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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76화 (27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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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 12권

1장. 대응책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시스 뱃속에 누가……?!”

줄리아는 내 헛소리를 타박하다가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는 경악하여 입을 쩌억 벌렸다.

진정하자, 나.

나는 시스의 뱃속에 있는 자그마한 생명체를 느끼며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임신이야! 내 아, 아이를 가졌다고!”

“꺄아악! 시스!”

줄리아는 환호성을 지르며 시스를 끌어안았다.

“……아이?”

시스는 보기 드물게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기 배를 바라보았다. 몇 번을 슥슥 쓰다듬더니, 이내 시스의 입가에 해맑은 웃음이 번졌다. 저렇게 기뻐하는 시스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흥분되고 떨린 적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했다.

내 아이라니! 시스가 내 아이를 가지다니!

가정적으로는 실패했던 전생의 경험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정령들…….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나 가족을 갖고 싶었는지 깨달았고,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느끼게 되었다.

전생과 다르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과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감격에 벅차올라, 나는 시스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시스!”

시스도 내 품에 안겨 같이 포옹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사랑을 느꼈다.

나는 속력을 최대로 높여서 레던 왕성에 빠르게 이르렀다. 음, 일단 이 경사를 모두에게 알리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샐러맨더에게 말했다.

“야, 가서 신나게 놀다 와라.”

-크헤헤헤!

내 체온에 깃들어 있던 샐러맨더가 광소를 터뜨리며 하늘 높이 뛰쳐나갔다.

이윽고 정령친화력이 대폭 소모되는가 싶더니, 거대한 불꽃을 하늘에 수놓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화르륵!

이윽고 불꽃으로 된 거대한 문장이 레던 왕성 상공에 나타났다.

<축· 임신! 리간드 백작가에 경사 났네!>

이 광경을 보며 나는 흐뭇해졌다.

이제 레던 왕성의 뒷골목에 사는 똥개까지도 이 경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그래, 내 아이가 생겼는데 저 정도는 되어야지.

반면 줄리아는 해쓱해진 얼굴로 날 보았다.

“너무 요란 법석한 거 아니에요? 폐하께서 계시는 왕궁 위에다가 저런 불꽃놀이라니…….”

“괜찮아, 괜찮아. 폐하도 이미 날 포기했어. 오히려 이건 나에게 출산휴가를 달라는 시위가 될 거야.”

“이 바쁜 시기에 무슨 출산휴가예요? 자기가 임신한 것도 아니면서. 북부대로 보수공사도 해야 할 것 아녜요?”

“얘야, 넌 대체 누구 편이니?”

“누구 편이겠어요! 어디 가서 욕먹지 않으려면 착실하게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지는 내 욕 하고 다니면서…….”

“뭐라고요?!”

줄리아가 쌍심지를 켜자 나는 움찔했다. 줄리아는 으스스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시스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여보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하세요, 알았죠?”

“쳇…….”

“대답 안 할래요?!”

“아, 알았어.”

아아. 난 왜 줄리아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걸까. 그러고 보니 청혼하기 전에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지. 그것 때문일 거야. 첫 단추를 잘못 꿴 거라고. 그래, 두 여자에게 동시에 프러포즈를 했으니 내가 죽일 놈이긴 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 딱 인생이구만.

나는 연신 궁시렁거리며 저택으로 날아들었다.

저택으로 돌아가자마자 집사인 니벨 영감에게 산파와 유모를 미리 구해놓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니벨 영감은 허허 웃었다.

“이미 구해놓으라고 사람을 시켰습니다.”

“헐, 벌써?”

“주인님께서 벌써 떠들썩하게 소문을 내셨잖습니까. 알아보지 않아도 산파와 유모 후보들이 알아서 모여들 겁니다.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런가? 알았어.”

“그보다는 시스 안주인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재료를 구해다놓아야겠군요.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차리도록 주방에 지시해놓겠습니다.”

“응.”

역시 사소한 일처리에서도 연륜이 보이는 니벨 영감이었다. 집사로 고용하기를 참 잘 했어.

그런데 그날 저녁 식사 때 이변이 발생했다.

산더미 같은 산해진미를 놓고도 시스가 눈이 뒤집히기는커녕 오늘따라 얌전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시스야, 속이 안 좋니? 맛이 없어?”

내 물음에 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는 적당히.”

순간 나는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시스는 조금씩 천천히 음식을 즐겼고, 줄리아의 2배 정도만 먹고서 식사를 마쳤다.

나는 정령과 공유된 감각으로 시스의 몸을 살폈지만 어디 아픈 곳은 없어 보였다.

“더 안 먹어도 되겠니?”

“과식은 몸에 안 좋아.”

거짓말 같은 시스의 대답에 줄리아가 손뼉을 쳤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여자아이가 그래야지. 과식을 해서 우리 아이가 뚱뚱보로 태어나면 안 되잖아. 맛있게 식사를 했으니까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

“응.”

줄리아와 시스는 사이좋게 손잡고 정원으로 나갔다.

놀라운 일이었다. 폭력적인 수준의 식사를 자랑하던 시스의 식탐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주방장이 달려와 오늘 식사가 마음에 안 들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주방장을 달래서 돌려보낸 후에 홀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농노 출신인 시스는 늘 굶주려 있었다. 가난으로 굶주렸고 가족을 잃고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가족애에도 굶주렸다.

이번 임신은 그런 시스의 굶주림을 모두 충족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늘 굶주려 있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잉태되었으니, 기나긴 굶주림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충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오늘 저녁부터 갑자기 폭식을 그만두게 된 것이 그 증거였다.

저택 밖의 동산에서 줄리아와 산책을 즐기고 있는 시스의 모습이 정령의 감각으로 느껴졌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의 풍경을 즐기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시스는 몹시도 아름다웠다.

비로소 과거의 상처를 딛고 행복해진 그 모습에 나 역시 절로 미소가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더 행복하게 해줄게, 시스.

***

출근하기 싫은 걸 줄리아가 억지로 쫓아냈다. 터덜터덜 힘없이 왕궁으로 출근하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축하 인사를 건네주었다. 내가 샐러맨더에게 시켜서 동네방네 알린 덕분이었다.

“부인의 임신을 축하드립니다, 백작 각하.”

출근한 루이가 내게 인사했다. 루이는 내가 시킨 대로 용병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저래 봬도 재정부상서이니 안전 문제에는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응, 고마워.”

“조만간 부인들께도 인사드릴 겸 찾아뵙겠습니다.”

“그래그래, 루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그런데 넌 언제 결혼할 생각이야?”

“물론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딱 잘라 말하는 루이.

하긴, 전생 때도 루이 콘체른은 독신이었다. 전 재산을 빈민구제에 힘쓰는 종교재단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무래도 성격상 워커홀릭이라서 가족 같은 게 거추장스러운 모양이었다.

“여어, 백작 각하. 어제의 불놀이는 잘 봤습니다.”

나타났군. 워커홀릭 루이와는 정반대인 게으름뱅이가.

제론은 마구 구겨지고 너절해진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옷을 안 갈아입은 꼴은 보니 또 술집에서 밤을 지새운 모양이었다. 출근한 게 용하다.

정말인지 보면 볼수록 한심하군. 굉장한 재능을 타고난 주제에 저 꼴을 하고 다닌다니. 하기야 나도 편리한 정령술이 없었으면 쟤처럼 저러고 다녔을지도 몰라.

“넌 정말 결혼을 해야겠다.”

“갑자기 웬 시비이십니까?”

“시비라니? 어서 결혼해야 네 뒷바라지를 해줄 마누라가 생길 게 아냐.”

“여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지요.”

제론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얼레? 쟤는 결혼할 생각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제론이 결혼을 하면 레던 왕실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가정이 생기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일을 할 게 아닌가.

나는 제론에게 다가가 은근히 말했다.

“줄리아가 사교계에서 마당발인 거 알지?”

“알지요. 리간드 백작부인 줄리아를 모르면 레던 왕성의 귀족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줄리아에게 부탁해서 네 혼처나 알아봐줄까?”

“……정말이십니까?”

제론은 ‘네가 웬일로 좋은 얘길 꺼내느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저놈이, 나에 대한 불신감이 상당하군.

“그래. 내가 그런 일로 허언을 하겠어?”

“그럼 속은 셈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속은 셈 치지 마 이 자식아. 기껏 호의를 베풀었더니…….”

그렇게 제론과 투덕투덕 입씨름을 하며 다투는데, 문득 왕궁의 시종 하나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리간드 백작 각하, 데커드 자작님, 콘체른 남작님. 세 분을 집무실로 뫼시라는 폐하의 어명입니다.”

아침부터 에릭 국왕이 우리를 부르는군.

아무래도 내가 아버지 결혼식에서 안타레스 백작 등의 중요인물을 만난 결과를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침 잘됐다. 안타레스 백작이 이미 혼트 황실과 접촉했으며, 이미 그쪽으로 마음을 돌린 사실을 알리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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