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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27화 (327/529)

<-- 327 회: 13권 - 12장. 임박 -->

“운디네, 샐러맨더, 너희도 공격해!”

-응!

-알았다!

운디네는 워터 스피어를 난사했고, 샐러맨더는 불덩어리를 마구 쏘았다. 저 마법진에서 뭔가가 나오기 전에 끝장을 보고 싶었다.

세 정령이 합세한 총공세는 무시무시했다. 노인을 지키던 장년 사내와 흑마법사 한 명마저도 각각 워터 스피어와 어스 스피어에 얻어맞고 절명하였다.

이제 노인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법진에서 검은 기운이 쏟아지면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크흐흐, 이제 아무도 멈출 수 없다.”

노인은 탈진한 듯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뭘 소환했기에 저러지?

안 좋은 낌새를 느낀 나는 공격을 마법진에서 나오고 있는 괴생물체에게 집중시켰다.

콰콰콰콰쾅!

-크오오!

정령들의 공격에 난타 당하자 ‘놈’은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크하하! 보아라, 이게 바로 지옥의 뱀이다!”

노인이 광소를 터뜨린다.

그 말 대로였다.

놈은 뱀이었다. 머리 여섯 개가 달린 거대한 뱀.

몸통의 굵기는 용케 저 마법진에서 기어 나왔구나 싶을 정도로 굵직했다. 여섯 개의 머리는 하나같이 큼직한 송곳니를 지니고 있었다. 붉게 물든 여섯 쌍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정령들의 총공격을 용케 버티고, 지옥의 뱀은 마법진에서 완전히 나왔다.

길이는 50미터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었다.

노인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잘 들어라, 카록 리간드! 지옥의 뱀은 이제 죽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설령 나를 죽인다 해도 말이지!”

“그럼 죽이면 되지. 제법 흉악하게 생기긴 했지만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은걸.”

“흐흐흐. 나를 우습게보지 마라, 카록 리간드. 그저 죽이면 끝날 정도로 간단할 성 싶으냐. 지옥의 뱀을 죽이면 더 큰 재앙이 나타난다.”

“무슨 뜻이지?”

“직접 보여주는 편이 빠르겠군.”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옥의 뱀이 여섯 개의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놈의 입에서 녹색의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빠, 독이야!

운디네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멈춰!”

“흐흐흐, 레던 왕성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독을 품고 있는 놈이다. 죽인다 해도 독 연기를 계속 흘러나오지. 땅속에 파묻으면 그 일대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지옥의 땅으로 만든다. 이제 어쩔 테냐?”

그 말에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정말로 처치가 곤란한 놈을 소환한 흑마법사 노인네였다.

일단은 가족들부터 챙겨야겠다.

“노움, 저택에 있는 가족들부터 피신시키자.”

-응, 아빠.

노움은 20개의 어스 핸드를 만들었다. 어스 핸드들이 저택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는 줄리아, 시스, 지스, 그리고 그밖에도 집사 니벨 영감과 하인들, 병사들을 전부 태우고 저택 밖으로 멀리 피신시켰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옥의 뱀은 계속 독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운디네. 저 독을 정화시킬 수 있겠어?”

운디네는 곤란한 듯 고개를 저었다.

“크하하! 지옥의 뱀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재앙이다. 네놈 혼자서 어찌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

“물론 해결책이 딱 하나 있지. 바로 네놈 아들! 아들을 내게 넘겨라.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그저 간단한 부탁만 할 뿐이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광소에서 구역질 날 정도로 추악한 욕망이 느껴졌다.

“싫다면?”

“흐흐흐, 그럼 네 가족의 안위만 생각한 대가로 수십만 명의 죄 없는 레던 왕성 백성들이 죽겠지. 네 선택에 따라 이 나라의 수도가 지도에서 지워지느냐가 달렸다!”

“…….”

“흐흐흐, 레던의 현자여. 올곧고 고결하고 정의로운 네가 그런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 아들을 순순히 나에게 넘겨라.”

나는 침착하게 노인의 얼굴표정을 살폈다.

노인은 쉬지 않고 계속 떠들어댄다.

“다시 한 번 말해둔다만, 네 아들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그냥 작은 부탁을 할 뿐이지. 서로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좋은 말로 나를 구슬리려 하고 있다. 완전히 유리한 입장이었으면 협박만 했을 텐데, 타협을 하려 들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노인의 표정을 면밀히 살펴볼 뿐이었다. 저 노인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파악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 노인이 화를 냈다.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이러는 동안에도 독 연기는 계속 퍼져나간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네 주장에는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뭐라고?”

의아해하는 노인에게 내가 말했다.

“첫째, 난 그렇게 올곧고 고결한 사람이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 내 가족, 내 자식 하나가 더 소중한 게 사람 마음이거든. 아쉽게도 세상 사람들이 떠드는 것처럼 성인군자가 아니거든.”

“설마, 네놈……?”

“그리고 둘째, 이 세상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재앙이라고? 그럼 그렇게 대단한 놈을 소환할 정도로 네 능력이 대단한데, 어째서 너희는 숨어 살며 이딴 짓거리나 하고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일국의 수도를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데 말이야.”

“……?!”

놀라 눈을 부릅뜬 노인의 표정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감이 온다. 저건 뜨끔한 표정이야.

“저 흉측한 녀석에게도 뭔가 약점이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내가 알기로 독을 해독하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거든. 해독제를 복용하거나, 신성력으로 치유하거나, 면역력으로 독성을 이겨내거나, 아니면 불로 독을 태우거나.”

마지막 말에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좋아. 정답이다.

“이제 네 번째 방법을 한 번 시도해보려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씨익 웃으며 샐러맨더에게 말했다.

“샐러맨더, 저 독 연기를 불태워버려.”

-알았다!

샐러맨더는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불사조로 변신했다. 아, 오랜만에 본다. 레이몬드 후작을 홀랑 넘어가게 만들었던 피닉스 모드.

-크헤헤헤!

저 흑마법사 노인네보다 더 맛이 간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샐러맨더는 날갯짓하며 독 연기 속으로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치이익!

내 예상대로였다.

샐러맨더의 불길에 닿을 때마다 독 연기가 치이익거리며 녹아버렸다.

“비, 빌어먹을……!”

노인은 절망에 휩싸인 얼굴이 되었다.

나는 샐러맨더에게 정령친화력을 대량으로 집중시켰다.

“샐러맨더, 더 신나게 놀아! 아직 정령친화력은 충분하니까 사양할 것 없어!”

-좋다, 크헤헤헤!

어이구, 저 녀석. 정말 사양을 안 하는군.

샐러맨더는 내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정령친화력을 듬뿍듬뿍 빨아들였다.

샐러맨더가 변한 피닉스는 점점 크기가 커졌다. 거대한 불꽃의 날개가 하늘을 덮을 것만 같았다. 계속 크기가 커진 끝에, 지옥의 뱀에 맞먹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불꽃을 뿌리며 독 연기를 태우는 거대한 불새! 태고 신화의 한 장면이 저러할까?

눈 깜짝 할 사이에 독 연기를 태워 없앤 샐러맨더는 지옥의 뱀을 응시했다.

불타는 그 눈빛을 마주하자 지옥의 뱀은 겁을 먹었는지 움츠러들었다.

머리 여섯 달린 뱀을 노려보는 샐러맨더의 시선에는 순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분노 같은 게 아니었다.

보다 순수한 것.

그래, 열정이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순수한 열정, 불의 본질이었다.

“가라!”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샐러맨더는 지옥의 뱀을 두 날개로 덮쳤다.

화르르르르륵!

-끼에에에엑!

-크오오오!

-끄이이엑!

놈의 여섯 머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노인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던 지옥의 뱀은 샐러맨더의 뜨거운 불길에 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아앗―!

샐러맨더의 온몸에서 빛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저 빛! 저 빛을 나는 두 번이나 본 적이 있다!

-아빠, 진화야!

-……진화야.

노움과 운디네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였다.

샐러맨더가 지옥의 뱀을 불태워 죽이며 진화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태워서 잿더미로 만들며 자신은 진화하다니, 불의 정령다웠다. 샐러맨더답다.

지옥의 뱀은 완전히 불타 살점 하나 없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 진화를 마친 샐러맨더가 오연히 섰다.

나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샐러맨더는 열여덟 살 성인이 된 전생의 내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쟁의 내 아들이 장성한 모습을, 나는 한 번 죽고 다시 살아서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샐러맨더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악의 없는 아들의 웃음.

물론 아들이 아니다. 정령일 뿐이다.

……하지만 내 아들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나 역시 웃으며 샐러맨더를 바라보았다.

샐러맨더는 절망한 끝에 거의 초죽음이 된 노인을 가리켰다. ‘저거 태워도 돼?’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루오겔 백작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 앞에는 아무 감정도 없는 무표정을 한 젊고 초췌한 황제가 옥좌에 앉아 있었다.

루오겔 백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폐하…….”

카르스 황제는 분노하지 않았다. 경멸도,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음처럼 차갑고 덧없는 눈동자로 루오겔 백작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텅 빈 시선은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것처럼 루오겔 백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6서클 마도사에 마법병단의 단장이라는 높은 신분에 있는 루오겔 백작이지만, 이 황제 앞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카르스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왜 면목이 없지?”

“……예?”

“왜 면목이 없냐고 물었다.”

“그, 그것이…….”

루오겔 백작의 뇌리에 카르스 황제의 괴이한 성정에 대한 이야기가 스쳤다. 혹자는 그를 사람 마음을 읽는 악마라고 하였다.

‘거짓말을 하면 죽는다.’

루오겔 백작이 답했다.

“황실 재정을 소모하였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불손한 무리와 거래하여서 자칫 황실의 위엄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뻔했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레던 왕성에서 벌어진 흑마법사들의 출몰사건.

누구도 예상 못한 그 사태는 결국 카록 리간드가 전설로 회자될 정령술을 펼침으로서 종식되었다.

이에 혼트 제국이 개입했다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흑마법사들은 모두 죽었을 뿐더러, 살아 있다 해도 혼트 제국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답하였을 터였다.

물론 심증 상 혼트 황실이 암살을 지시하였다고 추측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대륙 모든 국가의 공적으로 꼽혀 어둠속에 숨어사는 흑마법사들이 무언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카록 리간드의 아들을 납치하려 들었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르스 황제는 그 사건이 루오겔 백작과 관련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루오겔 백작은 잡아떼지 않고 솔직하게 실토한 것이다.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죽고 싶은가?”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루오겔 백작은 떨며 입을 열었다.

“폐하…….”

“말해봐라.”

“폐하. 보잘 것 없는 몸이옵니다만, 허망하게 죽기에는 제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재주가 아깝습니다. 부,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셔서 폐하와 황실을 위하여 제 재주를 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카르스 황제는 그런 루오겔 백작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루오겔 백작은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짐의 생각도 그러하다. 살아라.”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루오겔 백작은 이마로 바닥을 찧으며 감사를 표했다.

“더 이상의 정령술 대책 연구는 의미가 없겠군. 루오겔 백작, 너는 그 흑마법사들에게서 정령술에 대응하는 흑마법을 알아내어서 마법으로 고쳐 쓸 수 있게 하여라. 연구는 그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예, 폐하!”

루오겔 백작이 떠난 뒤, 카르스 황제는 턱을 괴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림자처럼 황제를 따라다니는 할슈타인 백작은 등 뒤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후, 카르스 황제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슬슬 해야겠군.”

“무엇을 말입니까?”

카르스 황제는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할슈타인 백작이 한 손으로 조심스레 등을 떠받쳐 일어나는 걸 도왔다.

망토를 갈무리하며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전쟁.”

-14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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