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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 11권
1장. 리간드 백작가의 저택
에릭 국왕의 과감한 결단이 돋보였던 인사발령이 있고 나서 레던 왕실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최고위 관리들이 대거 해임되고 루이나 제론 같은 젊은 인재가 올라섰으니 각 행정부서 내의 권력구도도 송두리째 뒤집힐 것이 자명했다. 밴델 자작 등 해임된 전 상서를 따르던 고위 관리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가장 먼저 칼자루를 뽑아든 신임 상서는 단연 루이 콘체른이었다.
졸지에 벼락출세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루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단 관리 생활을 하던 루이는 고위 관리들의 폐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클레비우스 백작이 잠깐 승승장구할 때, 그에게 연줄을 대려고 줄을 섰던 관리들의 명단까지 모두 작성한 루이였다. 그 살생부가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4급 이상의 고위 관리들 중 절반 이상은 없어도 각 부서의 행정은 아무 이상 없습니다, 폐하.”
루이는 에릭 국왕은 물론 나와 듀론 후작, 제론, 헤이젤 듀론 자작, 아버지 등 왕실파 실세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폭탄발언을 하였다.
“실질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그 이하의 관리들입니다. 불필요한 잉여인력만 제외해도 왕실 재정이 한결 튼튼해질 겁니다. 쓸데없는 녹봉을 지급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폐단도 막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으음, 느닷없이 절반이라…….”
왕실을 변혁하려던 에릭 국왕이라 해도 갑자기 고위 관리들을 대거 해임시키는 일은 고민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루이의 의견에 찬성이었다. 무엇보다도 루이는 행정의 달인임이 전생 때 증명되었으니까.
“저도 찬성입니다.”
“오, 리간드 백작 그대도 말인가?”
에릭 국왕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4급 이상의 고위 관리들을 절반 이상 해임시키면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루이가 말한 재정의 절약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능력의 향상입니다.”
“업무능력의 향상?”
“예. 고위 관리들이 쓸데없이 많으면 한 가지 안건을 처리하려 해도 보고 절차가 너무 많아서 업무처리속도가 늦어집니다. 그 보고 절차를 대폭 간결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폐하. 바덴 강 통행세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리엔 왕실과의 동맹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에릭 국왕은 대답대신 나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것은 우리끼리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폐하. 관리들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면서 움직였더라면 발 빠른 추진력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음, 그렇군. 소수일수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규모보다 실속을 노리자는 뜻이로군.”
“예. 왕실의 힘은 많은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빠른 일처리능력에서 나옵니다.”
이에 루이도 거들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도 바로 리간드 백작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대규모의 집단이 아닌, 리간드 백작 각하와 같은 한두 사람의 천재에 의하여 세상이 바뀌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어이쿠, 나더러 세상을 바꾸는 천재라니. 루이 쟤가 내 얼굴에 금칠을 해준다. 은근슬쩍 나에게 아부를 하다니! 정말로 내 뒤를 이어 2인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넘쳐흐른다.
듀론 후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 사람의 의견이 옳습니다, 폐하. 나이든 고위 관리들이 완전히 무용(無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그들 대부분은 풍부한 경험으로 좋은 업무능력을 보이기보다는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노재상 듀론 후작까지 거들자, 에릭 국왕도 마음을 정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루이 콘체른, 제론 데커드, 헤이젤 듀론 등 세 상서에게 명하겠다. 빠른 시일 내에 각자 부서의 행정업무의 흐름을 파악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대거 정리해라. 그에 따른 후폭풍은 나 에릭 레던이 책임지겠다.”
“왕명을 받들겠습니다!”
세 신임상서가 부복하며 대답했다.
에릭 국왕은 그중 헤이젤 듀론 자작에게 시선을 옮겼다.
헤이젤은 노재상 듀론 후작의 차남으로 전형적인 학자풍의 인물이었다.
전생 때는 그의 이름을 그다지 들어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평생을 학자로서 조용히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런, 내가 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았군. 조용히 자기 삶을 살던 사람을 왕실 정계로 끌고 왔으니 말이다.
아직 그의 인물됨이나 능력은 잘 모르겠으나, 명재상 듀론 후작의 차남에다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에릭 국왕이 선택한 인선이니 좋은 인재임이 분명할 것이다.
“헤이젤 듀론 자작.”
“예, 폐하.”
“어떤가, 외교부상서로 임명된 소감은.”
그 물음에 헤이젤은 사람 좋게 웃었다.
“리간드 백작 각하께서 이루신 업적이 하도 많아서 막상 제가 해야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폐하. 다만 제가 할 일은 긴급사태시 오리엔 왕실과의 군사적인 연계 부분을 좀 더 협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음, 정확한 의견이군.
디테일한 측면에서의 실질적인 양국의 협조 부분은 나보다 지식이 풍부한 헤이젤에게 더 적합해 보인다.
에릭 국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의 방향성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과연 짐이 사람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보람이 있군, 하하핫!”
“덕분에 듀론 가문에 희생자가 또 한 명 늘었습니다, 폐하.”
듀론 후작의 농담에 에릭 국왕은 크게 웃었다.
이번에는 에릭 국왕은 아버지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쿤트 백작.”
“예, 폐하.”
“어떤가? 그대도 짐에게 오는 것이?”
“무슨 말씀이신지요?”
놀라 되묻는 아버지에게 에릭 국왕이 말했다.
“듣자하니 영지 일은 그대의 능력 있는 맏아들이 통치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대는 왕실에 입관하여 그 대단한 능력을 발휘함이 어떠냐? 내 기꺼이 왕실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주겠다.”
인재욕심 많은 에릭 국왕은 이제 아버지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하물며 왕실의 실질적인 힘이라 할 수 있는 왕실군의 총사령관이라니! 에릭 국왕이 얼마나 아버지를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슈타인 백작을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니는 카르스 황제나 브리튼 공작을 최측근으로 삼고 있는 오리엔 국왕 등 오러 마스터를 곁에 둔 군주가 에릭 국왕은 몹시 부러웠을 것이다.
아버지 같은 강자가 곁에 있기만 해도 에릭 국왕은 든든함을 느낄 것이다.
문제는 아버지도 나 못지않게 일을 싫어한다는 사실. 싸움질 말고는 전부 귀찮아하는데다가, 하필 지금은 곧 새장가를 하게 된 판국이다. 에릭 국왕의 제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곧 신혼을 맞이할 남자에게 일을 시키려 들다니, 나라도 거절하겠다.
“죄송합니다, 폐하. 무인으로서 보다 정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폐하를 위한 일이 아닐까 생각되옵니다. 게다가 당장 폐하의 곁에는 제 아들 카록 녀석이 보필하고 있으니 제가 없어도 될 것입니다.”
귀여운 새 신부 맞아 신혼생활 즐길 거니 건들지 말라는 말을 돌리고 돌려서 말하는 아버지.
하긴, 에릭 국왕에게는 상급 정령사인 내가 이미 곁에 있었다.
에릭 국왕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그런데 리간드 백작.”
이번에는 나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에릭 국왕.
“예, 폐하.”
“그대는 짐이 2개월이나 휴가를 주었음에도 아직 주거지를 구하지 못하였구나. 레던 왕성 인근에 부지까지 이미 마련해주었는데 아직 공사를 시작도 안 한 것 같더군.”
“예. 워낙 일이 많아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의 혼담 문제와 린델 백작의 시비로 그걸 아직 처리 못했다.
혀를 쯧쯧 찬 에릭 국왕은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왕궁 내에서 머물도록 해줄 테니, 속히 빠른 시일 내로 저택을 마련하도록 하라.”
“예. 즉시 공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정령술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면 내 집 마련 정도야 일도 아니다. 상급 정령사라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으니 본 실력을 숨길 필요도 없고 말이다.
물론 레던 왕궁도 좋지만, 나의 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하루 빨리 마련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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