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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87화 (287/529)

<-- 287 회: 12권 - 5장. 북부대로의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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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공사는 탄력적으로 진행되었다.

차기 재상이자 사실상 에릭 국왕 휘하의 1인자나 다름없는 내가 총책임자를 맡았고, 루이가 군림하는 재정부가 협조를 아끼지 않으니 일처리가 전광석화였다.

최근 왕실 관리들은 우리가 이렇게 유능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업무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마냥 혹사시킨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꿔서 맡은 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그렇게 업무능력이 크게 향상되니 관리들 스스로도 보람을 느낄 정도였다. 맡은 바 소임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한 법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닌데, 내 개인적으로는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북부대로의 치안 회복을 위해 몬스터와 산적을 토벌하던 왕실군 각 군단들이 나에게 지원 요청을 해댄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륭겐 후작도 꺾어서 더욱 유명해진 상급 정령사. 거기에 이번 북부대로 보수공사의 책임자이니 그들의 일과 무관하지가 않았다. 왕실군의 각 군단장들의 입장에서는 아군 병사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내 능력을 써먹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 지원요청서가 있었다.

「리간드 백작 각하!

저희 5군단은 현재 발라드 산맥에 주둔한 베일 산적단이라는 도적 무리를 상대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베일 산적단은 베일이라는 평민 출신의 수괴가 창설한 무뢰배들로 그 숫자가 1천에 달한다는 정보입니다.

물론 저희 5군단의 정예 병사들은 군기나 훈련 상태나 병력으로나 베일 산적단에 비할 바가 아니나, 베일이라는 이 지능적인 수괴는 이번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모두 점령하고 있어서 무리하게 정면대결을 벌이면 극심한 전력소모를 피할 길이 없나이다.

저 자랑스러운 왕실군 5군단의 군단장 로뎀은 폐하께서 내리신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한 점의 두려움도 없으나, 만약 리간드 백작 각하께서 힘을 보테주신다면 수많은 아군 병사의 희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쪼록 저희 5군단의 사정을 헤아리셔서 각하의 놀라운 정령술을 발휘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서신을 보니 이 5군단장인 로뎀 자작은 충실한 성격의 군인으로 짐작된다.

일개 산적단을 상대로 곤란함을 토로하는 일은 군단장으로서 불명예스럽게 보일 수 있는데도, 이를 감수하면서 나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이 베일이라는 산적단 수괴가 참으로 그 수완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일개 산적단의 숫자가 1천에 달한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중요한 거점을 모두 차지하고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대응 또한 놀랍기 짝이 없었다.

전략전술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평민 출신이니 제대로 전략전술을 배웠을 리는 없고, 스스로 터득한 모양인데 그쯤이면 악당이긴 하나 능히 기재(奇才)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저런 재능을 가진 놈이 왜 하필 저딴 짓이나 하고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튼 산적 짓을 하면서 1천 명이나 되는 놈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베일이란 악당 녀석은 꽤나 능력 있는 놈 같았다.

전생 때는 이런 놈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었다. 아마 카르스 황제가 레던 왕국을 점령한 후에 토벌했겠지 싶었다. 악명 높은 산적을 박멸시키면 점령지의 민심을 달래기에 좋으니까. 게다가 저런 거물급 산적패가 도사리면 언제든 군대의 보급을 노릴 위험이 있다.

“역시 한바탕 싸우러 가봐야겠지.”

-크헤헤! 싸움이다!

내 체온에 깃들어 있던 샐러맨더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이 녀석이 흥분하니 내 몸이 덩달아 후끈해졌다. 이 녀석이 내 체온에 깃들어 영향을 준 것이다.

“더워 임마!”

-뭐라도 좀 태우고 싶다! 전에 싸울 때도 날 써주지 않았다!

샐러맨더는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전에 싸울 때라면, 륭겐 후작과 대결했던 일을 뜻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노움과 운디네만 데리고 싸웠지. 아직 중급 정령인 샐러맨더는 위력이 약하니까. 그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알았어, 이번에 실컷 놀게 해줄게. 됐지?”

-활활 태워죽이게 해줄 거냐?

“그, 그래, 활활…….”

일단 샐러맨더 녀석을 달래주기 위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산적도 어쨌든 인간은 인간인데 활활 태워 죽인다는 소리가 내 입에서 쉽게 나올 리 없었다. 잘못하면 이놈 때문에 ‘악마의 불꽃’ 같은 악명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5군단이 치안회복을 맡은 발라드 산맥으로 출발하였다.

날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져서 도중에 새 한 마리를 잡아 구워 먹었는데,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이 괜찮았다. 앞으로 날아다니다가 이 새를 발견하면 식사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쌩쌩 날아다닌 끝에 이틀 만에 발라드 산맥에 도착했다.

나의 등장에 5군단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일단 지원 요청은 했지만, 내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하기야 내가 날아다니다 보니 이동속도가 좀 빠르긴 했다.

거물급이 불쑥 나타나면 군대는 고달파지는 법.

5군단은 허둥지둥 하는 듯싶더니 군단장인 로뎀 자작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백작 각하!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로뎀 자작은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로 다부진 체격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군인 타입이었다.

“치안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당연히 내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씀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누추하나마 백작 각하를 모실 숙소를 마련하였습니다.”

“길바닥에 내놔도 잘만 먹고 자니 염려놓으십시오.”

내 넉살 좋은 대꾸에 로뎀 자작은 허허 웃었다.

그들이 준비한 천막은 정말 누추하긴 했다. 하지만 전투를 앞둔 군단의 진영을 방문했는데 무슨 사치를 바라겠는가? 나는 상관하지 않고 천막에 짐을 풀었다.

그날 저녁, 로뎀 자작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베일 산적단이라는 녀석들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산적이지만 보통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주요 고지를 모두 점령해서 나름대로 목책까지 구축해놓고 대비해놓아서, 정면으로 맞붙었다가는 큰 피해가 자명해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저희들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산악전 아닙니까.”

“그쪽은 이 산맥이 자기들이 사는 앞마당이니 날아다니겠군요.”

“그렇습니다. 병력은 이쪽이 6배가량 많고 무장상태도 월등하지만, 그래도 정면대결은 전력 손실이 너무 커서 이렇게 백작 각하께 수고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공략해볼 만한 빈틈이 전혀 없었습니까?”

내 물음에 로뎀 자작은 한숨을 쉬었다.

“저도 군지휘관으로서 경력이 벌써 33년차입니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빈틈이 일절 보이지 않는 것이, 토벌에 단단히 대비한 모습이었습니다.”

“토벌이 있으리라는 걸 미리 알고 준비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마 북부대로 보수공사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미리서부터 대처한 모양입니다.”

헐, 산적들 주제에 기가 막히는군.

“베일이라는 산적단 두목이 정말 보통이 아닌 모양입니다.”

“예. 저렇게 산적단 세력이 성장하도록 영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껏 이 발라드 산맥을 점령하고 있는 걸 보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런 자가 이끌고 있다면 일개 산적들이라 해도 조직력이 단단할 테니, 내부분열이 일어날 때까지 압박을 가하며 기다리는 전략도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식사가 끝나자 로뎀 자작은 발라드 산맥의 지도를 가져와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정말로 베일 산적단은 주요 고지란 고지는 전부 점령한 채 5군단으로 하여금 접근도 못하게 해놓았다. 병력을 돌입시키면 허리를 쳐서 분산시키기 쉽도록 배치한 모습이었다.

군사학에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대단한 배치였다. 로뎀 자작이 내게 도움을 청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내일 그 두목 녀석을 잡아와야겠네요.”

“백작 각하 혼자서 말이십니까?”

“네. 산맥이든 뭐든 날아가서 잡아오면 그만인데요, 뭘. 산적들 주제에 마법사는 있을 리 없고, 제대로 훈련된 궁수들도 없을 텐데요.”

궁수는 키우기가 무척 어려운 병과였다. 일단 소모품인 화살을 충분히 예비해놓으려면 돈이 많이 들고, 활쏘기 훈련도 쉽지 않다. 정규군이 아닌 이상은 궁수들을 조련하기가 어렵다. 아마 산적들은 기껏해야 새총이나 슬링 같은 것을 원거리 무기로 쓰고 있겠지.

“그, 그렇군요.”

로뎀 자작은 무언가 허망하다는 얼굴이었다.

자신은 이렇게 골치를 썩고 있는데 나는 그냥 날아가서 잡아올게요,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튼 기대된다.

베일이라는 그 놈, 어떤 녀석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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