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308화 (308/529)

<-- 308 회: 13권 - 4장. 베일의 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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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로와 바덴 강 유역을 연결하는 남부확장도로는 완공되자마자 상공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본래 레던 왕국의 북부지역은 혼트 제국만큼은 아니어도 도로 상태와 치안이 좋지 않아서 상인이 짐마차를 끌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북부지역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남부확장도로가 새롭게 건설되고 북부대로도 말끔히 보수되어서 마차가 다니기 편해졌다. 뿐만 아니라 왕실군의 각 군단이 북부대로를 보호하고 있고, 남부확장도로도 콘돌 기병대가 특유의 빠른 기동력으로 바쁘게 다니며 치안 유지에 들어갔다.

게다가 남부확장도로를 다닌 상인들 사이에서 콘돌 기병대는 평판이 무척 좋았다.

처음에는 그들 전원이 유목민족 출신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을 듣고 옛날 버릇이 도져서 때때로 강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로를 순찰하며 만나는 행인들에게 근처에 몬스터나 산적은 없었냐고 안부를 물었고, 대장 패트릭은 용병 없이 다니는 상인들에게 대원 두세 명을 붙여주어서 인근 영지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친절까지 보였다.

패트릭의 관용에 매료된 상인들은 어딜 가나 콘돌 기병대를 칭찬했다.

그 주군인 카록의 평판도 덩달아 높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레던의 현자’가 한 일은 뭐든 남다르다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한 평판이 아니더라도 카록이 얻은 이득은 컸다. 남부확장도로가 쿤트 영지와 리간드 영지를 지나기 때문이다. 쿤트 영지는 카록 상단의 본거지였기 때문에 도로 개설로 통행에 용이해진 점은 유통 측면에서 이득이 컸다.

또한 리간드 영지는 이제 막 조선소와 벌목소를 설립하기 시작해서 성장세를 타던 시기였기에 남부확장도로를 통해 외부의 인구 유입이나 상인들의 통행은 좋은 작용을 불러왔다.

그러한 호조를 틈타서 신임 영주대리 베일은 조선소와 벌목소의 설립에 영지의 모든 역량을 기울였다.

인력의 공급은 충분했다. 베일 산적단과 함께 리간드 영지민이 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단 조선소와 벌목소 건설에 투입될 인부들과 그 일가족이 거주할 숙소부터 건축했다. 파오니 남작이 특별히 설계하여서 여러 가구가 함께 살 수 있는 거주시설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서서히 영지의 인구를 텍스 강 유역에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생필품을 조달하는 게 문제로군요. 영지를 방문하는 상인이 많지 않으니, 꼼짝없이 영지군이 직접 수송해야겠습니다.”

베일의 말에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어차피 그쪽에 주둔한 병력이 쓸 군수물자를 수송해야 하니 수송물량이 좀 늘어날 뿐이오.”

딘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물자를 인부들 가족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하는 거요? 우리 영지군의 수송부대가 장사를 할 수는 없잖소.”

“그럼 상점을 개설하는 방향이 좋겠군요. 잉여 물자를 집결시키고 담당 관리를 배정해서 인부들 가족을 상대로 생필품을 판매하죠.”

그 말에 파오니 남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이 또 커지겠군. 노동을 시킬 인력은 많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관리의 숫자가 턱없이 모자라! 그 상점의 운영은 어떤 관리에게 시킬 작정인가?”

그 말에 베일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징세관 존에게 맡기면…….”

“날 따라다니며 잡무를 도맡고 있는 그 존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존이 없어지면 그 녀석에게 시키던 일을 앞으로 내가 스스로 해야겠군? 진심인가?”

파오니 남작은 잔뜩 짜증을 부렸다. 그렇지 않아도 휘하에 두고 일을 시킬 만한 인재가 없어서 홀로 많은 일을 해야 했던 그였다.

원채 촌구석의 작은 영지였기 때문에 글과 숫자를 공부한 사람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끄응, 고급인력의 부족이 이런 식으로 문제 될 줄은 몰랐군요. 그럼 달리 좋은 방도 없으십니까?”

베일이 묻자 파오니 남작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이 대꾸했다.

“주군께 도움을 요청해. 말만 하면 다 해결해주실 텐데.”

“재상이 되셔서 국무를 관장하시는 주군께 이런 사소한 문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다 말고 베일은 눈을 크게 떴다.

“아! 카록 상단이 있었군요. 생필품 공급 문제쯤은 카록 상단에게 부탁하면 해줄 겁니다.”

그 말에 딘은 웃음을 터뜨렸다.

“간단한 문제 가지고 쓸데없이 고민을 했군.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상단을 주군께서 운영하시는데 말이오.”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영지 전반에 대한 여러 가지 안건이 나왔는데 대체로 순조롭게 의사결정이 내려졌다.

어느 한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있지 않은 3인 체제는 자칫 서로의 불화로 분열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런 대립각 없이 협조적으로 회의에 임했다. 서로를 존중하려는 배려심이 밑바탕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 중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없는 덕분이었는데, 카록 또한 그들의 됨됨이를 알기에 3인을 영지의 수뇌에 앉혀놓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영지의 안보 문제입니다만, 저는 영지를 둘러싼 산악지형을 이용한 철저한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베일이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이에 딘은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안보가 중요함은 알지만, 우리 영지는 대외적으로 위협요인이 없지 않소. 남쪽으로는 육제후가 있고 북쪽에는 쿤트 영지가 있소. 서쪽으로는 산세가 험해 길이 없고, 동쪽으로도 그다지 위협요인이 없소만.”

리간드 영지의 지리상 가장 중요한 대외요인은 남쪽의 육제후와 북쪽의 쿤트 영지였다.

육제후는 왕실과 협력하고 있어 재상인 카록의 영지를 공격할 리 없었다. 하물며 조선소와 벌목소를 합작투자까지 하지 않았는가.

쿤트 영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카록의 친가인 쿤트 영지는 카록 상단의 본거지이기도 해서 리간드 영지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다. 리간드 영지가 위험에 처하면 오러 마스터 바스크 쿤트 백작이 도우러 달려올 터였다.

동쪽으로는 왕실특별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왕실특별군.

예전에는 왕실군 3군단이었으며, 그 사령관은 신생 오러 마스터로 이름 높은 릭 페르난도 백작! 즉, 카록의 둘째 형님이었다.

사방에 우군으로 가득한 영지에 안보적 위협 따위는 존재할 리 없었다.

그러니 딘은 강력한 방어체계 구축을 말하는 베일의 의견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영지만 놓고 본다면야 안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국가 중대사를 관장하시는 주군께서는 리간드 영지에 신경 쓸 틈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서 잘 관리해주길 바라시는 것이겠지요. 주군께서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딱 그 정도입니다.”

베일은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그 기대 이상을 보여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오?”

딘의 물음에 베일이 설명했다.

“주군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혼트 제국의 침공입니다. 혼트 제국의 침공루트는 뮤트 공작가가 지키고 있는 북부대로 방면과 바덴 강 유역 방면 두 가지입니다. 바덴 강 유역으로 침공해왔을 때, 레던 왕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곳, 우리 영지를 지나야 합니다.”

딘과 파오니 남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렇다면 베일 경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혼트 제국의 침공루트 하나를 막아버리자는 것입니다. 우리 영지의 험한 산세와 주변 여건을 잘 활용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혼트 제국은 우리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대한 적이오.”

“알고 있습니다. 수십만 대군은 하나같이 정예이고, 카르스 황제는 얼마 전의 반란 진압으로 자신의 전쟁수행능력을 똑똑히 보여주었지요. 또한 유목민족 전사들까지 손에 넣었으니 강력하기로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막아보자는 말씀이시오?”

“예.”

베일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산적단 시절 발라드 산맥에서 토벌군과 몬스터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군요.”

“호오, 재미있군. 한 번 들어보고 싶은데.”

파오니 남작이 흥미를 드러냈다.

베일은 설명했다.

“야전에서 맞붙는다면 카르스 황제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산세가 험한 우리 영지의 지리를 이용하여, 주요 전술적 요지를 지켜내는 방어전을 펼친다면 아무리 대군이 침략 해와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도 대군을 감당하기에는 2천 남짓밖에 안 되는 우리 영지군은 너무나 열세 아니오.”

“물론입니다. 하지만 북쪽으로 쿤트 영지와 연계하고 동쪽으로는 왕실특별군과 연계한다면 어떨까요? 또한 현재 남부확장도로를 관리하는 콘돌 기병대까지 가세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 됩니다. 그리 되면 부족한 병력도 충당되고, 오러 마스터만 두 분입니다. 그런 조건만 갖춰진다면, 제 능력을 감히 카르스 황제와 견줄 수는 없지만 지지 않고 버틸 자신은 있습니다.”

딘과 파오니 남작은 베일이 들려주는 장대한 구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지를 넘어 혼트 제국의 침공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계획한 베일의 재능은 보통 비범한 것이 아니었다.

딘은 씨익 웃었다.

“좋소, 한 번 해봅시다! 우리가 혼트 제국을 멋지게 막아낼 비책을 마련한다면 주군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거요.”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일 테지. 허헛!”

파오니 남작도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은 의욕이 충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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