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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61화 (261/529)

<-- 261 회: 11권 - 4장. 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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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을 긴축해서 자금을 확보해야 합니다.”

에릭 국왕을 알현하여서 한 말이었다. 듀론 후작도 한 자리에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에릭 국왕이 그 연유를 묻자 내가 설명했다.

“오리엔 왕국과 관세 협정을 맺고 공상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레던 왕국 북부의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금이 있다면 왕실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혼트 제국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아니냐.”

“혼트 제국은 얼마 전에 내전을 끝마친 상태라 아직 대규모의 원정을 감행할 만한 재정적인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혼트 제국의 위협이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방비를 충분히 하면서도, 그와 별개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듀론 후작이 물었다.

“재정을 긴축해서 확보한 자금은 어디에 투입하고 싶은 겐가?”

“북부대로의 보수공사입니다.”

내 말에 그건 예상 못했다는 듯 에릭 국왕과 듀론 후작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냐? 지금 북부대로를 보수하겠다고…….”

“폐하의 청각은 아무 이상이 없으십니다.”

내 대꾸에 에릭 국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북부대로를 보수하겠다고? 한두 푼이 드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 재정을 좀 긴축한다고 해도 그만한 자금을 확보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릴 텐데.”

“보수된 북부대로로 이익을 얻게 될 북부의 영주들과 상인들에게 지원금을 받으면 됩니다.”

“그 상인이라면 자네도 포함되겠군.”

듀론 후작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만 레디나를 지원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10만 레디나는 내 입장에서도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차기 재상으로서 에릭 국왕의 신임에 보답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꺼이 그 금액을 내놓기로 했다. 게다가 린델 백작에게 뜯어낸 15만 레디나가 있었기 때문에 내 재정 상태에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아무튼 10만 레디나는 북부대로 보수공사에 대한 내 강력한 의지를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에릭 국왕이 물었다.

“재정을 긴축한다고 했을 때 언제쯤 공사에 착수할 수 있겠느냐?”

“1년 안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폐하.”

“1년? 그렇게 빨리?”

이번에도 두 사람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듀론 후작은 우려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리간드 백작. 그대의 의지는 잘 알겠네만, 레던 왕실은 얼마 전까지는 만성적인 재정 부족에 시달렸었네. 지금도 충분히 왕실의 재정이 신중하게 쓰이고 있네만, 여기서 더 쥐어짤 게 남아있단 말인가?”

“제가 구상한 재정 긴축 안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재상 보좌에 임명된 뒤로 줄곧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제안서를 에릭 국왕에게 제출했다. 정말인지, 내 일생일대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릭 국왕은 제안서를 읽기 시작했다. 에릭 국왕을 위하여 복잡한 내용은 생략하고 간결하게 개념을 서술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에릭 국왕은 감탄한 얼굴이 되었고, 제안서를 건네받은 듀론 후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사부의 예산을 감축하는 안건이니 데커드 자작의 의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폐하.”

“군사부상서 데커드 자작과 재정부상서인 콘체른 남작도 부르시오.”

“알겠습니다.”

에릭 국왕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얘기해보도록 하지. 루이와 제론 두 사람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니까.”

“예, 폐하.”

그러고 보니 곧 점심때로군. 점심 식사는 집으로 날아가서 마누라들이랑 해야겠어. 이럴 땐 집이 직장에서 가까운 게 좋다니까.

***

솔직히 말해서 그간 많은 업적을 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제론, 루이, 에반 같은 천재들보다 더 똑똑하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내 업적의 대부분은 전생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알고 있다는 특수성이 많이 작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봐라.

원인과 결과를 이미 한 번 보았다.

전생의 90년 인생 동안 역사적으로 벌어진 사건과 그 원인,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아울러 후세의 사가(史家)들의 평가까지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현 국제정세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파악하고 남들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생과 현재는 달라진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핵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러한 덕에 나는 제론, 루이, 에반 같은 천재보다 더 큰 공적을 쌓아서 이 자리에 이른 것이다. 내 능력 덕택이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이번 재정 긴축 계획만큼은 다르다.

순전히 내 능력으로 완성한 역작!

상인으로 살아온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짜인 과감하면서도 빈틈없는 계획이었다.

상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100개의 상품을 만들어서 100개의 상품을 모두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주문을 받고 나서 상품을 확보하려고 하면 늦기 때문에, 얼마나 팔릴지를 예측하고서 상품을 미리 확보해놓아야 한다.

상품을 너무 적게 확보하면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너무 많이 확보하면 팔고 남은 재고를 떠안아야 한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상인에게 치명적이다. 50개의 상품만 팔 수 있는데 100개를 만들어놓으면, 남은 50개만큼의 생산비용과 그 재고의 보관비용을 떠안아야 하니 큰 적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유통관리다.

그래서 줄리아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카록 병기점을 경영하면서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는 그녀의 능력은 과연 ‘황금의 여인’이라 불릴 만했다. 난 줄리아 덕을 봐서 벼락부자가 되었고.

그 유통을 왕실군의 보급체계에 적용하여 투입하는 군수물자의 절감을 노린 것이 바로 내 재정 긴축안의 핵심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에릭 국왕의 집무실로 갔다. 듀론 후작 외에도 제론, 루이가 이미 모여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에릭 국왕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자 나는 내 재정 긴축 안에 대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계획서를 다들 읽어봤을 테지만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였다.

“왕실군의 일곱 개 군단은 레던 왕국의 여러 지역에 걸쳐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 일곱 군단을 지원하는 군수사령부 또한 세 지역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세 군수사령부는 일곱 군단에 군수물자를 정기적으로 지원하며 필요시를 대비하여 여유분을 더 저장하고 있습니다.”

다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도 모두들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더욱이 수년 전에 내전까지 치렀던 에릭 국왕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때 왕실군에 투입되는 군수물자는 각 군단에 전달되는 것 외에 군수사령부가 보유해야 하는 예비물량까지, 실제 사용하는 물량의 2배가 소요됩니다. 뿐만 아니라 세 군수사령부를 운영하는데 드는 자금은 물론이고 군수물자의 재고관리비용까지 지출됩니다. 저는 이러한 지출비용을 절감해서 왕실 재정의 긴축을 이르는 방안을 모색해보았습니다.”

나는 계속 설명했다.

“바로 세 군수사령부를 하나의 통합군수사령부로 합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통합군수사령부의 역할은 각 군단이 필요로 하는 군수물자의 물량을 확인하고 왕실 재정부에 요청하고, 예비 군수물자를 보관하지 않고 오로지 왕실로부터 인계받은 물자를 각 군단에 분배·수송하는 역할만을 맡게 합니다.”

군수사령부가 하나로 통합화되면 군수지원관리가 훨씬 간편해진다.

게다가 나는 군수사령부가 예비 군수물자를 따로 보유할 필요가 없는 보급망을 구상했다. 왕실에서 군수사령부를 거쳐서 각 군단까지 단번에 전달되는 빠른 물류망을 확립시키는 것이다.

상인은 상품이 앞으로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각 군단이 소요하는 물량은 정해져 있었다. 100이 필요할 때 100을 곧바로 보내주는 보급망을 확보하면 군대 보급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비용 절감 효과 외에도 일처리가 훨씬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통합군수사령부가 왕실 재정부와 긴밀히 연계되면서 왕실군에 대한 왕실의 통제력이 강화된다. 통제가 강력해지면 군장교의 비리를 억제할 수 있다. 본래 유통망이 복잡할수록 중간에서 비리가 많아지는 법이거든.

그때 듀론 후작이 의문을 제기했다.

“군수사령부가 세 지역에 설치되어 있고 예비 군수물자를 보유하는 이유는 전쟁이 발생할 시에도 빠르고 안전하게 보급을 하기 위해서인데, 하나로 통합하고 예비 군수물자까지 보유하지 않게 하면 유사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유사시가 되면 통합군수사령부에서 군수물자와 함께 수송부대를 급파합니다. 각 군단이 상시 보유한 군수물자면 그 보급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여력이 충분할 겁니다.”

“유사시를 대비한 안전장치로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는 제론이 의견을 제시했다.

“유사시가 되면 통합군수사령부의 보급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가까운 영지로부터 지원을 받기로 말입니다. 왕실군 군단에 제공한 군수물자는 차후 왕실이 갚아주는 것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듣고서 에릭 국왕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듀론 후작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차피 혼트 제국군이 침공해온다면 재정이 부족한 그들 특성상 군수물자가 많이 소요되는 장기전은 벌이지 않을 테니, 각 군단이 상시 보유하고 있는 물자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탁월한 구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폐하.”

“그런가.”

만족스러워진 에릭 국왕은 나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또 한 건을 해내는군, 리간드 백작.”

“칭찬은 결과가 나온 뒤에 받아도 충분할 듯싶습니다, 폐하.”

“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이제 북부도로 보수공사 문제를 이야기하지.”

이번에는 나는 북부도로를 보수해야 할 필요성과 그 이점에 대하여 열변을 토해야 했다.

북부도로가 보수되어서 상인의 통행이 활발해지면 오리엔 왕국과 맺은 관세협정과 공상제도 등과 맞물려서 레던 왕국 북부의 경제가 살아난다.

게다가 각 군단에 가는 보급 또한 북부대로를 통해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북부대로의 또 다른 역할은 혼트 제국의 침략 시 오리엔 왕국의 지원군을 빨리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몇 시간째 이어진 회의 끝에 나는 에릭 국왕에게 내 계획을 모두 승인받았다.

이제부터야 본격적으로 나의 국정운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

그렇게 재정 긴축을 위하여 통합군수사령부를 출범시키기에 앞서서 루이가 한 가지 건의를 하였다.

“갑작스런 보급체계의 변화에 왕실군의 반발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으로, 먼저 감사를 대거 파견하여서 보급을 담당하는 군장교의 비리를 철저히 적발함이 어떻습니까?”

에릭 국왕은 그것을 옳다 여겼다. 군장교의 비리를 대거 적발하고 나면 통합군수사령부를 출범시키는 명분이 서는 것이었다.

감사 책임자로는 루이가 임명되었다.

혼자서 열 사람 몫을 한다는 행정의 달인인 루이라면 왕실군의 보급에 존재하는 행정적인 오류나 관리부실, 비리 등을 누구보다도 잘 적발할 수 있을 터였다.

음, 하기야 전생 때도 레던 왕국 총독이 되어서 레던 왕국 귀족을 탄압한 루이 아닌가. 이런 일은 아주 적성에 맞을 거야.

그렇게 레던 왕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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