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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79화 (279/529)

<-- 279 회: 12권 - 2장. 3군단장 -->

바스크는 수련장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후 그는 목검 두 자루를 가져와 하나를 릭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라.”

“웬 목검입니까?”

“오러 마스터고 뭐고 다 머릿속에서 치워버리고 옛날 일을 떠올려보자꾸나.”

“……?”

의아해하는 릭에게 바스크는 웃으며 물었다.

“네가 이 아비에게 처음 검술을 배운 날을 기억하느냐? 벌써 몇 년 전인지 까마득하구나.”

“제가 일곱 살 때였죠.”

“그래그래. 그때 너는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지. 그땐 참 귀여웠었는데 지금은…….”

“노인네 되셨습니까? 옛날 일 떠올리며 넋두리 하고는.”

“시끄럽다, 이놈아. 아무튼 그때를 떠올려보아라. 그때 기분이 어땠느냐?”

바스크의 물음에 릭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야 뭐 신나서 기분 째졌죠. 그 전부터 검술 하고 싶어서 막대기 들고 동네 애들하고 뛰어다니고 했었는데.”

릭은 어릴 적의 일을 떠올렸다.

일곱 살 생일 때 처음 검술을 배우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물론 제대로 된 검술 수련은 아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목검을 주고는 대련을 해주었다. 거의 대련이 아니라 칼싸움놀이였다.

아버지는 마구잡이로 공격하다가 전혀 먹혀들지 않아서 화가 난 릭에게 검술의 기본 동작을 하나 가르쳐주었다. 그 기초 하나를 배운 릭은 마구잡이로 목검 들고 설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는 릭에게 검술을 가르쳐주었다. 고된 훈련보다는 거의 놀이처럼 대련을 하며 검술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싸움의 기법인지 채득하게 해주었다. 릭은 뛰어난 오성으로 스펀지처럼 검술을 몸에 익혔고, 뮤트 공작의 제자가 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도 재미있느냐? 검술.”

릭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안 그럼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이제 검술은 놀이가 아니었다.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코 재미있지 않은 고된 훈련을 견뎌내어야 했다. 단순히 놀이라고 생각해서는 그 혹독한 담금질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바스크는 껄껄 웃었다.

뛰어난 무인이 되는 방법은 하나였다. 무를 추구하는 삶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것.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서 대가가 된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보자꾸나.”

“그때요?”

“그래. 나와 처음 대련을 했던 일곱 살 때로 말이다. 그때 넌 지금보다 훨씬 신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더냐.”

“…….”

자신을 아직도 어린애 취급을 하는가 싶어서 릭은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저런 제안을 할 리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는 아버지이기 전에 무인이며, 자신이 목표로 하는 그 높은 경지를 밟은 존경할 만한 사내였다.

밑져야 본전.

“좋습니다.”

릭은 목검을 쥐고 일어섰다. 바스크 또한 목검을 들고 맞은편에 섰다. 그들 같은 무인에게 있어서는 이제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목검이었다.

“오러의 사용을 금지한다. 체내 운용도 하지 말고 그냥 칼싸움놀이나 하자꾸나.”

“……정말 절 놀리려는 거 아니지요?”

“내가 네 아비다 이 자식아. 왜 그렇게 날 못 믿느냐?”

“아버님을 못 믿는 문제가 아니라, 아버님과 저는 종류가 다르잖습니까.”

“종류?”

의아해진 바스크에게 릭이 말했다.

“왜 있잖습니까. 아버지는 범재타입인데 저는 천재타입 아닙니다. 서로 종류가 다른데 제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은 천재의 입장에 서본 적이 없으니까요.”

릭의 투정에 바스크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오냐, 천재 양반. 알겠으니까 한 번 실력이나 보자꾸나.”

“좋죠!”

릭은 오른발로 땅을 디디며 쏜살처럼 날아와 찌르기를 펼쳤다.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찌르기였다. 그러나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한 바스크는 목검을 횡으로 휘둘러 릭의 목을 노렸다. 릭은 날렵하게 앞뒤로 스텝을 밟으며 공격과 회피를 반복했다. 스피디하게 치고 빠지는 전형적인 릭의 검술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바스크는 대련을 중단시키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다.”

“뭐가요?”

“칼싸움놀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검술을 아예 펼치지 마라. 일곱 살 때처럼 그냥 나와 노는 거다.”

“나 참, 진심이십니까? 정말 저 놀리는 거 아녜요?”

“이 녀석이……. 널 조롱할 의도였다면, 너 따위 약골쯤이야 한 방에 힘 빠진 개구리처럼 납작 밟아줬겠지!”

한 방에…… 힘 빠진 개구리…….

이번에는 릭이 활활 치솟는 분노로 부르르 떨었다.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더욱 열 받는 것이었다.

“그럼 갑니다! 마구잡이로!”

“얼마든지 와라.”

릭은 무작정 달려들어서 목검을 휘둘렀다. 형식이 없이 마구잡이였지만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이다 보니 그 또한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스크는 오러 마스터.

가볍게 물러나 공격권에서 벗어나는 것 정도로도 공세를 무위로 돌려놓았다.

릭은 계속 바스크를 쫓으며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이따금씩 날아드는 반격에 흐름이 끊어지고는 했다.

‘제길! 정말로 날 어린애 다루듯이 하잖아?!’

아버지가 정말로 오러 마스터라는 것을 릭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가뿐한 아버지.

공격이 아무것도 통하지 않자 성질이 난 자신.

그러고 보니 정말로 일곱 살 시절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큭.’

뜬금없이 실소가 나왔다.

이상하게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지. 알았다고요. 정말 일곱 살짜리 애가 될 테니!’

검술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서 지우니 해방된 듯한 자유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이땐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동작은 비효율적이다, 허점이 노출되지 않게 방어를 튼튼히 해라 등등……. 그런 모든 관념이 사라지고 릭은 말 그래도 어린애 땡깡 부리듯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상대를 정면 가까이에 놓고 펄쩍 점프해서 머리를 공격하는가 하면, 발차기를 하기도 했다. 제대로 배운 무인이면 절대 하지 않을 유치한 동작들이었다.

“하핫! 그래, 그거다!”

바스크도 흥이 난다는 듯이 더욱 격렬하게 릭과 어울려주었다. 언제든 단 번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는 무인이 아닌 어린 아들을 상대해주는 아버지였다.

대련 같지 않은 대련이 계속될수록 릭은 점차 무아지경이 되었다. 정형성에서 벗어나 아무렇게나 움직여도 된다는 해방감에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할 필요를 못 느꼈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릭은 몸이 스스로 가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릭은 느끼지 못했다.

마음을 비우고 검술을 버리니 오히려 그의 공격은 점점 빠르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사라진 완전한 무념의 상태에서, 지금껏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최상의 검술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바스크는 내심 쾌재를 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아들이 천재라는 사실을.

처음 검술을 가르쳐주었을 때, 바스크는 릭의 천재성에 전율을 느꼈다.

검이라는 무기를 보다 잘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

그 검술의 본질을 릭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답게 마구잡이로 공격하는데도, 자신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검술의 기초 동작 하나를 가르쳐주니 순식간에 채득해버렸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지난 현재.

릭은 뮤트 공작의 휘하에서 검술을 배웠다. 지금껏 꾸준히 검술을 연마하였고, 또한 오러 마스터인 뮤트 공작의 완전한 검술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릭이 가진 천재성이라면 알고 있을 터였다. 검술의 극의가 무엇인지, 머리로는 몰라도 잠재된 본능으로는 알 것이 틀림없었다. 카록과 륭겐 후작의 대결을 보다가 실마리를 얻은 것이 그 증거였다.

다만 릭은 아직 자신의 껍데기를 버리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껏 공들여 만들어온 검술의 정형성을 버리지 못했기에 오러 마스터로의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바스크는 확신했다.

그 껍데기를 벗고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바스크는 이런 칼싸움놀이를 선택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릭을 잘 아는 아버지였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차앗!”

방어 일변도였던 바스크가 불쑥 릭의 가슴을 향해 목검을 찔러나갔다.

릭은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목검을 기울여 빗겨냈다.

‘그거다!’

무의식중에 펼친 릭의 방어동작을 보고 바스크는 기뻐서 속으로 외쳤다.

그것은 륭겐 후작이 카록의 맹공을 막을 때 선보였던 동작과 똑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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