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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57화 (257/529)

<-- 257 회: 11권 - 2장. 리간드 백작가의 저택(2) -->

***

레던 왕성 교외(郊外)의 북동쪽에 빈 벌판이 있다. 이곳이 바로 왕실로부터 임대 받은 땅으로, 리간드 백작가의 저택은 이곳에 세워져야 한다.

땅을 둘러본 파오니 남작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주변이 너무 황량합니다. 아름다운 건축물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빛을 발할 텐데…….”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문득 나에게 물었다.

“백작 각하. 혹시 여기다가 산을 만드실 수 있으십니까?”

“산?”

“예. 높이 200미터쯤 되는 작은 동산을 만들고 그 위에 저택을 짓는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은 한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천사들의 성지라는 콘셉트를 제대로 연출하기 위함입니다.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라서 이대로는 저택을 지어봤자 그 예술성을 100% 살릴 수 없게 됩니다. 이 저택은 마땅히 경외를 받아야 합니다.”

“앗! 나도 찬성이에요. 경외 받고 싶어요!”

빠지지 않고 끼어들어서 한 마디 하는 줄리아. 그래, 너답구나.

“그래? 뭐, 알았어.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조만간 이 나라의 재상이 될 남자(나)의 저택이었다. 그냥 평범한 저택으로는 체면이 살지 않는다. 내가 속물이라서가 아니라, 귀족이란 작자들은 집이나 의복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예쁜 마누라들이 살 보금자리이니만큼, 나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을 꾸미고 싶었다.

나는 노움에게 지시를 내렸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정령친화력이 대폭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의 땅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눈 깜짝할 사이에 200미터쯤 되는 높이의 야트막한 동산이 생겨났다.

동산 꼭대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귀염둥이가 폴짝 날아와 내 어깨에 착지했다.

-아빠, 됐지? 정확히 200미터야.

“응, 너무너무 잘했어.”

-헤헤헤.

파오니 남작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주먹을 불끈 쥐며 흥분했다.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다니, 백작 각하께서는 그야말로 신이십니다! 건축의 신!”

“신은 무슨. 난 그저 잘생긴 정령사일 뿐이야.”

“…….”

파오니 남작의 표정에서 존경의 기색이 싹 사라져버렸다. 줄리아도 날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모두의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살짝 고개를 돌려 외면해야 했다. 불만이냐?! 이 정도면 잘 생긴 거 맞잖아!

겸연쩍어진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잽싸게 말을 돌렸다.

“그럼 슬슬 저택을 지어볼까?”

“예. 이대로 지으시면 됩니다.”

파오니 남작은 저택 모형과 설계도를 모두 보여주었다. 그것들을 흘깃 본 노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전부 기억했어!

“어휴, 천재 같으니라고. 한 번 보고 싹 다 외우는구나.”

-헤헤, 응!

“잠깐! 저택의 색깔은 하얀색 계통이 좋겠습니다만, 혹시 가능하겠는지요?”

파오니 남작의 물음에 나는 노움을 쳐다보았다. 노움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 수 있어!

“그럼 부탁할게.”

-맡겨줘, 아빠.

노움은 또다시 삽을 들고 동산 위로 쏜살같이 뛰어올라갔다. 자기 덩치만 한 삽을 들고 무서운 스피드로 뛰어올라가는 14살 남짓한 소녀라니. 너무 귀엽잖아, 젠장!

이윽고 동산 꼭대기에 흙덩어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파오니 남작이 원한 대로 토질이 하얀 흙덩어리였다.

대지의 흙 중에서 하얀 흙을 골라내는 것이 까다로웠던지 정령친화력의 소모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으음!”

머리가 띵하군.

하지만 충분히 버틸 만은 했다. 예전처럼 정령친화력을 고갈해서 기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꿈틀거리며 거대한 흙덩어리가 저택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기본 골격이 만들어지자 기둥과 벽에서 아름다운 천사들이 나타났다.

“와아! 아름다워!”

“이렇게 멋질 데가!”

줄리아와 파오니 남작이 연신 감탄을 했다.

흙덩어리가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어가는 과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했다.

활짝 날개를 핀 천사들이 환희를 하며 손을 뻗었다.

수천 천사들이 일제히 나타나 손을 뻗는다.

천사들의 손길이 향하는 아치형 지붕 꼭대기에는 태양이 만들어졌다.

마치 천지가 창조되는 순간을 보는 듯하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정령친화력을 쏟은 뒤에야 저택이 완성되었다.

“꺄악! 멋져! 그렇지 시스?”

“응.”

줄리아는 시스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저택이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니 기쁘고 흥분될 수밖에 없으리라. 모두들 우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휴우, 기뻐하는 두 사람을 보니 힘을 쓴 보람이 느껴진다. 나는 땀을 닦으며 파오니 남작에게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잉?”

뭔 소리야 그게. 저택은 완성됐잖아?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담장을 쌓아서 동산을 빙 두를 겁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동산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설계하고, 저택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창문을 장식하고 인테리어 콘셉트에 맞는 가구를 배치해야 합니다. 그 모든 걸 제가 감독해야 합니다.”

세세한 것 하나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완성하고 싶어 하는 장인정신이 엿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만 내부 인테리어는 내 부인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해.”

“물론이지요. 의뢰인의 취향과 사정을 고려하지 못하면 천재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핫, 그렇군.”

나는 파오니 남작의 말에 유쾌하게 웃었다. 확실히 파오니 남작은 특유의 독선이 사라져 있었다.

***

리간드 백작가 저택은 레던 왕성 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의 저택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레던 왕성 시내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 저택을 구경하기 위해서 교외로 나올 정도였다.

레던 왕성으로 유람을 온 귀족들도 소문을 접하고는 우리 저택이 세워진 동산을 둘러보며 감상을 하곤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레던 왕성의 관광 명소가 될 정도로 파오니 남작과 나의 결실은 아름다웠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저택은 화제성까지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하루아침에 2백 미터짜리 작은 동산이 솟아나고 저택이 뚝딱 만들어졌다. 상급 정령사인 내가 이루어낸 기적적인 능력이라며 사람들이 더욱 흥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본래 관광명소란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그에 얽힌 스토리까지 갖춰져야 탄생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완성까지는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파오니 남작에게 공사비 2만 레디나를 주어서 모든 일처리를 맡겼다.

성질이 워낙 급한 파오니 남작은 정원을 꾸미는 조경업자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장인들을 닦달해가며 저택을 빠르게 완성해나갔다. 정원의 중앙에는 내가 특별히 정령술을 발휘해서 시냇물이 흐르게 했다.

본래는 작은 호수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파오니 남작이 반대했다.

“흐르지 않고 가만히 고여 있는 호수는 금세 썩어 들어가서 볼품이 없어질뿐더러 모기 같은 벌레가 자생하게 됩니다. 그보다는 시냇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편이 훨씬 좋겠습니다만, 가능하신지요?”

물론 방법은 있었다.

동산 아래의 지하 깊숙이에 지하수가 매장되어 있었다. 나는 운디네의 힘으로 그것을 끌어올려서 동산 꼭대기서부터 아래로 졸졸 흘러내리도록 했다.

그러자 저택 앞의 정원은 흐르는 시냇물이 더해지면서 훨씬 아름다운 풍경을 갖추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완성되어가면서 이를 구경하던 레던 왕성 사람들의 호평도 계속되었다.

“리간드 백작가 저택은 지상낙원이다.”

“지상에 강림한 천국!”

“정령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기적이다!”

덕분에 귀족사회에서의 나의 명성도 더욱 높아졌다. 심지어는 나에게 저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귀족까지 있을 정도였다. 물론 거절했지. 내가 건축업자냐? 나 나랏일로 바쁜 몸이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나자 저택은 완성되었다.

저택이 완성되면서 바빠진 것은 집사로 고용된 라크 니벨 영감이었다.

니벨 영감은 하인과 하녀를 10명씩 고용하고 그밖에도 정원사 2명, 요리사 2명을 고용해 빠르게 가문의 살림을 안정시켰다. 빠른 일처리를 보니 확실히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택이 완공된 날, 나는 파오니 남작과 시내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을 갖게 되었어. 수고했다.”

“백작 각하의 정령술이 없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다시는 그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은 지을 수 없겠지요.”

파오니 남작은 아쉬운 얼굴로 대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다시는 백작 각하와 함께 일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예?”

그제야 파오니 남작은 내 말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의아한 표정이 된 파오니 남작에게 내가 말했다.

“난 앞으로도 그대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

“설마 저와 함께 건축가로 전향하시겠다는 뜻은 아니실 테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내 영지, 리간드 백작령을 알아?”

“잘은 모릅니다. 영지를 갖고 계신다는 말이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럴 수밖에 지금은 남부지방의 시골영지이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지. 그 영지에 텍스 강이 흐르는데, 바덴 강과 연결되어 있거든. 나는 그 텍스 강 유역에 조선소를 설립할 예정이야.”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파오니 남작은 눈치 챈 듯했다.

“혹시…….”

“응. 그 조선소 건설 책임자로 너를 임명하고 싶어.”

“으음!”

파오니 남작은 나직이 신음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그 조선소는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돈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서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상업도시로 발전하겠지.”

“…….”

“흥미가 생기지 않아? 지금은 몬스터나 서식하는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융성하는 과정이 말이야. 내 제안에 응하면, 그대는 단지 하나의 조선소 설계자가 되는 게 아냐. 새롭게 탄생하는 도시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는 거지.”

“도시 전체를…… 말입니까?”

“그래. 건축물 하나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지? 물론, 파오니 남작 그대가 그만한 일을 감당할 만한 재능이 있느냐가 관건이지만. 어때? 할 수 있겠어? 자신이 없으면 물러서도 좋아.”

살짝 도발까지 곁들이니 파오니 남작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최후의 떡밥을 선사해줘야지.

나는 내심 웃으며 다시 말했다.

“파오니 남작.”

“예, 백작 각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뭔지 알아?”

“글쎄요.”

“그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야.”

“……!”

놀란 파오니 남작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불화가 일어나지 않는 안정된 사회 안에서 각자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삶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게 없지. 눈을 감고 상상해봐. 네가 계획하고 디자인한 도시에서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내 말에 파오니 남작은 눈을 감았다. 불끈 쥔 그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나는 리간드 백작령에 계획도시의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리간드 백작가와 합작투자로 설립할 조선소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계획도시.

그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카르스 황제였다.

전생 때 대륙의 절반을 정복하면서 천재적인 전쟁수행능력을 드러낸 카르스 황제. 그의 천재성은 정복지의 통치에서도 나타났다.

레던 왕국을 멸망시키고 오리엔 왕국의 영토까지 다수 점령한 혼트 제국은 정복지의 효율적인 통치가 절실했다. 본래 땅을 빼앗는 것보다 더 힘든 게 빼앗은 땅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리엔 왕국과 레던 왕국령의 국경 부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그것은 혼트 제국의 제 2의 수도라 할 만한 도시로, 정복한 땅을 통치하는 통치의 중심지였다. 카르스 황제는 군대와 함께 그 도시에 정착함으로서 정복한 영토를 관할했다.

사람이 모여서 자연발생한 도시가 아닌, 처음부터 계획에 의하여 만들어진 도시.

그러한 계획도시의 디자인을 나는 파오니 남작에게 맡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본 파오니 남작은 단순히 미적 감각만 뛰어난 천재가 아니었다.

건축은 천재적인 미적 감수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반과 하중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

그런 요소를 모두 고려하면서도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예술성까지 담아낸 그의 천재성이라면, 계획도시의 설계라는 더 큰 일도 해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이윽고 파오니 남작은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말했다.

“기쁩니다. 제 인생에 있어 그보다 더 위대한 도전은 다시는 없겠지요. 기꺼이 도전합니다!”

“잘 생각했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작 각하.”

“나야말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다.

그렇게 나는 천재 건축가 로버트 파오니 남작을 등용하는데 성공했다.

파오니 남작은 당장 리간드 백작령으로 가서 도시가 건설될 장소를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아직 텍스 강 유역은 몬스터 천국이라 위험하지만 그는 성질이 급했다.

“하는 수 없지. 추천서를 써줄 테니까 가지고 가. 당부해두지만 위험한 행동은 하면 안 돼.”

“물론입니다.”

나는 리간드 백작령을 내 대리로 통치하는 딘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작성했다. 파오니 남작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는 내 추천서를 갖고 다음날 바로 떠나버렸다. 천재적인 재능만큼이나 무서운 행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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