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80화 (280/529)

<-- 280 회: 12권 - 2장. 3군단장 -->

‘그거다!’

무의식중에 펼친 릭의 방어동작을 보고 바스크는 기뻐서 속으로 외쳤다.

그것은 륭겐 후작이 카록의 맹공을 막을 때 선보였던 동작과 똑같았던 것이다!

무아지경의 몰입에 빠져 있는 릭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목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바스크는 릭이 그 몰입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했다.

자칫 잘못해서 정신이 깨어나 버리면, 말 그대로 꿈에서 깬 것처럼 깨달음을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릴지도 몰랐으니까.

다만 릭을 상대하는 바스크의 검술이 점차 수준이 올라갔다. 방어 일변도에서 이따금씩 반격을 가하였고, 그중에는 오러 마스터의 무위가 깃든 수준 높은 공격이 포함되어 있었다. 릭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그것들을 막거나 피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싸움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칼싸움놀이에서 무인 대 무인의 대결로 변모되어갔다.

물론 여전히 릭이 수세에 몰려 있었으나, 피 말리는 쪽은 오히려 바스크였다.

릭이 저 경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평생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하여간 애비 고생시키는 데에는 뭐 있군.’

바스크는 내전에 참여했을 때보다도 더 긴장한 채 릭을 조심스럽게 상대했다.

퍼억! 퍽! 퍽!

목검이 호쾌하게 충돌했다.

릭은 이제 오러 마스터 수준의 무위에 자신의 스피디한 스타일을 섞어서 구사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검술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릭의 현란한 스피드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자 바스크는 좀 더 실력 발휘를 하기로 했다. 강인한 몸싸움으로 압박감을 주어서 릭의 공세에 제한을 가하는 전략이었다.

오러 마스터라는 압도적인 경지를 고려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체력조건은 건장한 체격과 강인한 완력을 가진 바스크가 훨씬 우세하였다. 뮤트 공작마저도 수세로 몰아넣을 정도로 강력한 바스크의 공격력은 호전적인 성정 외에도 그러한 체력조건이 뒷받침되고 있었던 것이다.

몸싸움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스크에 대하여, 릭은 좌우로 스텝을 밟아 정면충돌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뒤로 물러나면 순식간에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슬슬 결판을 지어야겠군.’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던 바스크는 때가 무르익었음을 느꼈다. 이윽고,

“차합!”

쿠아앙―

쩌렁쩌렁한 기합과 함께 바스크의 목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튀어나왔다.

오러 블레이드는 곧장 릭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들었다. 몸뚱이를 머리부터 두 쪽을 낼 기세였다.

놀란 릭은 반사적으로 목검을 비스듬히 들어서 방어를 취했다. 하지만 일개 목검이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낼 리 만무했기 때문에 릭의 목숨이 위태로워보였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대충돌의 여파로 개인 수련장 전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두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한 채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어? 어어?!”

오러 블레이드로 바스크의 필살일격을 막아낸 릭은 스스로도 놀라서 괴이한 소리를 냈다. 자신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라 진짜 오러 마스터의 그것이었다.

우지직― 콰직!

결국 두 사람의 목검은 고밀도로 응집된 오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바스크는 손잡이만 남은 목검을 휙 내다버리고는 얼빠진 표정을 한 아들에게 씨익 웃었다.

“축하한다.”

그제야 릭은 자신이 꿈에서도 염원하였던 것을 손에 넣었음을 깨달았다.

오러 마스터가 되기 위하여 피땀을 흘렸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뮤트 공작, 아버지, 륭겐 후작 등 직접 보았던 위대한 강자들의 무위 또한 생각났다.

검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 무인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지만 자각(自覺)하지 못하여서 찾아 해매는 무(武)의 진리였다.

죽을 것 같은 고난에 헐떡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와 마침내 릭은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아아……!”

복받치는 감격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모든 노력을 마침내 보상 받았다. 헛된 것이 아니었다.

릭은 아버지가 자신을 이끌어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몰랐으나, 무의 극의를 깨달은 지금은 ‘놀이’ 같은 그 대련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릭은 무릎을 꿇었다.

“……?!”

그 행동에 바스크는 놀랐다. 평소의 릭이었다면 자존심상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버님.”

“녀석…….”

바스크는 그런 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같은 길을 걷는 두 무인.

서로를 뛰어넘고 싶어 하는 투쟁심을 가진 두 사내.

하지만 그 이전에 혈연으로 맺어진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어떤 아비가 아들의 성취를 바라지 않을까.

“무슨 일입니까, 아버님!”

“주군!”

뒤늦게야 장남인 아서와 가문의 기사들이 수련장으로 몰려들었다. 저택 전체에 여파를 준 엄청난 충돌 탓에 놀라서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릭과 이를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바스크를 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릭아! 네가 해냈구나!”

아서가 가장 먼저 기뻐하며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오오오!”

“릭 공자께서!”

“또 한 사람의 오러 마스터가 탄생했다!”

기사들 역시 환희와 부러움이 동시에 느끼며 열광하였다.

그들의 환호 속에서 바스크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릭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녀석, 이제야 네가 제대로 된 눈높이를 찾았구나. 그래, 무릇 아들이라면 이렇듯 아버지를 존경해야지.”

그 말은 릭의 존경심을 썰물처럼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당해진 릭은 이내 분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예우를 갖췄더니만, 이 양반이 또 왜 살살 자존심을 자극한단 말인가?

릭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제 천재성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러기 힘드셨을 텐데, 절 도와주시다니 감사할 수밖에요.”

이번에는 바스크의 눈썹이 꿈틀했다. 흐뭇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놈은 잘 하다가 꼭 마무리를 망치는구나!”

“먼저 시비 건 게 누굽니까?!”

“불효막심한 놈!”

“청출어람의 진리를 몸소 실현하셨는데 이제 그만 제 천재성을 인정하시죠?”

“천재? 그럼 난 천재 애비다!”

“오랜만에 맞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말이 필요 없다! 검 뽑아!”

“누가 겁먹을 줄 아십니까?”

두 사람은 제각각 애검을 뽑아들었다.

“뭐, 뭐야? 갑자기 싸우는데?”

“실력을 겨루려고 하는 건가?”

“아냐. 말싸움을 하고 있잖아.”

“두 분 또 왜 저래?”

눈 깜짝할 사이에 평소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사이로 돌아간 두 사람. 이를 보던 아서와 기사들 또한 환호하기를 중단하고 당황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간에 바스크는 의도를 이루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3군단에 보낼 적임자가 탄생한 것이었다.

***

다음날.

“부디 폐하를 알현하면 예를 꼭 지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형님.”

“꼭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에이, 알겠다니까요.”

“꼭!”

“아 진짜! 제가 애입니까?”

짜증을 부리는 릭에게 아서가 핀잔했다.

“네 평소 행실이 있는데 내가 걱정이 안 되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카록 녀석이 왕성에서 ‘미치광이 정령사’라고 불리고 있다던데 너마저 정신 줄을 놓으면 쿤트 가문의 위상이 어떻겠느냐?”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어. 저도 스승님을 보고 배운 게 있어서 근엄하고 똑바른 기사 흉내 낼 줄 압니다. 저만 믿으십쇼, 형님!”

“그러니까 흉내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야호, 이제 나도 제자를 한 300명쯤 받아서 부려볼까?!”

릭은 아서의 당부를 다 듣지도 않고 휘파람을 불며 말 위에 올랐다.

“이놈아!”

“저 갑니다!”

릭을 말에 박차를 가하여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떠나는 동생의 뒷모습을 본 아서는 고개를 휘휘 젓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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