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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임박
상급 정령인 운디네가 지키고 있는 저택을 침입하는 괴한 따위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운디네가 언제나 저택에 머물며 가족을 돌보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그럼에도 침입했다면 정령에 대한 대책이 있다는 뜻이었다.
왜 나를 노리는 것일까?
그건 우스운 질문이다.
난 이 나라의 재상이며 상급 정령사다. 또한 레던 왕국에서 육제후 다음으로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나를 적대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륭겐 후작마저 꺾은 나를 직접 음해하는 간 큰 인간은 없을 터.
즉,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저택을 침입했다면 그 대상은 내 가족일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샐러맨더도 저택에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 지스가 살짝 열이 나는 바람에 온 집안이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물론 재빨리 운디네로 하여금 치유의 힘을 마구 퍼붓고도 모자라 힐링포션까지 먹였다. 완쾌되고도 모자라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라 감기가 걱정되긴 했다. 그래서 샐러맨더로 하여금 지스의 몸에 깃들어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하도록 시켰던 것이다. 시끄러운 녀석이 옆에 없어서 나도 좋고 말이다.
“노움, 더 빨리 날자!”
-응!
나를 태운 어스 핸드가 급속도로 비행했다. 순식간에 저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이르자 운디네와 감각이 연결되었다.
……뭐지 이게?
나는 깜짝 놀랐다.
운디네와 공유된 감각으로 보는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11인의 괴한이 하늘을 날며 괴이쩍은 마법을 펼쳐 운디네와 샐러맨더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법을 펼칠 때마다 음침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저 에너지는 마나가 아니었다.
설마 흑마력?
흑마법사?!
“정령들을 속박하는 게 우선이다!”
깡마르고 재수 없게 생긴 노인네가 소리치자 다른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이상한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시커먼 흑마력이 기다란 로프가 되어서 정령들을 덮쳤다.
운디네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흑마력 로프를 피하거나 물의 창으로 격추시켰다.
그러나 샐러맨더는 로프에 붙잡히고 말았다.
-크아아! 놔라, 놔! 땔감들! 숯덩이들!
세 가닥의 로프에 꽁꽁 묶인 샐러맨더는 화를 내며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구 발버둥을 쳤다.
로프에 묶이자 샐러맨더는 자신의 능력을 방출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정령을 속박하는 흑마법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운디네는 용케 흑마력 로프를 피하고 있었지만 위태로워보였다.
노인이 소리쳤다.
“어서 운디네도 잡아라! 정령들을 제압하고 카록 리간드의 자식을 손에 넣어야 한다!”
……뭐?
이 자식들이 지금 뭐랬어? 내 아들 지스를 손에 넣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그럼 죽여줘야지!
“손님맞이는 화끈하게 해줘야지. 노움, 어스 스피어 50발!”
-응!
노움이 능력을 발하자, 대지에서 50개의 흙덩이가 하늘로 떠올랐다. 흙덩이는 적을 꿰뚫는 날카로운 창으로 변했다.
나는 어스 스피어 50발과 함께 노도처럼 날아들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전부 죽었다고 복창해라―!”
그제야 흑마법사들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날아오는 50발의 어스 스피어도 보았다. 놈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저건……!”
“카록 리간드!”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노인도 사색이 되었다.
“맙소사, 벌써?!”
“쏴!”
내 호령에 어스 스피어 50발이 일제히 놈들에게 쏘아졌다.
대지의 창들이 쏟아지는 모습은 일대장관이었다.
콰아앙! 콰앙! 콰지직! 우지끈!
“끄아아악!”
“마, 막아야…… 커억!”
“괴물 같은!”
“살려줘!”
흑마법사들은 어스 스피어에 맞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흑마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어 막기도 했지만, 두 발 세 발 계속 난사하여 방어막과 함께 통째로 박살내버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흑마법사들의 숫자가 6인으로 줄어들었다.
흠,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군. 의외로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두 배쯤 더 화끈하게 해줘야겠다.
“노움, 100발.”
-응!
다시금 무수히 많은 흙덩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꿈틀거리며 흙덩이들은 창의 모양으로 변했다.
무려 100개의 창이 하늘을 수놓았다.
내 말만 떨어지면 비처럼 쏟아질 터였다.
“카록 리간드…… 이 정도였나.”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질린 어조로 한탄했다. 휘하의 다른 흑마법사들 또한 공포에 질려서 우왕좌왕했다.
그 틈에 운디네와 속박에 풀린 샐러맨더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
운디네가 내 품에 안겼다. 어휴, 이 귀여운 것. 날 위해 지스를 지켜주었으니 더욱 예쁘고 고마웠다.
“그래그래. 수고 많았어, 운디네. 이제 아빠 왔으니까 괜찮아.”
-일찍 좀 다녀라!
내 어깨에 올라앉은 샐러맨더가 화를 냈다. 나는 웃었다.
“그래, 너도 고마워.”
-헹.
정령들과 짧게 재회를 나눈 뒤, 나는 다시 흑마법사 일당을 바라보았다.
“유언 남길 시간은 이제 충분히 준 것 같은데. 이제 죽여도 되지?”
내 물음에 노인은 이를 갈았다.
“놈,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게 유언이야?”
내 조롱에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노인은 흑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형제들이여, 시간을 끌어라! 최후의 수단이다!”
“옛!”
흑마법사들은 결사적인 표정으로 노인을 중심으로 모였다.
노인은 양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또 뭔가를 할 모양이었다.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저택에는 줄리아도 시스도 지스도 있으니 쓸데없이 모험 할 필요는 없지.
“노움, 날려버려.”
-응!
100발의 어스 스피어가 일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막아라!”
“마스터를 지켜!”
흑마법사들이 방어막을 두세 겹씩 펼쳤다. 그 위로 어스 스피어가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꽈릉!
“크윽!”
어스 스피어가 타격할 때마다 흑마법사들은 신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끙끙대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콰콰콰콰쾅! 콰쾅! 꽈릉!
“아아악!”
“죽어도 막아!”
피나 나도록 이를 악물고 버티는 흑마법사들.
그 틈에 노인은 수인을 맺은 채 주문을 외었다.
“빛이 저문 자리, 이미 열기를 잊은 지 오래인 땅, 한 마리의 짐승이 여기에 났노라.”
흑마력이 꿈틀거리며 피어나와 노인이 맺은 수인에 뭉쳤다. 노인은 계속 수인을 바꿨고, 그럴 때마다 흑마력도 꿀렁꿀렁 움직였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불길해 보이는 흑마법. 저래서 흑마법사를 전 대륙의 공적인 모양이다.
어스 스피어는 계속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흑마법사들은 거의 온몸을 던지듯이 이를 막아내었다.
그러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 사람이 피를 토하며 추락했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이 어스 스피어에 직격당해 하반신이 날아가 버렸다.
“끄으으! 마스터…… 부디 대업을……!”
대업 같은 소리 하네. 남에 귀한 집 자식 납치하는 게 니들 대업이냐?
또 한 명이 죽고서 이제 노인네까지 세 사람만 남았다.
노인의 주문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손도 발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여섯 개의 머리, 독 맺힌 송곳니, 세상을 휘감는 기다란 몸통을 가졌으니, 그 누가 이 짐승을 당하겠느냐 한탄하였네라!”
흑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노인이 소리쳤다.
“오너라! 지옥의 뱀!”
파아아앗―!
수인에 맺혀 있던 흑마력이 한꺼번에 방출되면서, 허공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직경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운디네, 샐러맨더, 너희도 공격해!”
-응!
-알았다!
운디네는 워터 스피어를 난사했고, 샐러맨더는 불덩어리를 마구 쏘았다. 저 마법진에서 뭔가가 나오기 전에 끝장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