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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66화 (266/529)

<-- 266 회: 11권 - 6장. 대면 -->

“귀신같은 작자로군.”

제이슨은 날 보며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미란다에게 수시로 ‘어머니, 제 동생을 너무 많이 낳지는 말아주세요’ 같은 농담을 건네 그녀를 수줍어하게 만들었다.

미란다는 미리 준비된 신부 대기실에 들어갔다. 이제 결혼식 전까지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제이슨은 나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다.

예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던 아버지는 제이슨을 보자 반가움을 표했다.

“란즈헬 백작.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이번 혼담의 양가 수장이 마침내 만난 셈이었다.

“이번 결혼식이 왕실과 육제후가 화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빌겠네.”

“나날이 상황이 심각해지니 그래야 할 겁니다.”

입에 발린 말을 할 줄 모르는 두 사람이었기에 대화는 형식적이고 딱딱하게 끝났다. 내가 아버지였으면 예쁜 여동생 줘서 고맙다고 깐죽거렸을 텐데.

때마침 하인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주인님, 안타레스 백작가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납셨군, 안타레스 백작.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그래다오.”

저택 정문으로 향하면서 나는 약간의 기대감이 생겼다.

존 안타레스 백작 또한 전생 때 역사를 좌우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주로 어리석은 인물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유명 인사를 이렇게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생긴 나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안타레스 백작의 등장은 화려했다. 마차는 무려 여섯 마리의 말이 이끄는 호화로운 것이었고, 데려온 수행원의 숫자는 혼담 당사자인 란즈헬 백작가보다도 2배나 많았다. 호위기사들은 하나같이 번쩍이는 비싼 갑옷으로 무장했다. 그야말로 왕의 행차에 비견될 정도였다. 아니, 에릭 국왕도 소탈해서 저렇게 화려하게 안 다닌다.

저러한 모습을 보면 안타레스 백작이 과시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물임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거기다가 혼트 제국과 손잡는다는 발상을 낸 것을 보면, 그가 주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사실이 짐작 가능했다.

왜냐고?

안타레스 백작은 육제후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정국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육제후의 두뇌’라 불린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육제후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죽자마자 육제후 모임에서 카르스 황제와 손잡자는 위험한 발상을 꺼냈다. 혼트 황실과 대립했던 볼프강 란즈헬 백작과는 정반대의 착상이었다.

이는 안타레스 백작이 그동안 자신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느꼈다는 뜻이다. 오판의 배경에는 무모한 짓을 해서라도 자기가 주도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었던 것이다.

뭐, 거창하게 말해봐야 요약하면 전형적인 권력 중독자다. 어느 모임이든 자기가 리더가 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인간이 꼭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호화로운 마차에서 안타레스 백작이 내렸다. 호위기사들의 도움 없이 혼자 가뿐하게 내리는 모습을 보니 고령에도 건강이 좋은 모양이었다.

겉보기에는 60대 중반쯤 된 노인 같았지만 실제 나이는 80세를 넘겼다고 들었다. 그래, 돈이 썩어나니 건강관리야 철저하게 했겠지.

그래도 부유한 귀족은 주로 쾌락을 탐하며 술과 여자를 끼고 살며 건강을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건강한 안타레스 백작은 욕망에 대하여 절제적인 성격임을 의미했다. 아니면 모든 욕망이 권력욕으로 쏠려 있거나.

“쿤트 백작가에서 나왔나?”

안타레스 백작은 날 보며 물었다. 초면이니 날 알아볼 리 없었다.

“카록 리간드 백작입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안타레스 백작님.”

그러자 안타레스 백작은 짐짓 놀란 얼굴을 했다.

“헐헐, 왕실의 차기 재상이 내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군. 반갑네, 리간드 백작.”

우리는 악수를 하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쿤트 백작가에서 나에게까지 초대장을 보내올 줄은 몰랐는데, 이는 자네가 의도한 바겠지. 안 그러한가?”

“레던 왕국의 명사이신 안타레스 백작님께 초대장을 보낸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직설적인 대화로 풀어나갈 상대가 아니었다.

“폐하를 보위하는 젊은 인재들 중 으뜸이라는 자네를 직접 만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세.”

“물론 그래야지요.”

나는 안타레스 백작을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

그날 저녁, 연회장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왕실파의 귀족들은 물론이고 육제후파 귀족들까지도 많이들 파티에 참석했다. 육제후 가문 란즈헬 백작가와 왕실파 가문 쿤트 백작가의 혼담이니 그 정치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결국 파티에 참석한 육제후는 제이슨과 안타레스 백작 외에는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안타레스 백작이 왔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오리엔 왕국에서도 꽤나 거물급 손님이 얼굴을 내비쳤다. 그는 바로,

“오랜만입니다, 리간드 백작. 못 본 사이에 작위가 껑충 뛰셨군요.”

브리튼 공작가의 삼남인 라엘이었다. 조엘 브리튼 공작의 사실상의 후계자인 라엘은 일전에도 세렌스 공주와 함께 왔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로 쿤트 백작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야, 라엘 경도 못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지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몇 명의 여자와 만납니까?”

“하하, 여전히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군요. 누가 들으면 제가 바, 바람둥이인 줄 착각하겠습니다.”

라엘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보니 ‘바람둥이’란 꼬리표가 나름 콤플렉스인 모양이었다.

라엘.

여전히 놀리고 싶은 인간이군.

“에이, 여자가 많으면 바람둥이지요. 그래도 남자에게 여자 많은 것도 능력은 능력이니 검술에 이어 라엘 경의 또 다른 재능을 발휘하시는 건…….”

“전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한 여자만 바라보았단 말입니다!”

“대신 한 여자를 오래 바라보지는 않았고요?”

“그, 그건…….”

당황한 라엘에게 나는 히죽거렸다.

“그게 바람둥이죠. 이야, 여자 마스터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부친께서는 오러 마스터이고 본인은 여자 마스터, 캬…….”

라엘의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여전히 놀리면 놀릴수록 재미있는 라엘 브리튼.

사실 그는 바람둥이라 불릴 정도로 경박한 성품이 절대 아니었다. 다만 너무 완벽한 탓에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알아서 달라붙었을 테지.

그래서 더 재수 없다고! 누구는 전생 때 한 여자도 못 다스려서 평생을 외롭게 살았었는데!

나는 일그러진(?) 질투심에 라엘을 계속 놀려줬다. ‘여자 마스터’라고 놀리니 무척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여자 마스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하하.

그런데 라엘도 지지 않고 반격했다.

“그런 방면에서는 리간드 백작님이야말로 재능을 꽃피우시지 않습니까?”

“에이, 여자 마스터이신 라엘 경 앞에서 마누라 둘 둔 것 정도로 비교가 되겠습니까?”

“세 명이 될 지도 모르지요.”

“예? 셋?”

“세렌스 공주 저하께서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나는 움찔했다.

“요즘 오리엔 왕실에서는 세 번째로 좋으니 혼담을 추진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레던 왕실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계시는 백작님의 능력을 보고 국왕 폐하께서 다시 고려하시는 것이지요.”

“하, 하하하, 농담도 참 재미있게…….”

“글쎄요. 농담일지 진담일지는 지켜봐야 알겠지요.”

시, 싫어! 줄리아가 날 죽일 거야!

“아실지 모르겠지만 요즘 오리엔 왕실에서 제 발언권이 꽤 강해졌습니다. 기필코 공주 저하를 리간드 백작님께 보내야 한다고 진언하면…….”

“라엘 경, 우리 이러지 맙시다. 참, 목은 안 마르십니까? 제가 마침 쓰론 블루 한 병을 갖고 있는데.”

“흐음, 괜찮은 술을 갖고 계시는군요. 천박한 바람둥이인 제가 그런 술을 마실 자격이나 되겠습니까.”

“에이, 누가 라엘 경더러 바람둥이랍니까? 자자, 어서 이리로…….”

나는 린델 백작가에 침입했을 때 훔쳐왔던 최고급 포도주를 꺼내서 라엘을 달래주어야 했다.

쳇, 놀려먹을 사람이 하나 줄어들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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