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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92화 (292/529)

<-- 292 회: 12권 - 6장. 텍스 강 유역 개척 -->

***

나는 곧장 흙집을 하나 만들어 하늘로 띄우고는 안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미리 준비해둔 침낭에 쏙 들어가니 매우 쾌적했다. 줄리아가 챙겨준 음식이 든 배낭은 옆에 놔두고 운디네에게 썩지 않게 잘 보존해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들어 알아낸 운디네의 능력이었는데, 치유의 힘을 음식에 적용하면 썩지 않게 보존할 수 있었다. 정말 여러모로 운디네는 재간둥이였다. 전생 땐 우리 운디네 없이 어떻게 살았대?

준비가 끝나자 흙집은 리간드 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출발과 함께 낮잠을 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 회중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2시가 약간 넘는 시간이었다. 오전 내내 자버렸군. 역시 낮잠은 화끈하게 자버려야 제 맛이라니까.

이제 뭘 할까 궁리를 하다가 뱃살을 빼라고 구박하던 줄리아가 떠올랐다.

뭐? 내 뱃살을 볼 때마다 무드가 떨어져?

괘씸한 것!

내 기필코 뱃살을 쫙쫙 빼서 날씬한 남편님이 되어주마.

다이어트에 가장 좋은 운동은 달리기라지?

그런데 하늘을 날고 있는 이 흙집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 그냥 하지말까. 귀찮은데.

……라는 유혹이 들 찰나,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어스 핸드 두 개를 만들었다.

그것을 밟고 허공에 올라선 뒤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어스 핸드가 잽싸게 움직이며 내 발을 받쳐주었다.

오, 좋아. 된다, 돼!

신이 난 나는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어스 핸드 두 개가 내 보폭에 맞춰서 앞뒤로 움직였다. 두 개의 어스 핸드를 연달아 디디며 제자리에서 달리기를 했다.

좁은 공간에서도 달리기를 할 수 있다니. 밖에 나가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완전히 다이어트의 혁명이로군.

좋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성취감에 나는 잔뜩 들떠서 한 시간 동안 달리기를 했다.

내가 많이 게으른 생활을 한다고 몸까지 나태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래봬도 유서 깊은 기사가문의 삼남. 어릴 때부터 아버지 때문에 가혹한 운동을 했던 몸이다. 한동안 운동을 등한시 했어도 이 정도 달리기쯤이야…….

“헤엑…… 헤엑…… 크헤엑……!”

그래, 사실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운디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응!

운디네는 재빨리 내 몸의 땀을 말끔히 씻겨주고, 치유를 걸어 피로까지 회복시켜주었다.

순식간에 몸이 팔팔한 상태로 돌아오자, 다시금 의욕이 샘솟았다. 감히 남편님의 뱃살을 모욕한 줄리아에 대한 분노가 운동 의욕을 고취시켰다.

나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달리기를 계속했다.

6일 동안 그런 생활을 반복했다.

리간드 백작령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 나는 노움에게 물었다.

“노움, 아빠 체중 많이 줄었니?”

-3.1245kg 줄었어.

“아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6일 만에 3kg을 빼버린 이 몸의 위업이란!

운디네에게 피로를 회복 받으면서 계속 조깅을 한 성과였다.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전부 먹어치우지 않았더라면 더 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움, 운동 전과 후의 내 체형을 보여줘.”

-응, 아빠.

이윽고 나와 똑같은 체형의 사람 몸뚱이가 흙으로 빚어졌다. 왼쪽은 운동 전, 오른쪽은 운동 후.

음, 줄리아가 괜한 소리 한 게 아닌가 보다. 확실히 운동 전의 나는 뱃살이 좀 나왔다. 내가 봐도 보기 흉하네.

그에 반해 운동 후의 내 체형은 한결 보기 좋았다. 이런 식으로 몇 주만 더 하면 군살을 말끔히 뺄 수 있을 듯했다.

***

리간드 백작령에 접어들고 얼마 되지 않아 바탄 성 마을이 보였다.

작은 성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풍경. 이제는 리간드 성 마을이라 불러야 하는 곳이었다.

“어라? 전보다 훨씬 커졌네?”

못 본 사이에 마을 규모가 꽤 커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2배쯤 커진 듯했다. 아무래도 베일 산적단을 영지로 받아들여서 급격하게 규모가 커진 모양이었다.

“어?”

“저게 뭐지?”

마을의 영지민들이 하늘에 떠 있는 흙집을 발견했다.

“저거 그거잖아. 영주님이 만든 거!”

“영주님이다!”

“영주님이 오셨어!”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웬일로 오셨대?”

“오우거 때문인가 보네.”

“평생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영지민들이 내 쪽을 보며 두 팔을 들고 환호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정말 내가 어지간히도 영지를 방치했구나. 저 사람들은 나만 바라보고 사는데.

나는 흙집 밖으로 나와서 영지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영지민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렇게 영지민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곧장 흙집을 없애버리고 성 위로 뛰어내렸다.

운디네의 힘으로 둥실둥실 날아서 천천히 성 꼭대기에 착지한 나는,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곳은 영주의 집무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영주님?”

나를 대신해서 영지를 관리하던 딘이었다.

“여어, 잘 있었어?”

“정말로 오셨군요!”

“영지에 큰일이 생겼다는데 와봐야지.”

딘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주군을 다시 뵈어서 정말 기쁩니다.”

“마찬가지야. 그동안 나 대신 정말 수고가 많았어. 영주대리 일은 할 만해?”

“고역입니다, 주군. 차라리 용병단 이끌고 다닐 때가 훨씬 편했지요.”

“에이, 이제 충분히 익숙해졌잖아. 잠깐 둘러보니까 척 봐도 영지가 전보다 훨씬 발전했던데?”

“그야 주군과 카록 상단의 지원 덕분이지요.”

“그래그래. 계속 팍팍 지원해줄 테니 앞으로도 수고해.”

“앞으로도…… 말입니까?”

“응. 앞으로도 쭉쭉 영주대리는 딘 너야.”

내 말에 딘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주군……. 전 정말 관리자 체질이 아닙니다만, 다른 인재를 알아보심이 어떠십니까?”

“에이, 잘 하고 있었잖아. 사람이 겸손하기는.”

너 말고 달리 누가 있겠니?

나는 왕실 일로 바쁜 몸이고, 달리 영지를 맡길 만한 관리자 타입의 인물도 없는데.

“저 혼자서는 벅찹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영지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텍스 강 유역을 토벌하고 조선소를 설립해야 하는 일까지 생기다 보니 제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스케일이 커져버렸습니다.”

“그래? 으음…….”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우는 소리를 하니까 또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정말 영주대리 하기 싫어?”

“예. 그보다는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서 감당하기가 벅찹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영주대리로 임명하도록 할게. 업무가 군사적인 쪽으로만 한정되면 만족하겠지?”

“예. 군사 쪽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그 분야야 제 전문이니까요.”

“좋아. 그럼 일단 다른 사람들 얼굴도 좀 보자고. 다들 모이라고 해.”

“예, 주군.”

영지에 오길 잘했네. 마침 딘이 한계에 다다랐고, 영지도 급격히 발전하는 바람에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역시 줄리아 말 들어서 나쁠 것 하나 없구나. 집에 돌아갈 때 선물 사가야겠다. 물론 그 선물에는 내 탄탄한 복근도 포함되어야지.

그날 오후.

3시쯤 되자 전원이 1층 홀에 집결했다고 딘이 보고했다. 오랜만에 영주가 왔으니 격식(格式)을 차린 모양이었다.

1층 홀에 내려가자, 모두가 줄을 맞춰서 집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군을 뵙습니다―!”

쩌렁쩌렁한 환영인사.

좌측에는 딘, 렉스, 베일을 포함한 군인들이, 우측에는 영지의 관리들이 일제히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응? 그러고 보니 우측 관리들 무리의 선두에 파오니 남작도 끼어 있었다.

내 저택을 설계해준 저 천재 건축가는 남작의 작위를 가진 탓에 나를 제외하면 이 영지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다. 게다가 내가 직접 영입한 귀중한 인재인 탓에 나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파오니 남작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알은체를 해왔다.

중앙에 준비된 의자에 나는 털썩 앉았다.

“다들 오랜만이군. 내가 없는 동안 영지를 잘 이끌어온 점 고맙게 생각한다. 이 점을 감안하여 이 자리에 있는 전원에게 50레디나의 포상금을 수여한다.”

내 말에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은 이럴 때 뿌리라고 있는 거지.

“그동안 리간드 영지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텍스 강 유역을 개척해야 하는 목표를 얻었고, 새로운 영지민의 유입으로 인구는 2배가량 늘어났지. 덕분에 영지는 전례 없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때로는 혼란스러움도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장본인인 딘이 지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영지의 관리체계를 크게 개편하여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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