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회: 10권 - 8장. 담판 -->
“예. 사실은 얼마 전의 불미스러운 문제로 백작 각하의 뜻에 반대하다가 축출 당했습니다.”
약간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하는 앤드류였다.
얼굴 표정을 보고서 나는 말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의 불미스러운 일이란, 당연히 날 암살하려고 했던 문제를 뜻하는 것이리라. 즉, 앤드류 게릴은 날 암살하려는 린델 백작의 뜻에 반대했다가 분노를 사 쫓겨났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앤드류 게릴이라면 일개 상인에 불과했던 전생의 나도 들어봤을 정도로 명성 높은 기사였다.
“그것은 비열한 행위로 명예를 중시하는 한 사람의 기사로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저희 게릴 가문은 5대째 린델 백작가를 섬겼는데 뜻에 반대했다고 축출해버리다니, 이 억울함을 참을 길이 없어서 이렇게 리간드 자작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대 같은 뛰어난 기사를 쫓아내다니, 린델 백작이 미쳤나?”
내 물음에 앤드류를 화난 어조로 대답했다.
“전 란즈헬 백작 각하께서 돌아가신 뒤로 린델 백작 각하는 나날이 성정이 포악해지고 인내심이 없어졌습니다. 이젠 린델 백작가 내에서 아무도 반대의견을 못 낼 정도입니다.”
“하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리간드 자작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뭐?”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만, 나는 짐짓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5대째 섬긴 충신가문의 기사를 홧김에 쫓아낸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게다가 리간드 자작님의 그간의 빼어난 활약을 오래 전부터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부디, 리간드 자작님의 휘하에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말에 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같은 강자를 얻을 수 있는데 나야 당연히 환영이지. 잘 왔다, 게릴 준남작.”
“옛! 감사합니다, 주군!”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환영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응? 이게 뭐야? 뭔가 마법이 걸린 목걸이 같은데.”
나는 앤드류로부터 푸른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앤드류가 말했다.
“린델 백작 각하께서 가지고 있던 목걸이입니다. 활력증강마법이 걸린 목걸이로 상당한 고가품인데, 쫓겨날 때 홧김에 집어왔습니다. 절 받아주신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부디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오, 활력증강마법이라면 그…… 상당한 고가품인데?”
어림잡아도 7천~1만 레디나쯤 하는 마법물품이었다. 속칭 ‘정력의 목걸이’라 불리는 명품! 마법길드에서만 만들 수 있는 마법물품이라 대단히 희소한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기사인 제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래, 그럼 고맙게 받지.”
나는 앤드류에게 환영과 감사의 말을 건넸다.
일단 앤드류 게릴 준남작은 조만간 거취를 결정해주겠다고 하고 여관으로 보냈다.
앤드류가 사라지고 나자, 에반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이곳에 왔을 때 저를 보고는 불안한 표정을 하더군요. 거짓이 제게 간파될까봐 걱정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응. 보나마나 린델 백작이 보낸 첩자겠지 뭐.”
나 역시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앤드류 게릴.
전생 시절, 육제후가 카르스 황제의 공격에 당했을 때 린델 백작가의 기사로서 최후까지 싸운 기사였다. 린델 성이 함락하여서 린델 백작가가 멸문한 그날까지 맹렬히 저항하여서 대대로 린델 가문을 섬긴 충정을 증명했다. 그래서 혼트 제국군도 적이지만 훌륭한 기사였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런 인간이 린델 백작에게 쫓겨났다면서 나에게 투항하면,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전생 땐 린델 백작의 더러운 성품을 몰라서 죽을 때까지 충성했냐?
린델 백작의 얕은 술책이 빤히 들여다보여서 웃을 뻔한 걸 참으려고 노력할 정도였다.
“그 목걸이도 수상하군요. 질 나쁜 마법이 내장되어 있을 지도 모르니 제가 조사해보겠습니다.”
“응. 꽤 비싼 거니까 버리지는 말자.”
“그러지요.”
에반은 나에게서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으음.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사라지니까 육제후가 엉망이 되었구나. 린델 백작도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러니까 카르스 황제가 레던 왕실과 육제후의 분열을 획책한 뒤에 침공에 성공했지. 나라가 걱정될 정도다.
아무튼 선물은 잘 받지, 린델 백작.
엄청난 고가품도 모자라, 앤드류 게릴까지 보내주다니.
“이왕 앤드류 게릴이 나에게 왔으니까 그 능력을 써먹고 싶긴 한데, 위험해서 가까이 두면 안 될 것 같고 고민이네.”
내 말에 에반은 히죽 웃었다.
“그렇다면 적당한 임무가 있습니다.”
“오, 뭔데?”
“란즈헬 백작가와 합작투자로 조선소를 설립하실 생각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응, 그렇지. 그러려면 우선 이번 혼담을 성사시키고, 텍스 강에 서식하는 몬스터도 퇴치해야…… 아!”
비로소 나 또한 에반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감탄했다.
에반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텍스 강의 몬스터 토벌을 시키지요. 주군의 신임을 얻기 위해 죽기 살기로 몬스터를 처지할 겁니다.”
과연 에반 테일러! 이 못된 놈 같으니, 아하하.
“그리고 이왕 간 김에 아예 리간드 자작령에 머물면서 영지의 몬스터를 퇴치하는데 힘쓰라고 해야겠다.”
우리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앤드류 게릴을 나의 촌구석 영지에 짱박아두기로 했다. 거기서 열심히 몬스터랑 드잡이를 하다가 제풀에 지치면 나중에 조용히 지네 동네(린델 백작령)로 돌아가겠지 뭐.
그날 저녁, 나는 앤드류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그 결정을 이야기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텍스 강 유역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이다. 그곳은 장차 조선소를 설립하고 내 영지를 부강하게 만들어줄 중심도시가 될 곳이라서, 이번 일은 상당히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다.”
앤드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 중대한 임무를 제게 맡겨주셔도 되는지요? 다른 훌륭한 기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내가 아끼는 기사인 패트릭 콘돌은 콘돌기병대를 지휘해야 해서 다른 일을 시킬 수가 없고, 그 외에는 경처럼 무위가 높지 않다. 이번 일을 잘 해내준다면 경은 능히 우리 리간드 가문의 핵심인물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반드시 그 일을 해내겠습니다.”
“고맙네. 그 일을 해내면 다음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리간드 자작령에 머물면서 몬스터로부터 영지의 안전을 지켜다오. 경만 믿겠다.”
“예, 옛!”
달갑지는 않지만 내 명령에 따르겠다는 마음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앤드류 게릴이었다. 첩자로 온 이상 내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동태를 살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촌구석 영지로 가게 되었으니 기쁘겠는가?
뭐, 수고하라고 앤드류 게릴.
결국 앤드류 게릴은 나에게 온 지 이틀만에 리간드 영지로 떠났다.
물론 나는 따로 내 대리로 리간드 영지를 관리하고 있는 딘에게 서신을 보냈다. 요약하자면 ‘걔 첩자니까 너무 믿지 마. 실컷 뺑이나 돌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앤드류를 떠나보내고 나니, 사흘 뒤에 린델 백작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다.
「조용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프란츠 린델 백작」
에반의 예견대로였다. 린델 백작은 타협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 연락을 넣은 것이다. 첩자로 보내고 타협하려고 서신도 보내고 참 정신없는 양반이다.
조용히 보자고 했으니, 남의 눈에 띄면 안 되겠지.
나는 내가 곧 찾아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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