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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56화 (25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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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리간드 백작가의 저택(2)

“대단해! 멋져!”

줄리아는 시스를 끌어안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스도 저택 모형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좀처럼 반응이 없는 시스까지 넋을 잃게 만들다니, 이 작자가 정말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었다.

나도 놀랐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건축설계는 그렇다 쳐도, 저 조각까지 파오니 남작 본인이 스스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건축설계는 물론 조각에도 재능이 있는 것이다.

천재는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한다고 했는데 파오니 남작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놀란 나에게 파오니 남작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제가 대륙 최고가 아니라고 한 번 말해보시죠.”

“응. 대륙 최고가 아니야.”

“뭐라고요?!”

발끈한 파오니 남작에게 나는 실실거리며 덧붙였다.

“한 번 말해보라며?”

“…….”

파오니 남작은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보기 좋군, 저 표정. 흐흐, 이번엔 나의 승리. 이걸로 2승 2패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이고, 진지하게 평가하자면 분명 이건 썩 훌륭한 조각인 것 같아.”

“조각?”

파오니 남작은 또다시 발끈했다. 좋아, 나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기 시작했군. 이제야 나의 페이스다.

이래봬도 각지의 군주들을 상대하며 외교적으로 큰 공적을 쌓은 나였다. 상인 경력은 온 생을 통틀어 80년이 다 되어간다. 아무리 천재에 괴짜라지만 그래봐야 건축가 한 명 다루지 못할 까보냐.

“조각이지. 그럼 이게 설마 저택 모형은 아닐 것 아냐.”

“당연하게도, 이것은 저택 모형입니다.”

“이런 저택을 지을 수 있다고?”

“예!”

“조각사가 수백 명은 필요하겠군.”

“물론입니다.”

“어림잡아도 공사비가 20만 레디나는 족히 들겠는데?”

“이렇듯 아름다운 건축물을 가지려면 그 정도 투자는 당연하지요.”

“이게 진정 조각이 아니라 저택 모형이라면, 이제 보니 파오니 남작 당신은 천재가 아니라 어린아이라고 불러야겠어.”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잘 못 알아들었나? 건축가로서 그대는 전혀 천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일침에 파오니 남작은 크게 노하여서 씨근덕거렸다.

“이제 보니 시비를 걸러 오셨습니까? 백작 각하 같은 부류가 간혹 있었습니다. 일부러 제 실력을 폄하해서 제 몸값을 깎아보려는 얕은 수작을 부리는 사람 말입니다!”

“이봐요!”

줄리아가 화가 나서 한 마디 하려고 했다. 과연 니벨 영감 말대로 무례한 자였다. 에릭 국왕도 나한테 저런 소릴 못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는 벌컥 성질을 내려는 줄리아를 만류하며 말했다.

“됐어, 줄리아. 다른 건축가를 알아보자. 저자는 천재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줄리아와 시스를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등 뒤에서 파오니 남작이 나를 불렀다.

“잠깐!”

“왜? 아직도 볼일이 남았나?”

“결판은 지어야겠습니다. 어째서 제가 천재가 아닌 겁니까? 제가 일평생 추구해온 건축 예술을 무시당했으니, 아무리 백작 각하라 해도 해명을 하셔야겠습니다!”

“좋아, 가르쳐주지.”

나는 뒤돌아서 파오니 남작과 눈을 마주했다. 파오니 남작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지만, 뭐 하나도 안 무서웠다. 이 세상에는 카르스 황제보다 무서운 인간은 없거든.

“쉽게 이해시켜주지. 그대는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제게 1억 레디나만 주시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이 될 수 있어요!’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

파오니 남작은 허가 찔렸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가 한 번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볼까? 황금 수만 톤을 가져와봐. 그럼 내가 대륙에서 가장 값진 집을 지어보일 테니까.”

“그건……!”

“의뢰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독선적인 건축설계란 일종의 몽상이지. 그렇게 따지면 대단한 건축물이란 약간의 재능과 무한정한 자금만 있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건축은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최적의 결과를 내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마찬가지야. 가용자원의 한정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 몽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파오니 남작은 미동 없이 멍하니 섰다.

“그대를 위하여 내가 특별히 멋진 건축물을 하나 보여주지. 노움!”

-응!

땅속에서 슉 하고 튀어나온 노움은 이윽고 삽자루를 꼬나 쥐고 저택 앞뜰로 달려 나갔다. 퍽퍽 열심히 삽질하는 노움. 어휴, 뉘 집 자식인데 저렇게 삽질을 잘 할까.

이윽고 노움은 둥그런 모양의 흙집 한 채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그 흙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봐라. 한정된 자원과 주어진 능력으로 만들어낸 최적의 결과물을. 수많은 난민을 구원한 바 있는 쿤트 영지의 명물, 흙집이다!”

파오니 남작은 흙집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헐레벌떡 앞뜰로 달려 나가 흙집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이, 이럴 수가! 이 완전한 곡선, 이토록 자연친화적인 형태라니.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듯한……!”

당연하지. 대지의 정령인 노움이 만들었으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봐봐, 노움. 저 자칭 천재도 네 작품에 놀라잖아. 우리 노움은 정말 천재야, 천재.”

-헤헤, 나 천재야.

노움은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어휴, 이 귀염둥이!”

오랜만에 팔불출성이 발동한 나는 노움을 번쩍 끌어안고 부비부비를 했다. 노움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자 내 체내에 깃들어 있던 운디네도 쏘옥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운디네도 한데 끌어안아주었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줄리아는 이윽고 시스까지 가세하여 내 품에 안기자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한참 뒤에야 충격에서 벗어난 파오니 남작은 터덜터덜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으아아!”

콰지직!

저택 모형을 집어던져버렸다. 나무로 된 섬세한 저택 모형은 산산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충격을 받은 나머지 미쳐버렸나? 내, 내 책임은 아니야! 저 작자는 원래 좀 미쳤었잖아? 나 때문에 미친 거 아냐!

이윽고 파오니 남작은 날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인정합니다. 저 완벽한 흙집에 비하면 이따위 것은 쓰레기였습니다. 건축물은 본래의 목적성을 잃으면 안 되는데, 제가 너무 예술에 치중해버렸습니다. 적당한 저택 하나 짓는데 20만 레디나라니, 실현될 리가 없었지요.”

그는 지친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제가 졌습니다. 다른 건축가를 알아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천만에.”

나는 파오니 남작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막 대륙 최고의 천재가 된 건축가를 놓칠 수는 없지.”

“예엣? 하지만…….”

“자, 봐봐.”

나는 노움에게 마음속으로 지시를 내렸다.

내 생각을 전달받은 노움이 힘을 펼쳤다. 소량의 정령친화력이 소모됨과 함께, 앞뜰의 흙집 옆에 흙으로 된 조그마한 저택 모형이 생성되었다.

바로 방금 박살난 파오니 남작의 작품과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대륙 최고의 천재가 된 기념으로, 최후의 몽상을 나와 함께 실현해보는 건 어때? 두 번 다시는 없는 기회라고.”

“오오! 정말로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군요!”

파오니 남작은 만들어진 흙집 모형을 보며 감탄을 했다. 그는 열의에 찬 얼굴로 내게 재차 물었다.

“더 크게도 만들 수 있습니까? 얼마나 더 크게 만들 수 있습니까? 그리고 흙의 강도는 얼마나 단단하게 할 수 있는 겁니까?!”

“자자, 질문은 천천히 하라고. 얼마든지 크게 만들 수 있고, 오러에 맞아도 견딜 만큼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어.”

“그렇다면 가능합니다! 제가 수년간 공들인 저것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사비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부디 저를 고용해주십시오. 새롭게 깨달음을 얻은 기념으로, 마지막으로 지난 수년간 꿈꿔온 저택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아, 잘 해보자고.”

나는 파오니 남작과 악수를 했다.

사실 파오니 남작이 설계한 터무니없는 저택은 내 정령술로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파오니 남작에게 일침을 가한 것은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파오니 남작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래서 그 재능을 사고 싶었다. 바로, 내 영지에 설립할 조선소 건의 설계 책임자로 파오니 남작을 등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천재성이라면 조선소도 무리 없이 지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터무니없는 자원을 낭비하려는 정신을 뜯어고쳐야 했다. 조선소는 다른 무엇보다도 수많은 여건을 고려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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