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10화 (310/529)

<-- 310 회: 13권 - 5장. 카록 상단 -->

“실은 그 베일 경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소. 혼트 제국의 침략을 대비하여 영지 간의 군사협약을 맺자는 것인데,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고민하던 차였소.”

“군사협약을 말입니까?”

닐 페리도 깜짝 놀랐다.

“정확히는 바덴 강 유역을 통해 혼트 제국이 침공했을 시, 수도인 레던 왕성까지 북상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할 전략을 리간드 영주대리는 꿈꾸고 있소.”

“허,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 쿤트 가문과 릭이 이끌고 있는 왕실특수군, 콘돌기병대까지 포함한 군사협정이었소. 그만한 전력이 리간드 영지의 험한 산세를 끼고 방어하면 수십만 병력이 공격해도 방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소.”

“범상한 사내가 아니로군요.”

닐 페리는 놀라다 못해 신선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귀족 출신도 아니고, 큰 영지의 통치자도 아니고, 그저 영주대리일 뿐인 젊은 남자가 그런 큰 스케일의 밑그림을 그린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충분한 식견과 능력은 있는지 알고 싶은 거요.”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리간드 백작 각하께서는 산적 수괴에 불과했던 그를 직접 영입했고 영주대리의 지위까지 주었습니다. 과거에 문제가 있었던 자를 그렇게까지 중용한 것을 보면, 그만한 재능이 있는 자가 아닐지 싶습니다.”

“음……. 하기야, 그 녀석이 여태껏 인사 등용에서 실패한 적은 없었지. 페리 상단주 그대도 카록이 성공적으로 등용한 케이스 아니오.”

“허헛, 과찬의 말씀을. 저 같은 사람이야 어디에나 있잖습니까.”

닐 페리는 그렇게 겸양을 했지만, 아서는 생각이 달랐다.

신중한 성격 때문인지, 조직 운영의 안정성을 가장 중시 여기는 아서는 최고관리자로서의 닐 페리의 카리스마가 부러웠다.

‘정말 카록 녀석이 재상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패트릭 콘돌이나 에반 테일러, 닐 페리 상단주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 등용한 베일도 비범한 인물이니.’

앞으로 영지를 다스려나가야 할 아서의 입장에서는 막내 동생의 용인술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특히 가장 부럽고 탐나는 인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닐 페리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쿤트 가문은 관리직 분야의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다. 무인이라면 리처드 벅이나 하딘 등 강한 기사가 많으나, 영지 관리에 있어서는 아서의 업무 부담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단주.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부탁이 있소.”

“뭐든 말씀해보시지요.”

“혹시 상단의 인물 중에 유능한 자가 있으면 쿤트 가문에 파견해주시지 않겠소? 철광석 광산 관리 업무에 투입하고 싶소만.”

그러자 닐 페리의 얼굴도 굳었다.

“……대공자님. 자금을 융통해달라고 하시면 얼마든지 해드립니다만, 사람은 조금 무리입니다. 제가 왜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하는지 조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철광석 광산 지분의 50%는 쿤트 가문의 소유요. 그 말을 달리 하면 나머지 절반은 카록 상단 몫이란 것이오. 그러니 관리 책임 역시 양측이 분담하는 것이 옳지 않소?”

“지금껏 광산을 잘 운영해온 쿤트 가문의 관리 능력에 저희는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저희는 이에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관리 비용이라면 광산의 이익금 배분 시 적용되고 있지요.”

“무한한 신뢰대신 사람 좀 빌려주시오. 나 또한 4시간의 수면과 식사 외에는 업무만 보는 사람이라 업무량에 있어 상단주에게 밀리지 않을 거요. 하물며 오러 엑스퍼트인 상단주만큼 튼튼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오.”

“대신 더욱 값진 젊음이 있으시지요. 게다가 검술은 그만두셨어도 오러 컨트롤은 여전히 해 오신 것 같은데, 그 정도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목에 걸고 계신 목걸이만 봐도 저는 대공자님의 건강에 대해 안심하곤 합니다.”

“끄응.”

끝내 사람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닐 페리의 고집에 아서는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닐 페리의 말대로 아서는 카록에게 선물 받은 활력증강목걸이, 즉 일명 ‘정력의 목걸이’ 덕분에 엄청난 업무량을 매일 너끈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게 없었으면 정말로 요절했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인력난은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쿤트 가문의 경우, 지금까지 농경 중심의 작은 영지를 소유한 가문일 뿐이었다. 그러던 가문이 갑자기 몇 배의 영지와 영지민을 얻고, 철광석 광산 등의 사업에 투자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면서 관리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촌구석에 불과했던 쿤트 영지에 그런 지적 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는 쿤트 영지를 본거지로 활동하는 카록 상단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였다.

“시대는 변하는데 사람이 못 따라가는구려.”

그 말에 닐 페리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시대를 변하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지요. 다만, 한 사람이 시대를 너무 빨리 변화시키고 있어서 우리가 따라가기 벅찬 것이지요.”

“어떤 녀석 짓인지 알 것 같소.”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대공자 아서는 군사협정에 응하겠다는 답서(答書)를 리간드 영지에 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사흘 후, 쿤트 가문과 카록 상단은 합작투자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로 협의했다. 영지민을 상대로 무료로 기초적인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시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농경 의존적인 사회에서 점차 상공업이 대두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투자였다.

그와 더불어 닐 페리는 한 가지 더, 대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물론 사전에 카록에게 서신을 보내 허락을 구했고, 허락을 받자마자 행동에 나섰다.

바로 운송수단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마차와 말에 초점이 맞춰졌다.

“리간드 백작 각하께서 이 나라를 종횡으로 도로를 깔아주셨는데, 상인으로서 이 흐름이 뜻하는 바를 읽지 못하면 은퇴해야지.”

유통망의 확충.

물류 증대.

이 흐름에 맞춰 상단이 취해야 할 준비는 바로 운송수단의 확보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닐 페리의 상인으로서의 역량이 빛을 발하였다. 그는 카록 상단이 가진 모든 유리한 조건을 십분 활용했다.

먼저 리간드 영지에 신설된 벌목소에 마차 제작을 의뢰하였다. 벌목소는 목재를 확보하는 나무꾼 외에도 목공들도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차를 제작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마차바퀴를 비롯하여 마차 제작에 소모되는 금속부품은 카록 병기점의 장인들에게 맡겼다.

말을 대량 매입하는 데에 가장 많은 자금이 소모되었다. 다만 그 말들을 관리하는 문제는 손쉽게 해결했다.

바로 쿤트 영지 서부 지역에 정착한 유목민족들!

태어나서 일생을 말과 함께 사는 그들에게 말 관리는 그야말로 일상생활의 일부에 불과했다. 닐 페리는 유목민족들을 직접 찾아가 말 관리를 의뢰하였다.

유목민족들도 기꺼이 동의했다. 그들의 은인인 카록의 상단에게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대가족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돈을 벌 수단이 늘어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카록 상단은 30대나 되는 짐마차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빠른 운반이 가능해지자 소화할 수 있는 주문량이 늘어났고, 그 결과 주문량이 증가하였다. 카록 병기점, 유란 상단, 카록 약재상회 등이 그 효과에 힘입어 매출이 크게 늘었다.

뿐만 아니라 쿤트 가문을 비롯한 다른 귀족가문이나 상단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물품을 운송해주기도 했다. 남부확장대로를 수호하는 콘돌 기병대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은 덕분에 용병을 고용하지 않고도 안전한 운송이 가능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훨씬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 닐 페리는 크게 고무되었다. 운송 그 자체가 새로운, 그리고 강력한 수입원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즉시 ‘카록 운송 상회’를 설립해 전문적으로 운송의뢰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짐마차 제작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카록 상단은 대륙에서 가장 많은 짐마차를 보유한 상단이 되었다.

매출은 분기마다 최고액을 기록하더니, 마침내 지난해 대비 2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과감한 투자로 얻어낸 성과였다. 그리고 닐 페리를 상단주로 임명한 카록의 인사결정이 또다시 성공을 거둔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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