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 회: 12권 - 5장. 북부대로의 부활 -->
5장. 북부대로의 부활
“리간드 백작 각하의 의견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현 시점에서 그 이상의 대응책은 없습니다.”
루이는 내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점점 나의 심복처럼 되어가는 루이였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는 있습니다.”
으잉?
“육제후의 다른 네 가문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점입니다. 그들은 불만을 품겠지요.”
아차, 그런 문제가 있었지.
루이의 지적에 나는 골치가 아파와 이마를 싸잡았다.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는 건지 원…….
안타레스 백작령과 린델 백작령으로의 모든 통행을 금지하면, 혼트 제국에 오가는 바덴 강 통행 자체를 금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혼트 제국-레던 왕국-오리엔 왕국 이렇게 삼국의 교역을 바덴 강에서 중개하며 통행세를 뜯어내던 육제후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가 나타난다.
물론 원래부터 치안 문제 때문에 혼트 제국과의 교역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타격은 크지 않겠지.
하지만 상인들의 새로운 타깃 시장이 된 혼트 제국과의 교역에 따른 통행세 이익을 얻지 못하니 육제후로서는 적지 않은 손해인 셈이었다.
이런 일을 핑계로 육제후에게 일부러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문제였다.
“옳은 말이네만, 명분은 확실하게 우리 왕실에 있네. 반역자들과의 교역을 끊는 것의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들은 불만을 제기하지 못할 걸세.”
듀론 후작이 반박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보수적인 정론(正論)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반역자와 교역을 하지 말라는데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지는 못할 테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품을 것이다.
자신들은 혼트 제국과 손잡지 않고 왕실에 대한 충성을 지켰는데, 상은 주지 못할망정 도리어 불이익을 주냐는 생각 말이다.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왕실의 권위가 실추되니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제론이 말했다.
결국 회의는 육제후의 다른 네 가문이 좀 손해를 입더라도 감수하자는 쪽으로 흘렀다.
에릭 국왕이 결론을 내렸다.
“헤이젤 듀론 자작.”
“예, 폐하!”
재상 어르신의 차남이자 외교부상서인 헤이젤이 부복했다.
“그대가 직접 바덴 강 유역으로 가서 짐의 명령을 하달하라. 앞으로 반역세력인 안타레스 가문, 린델 가문과의 모든 교류를 금지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다른 육제후의 불만에 대해서는 그대가 양해를 구하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어려운 일을 맡았군.
왕명을 확고하게 전달하면서 그들의 불만은 달래줘야 하는 역할이다.
보통 저런 일은 협상에 능한 내 몫이었는데, 나는 워낙 할 일이 많아서 외교부상서인 헤이젤이 맡았다.
뭐, 강단 있는 듀론 후작의 아들이니 잘 해내리라 생각된다. 저번에 오리엔 왕실과의 동맹의 세부적인 협정도 잘 맡아서 처리한 인물이니 말이다.
회의가 끝나고 내 개인 집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문득 헤이젤이 뒤따라왔다.
“리간드 백작 각하, 실례지만 이번 일로 잠시 조언을 구해도 되겠습니까?”
40대 초반 정도 된 헤이젤은 나보다 훨씬 연장자임에도 태도가 공손했다. 재상 어르신 아들답게 참 예의가 바르단 말이지.
“물론이죠.”
우리는 함께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마 외교부상서께서 상대해야 할 인물은 제이슨 란즈헬 백작이 될 겁니다. 넷 밖에 안 남은 육제후 중 왕실과의 협력 노선에 앞장선 장본인이니까요.”
“백작 각하께서는 그를 여러 차례 상대하셨는데, 란즈헬 백작은 어떤 사람입니까?”
“음, 자존심 센 싸움닭 같은 인간이랄까요? 무시당하는 걸 절대로 참지 않고, 시비를 걸어오면 반드시 맞서 싸우죠. 강하게 밀어붙여서 되는 상대가 아닙니다.”
제이슨이 내 말을 들으면 벌컥 화를 낼 테지. 하지만 사실인데 어쩔 거야?
“그렇습니까? 그럼 아무래도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하려면 이번 불이익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은 해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헤이젤의 말도 옳았다.
바덴 강의 혼트 제국 방면을 통제하면 육제후는 불이익을 받지만, 우리 왕실은 이득이다. 북부대로가 활성화되니까.
아직 육제후파와 왕실파의 대립구도라는 인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북부대로의 활성화로 중북부의 왕실파 영주들만 이득을 보면 육제후파는 화나지 않겠는가. 제이슨도 그 더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벌컥 화를 낼지도 몰랐다.
“보상이라…….”
나도 고민을 해보았다.
뭘 해줘야 육제후도 이번 제제에 납득할까.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북부대로를 남쪽으로 바덴 강 유역까지 확장하겠다고 제안하면 되겠군요.”
“예? 그게 가능합니까?”
놀란 헤이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보수공사비용도 많이 모금했고, 제가 정령술을 발휘하면 공사비용이 더 절약됩니다. 조금 무리를 한다면 바덴 강 유역까지도 확장이 가능합니다. 물론, 육제후가 공사비용을 어느 정도 보태면 좋겠지만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얘기가 될 만할 것 같습니다.”
“잘됐군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백작 각하.”
헤이젤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음, 참 성실한 사람이란 말이야.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만 게으름피우면 안 되겠지.
***
다음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북부대로 보수공사에 나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명성 높은 건축가를 세 명 고용해서 함께 북부대로를 불러보는 일이었다.
나는 거대한 어스 핸드를 만들어 건축가들을 태우고 북부대로를 따라 날아다녔다.
“허억!”
“저, 정말로 난다!”
평균적인 나이가 대략 40대 중반 전후로 되어 보이는 건축가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어스 핸드 위에서 추락할까봐 두려워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자 여유롭게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자자, 관광 나온 게 아니니까 제대로 확인하도록 해.”
내 말에 건축가들은 저마다 내가 나눠준 북부대로 지도를 꺼내들고 여기저기 체크하기 시작했다. 보수가 필요한 부분, 완전히 다시 공사해야 하는 부분 등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거의 반나절을 그렇게 날아다니자 그들은 모두 지쳐버렸다.
음, 너무 혹사시켰나?
운디네가 몸 안에 깃들어 있어서 피로를 거의 못 느끼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지친 걸 눈치 못 챘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해주었다.
내 저택의 요리사들이 만든 만찬을 즐기며 건축가들은 저마다 의견을 말했다.
“일단 왕성 인근은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상태가 양호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지요.”
“북쪽으로 방향이 꺾이는 지점부터는 아예 뜯어고쳐야 할 듯합니다.”
“거기서 더 위로 산악지대도 잦은 산사태로 도로가 훼손되었지요. 거기는 보수공사는 물론이고 산사태를 방지할 시설물도 설치해야겠습니다.”
역시나 전문가들은 다르다고나 할까.
제법 빠른 속도로 비행한 탓에 대충 훑어보다시피 했는데, 그들은 뭐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체크했다.
보수공사에 필요한 인부의 숫자와 비용까지 계산을 했다. 나는 그중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는 곳만 내가 정령술로 해결하기로 했다.
인부들을 고용하면 평민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어서 경제적인 보탬이 된다. 이번 보수공사는 돈을 좀 풀어서 대흉년, 흑혈병, 곡물 시세 폭락 등의 악재로 침체된 북부의 경기를 되살리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
그렇게 나는 보수공사에 나섰고, 왕실군의 각 군단들도 내 보수공사 일정에 맞춰서 북부대로의 치안을 회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보수공사에 몬스터 토벌 등으로 레던 왕국 북부 전체에 활기를 띄기 시작할 즈음, 바덴 강 유역으로 갔던 헤이젤이 돌아왔다.
“바덴 강 유역의 네 가문은 폐하의 왕명에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더냐?”
에릭 국왕이 물었다.
헤이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대로를 바덴 강 유역까지 확장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추가공사비용은 그들 네 가문이 절반 이상 부담하겠다고 약조하였습니다.”
“으음…….”
에릭 국왕은 신음했다.
북부대로를 남쪽에 있는 바덴 강 유역까지 확장한다니 공사비가 얼마나 소모될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이를 듣고 있던 듀론 후작은 날 바라보았다.
“가능하겠는가, 리간드 백작.”
“가능합니다. 기존의 도로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확장해나간다면 바덴 강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공사비의 절반은 그쪽에서 부담한다고 했고, 부족한 부분은 내 정령술로 커버하면 된다.
결국 에릭 국왕은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다. 북부대로의 보수공사에 관한 모든 사항은 리간드 백작,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기필코 해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