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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93화 (293/529)

<-- 293 회: 12권 - 6장. 텍스 강 유역 개척 -->

“그동안 리간드 영지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텍스 강 유역을 개척해야 하는 목표를 얻었고, 새로운 영지민의 유입으로 인구는 2배가량 늘어났지. 덕분에 영지는 전례 없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때로는 혼란스러움도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장본인인 딘이 지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영지의 관리체계를 크게 개편하여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딘은 앞으로 나와라.”

“예, 주군!”

딘이 걸어 나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사 딘을 군장(軍將)으로 임명한다. 앞으로 영지의 모든 군사 업무를 총괄하도록.”

“예, 주군.”

이 결정에 다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영주대리는 누가 하는 거야?”

“글쎄. 이 중에 영주대리를 맡을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지금껏 잘 해오셨는데…….”

하지만 모두의 당혹과 달리 딘 본인은 크게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애당초 혼트 제국의 군인 출신에 용병생활을 오래 한 딘이었다. 군대와 관련된 일이라면 전문가이지만, 그 외의 분야는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파오니 남작.”

“예, 백작 각하.”

천재 건축가 파오니 남작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대를 영지의 건설담당관으로 임명하겠다.”

“건설담당관 말씀이십니까?”

파오니 남작은 물론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직책일 것이다.

내가 방금 만들었거든.

“영지의 토목과 건축에 관련된 사항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이 영지를 그대의 천재적인 감각에 맞게 바꿔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백작 각하.”

파오니 남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애당초 그가 나에게 포섭된 것도 이 일을 위해서였으니까.

“마지막으로 베일.”

“예? 아, 예, 주군.”

베일은 자기가 호명될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라며 급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베일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사 베일을 새로운 영주대리로 임명한다.”

“……?!”

베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옆에 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딘과 파오니 남작 역시 놀라서 베일을 바라보았다.

“베일 경을 영주대리에?”

“하지만 그는…….”

1층 홀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부산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는 산적단 두목이었던 베일이 영주대리라니 놀랐을 테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볼 때는 아주 적합한 인선 같거든.

산적단 두목 시절의 베일을 보자.

말이 산적단 두목이지, 거의 영주 역할을 했다. 발라드 산맥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1천여 명의 부하와 그 일가족 수천 명을 다스려왔다.

리간드 영지 인구와 맞먹는 군중을, 리간드 영지보다 훨씬 척박한 발라드 산맥에서 통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집단이 붕괴되지 않고 잘 유지된 것만 봐도 베일의 탁월한 카리스마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리간드 영지의 현재 상황만 봐도, 베일은 무시할 수 없다.

리간드 영지에서 가장 영지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은 누굴까?

물론 나지.

나 다음에는?

원래는 영주대리였던 딘일 것이다.

하지만 발라드 산맥에서 베일 산적단과 함께 살았던 수천 명의 인구가 리간드 영지로 유입됐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왔던 베일을 여전히 지지할 것이다.

즉, 현 리간드 영지의 인구 절반이 베일을 지지한다.

게다가 베일의 부하였던 산적단 멤버 1천여 명이 고스란히 영지의 군대가 되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베일의 영향력이 막강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베일의 리더십을 그냥 썩힐 필요가 없다. 딘보다 더 영주대리에 적합한 인물이다.

“주, 주군! 저는 그런 대단한 직책을 맡을 주제가 되지 못합니다. 주군의 기사가 된 것만으로도 제게는 황공한…….”

당황한 베일이 뭐라고 말했지만, 나는 손을 휘휘 저어서 제지했다.

“나는 네 능력을 이미 발라드 산맥에서 확인했다. 산적단 두목이었던 네 과거는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나의 기사가 되었을 때 전부 잊어버리기로 했다.”

나는 홀에 있는 모두를 향해 계속 말했다.

“베일은 영주대리를 수행할 자격과 능력이 충분히 있다. 내가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영주로서 그를 영주대리에 임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 이후로 과거를 문제 삼아 베일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내 엄포에 홀 전체가 숙연해졌다.

나는 베일을 보며 말했다.

“베일, 너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이 영지에 적지 않은 수가 네가 이끌던 사람들이고, 특히 영지군 중 1천여 명이 네 부하였었다. 네가 이들과 야합하여 멋대로 전횡을 일삼을 시에는, 혹은 그들이 영주대리인 너를 믿고 멋대로 행동할 시에는 망설이지 않고 엄벌에 처하겠다.”

“명심하겠습니다.”

“파오니 남작, 기사 딘, 기사 베일. 이 세 사람은 리간드 영지의 주축이 되어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건축은 파오니 남작이, 군사방면은 딘이, 그 외 모든 영지 전반의 업무는 베일이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달리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리간드 영지는 이 체제로 통치된다. 이상.”

할 말을 모두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을 떠났다.

***

신임 영주대리 베일, 군장 딘, 건설담당관 파오니 남작.

세 사람은 영주대리 집무실에서 마주앉은 채 어색한 시간을 가졌다. 세 사람의 삼각체제로 통치방식이 개편된 뒤로 처음 갖는 회의였다.

이 3인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주군인 카록으로부터 텍스 강 유역을 개척할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받았기 때문이었다.

침묵을 깨고, 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베일 경, 먼저 축하한다는 말을 드리겠소.”

“아,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영주대리가 되어서 많은 분들이 우려스러워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베일은 조심스럽게 딘의 의중을 살폈다. 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너무 의외의 인선이라 놀라긴 했지만 불만은 없소. 내가 영주대리 직책에서 물러난 건 나 자신의 의사였고, 주군의 판단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마시고 소신껏 일을 해내가시오.”

파오니 남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영주대리 됐으니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일처리나 팍팍 하자고. 백작 각하께서 기껏 시간 내서 이곳에 오셨을 때 텍스 강 개척을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네. 그 위대한 정령술을 써먹으려면 말이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텍스 강 개척에 대해 의논하도록 하지요.”

딘과 파오니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은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텍스 강 유역에 서식하던 여러 몬스터들 중 오크 부족은 박멸시키는데 성공했고, 이제 남은 것은 리자드맨 부족뿐입니다.”

“뒤편의 산길을 통해 기습을 하려다가 오우거를 발견하고 말았지…….”

딘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주군께서 오신 이상 오우거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베일의 말에 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그보다, 사실은 리자드맨 부족도 더 이상 걱정거리가 되지 않게 되었소. 텍스 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꽤나 번성한 리자드맨 부족이지만, 사실 주군께는 식후 운동감밖에 되지 않으니까.”

“예. 그래서 산길로 기습 타격 후 산속으로 유인해 매복 타격을 가한다는 당초 전략은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텍스 강 토벌에 대한 방침 자체를 변경하고 싶은데, 딘 경께서는 동의하시는지요?”

“지당한 말씀이오. 어디 이야기를 계속 들어봅시다.”

“예. 제 생각은 주군께서 리자드맨 부족을 공격하실 때 모든 길목을 차단해서 남김없이 섬멸시키는 작전이 어떨까 생각됩니다.”

“동의하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시는 몬스터가 텍스 강 유역 인근에서 다시 번식하지 못하도록 각 요지마다 영지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입니다.”

“요지라고 함은?”

“몬스터의 서석에 적합한 장소를 미리 선점하는 방식입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산적단 시절에 발라드 산맥을 이런 방식으로 장악했습니다.”

“호오? 그러고 보니 나도 용병생활 하던 때에 발라드 산맥에 가본 적이 있었소. 그땐 몬스터가 이 영지보다 더 우글거렸었는데, 그런 곳을 장악하다니 놀랍소.”

“부끄럽습니다. 그저 먹고 살려고 발악하다 보니 운이 따랐지요.”

베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세 사람은 탄력을 받아서 텍스 강 개척 계획을 수립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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