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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88화 (288/529)

<-- 288 회: 12권 - 5장. 북부대로의 부활 -->

***

아침 일찍 일어나려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잠에서 깨버렸는데 회중시계를 꺼내 보니 이제 겨우 아침 6시였다.

정령과 공유된 감각을 통해서 병사들이 점호를 마치고 연병장을 달리는 모습이 느껴졌다. 군인들은 역시 부지런하구나. 나는 (한 번 더)죽었다 깨어나도 군인은 되지 못할 거야. 아마 탈영할걸?

샤워를 하고 입고 있던 옷을 깨끗이 빨래한 뒤 말리기까지 2초쯤 걸렸다. 운디네한테 부탁했거든.

그러고 보니 이놈의 뱃살님은 여전히 변화가 없군. 운동을 좀 해야 할 텐데. 나도 군인들처럼 좀 연병장을 뛸까?

……아침부터 달리기는 좀 피곤하니까 그냥 스트레칭이나 해야겠다. 위험하잖아. 아침부터 달리다가 넘어지면 어떡해?

내가 중년 아저씨마냥 뭉그적거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내 당번병이 안으로 들어왔다.

“리간드 백작 각하, 식사 하시겠습니까?”

“응.”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정말 당번병은 잠시 후에 식사를 가져왔다.

빵과 우유와 소고기 육포, 삶은 달걀로 이루어진 소박한 식단이 쟁판에 담겨 있었다. 소박하긴 했으나 여기가 전투를 앞둔 군부대임을 감안하면 나름 성의를 보인 것이었다.

게다가 빵도 나름 촉감이 부드럽고 맛도 고소한 것이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천막에서 나왔다.

햇살 한 번 따스하군.

“이제 슬슬 가볼까?”

지금쯤 산적단 여러분들도 활기찬 아침을 맞고 있겠지? 아침 댓바람부터 샐러맨더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뜻 깊은 인생 경험이 될 거야. 아하하.

나는 하늘을 향해 몸을 띄웠다.

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면서 발라드 산맥을 향해 움직였다. 내가 갑자기 하늘을 날자 5군단 진영의 병사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지만, 뭐 이젠 익숙한 풍경이었다.

유유자적 발라드 산맥의 상공을 날다 보니 산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봉우리에 조악하게나마 목책으로 이루어진 방어시설이 보였는데, 규모는 작지만 무성한 숲과 어울러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았으면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그 방어시설에 50여 명 가량의 산적이 있었다.

호오, 제법인데.

5군단이 이 방어시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면, 저 50명이 튀어나와서 후방 기습을 가하는 그런 구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만 보니 다른 산봉우리에도 비슷한 방어시설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두목 베일이 있는 산적단 본거지는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욱이 발라드 산맥은 너무 넓어서 정령의 감각으로 찾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일단 한 놈 잡아다가 물어봐야겠다.”

-반쯤 태우고 대답 안 하면 다 태운다고 협박하자!

샐러맨더가 기운차게 주장했다.

“얘야, 반쯤 태운 시점에서 사람은 이미 죽어요.”

-안 죽게 잘 태우면 된다!

“이 잔인한 놈아, 넌 정령이냐 악마냐?!”

-크헤헤! 반쯤 태운 인간!

이런 미친 정령 같으니! 대체 어떻게 이런 정령이 나온 거야? 정령은 계약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며? 난 이런 놈 원한 적 없다고!

티격태격하다가 나는 한 명을 어스 핸드로 붙잡아 하늘로 끌고 오기로 했다.

나는 산봉우리의 한 방어시설에 어스 핸드를 보냈다.

이윽고 산적 사내 하나가 어스 핸드에 다리를 붙잡히고는 ‘어? 어?! 뭐야!’하는 비명을 질렀다. 다리를 붙잡힌 채 하늘 높이 끌려 올라온 산적 사내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서 내가 떠 있는 높이까지 올라온 산적 사내는 이윽고 공포로 질린 얼굴로 나와 마주쳤다.

“안녕?”

“……?!”

“질문이 하나 있는데, 대답 안 하면 저 산맥 너머로 던져버린다. 오케이?”

“히익! 사, 살려주십시오! 리간드 백작 나리,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어라? 날 알아?”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서 묻자, 산적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목님께서 백작 나리께서 조만간 방문하실 테니 잘 맞이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요.”

“내가 올 줄을 어떻게 안 거야?”

내가 놀라서 묻자 산적 사내가 답했다.

“부, 북부대로 보수공사를 총괄하였으니 언젠간 이곳에 나타나실 거라고…….”

나는 기가 막혔다. 생각보다 훨씬 머리가 잘 돌아가잖아, 베일이라는 두목 놈!

“그래서, 그 베일이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는데?”

“제가 안내해드릴 테니 일단 이것 좀…….”

산적 사내는 자신의 다리를 잡고 있는 어스 핸드를 가리켰다. 하긴 거꾸로 매달려 있으니 불편할 만도 했다.

“좋아.”

나는 어스 핸드로 산적 사내를 위로 휙 던졌다.

“으아악!”

그리고는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산적 사내의 양 옆구리를 두 개의 어스 핸드로 붙잡았다.

“자, 이제 좀 낫지?”

“……예.”

뭔가 심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산적 주제에 흔들의자라도 만들어 앉혀주랴? 이 정도가 딱 어울려.

산적 사내의 안내에 따라 산봉우리 몇 개를 건너니 산적들의 본거지가 보였다.

나는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산적단 본거지는 족히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하기야 천여 명이나 되는 산적들의 일가족이 있을 테니 저 정도 인구가 되겠지.

하지만 그런 척박한 산속에서 저만한 인구가 생존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을 한복판에 착지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산적 사내에게 쏠렸다.

산적 사내는 내게 말했다.

“리간드 백작 나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

그 뒤를 따르자 얼마 되지 않아 수십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제각기 몽둥이나 손도끼 등의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흉흉해보였다.

“하늘에서 날아온 침입자는 어디야!”

“토벌군의 마법사일 거야! 처치해야 해!”

아하. 하늘에서 날아왔으니 마법사가 몰래 침투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자 날 안내하던 산적 사내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냐! 이분이 바로 리간드 백작님이셔.”

“리간드 백작님?”

“두목님이 말씀하셨던 그……?”

“그 무시무시하다는 정령사!”

사내들은 당혹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난 그들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왜? 싸워볼래?”

-크헤헤! 싸우자!

샐러맨더가 그새를 못 참고 튀어나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로 이루어진 꼬맹이가 사악한 광소를 터뜨리자 사내들은 ‘허억!’ 하고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쳤다.

“정말 정령이다!”

“아, 악마가 아니고?”

“아무튼 무섭잖아!”

날 안내하던 산적 사내도 두려움에 질려서 굳어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웬 남자가 나타나 물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갖췄고 눈빛이 부리부리해서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샐러맨더에게 겁에 질린 사내들은 남자에게 소리쳤다.

“두목님!”

“저, 저자가 리간드 백작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셨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호오, 저 남자가 이 산적단의 두목인 베일인 모양이었다.

베일이 나를 보았다.

거대 산적단의 두목답게 강렬한 눈빛이 나를 응시한다. 헹, 제법 거물인가본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나 역시 여유를 잃지 않고 베일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베일이 입을 열었다.

“리간드 백작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뜻밖에도 베일은 산적단 두목답지 않게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두목이 그렇게 나오니 사내들 또한 눈치를 살피다가 내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상황이 잠잠해지자, 이를 멀뚱히 보던 샐러맨더가 한 마디 했다.

-뭐냐. 싸움 안 하냐?

“아직 모르지.”

내가 샐러맨더에게 말했다. 물론 베일과 산적 일당들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여기 활활 잘 탈 것 같은데, 그냥 싸우면 안 되냐?

샐러맨더의 말에 사내들이 움찔거렸다.

“아직 안 돼.”

그렇게 대꾸해주면서 나는 베일을 관찰했다. 베일은 샐러맨더의 말을 듣고도 겁먹지 않고 침착한 태도였다. 제법 담력이 있는 걸 보니 확실히 보통 녀석은 아닌가보다.

베일이 내게 말했다.

“백작님. 괜찮으시다면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나도 듣고 싶은 게 있고.”

내가 올 줄 예상하고 있던 산적 두목이라. 어쩐지 흥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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