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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83화 (28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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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육제후의 이변

그 뒤로 육제후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안타레스 백작은 다른 육제후의 영지를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는 제이슨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이 늙은이가 정말로 작정했구나.”

혼트 제국의 귀족으로 전향하려 드는 안타레스 백작의 행보는 제이슨을 불쾌하게 했다.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볼프강은 왕실과 대립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었다. 카르스 황제와 손잡는 허황된 미래 따윈 이야기하지 않았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문제이니까.

하지만 안타레스 백작에게 설득되어서 혼트 황실 진영으로 넘어가버리는 육제후 멤버가 속출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미 제이슨은 레던 왕실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쿤트 백작가와의 혼담까지 성사시킨 상황이었다.

육제후의 다른 다섯이 모두 혼트 제국으로 전향해버리면, 란즈헬 백작가만 바덴 강 유역에서 고립되는 형국이 된다.

무엇보다도, 육제후 6인 중 5인이 혼트 제국의 편이 되면, 카르스 황제는 망설임 없이 침략을 개시할 것이다.

결국 제이슨 역시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육제후를 만나고 다니며 혼트 제국과 손잡아서는 안 된다고 설득을 시작했다.

“듣자하니 린델 백작도 안타레스 백작과 뜻을 같이 하기로 한 모양이던데…….”

육제후의 일인인 앵거스 백작은 몹시 갈등된다는 태도였다.

40대 초반에 가문을 물려받고 지금까지 19년간 육제후의 일인으로서 활동해온 앵거스 백작이었지만, 그는 정세판단에 약했다. 지금까지 ‘육제후의 두뇌’ 볼프강 란즈헬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작의 작위를 약속하고, 대륙정복을 달성하면 일등 공신으로 대우해주겠다고 하던데.”

이에 제이슨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공작의 작위나 대륙정복의 공신 대우가 저라고 탐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혼트 제국이 그걸 해내려면 바덴 강과 자금이 필요한데, 둘 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카르스 황제는 우리에게서 그 둘을 모두 빼앗을 생각인 겁니다.”

“어째서 안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가? 혼트 황실과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할 방도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게 내전을 유발시켜서 혼트 제국 내에 전쟁이 나게 만든 우리가 할 말입니까? 카르스 황제는 우리를 절대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제이슨은 열변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는 혼트 제국에게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내전에서 대승을 거둔 그 황제의 저력에 겁도 먹었지요.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낙관적인 생각만 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으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협력이란 같은 목적을 가진 상대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트 제국의 위협을 막는다는 같은 목적을 가진 레던 왕실만이 우리의 협력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카르스 황제의 목적은 우리가 가진 땅과 재산뿐입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님 역시 임종 전에 레던 왕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말인가?”

역시 아버지의 이름값은 약발이 먹히는 모양이었다. 앵거스 백작이 솔깃 하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끄응, 그럼 혼트 제국과 손잡는 일은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군.”

다행히 제이슨은 앵거스 백작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육제후 멤버들은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안타레스 백작의 언변에 넘어간 것이었다.

‘아버님께서 혼트 제국의 유목민족 독립에 실패하신 일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안타레스 백작 따위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말하자면 볼프강 란즈헬이 한 번 실패를 하자, 그와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안타레스 백작에게 시선이 가는 현상이었다.

제이슨 혼자만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왕실은 대체 뭘 하는 거지? 카록 리간드는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 즈음, 때맞춰서 한 가지 소식이 바덴 강 유역을 강타했다.

오러 마스터 출현!

오러 마스터 릭 페르난도 백작의 왕실특별군, 남부지역으로 주둔지 이전!

가장 큰 충격은 바스크 쿤트 백작에 이은 또 한 사람의 마스터가 탄생한 점이었다. 그것도 충성스런 왕실파 귀족가문인 쿤트 백작가에서 말이다. 레던 왕실에 또다시 큰 힘을 실어주는 계기였다.

바로 그 오러 마스터가 왕실특별군으로 개편된 3군단의 사령관이 되어서 남하하였다. 집단을 이룬 몬스터들을 무서운 속도로 섬멸시키며 남쪽으로 진군을 거듭한 끝에 바덴 강 유역과 가까운 지역에 주둔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너무도 빤하였다.

딴 생각 품지 말라는 육제후에 대한 경고였다.

일개 군단 하나에 겁먹을 사람은 육제후 중에 없었지만, 그 사령관이 오러 마스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러 마스터의 무위 자체도 무서울뿐더러, 그처럼 강력한 사령관을 따르는 병사들도 용기백배하여 덩달아 용맹해지는 법이었다.

릭이 왕실군 소속이 아니라 왕실 직속의, 자유지휘권을 가진 사령관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자신의 판단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전투적인 성격을 가진 바스크 쿤트의 아들이니 릭 또한 결코 온유한 성격은 아닐 터였다. 여차하면 싸우자고 덤비는 강적처럼 골치 아픈 게 없었다.

안타레스 백작의 뜻에 마음이 기울던 육제후는 그 사건을 계기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서 제이슨은 열심히 바덴 강 유역을 돌아다니며 설득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바쁜 행보는 결실을 거두어서 다른 두 백작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안타레스 백작과 린델 백작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불가능했다. 지리적인 요인이 문제로 작용했다.

린델 백작가는 혼트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위치여서, 누구보다도 혼트 제국의 위협을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린델 백작령에서 남서쪽으로 바덴 강 건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안타레스 백작령이었다.

지리상 혼트 제국과 가까운 그들이 카르스 황제와 손잡는 길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반면 앵거스 백작을 비롯한 나머지 네 사람의 육제후는 레던 왕실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왕실특별군이 주둔한 지역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로도크 백작가는 릭이 등장하자마자 마음을 바꿔버린 케이스였다.

그리고 카르스 황제도 마침내 움직였다.

***

「카르스 황제, 10만 대군을 이끌고 진군 개시!」

「륭겐 후작의 흑십자 기사단 합류!」

혼트 제국으로부터 첩보가 빗발쳤다.

안타레스 백작이 불온한 행보를 하는 가운데에 벌어진 사태라 레던 왕실은 물론 오리엔 왕실 또한 잔뜩 긴장하였다.

카르스 황제의 진군은 분명 바덴 강 유역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에릭 국왕은 즉시 1군단과 5군단을 남하시켰다. 오리엔 국왕도 왕실군의 정예 3만을 바덴 강 인근으로 급파하여 언제든 바덴 강에서 함선을 타고 육제후의 영토로 이동할 수 있게 조치하였다.

자칫 대전쟁의 서막이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론과 루이의 생각은 달랐다.

“혼트 제국은 아직 전쟁에 나설 타이밍이 아닙니다.”

“육제후와 협력한다 해도 전쟁 수행 자금을 확보하려면 일정 시간 교류를 가져야 합니다. 안타레스 백작이 치매 걸려서 전 재산을 갖다 바치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두 사람의 의견에 나는 다소 안심하면서도 의아해졌다.

“그럼 무슨 의도지? 10만 대군은 물론이고 흑십자 기사단까지 불렀잖아.”

내 물음에 제론이 답했다.

“그야 왕실특별군이 바덴 강 유역의 인접 지역에 주둔해서 육제후에게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지요. 혼트 제국도 군사력을 동원해 육제후에게 어필한 겁니다. 흑십자 기사단의 륭겐 후작은 페르난도 백작 각하에 대해 맞대응한 성격이지요.”

이어서 루이도 말했다.

“카르스 황제가 직접 움직인 것은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안타레스 백작과 린델 백작에게 혼트 제국의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바덴 강 유역에 왕실특별군이 나타나는 바람에 두 백작이 영지를 뜰 수가 없으니까, 카르스 황제가 아예 직접 온 겁니다. 과시적인 이벤트이지요.”

아…….

얘들 진짜 천재 맞네.

두 사람 의견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구나 싶었다. 에릭 국왕도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자 다소 안심한 눈치였다.

“다행이군. 아무튼 우리도 1, 5군단을 남하시켜서 대응했으니 다른 육제후 4인이 10만 대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일은 없겠지.”

“아마도 그 점을 염두에 두어서 오리엔 왕실도 병력을 급파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폐하.”

그건 그렇겠지.

오리엔 왕실에는 브리튼 공작이 있었다. 그쪽도 카르스 황제에게 당장 전쟁을 할 의도가 없음을 알고 형식상 모션만 취해준 것이겠지.

현재 육제후는 릭 형님의 등장과 제이슨의 부단한 노력으로 인해 총 4인이 레던 왕실과의 협력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였다.

린델 백작이 안타레스 백작의 설득에 넘어간 것은 아쉬웠으나, 그 양반은 나와 척 진 일도 있고 하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와인저장고에서 쓰론 블루 몇 병을 훔쳐간 것 때문에 앙심을 품었던가. 아하하.

아무튼 카르스 황제가 직접 움직인 사실 하나만으로 대륙이 이렇게 들썩일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존재감이었다. 그리고 그 무표정 무감정의 황제는 그런 자신의 존재감을 십분 이용하는 쇼맨십까지 갖췄다.

전쟁에 나선 그날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꽁꽁 감춰왔던 전생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 때문에 미래가 달라진 것인데, 카르스 황제의 위험성을 일찍 밝혀낸 것이 다행인지 실수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바랄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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