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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65화 (265/529)

<-- 265 회: 11권 - 6장. 대면 -->

“아!”

그 순간 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뮤트 공작가가 템플 오브 나이트(Temple of knight)라고 불리듯이 쿤트 백작가 또한 무인들의 성지가 되도록 꾸미면 어떨까?

쿤트 가문은 오러 마스터가 된 아버지는 물론 뮤트 공작의 애제자인 릭 형님도 있으니 충분히 무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왕 만들 숙소, 잘 꾸며놓아서 언제든 무인들이 방문할 수 있게 하면 좋을 듯싶었다.

뭐든 잘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상인 정신이 뜬금없이 발동된 것이다.

나는 신중하게 숙소의 구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단 무인들이 지낼 거처이니 수련장이 없으면 섭섭하다. 각지에서 온 무인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었다. 초면에 다른 무인을 보면 실력을 겨루고 싶은 것이 그들의 생리, 남자의 심리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대련을 해도 쉽게 훼손되지 않도록 튼튼한 수련장을 만드는 게 좋을 듯싶었다. 뭐, 내 정령술이면 오러로 쳐도 쉽게 안 부서지는 강도로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하니까.

그리고 무인에게 있어 싸움 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은 싸움 구경! 숙소에서도 창밖으로 수련장을 구경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았다가 수련장에서 신나게 겨루는 다른 무인을 보면, 어떤 무인이라도 호승심이 동하여서 냉큼 무기를 들고 나서서 끼어들어 흥을 더할 터였다. 매일 매일 대련이 끊이질 않는 무인들의 파티장이라, 생각할수록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아버지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할 듯했다.

계단이나 화장실 등의 구조까지 대략 구상하자 만들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수련장. 수십 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만들어야지. 이왕 만들어주기로 한 것, 정령친화력을 아끼지 말고 퍼부어야지.

나는 정령친화력을 쏟아 부어서 둥그런 모양의 수련장을 만들어냈다. 직경이 60미터나 되는 드넓은 수련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닥은 흙을 뭉쳐서 반듯하게 깔았는데 오러로 때려도 약간의 균열만 생길 정도로 단단하게 했다.

이어서 둥그런 수련장을 감싸는 모양으로 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이는 지진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건물의 구조를 생각해서 쌓아올려야 하니, 정령들과 감각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모되는 정령친화력은 물론이고 말이다.

“오오! 카록 리간드 백작이다!”

“정령술로 건축물을 만들고 있어!”

“직접 보니 대단하군!”

어느새 모여든 구경꾼들이 저마다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래, 땅에서 건물이 솟아나는 게 흔한 구경거리는 아니지.

이미 사람들 시선에는 면역이 된 터라(사실 내가 워낙 눈에 띄는 짓을 많이 하긴 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작업에 열중했다.

원형 수련장을 둥글게 감싼 특이한 형태의 4층 건물. 그 안에는 침대와 옷걸이 등이 들어갈 정도의 넓이로 방을 50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치형으로 입구를 뚫어놓자 작업이 끝났다.

“오오오!”

“저렇게 생긴 건물은 처음 보는군. 대체 뭘 만든 거지?”

“정령술로 저런 대단한 건축물을 만들다니. 리간드 백작은 혼자서 도시 하나를 만들 수 있겠어.”

“그뿐인가? 성도 쌓겠군!”

그래그래, 마음대로 상상해라. 그러고 보니 정령술로 성도 만들 수 있긴 하겠네. 나중에 내 영지에 방문하면 한 번 시도해봐야지.

나는 하인을 시켜서 아서 형님에게 기별했다.

쿤트 백작가의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침구류와 간단한 옷걸이 따위를 옮기기 시작했다. 아서 형님은 나와 함께 급조된 숙소를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훨씬 멋지구나. 중앙에 이토록 넓은 수련장을 배치한 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 무인들의 숙소로 적합하겠어.”

“준비가 끝나고 무인들을 이곳으로 안내하면서 한 가지 이벤트를 추가하시면 효과가 좋을 겁니다.”

“어떤 이벤트 말이냐?”

“리처드 벅 경과 하딘 경을 불러다가 이곳에서 대련하게 하십시오. 그럼 술과 음식만 가져다주기만 해도 무인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잘 놀 겁니다.”

“그렇구나!”

아서 형님은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박수를 쳤다.

“탁월한 생각이다. 네가 큰일을 하다 보니 나날이 지혜로워지는구나.”

“에이 참, 형님도. 이 막둥이야 원래 어릴 때부터 재간둥이였잖습니까.”

“하하핫! 녀석!”

아서 형님은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웃었다.

그날 아서 형님은 구름떼처럼 모여든 무인들을 내가 만든 숙소로 안내했다. 그리고 내 조언대로 리처드 벅과 하딘의 대련을 여흥삼아 보여주었다. 쿤트 가문 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두 기사는 멋진 대련으로 구경하던 무인들을 흥분케 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잔뜩 흥이 난 무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실력을 겨루기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잘 놀았다.

그곳은 무인들을 위한 훌륭한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묵는 숙소는 창밖을 통해 수련장을 지켜볼 수 있어서 다른 무인들이 대련하는 모습을 침대에 앉아서 구경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곧장 무기를 들고 수련장에 나갈 수 있었다.

무인들이 그곳에 머물며 서로 대련도 하고 수련도 하며 자신들만의 축제를 벌이자, 무인이 아닌 손님들까지도 구경을 하러 방문하고는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 무인들의 숙소는 ‘무투장’이라 불리며 하루아침에 쿤트 가문의 명물이 되었다. 희한하게 나는 관광명소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버지까지도 검을 들고 무투장으로 달려가려는 걸 아서 형님이 뜯어말려야 했다. 새신랑이 식전부터 설쳐서 되겠느냐며 하다못해 결혼식을 마치고 가보라는 충고였다. 지당한 말이어서 아버지는 그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버지가 전보다 더 아서 형님에게 약해졌는데,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궂은일을 아서 형님이 모두 도맡아온 점, 오러 마스터가 되는 데에 아서 형님의 충고도 한 몫 한 점, 그리고 조금씩 말문이 트인 귀염둥이 엘레네의 아버지가 아서 형님이란 점 등. 쿤트 가문은 이미 아서 형님의 천하였다.

***

한동안 무투장 때문에 떠들썩했던 쿤트 영지는 란즈헬 백작가의 손님 일행이 도착하자 더욱 화제가 만발하였다.

육제후의 일인인 제이슨 란즈헬 백작.

그의 여동생이자 이제 곧 오러 마스터의 아내가 될 미란다 제드.

이번 파티의 주연이 도착한 것이었다.

미란다 제드.

비록 란즈헬 백작가라는 대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남편 제드 자작을 일찍 여의어서 20대 초반에 미망인이 되어버린 불행을 겪은 여인. 그러나 이번에 오러 마스터의 아내가 됨으로서 인생이 다시금 꽃피게 되었다.

그리고 제이슨 란즈헬 백작.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육제후의 두뇌’라 불린 전대 란즈헬 백작의 맏아들로, 부친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임으로서 레던 왕국 정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나는 바쁜 아서 형님을 대신하여 마중을 나갔다.

“이야, 어머님! 도착하셨군요.”

나는 넉살 좋게 미란다를 어머님이라 부르며 웃었다. 체구가 작고 귀엽게 생긴 미란다는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나는 그 옆에 있는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외삼촌?”

“집어치워.”

“그러죠, 란즈헬 백작님.”

예상대로의 반응. 나는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시국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쪽은 여전히 팔자 좋은 얼굴을 하고 있군.”

“왜요? 안타레스 백작이 반역모의라도 한답니까?”

“……?!”

내 장난스런 대꾸에 제이슨은 대경실색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확인 차원에서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인데, 제이슨의 반응을 보니 내 예상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이것 참, 그 노인네가 전생에 이어 지금도 똑같은 삽질을 반복하기 시작했다니 골치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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