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17화 (317/529)

<-- 317 회: 13권 - 8장. 새로운 입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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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제론, 헤이젤 듀론 자작, 그리고 나. 네 사람이 에릭 국왕의 집무실에 모였다.

에릭 국왕이 내게 물었다.

“할 말이 있다고?”

“예, 폐하.”

나는 에바가 며칠에 걸쳐 조사한 결과가 적힌 보고서를 꺼내 읽었다.

“레던 왕국 내에 영지를 가진 귀족의 자제 중 14세 이상 18세 25세 이하의 청년의 숫자는 총 513명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렇게 많던가?”

대부분 처첩을 몇 명씩 끼고 사니까. 자식도 그만큼 많은 게 당연하다.

유명무실한 몰락귀족이나 영지가 없는 가문을 전부 제외한 숫자가 이 정도였다. 한마디로 이 513명은 레던 왕국의 미래를 짊어진 상위 1%의 엘리트들이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알았군. 그런데 이게 재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혼트 제국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대응책이 이 513명과 관련 있습니다.”

“호오? 말해보아라.”

모두들 흥미로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재정 긴축에 성공한 이래로 현재 왕실에는 풍부한 여유 자금이 쌓여 있습니다. 문제는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혼트 제국의 침공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지 이겠죠.”

내 말에 제론이 거들었다.

“왕실군 군단장들 사이에서는 군단 하나를 더 편성하자는 건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혼트 제국의 침공에 대비한 가장 평범한 대비책이죠.”

“제론,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 물음에 제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은 재상 각하의 의견을 듣고 싶긴 합니다만, 저라면 레던 왕성의 성벽 및 방어 시설을 보강하고 싶습니다. 혼트 제국군이 침공해온다면 뮤트 공작 전하께서 지키시는 ‘템플 오브 나이트’를 돌파하고 곧바로 레던 왕성으로 진격할 테니까요.”

“그렇군. 뮤트 공작이 사력을 다해 시간을 벌어줄 테지만 혼트 제국의 대군을 막아내기는 무리일 테니까.”

에릭 국왕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제론다운 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엔의 마지막 장벽’이라 불렸던 전생 시절, 제론은 혼트 제국군과 절대로 야전(野戰)을 벌이지 않는 방어일변도로 나라를 지켜냈다. ‘카르스 황제를 상대로 야전에서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이 나라에 없습니다.’가 당시 제론의 주장이었다.

“이제 그만 뜸들이고 시원하게 말해보아라. 재상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에릭 국왕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왕립학교의 설립입니다.”

“뭐라고?”

“예?”

“학교?”

에릭 국왕, 제론, 루이, 헤이젤의 얼굴에 일제히 뜬금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이다. 혼트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왕립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니 이상하겠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은 인정합니다만, 그것이 당장 혼트 제국이 침략할 위협에 대한 대책이 되겠습니까?”

루이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적 목적이 아니니까.”

물론 엘리트를 양성해서 만성적인 인재부족을 타계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 인재가 1,2년 만에 키워질 까보냐? 보다 오랜 세월이 걸릴 게 자명하다.

하지만 내가 왕립학교를 당장 설립하려는 의도는 다른 데에 있었다.

나는 에릭 국왕에게 말했다.

“폐하, 왕실군 일개 군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戰時)에 국내의 영주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도 경험해보셨듯이 말입니다.”

“으음, 확실히 그렇지.”

왕위를 건 내전에서 에릭 국왕은 뼈저리게 알았을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을 참전시켜 2왕자 브란도의 반란을 물리칠 연합군을 형성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 결과 내전은 빠르게 종식시키지 못했고, 오리엔 왕국과 육제후까지 개입했다.

“그 당시 폐하를 따르는 영주들이 발 빠르게 군대를 파병해주었더라면 2왕자의 반란세력을 빠르게 진압하고 혼란을 줄였을 겁니다. 레던 왕실의 힘도 크게 소진될 일도 없었겠지요.”

“그러지 못하였기에 짐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던가.”

잃은 왕권을 다시 회복하기까지 에릭 국왕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문제는 혼트 제국의 침공 시 같은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하여도 그것을 자각하는 것은 폐하와 우리들 뿐, 영주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해 즉각 대응하지 않고 망설입니다. 이는 나라 전체를 보살피는 폐하와 달리 그들은 자기 영지만을 바라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지의 안위를 전제로 생각하므로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는 겁니다.”

“학교가 이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거냐?”

“예. 영주의 자제들이 모여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재양성기관이 레던 왕성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지의 안위만 생각하던 영주들의 사고방식이 자기 자식이 있는 레던 왕성까지 확장됩니다.”

“혼트 제국군이 레던 왕성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 위기의식을 영주들도 함께 느끼겠군.”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를 이끌 젊은이들에게 국가적인 견지(見地)에서 정국(政局)을 살필 줄 아는 넓은 사고력을 주고 싶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인재를 양성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좁은 사고방식을 바꿔놓는 것은 1년, 아니 반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계속 설명했다.

“정치의 중심인 레던 왕성에서 현실적인 국제정치를 배운다면 학생들은 나라의 위기를 함께 걱정하게 됩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가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영주들을 규합시키는 일이 더욱 빨라지겠군.”

“그렇습니다. 아들들의 생각이 넓어지면 그 아비인 영주들 또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영주들의 힘을 보다 빠르게 집결시킬 수만 있다면, 왕실군 일개 군단보다 훨씬 큰 가치를 얻게 됩니다. 이 점이 제가 왕립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목적입니다.”

루이와 제론, 헤이젤은 감탄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에릭 국왕도 흥미롭게 빛나는 눈으로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그는 이미 내 의견을 받아들인 표정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첫째로 엘리트들을 양성해서 만성적인 인재 부족 문제를 타개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넓게 사고할 줄 아는 인재들이라면 보다 큰일을 할 수 있는 왕실에 입관하려 할 것입니다.”

“둘째는?”

“폐하의 또 다른 브레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왕립학교는 국가적인 논제(論題)를 연구하는 지혜의 보고로 그 자체로 폐하의 훌륭한 자문기구가 됩니다. 왕립학교의 젊은 인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폐하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권력분산.

생각해보자.

만약 나를 포함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헛소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에릭 국왕이라도 그 말을 믿게 된다. 그 결과 실정(失政)을 하게 되고 민심을 잃어 왕권약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 왕립학교에서 에릭 국왕에게 올바른 진언을 한다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을 수 있다.

한마디로 재상과 최고위 관리들의 권력을 분산시켜서 왕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지혜롭고 연륜 깊은 인물이 왕립학교의 교장이 되어 폐하의 조언자 역할을 맡는다면, 능히 이 목적이 달성될 겁니다.”

내 말이 끝났을 때,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내가 주장한 왕립학교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것이리라.

잠시 후, 에릭 국왕이 말했다.

“그대는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구나. 다들 재상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찬성입니다.”

제론이 말했다.

“재상 각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루이도 찬성했다.

“훌륭한 식견입니다.”

듀론 후작의 차남, 헤이젤 듀론 자작도 찬성했다.

에릭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지혜롭고 연륜 깊은 인물이라. 짐은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재상도 같은 생각인가?”

나 역시 씨익 웃었다.

“예, 폐하.”

에릭 국왕은 헤이젤에게 말했다.

“그대의 부친에게 연락을 넣어 이곳에 오게 하여라. 참고로 어명이니 거절은 불가하다.”

“예, 폐하.”

헤이젤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듀론 후작님.

영감님은 아마 평생 은퇴생활을 못하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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