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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카록의 부하들
파티가 성대하게 막을 내린 후, 오랜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만찬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가주로 취임한 아서 형님은 아들까지 갖게 되어서 그야말로 겹경사, 내내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아서야. 분명히 말해두겠지만, 네 아들은 내가 가르치겠다. 전통 기사가문인 쿤트 백작가의 직계 후계자가 될 아이이니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가장 웃어른이라 상석에 앉은 아버지의 말에 아서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찬성입니다. 다만 저 또한 아들 이름을 짓는 문제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쯧, 마음대로 하여라. 또 이름 갖고 싸우다간 쿤트 가문 사람의 이름은 왕실로부터 하사받는 전통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에릭 국왕에게 이름을 하사 받은 장본인, 엘레네는 노움의 무릎에 앉은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노움이 어스 핸드로 포크와 나이프를 놀려 음식을 갖다 주면 ‘아앙’하고 뱁새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는 식이었다.
아, 귀엽다.
벌써 세 살이라니. 애들은 정말 빨리 큰단 말이야.
엘레네는 노움과 함께 있어서 무척 즐거워했다. 노움 또한 정령친화력을 가진 엘레네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날 보자마자 대뜸 ‘삼촌! 정령, 정령!’하던 엘레네였다. 정령친화력을 타고난 아이답게 정령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엘레네가 말했다.
“삼촌!”
“응?”
“나 정령 하나만 주면 안 돼?”
“……응?”
엘레네는 노움을 와락 끌어안았다.
“노움 내꺼 할래. 노움 데려가지 마, 응?”
“엘레네, 노움은 나와 떨어질 수가 없는 사이라서 불가능하단다.”
“그럼 삼촌도 가지 마.”
“삼촌도 그러고 싶은데 출근을 해야 해요.”
“싫어! 가지 마!”
엘레네는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난 곤란한 표정으로 아서 형님을 쳐다보았다.
아서 형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 외면했다. 아서 형님도 떼쓰는 엘레네에게 무척 약한 모양이었다. 저 딸 바보 같으니!
다행히 형수 레이라가 나섰다.
“엘레네, 떼쓰면 안 된다고 했지?”
“으아앙!”
커헉.
엘레네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건만, 정령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정령술을 익혔다면 좋았을 것을…….”
바보 아버지까지도 침음하며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말을 안 듣자, 레이라는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리간드 백작님.”
이젠 새 가문의 주인이 된 나였기 때문에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말씀하세요, 형수님.”
“혹시 우리 엘레네에게 정령술을 가르쳐주실 수 없으신가요?”
“물론 가르쳐줄 수야 있죠. 정령친화력도 상당히 타고난 엘레네이니 무리 없이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가르쳐주세요. 얘가 평소에도 삼촌을 언제 오냐고 묻곤 하거든요. 어지간히도 정령이 좋은 모양이에요.”
“당연히 엘레네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가르쳐줄 용의가 있죠. 하지만 아직 세 살밖에 안 됐는데 과연 정령술에 입문하기에 적절한 시기일지 그게 고민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아서 형님이 물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정령을 소환하면 정령친화력이 소모됩니다. 제가 하급 정령사였던 시절엔 3시간쯤 소환을 유지하는 게 한계였죠. 정령친화력은 일종의 정신 에너지라 소모되면 피로해져서 잠들게 되죠. 이제 제가 뭘 걱정하는지 감이 잡히시죠?”
아서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네가 정령과 노느라 정신 팔려 절제 없이 정령친화력을 써버릴 까봐 걱정하는구나.”
“예. 정령친화력을 모두 소모하면 그날 하루는 푹 자야 하죠. 많은 걸 배우고 학습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정령과 노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적당히 조절하면 되지 않나요?”
레이라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령사와 정령의 관계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가 없어요. 영혼을 공유하는 둘 사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애당초 정령사들 대부분이 사회적인 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죠. 정령과 자신의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오고 싶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럼 정령술을 가르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런 재능이 있는데 아까워요.”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분명히 알게 되면 가르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벌써부터 정령술을 배우면 정령에게 정신 팔려 다른 친구를 사귀려고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좋겠구나.”
아서 형님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정령!”
어느새 울음을 그친 엘레네의 말에 아서 형님과 레이라가 동시에 말했다.
“안 돼!”
“흐아앙!”
덕분에 만찬은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끝났다.
오랜만에 모인 쿤트 가문의 남자들, 아버지와 우리 삼형제는 야외에서 맥주를 마셨다.
“릭 형님, 왕실특수군은 제대로 통솔하고 있는 거죠?”
“잘 하고 있겠지.”
커다란 맥주잔을 벌컥벌컥 마시며 남 일처럼 무책임하게 대꾸하는 릭 형님.
“사령관은 형님이잖아요. 역시나 부사령관인 바우텔 자작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고 있군요.”
“전에도 말 안 했나? 서로 잘 하는 역할을 맡는 게 내 모토라고.”
“덕분에 그 사람한테서 은퇴를 원한다는 진정서가 몇 통이나 오는 줄 아세요? 듀론 후작 각하가 은퇴하신 뒤로 바우텔 자작의 은퇴욕구가 더 커졌습니다.”
“잉? 안 돼, 그 사람 은퇴하면 난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슬슬 정신 차리시고 그 사람 없어도 될 정도의 지휘능력을 쌓으세요.”
“아무튼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바우텔 자작을 은퇴시키면 안 된다?”
“에휴, 정말 전쟁 나면 어쩌려고…….”
답이 안 나오는 릭 형님의 태도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이를 본 아서 형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염려 말거라. 저래 봬도 자기 할 일은 하는 녀석이니. 왕실특수군도 리간드 영지와 군사협정을 맺고 우리 쿤트 가문과 함께 합동훈련을 추진 중인데, 내가 보기에 적어도 바덴 강 유역 루트로 침공하는 혼트 제국군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몰랐느냐?”
이어지는 아서 형님의 설명에 나는 깜짝 놀랐다.
리간드 영지와 쿤트 가문, 릭 형님의 왕실특수군 그리고 콘돌기병대가 협력체계를 형성하여 유사시 혼트 제국군의 침공을 격퇴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저만 전혀 몰랐네요?”
“어차피 영지 업무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영주대리를 앉혀놓은 게 아니냐. 내가 보기에 베일이라는 네 영주대리는 상당한 인물인 것 같더구나. 전략대로 된다면 바덴 강에서 북상하는 혼트 제국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다. 아, 물론 콘돌 기병대의 참여 여부는 네 동의가 있어야하지만.”
“저야 당연히 찬성이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대단한 전략을 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산적단 수괴에 불과했던 베일이 이 정도였다니. 스카우트한 내가 더 놀랐다.
그저 영지 관리하는 일쯤은 하겠지 싶어서 영주대리로 임명했을 뿐이었다. 그 이상의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일은 영지 업무 수준을 넘어, 내 유일한 걱정거리인 혼트 제국군 침공 위협에 대한 대응책 하나를 수립했다. 이건 정말인지, 횡재한 느낌이다.
아서 형님은 놀라워하는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재상으로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 짊을 혼자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바덴 강 쪽으로 침공하는 혼트 제국군은 염려 말고 우리에게 맡겨둬라.”
그 말에 릭 형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엇보다도 최강의 천재 오러 마스터인 이 몸이 있다. 뭐가 무섭냐?”
“누가 들으면 정말 제깟 놈이 최강인 줄 알겠군.”
묵묵히 맥주를 마시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울컥한 릭 형님과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아서 형님과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세삼 깨닫는다.
확실히 가족이 있어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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