니다. 뮤트 공작과 싸우고 싶으시면 북부대로 루트의 침공군을 맡고, 쿤트 부자와 싸우고 싶으시면 바덴 강 유역의 침공군을 담당하시면 되겠지요.”

“그렇군. 그건 이해하겠는데, 그럼 카록 리간드와 싸우고 싶으면?”

륭겐 후작이 불쑥 물었다. 카이슨 후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록 리간드는 표현 그대로 날아다니는 작자이니 전장의 어디에서 나타나도 이상할 것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가장 곤란한 놈이로군. 대뜸 나타나 지진을 일으키고 도망가 버리면 아군 입장에서는 큰일인데. 폐하는 그런 자를 상대로 어떤 대응책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하군.”

륭겐 후작의 말에 다들 공감했다.

그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쥬르덴 후작이 입을 열었다.

“나타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되겠지요.”

“나타날 수밖에 없게?”

륭겐 후작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쥬르덴 후작이 답했다.

“기책으로 단숨에 레던 왕성을 친다던지, 레던의 국왕을 핀치에 몰아넣는다던지, 아무튼 레던 왕국이 위기에 빠지면 카록 리간드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호오, 일리 있는 말이군.”

륭겐 후작은 물론 카이슨 후작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누구를 골라야 할지 고민이군.”

롬펠 대공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가장 명성 높은 건 아무래도 오래 전부터 명성을 날렸던 뮤트 공작이지. 하지만 전에 할슈타인 후작과 겨뤄서 비겼다는 이야기는 들었단 말이지. 할슈타인 후작 정도와 비겼다면 내 적수는 되지 못하겠군.”

누구도 그 말을 오만하다고 여길 수 없었다.

실제로 할슈타인 후작과 륭겐 후작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기세등등했던 롬펠 대공이었다. 어째서 전장에서 괴물 대공으로 불렸었는지 똑똑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견에 카이슨 후작이 반론을 했다.

“템플 오브 나이트를 잊으시면 곤란합니다, 대공 전하. 그 높고 견고한 성채를 지키는 뮤트 공작은 가장 꺾기 힘든 상대가 될 테니까요. 일대일로 승부하자고 도발해봐야 통할 상대도 아니고 말이죠.”

“그도 그렇군. 성문을 굳건히 닫고 지키는 싸움을 하면 지루해지겠어. 그럼 뮤트 공작은 패스다.”

“대공 전하, 저는 리간드 백작을 추천합니다. 위협적인 정령술을 펼치는 카록 리간드는 대공 전하의 훌륭한 적수가 될 겁니다.”

륭겐 후작이 대뜸 나서며 롬펠 대공에게 적극적으로 권했다. 가장 골치 아픈 상대를 떠넘기려는 술책이었다.

“호오, 그러냐?”

“예.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록 리간드를 꺾을 자가 이 대륙에 있을지 반신반의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롬펠 대공 전하라면 좋은 상대가 될 것도 같습니다.”

“호오, 그 말대로라면 대륙 최고를 가리는 대결이 되겠군.”

“바로 그겁니다!”

“근데 륭겐 꼬마, 너 좀 태도가 이상하다?”

“……뭐, 뭘 말씀이신지?”

“그렇게 대단한 상대면 왜 네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냐? 하물며 한 번 패배까지 안긴 상대이니 복수하겠다는 의지도 있을 텐데.”

“하, 하하, 저, 저는 실력의 부족을 깨닫고 승복했지요.”

“승복? 이 놈 이거 이상하네.”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처절히 박살이 난다 해도 절대 굽히지 않는 게 륭겐 후작이었다. 그걸 잘 아는 롬펠 대공은 의심스럽다는 얼굴이 되었다.

“얌마, 솔직히 불어봐. 카록 리간드와 겨뤘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에이 참, 하나뿐인 제자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당연히 못 믿는다. 솔직히 불어.”

이에 카이슨 후작이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시는 싸우기 싫다고 학을 떼셨지요, 륭겐 후작님.”

“그, 그거야 역시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느꼈다고나 할까…….”

“카록 리간드의 전투방식은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롬펠 대공 전하의 상대가 될 지도 모르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벼, 별 것 없는데…….”

당황한 륭겐 후작은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식은땀을 흘렸다.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롬펠 대공의 만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땅속에 기어들어가?”

“예. 아무래도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정령들과의 교감을 통해 싸움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넌 오러 블레이드로 땅이라도 팠냐?”

“그런 꼴사나운 짓거리를 어떻게 합니까?! 심지어 그럴 여유도 없었습니다. 엄청난 맹공이었단 말입니다. 반격도 불가능하니 꼼짝없이 난타당하기만 했지요.”

“그래서 그대로 두들겨 맞다가 항복했고?”

“……어쩔 수 없었지요. 마음 같아서는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뭐랄까. 카록 리간드는 진심이었습니다. 이 기회에 날 죽이겠다는 살의가 풍겨서 진짜로 목숨을 잃기 전에 항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넌 졌지만 나라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예, 대공 전하의 엄청난 괴력이라면 땅 파는 일이라도 어떻게든…….”

퍼억!

“커헉!”

륭겐 후작은 롬펠 대공의 무지막지한 펀치에 맞고 날아갔다.

“이런 못된 놈 같으니! 이래나 저래나 하나뿐인 제자라는 녀석이 스승을 궁지로 모냐? 땅속에 기어들어간 녀석을 무슨 수로 이겨?”

“누가 대공 전하 죽는 꼴 보고 싶겠습니까? 이길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버틸 수는 있잖습니까.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카록 리간드라도 전투 중에 그 막강한 화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녀석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만 버티면 스승님의 승리란 말입니다!”

“그래서, 힘이 빠지면 녀석은 말 그대로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며 달아나겠지?”

“예.”

“그리고 회복하면 다시 덤비겠군?”

“예…… 그야…….”

“다시 땅굴로 이동하거나 오러 액스로도 닿을 수 없는 높은 상공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해오고, 난 또 한 대도 못 때리고 죽어라 가드만 올리며 얻어터지겠군?”

“……뭐…….”

“이놈, 한 대 더 맞아라!”

“커헉, 잠깐 진정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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