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18화 (318/529)

<-- 318 회: 13권 - 8장. 새로운 입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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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듀론 후작은 다시 레던 왕성에 불려오게 되었다. 은퇴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낚시를 하며 책을 읽다가 때때로 글을 쓰고……. 한가롭고 보람도 있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듀론 후작은 흘끔 나를 노려봤다. 흠칫한 나는 딴청을 피웠다.

에릭 국왕은 웃었다.

“하핫, 너무 그러지 마시오. 재상은 좋은 의견을 냈을 뿐이고 결정한 것은 짐이오. 연륜이 깊으면서도 지혜롭고 누구나 인정할 만큼 명망 높은 인물로 듀론 후작 그대만한 사람이 없었소.”

나도 거들었다.

“후작 각하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후학 양성의 뜻에 감명 받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왕립학교의 교장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때때로 폐하의 자문역까지 하실 분으로는 후작 각하밖에 없었습니다.”

“듀론 후작 각하의 명성이라면 영주들이 믿고 자제들을 입학시킬 테지요.”

루이까지 동조하자 듀론 후작은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군요. 한가한 노년은 제 팔자가 아닌 모양입니다, 폐하.”

“하하.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많지 않도록 유능한 인물을 붙여줄 테니 너무 염려 마시오.”

그렇게 듀론 후작은 다시 레던 왕성으로 돌아왔다.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정계에 나타난 듀론 후작의 존재에 레던 왕성의 사교계에 여러 이야기가 나돌았다.

일각에서는 내가 직권 남용으로 휴가를 즐기고 일은 하지 않아서 해고당하고 듀론 후작이 복귀하는 거라는 말도 있었다.

……신빙성 있군.

현실은 내가 쫓겨나고 싶어도 에릭 국왕의 허락이 없으면 떠날 수 없지만.

그보다 내가 직권을 이용해 특별유급휴가를 받은 사실은 언제 소문이 난 거지? 에바 얘가 입이 좀 싼가보네. 주의해야지.

아무튼 다시 복귀하게 된 영감님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남은 쓰론 블루 한 병을 들고 듀론 후작을 찾아갔다.

듀론 후작은 왕궁 내에 마련된 숙소에서 살고 있었다. 주요 인물을 위한 초호화숙소였기 때문에 듀론 후작이 머물기에 부족함 없는 곳이었다.

쓰론 블루를 본 듀론 후작은 그나마 수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군.”

“하하하. 이래봬도 한 병 밖에 안 남은 귀중한 걸 갖고 온 거니 잘 좀 봐주십시오, 후작 각하.”

“아무튼 들어오게.”

보름달이 휘영청 빛나는 밤이었다. 테라스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쓰론 블루를 한 잔씩 주고받으니 운치가 그만이었다.

원채 명성 높은 명주(名酒)에 운디네가 솜씨를 발휘한 탓에 쓰론 블루는 맛이 대단했다.

혀에 퍼지는 깊은 맛과 향기에 우리는 눈을 감고 감탄하였다. 이게 마지막 한 병이라니. 린델 백작가의 와인 저장고를 한 번 더 털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나저나, 이런 시기에 왕립학교를 설립하겠다니 자네답다고 해야 할까, 정말 놀랐네.”

“그렇게 엉뚱한가요?”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왕실군 병력을 증원한다든지 방어시설을 확충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네는 혼트 제국의 침공을 대비해서 왕립학교를 세운다니, 허허헛.”

듀론 후작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로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하네. 나도 자네 의견에 찬성이야.”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네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네.”

“예?”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듀론 후작이 말했다.

“명문가는 자식을 가르치는 자신들만의 교육과정이 존재하네. 비전처럼 대대로 이어지며 개량을 거듭해 발전한 교육법으로 지속적으로 가문을 이끌 인재를 배출하지.”

맞는 말이다. 저 란즈헬 백작가의 제이슨만 봐도 성격은 모났어도 판단력만큼은 범용하지 않았다.

“유서 깊은 명문가가 그만큼 오랜 세월 간 몰락하지 않고 존속되어 온 것은 후계자 교육에 성공해서 가문을 망치지 않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세. 때문에 자기 가문의 교육법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지. 왕립학교가 탄생한다 해도 자기 가문의 교육법보다 자식들을 더 잘 가르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걸세. 자네는 이 점을 염두에 둔 겐가?”

“으음……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 점은 생각 못했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내가 왜 저 생각을 못했을까?

이유는 하나.

쿤트 가문은 그런 명문가가 아니었거든!

오래 되기야 했지. 다만 건드려봐야 별로 건질 것도 없는 촌구석의 가문이라 오래 명맥을 유지한 것뿐이다.

가문의 검술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경지를 이룩한 아버지 덕분. 딱히 가문의 노하우라 할 만한 자식 육성법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전 보잘 것 없는 가문 출신이라 미처 몰랐네요, 헤헤’ 라고 대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민망함을 애써 감췄다.

“흠흠, 지적하신 대로네요. 그런데 그 점을 아시면서도 반대하지 않고 교장 직을 맡으신 건,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으시기 때문이겠죠?”

“해결책이라. 사실 특별할 건 없네.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

듀론 후작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자네, 왕가의 교육법을 아나?”

“견식이 짧아 잘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게 아니네. 왕가의 교육법의 핵심은 딱 두 가지일세. 첫째는 각 분야의 최고를 스승으로 초빙하는 것.”

“과연. 그럼 둘째는요?”

“배운 즉시 실습해보는 것. 적어도 배운 뒤에 1년이 지나기 전에 직접 현장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지. 그게 왕가의 교육법일세.”

실습이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언가가 번뜩이며 뇌리를 스쳤다.

“실습이라면 왕실 관청 업무만큼 좋은 게 없겠죠?”

“이를 말인가. 정치, 외교, 행정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지.”

그렇다면 왕립학교의 교육과정 중 9개월은 이론을 학습하고, 3개월은 왕실 관청의 임시관리로서 업무를 직접 체험하게 하면 어떨까?

그럼 왕실 관청 입장에서는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수 있고, 학생은 실무 위주의 살아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고작 3개월만 임시로 일할 햇병아리 같은 학생들이 쓸 만하겠느냐는, 기본적인 9급 말단관리의 업무라면 2주 정도만 가르쳐도 곧장 써먹을 수 있다.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써먹어도 왕실의 인력난이 해소된다.

게다가 그중에서 싹이 보이는 인재를 발견하면 왕실에서 먼저 등용 제의를 할 수 있고 말이지.

학생들은 왕실 관리를 체험하면서 왕실의 입장에서 정국(政局)을 보게 된다.

이는 각자 가문만 생각하던 귀족들이 왕실의 입장을 어느 정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이 나라가 화합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이러한 내 생각을 듀론 후작에게 설명해주었다.

듀론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각 분야 최고의 교사진만 구성하면 되겠군요.”

“레던 왕국 사람만 고를 필요는 없네.”

“물론이죠.”

군사 방면의 전문가는 혼트 제국 출신, 정치 권위자는 오리엔 왕국 출신, 경제 전문가는 바덴 강 유역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이름 난 명사라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초빙할 생각이다.

내 제안 때문에 은퇴를 번복하고 초대 교장으로 내정된 듀론 후작이다. 그의 뜻을 최대한 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내 비록 은퇴는 했지만 친인들로부터 접하는 소식통은 있는데, 혼트 제국에 대한 별다른 동향은 들을 수가 없더군. 그 야심만만한 카르스 황제는 어째서 잠잠한 겐가?”

“글쎄요. 겉보기에는 잠잠한 건 사실이지만, 아마 전쟁을 대비해서 이것저것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에반 테일러 남작을 시켜서 첩보망을 집중 가동 중입니다.”

“그저 예감이네만, 그가 침묵을 깨고 일어서면 큰 전란이 벌어질 것 같군.”

“동감입니다.”

“자네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성과를 얻기를 바랄 수밖에.”

그 말에 나는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씨익 웃어보였다.

“그런 건 이제 제게 맡기시면 됩니다.”

이제 이 짐은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듀론 후작에게 우려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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