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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담판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에 린델 백작령을 한 번 더 다녀왔다. 왜냐고? 당연히 천벌을 내려주기 위해서지.
린델 백작령의 북서부에 위치한 트레이스 성이라는 작은 성을 박살내놓고 왔다.
트레이스 성은 몬스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작은 요새로 3백여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민간인이 없으니 타깃으로 삼기 딱 좋았다.
일단 약한 강도로 가볍게 지진을 일으키자, 트레이스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성 밖으로 대피했다. 그들 역시 린델 성이 지진으로 박살난 소문을 들었던지라 지진이 발생하자 신속하게 대피한 것이다.
병사들이 모두 빠져나온 걸 확인한 나는 강력한 지진으로 트레이스 성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렸다.
“성이 또 부서졌어!”
“린델 성도 박살났다던데 또 지진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우리 영지만 지진에 홍수에 난리냐고.”
병사들의 동요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유유히 쿤트 영지로 돌아갔다.
내가 이렇게 일을 벌이고 있는 틈에, 에반도 본격적으로 실력발휘를 시작했다.
에반은 볼프강 란즈헬 백작의 심복으로 있던 시절에 란즈헬 가문의 첩보조직을 지휘했었다. 첩보는 물론 각종 모략에 쓰기 위한 란즈헬 가문의 비밀단체였다. 그 첩보조직의 힘으로 에반은 그간 ‘란즈헬의 청소부’로서 많은 일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죽고, 대공자 제이슨이 가주가 되자 에반은 축출당하여서 더 이상 첩보조직을 거느릴 수 없게 되었다. 정보망도, 일을 시킬 부하도 없으면 에반으로서는 손발이 잘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에반은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하고 미리 대비해왔다.
첩보조직의 일부 멤버를 하나둘 포섭해 자신의 충복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란즈헬 백작가에서 나왔을 때, 첩보조직의 일부가 함께 떨어져 나와 에반의 사조직이 되었다. 에반이 란즈헬 백작가에서 쫓겨난 뒤에도 린델 백작의 암살 모의를 알아채는 등 막강한 정보력을 가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굉장한 녀석.
덕분에 에반을 부하로 둔 나는 그 첩보조직까지 손에 넣는 일석이조의 이익을 얻었다. 아마도 이 첩보조직은 나의 신임을 얻기 위한 에반의 선물인 듯했다.
내가 언제나 아쉬웠던 건 정보력이었는데 에반이 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렸다. 나는 에반에게 자금을 지원해주어서 첩보조직을 크게 키우도록 했다.
그리하여 리간드 자작가의 첩보조직의 수장이 된 에반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에반이 한 첫 번째 일은 린델 성의 영지민들 사이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이었다. 첩보조직의 조직원들이 에반의 명령을 받고 은밀히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 지진은 린델 가문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는군.”
“그게 무슨 소리여?”
“무슨 소리긴? 그 지진에 강물까지 범람했는데 우린 멀쩡하고 린델 가문만 피해를 당했잖아. 저주를 받은 게 아니면 이게 말이나 돼?”
“드, 듣고 보니 그렇군.”
“린델 백작이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하는 바람에 저주를 받았나봐.”
잇단 지진 사태와 더불어 유언비어까지 더해지자 린델 백작령의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에반은 볼프강 란즈헬의 수제자(?)답게 악랄하게 린델 백작의 터부를 건드렸다.
“그거 알아?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이번 지진은 돌아가신 란트 도련님의 원혼(冤魂)이 일으킨 짓이라는군.”
“란트 도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린델 백작의 형님이잖아. 그분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지진이 일어나기 전날 밤에 한 병사가 근무를 서다가 란트 도련님의 영혼이 떠돌아다니는 걸 봤다는 거야.”
“그, 그게 정말이야?”
“그 영혼이 하는 말이 ‘프란츠 이 놈, 감히 날 암살하다니. 복수하겠다, 각오해라.’ 이렇게 계속 중얼거렸다는군. 그리고 그 다음날 지진이 난 거야!”
“히이익!”
프란츠는 현 린델 백작의 이름.
란트는 린델 백작에게 암살당한 그의 형이었다. 란트 린델은 린델 백작과 달리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나고 쾌활한 성격으로 영지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인물이었다. 린델 백작은 후계자가 되고픈 야욕과 상대적인 열등감 때문에 그런 형을 암살한 것이다.
린델 백작이 자기 형을 암살한 사실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영지민들에게는 사고사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지진 사태를 계기로 알려지자 의혹과 동요가 들불처럼 번졌다.
역시 이런 일은 에반이 전문가였다.
***
이 이야기를 들은 린델 백작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의 형 이야기는 린델 백작가 내에서도 아무도 꺼내지 못하는 금기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허, 헛소문이 마구 퍼져서 영지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거리마다 병사들을 풀어서 그따위 소리를 하는 놈들을 죄다 잡아들이라고 해!”
그 말에 샘 린델 남작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셔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는…….”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분노에 휩싸인 린델 백작은 윽박을 질렀다.
샘은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병사들을 풀었고, 린델 백작가의 병사들이 거리를 다니며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지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반의 첩보조직원은 이미 소문만 퍼뜨려놓고 재빨리 철수한 뒤였다. 오히려 린델 백작의 과격한 반응에 영지민들은 그 유언비어를 더욱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린델 백작은 트레이스 성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보고를 접하였다.
그 말을 듣고 린델 백작은 그만 멍해졌다.
이 또한 카록 리간드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이미 카록에 대한 대책으로 충성스러운 가문의 기사 앤드류 게릴 준남작을 보내긴 했지만, 이러다가 영지의 성이란 성은 남아나지 않을 듯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린델 백작령은 혼트 제국과 인접한 위치에 있었다. 카슈텔 성을 혼트 제국에 빼앗겨서 안보적으로 긴장상태였다. 그런데 본거지인 이곳 린델 성은 물론이고 트레이스 성까지 파괴되다니. 성들이 사라지면 영지를 향한 모든 위협 앞에 알몸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그놈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구나.”
이렇게 시간만 끌어봐야 피해만 막대해질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린델 백작이었다.
이대로 카록 리간드가 독하게 마음먹고 린델 영지의 모든 성체를 부수고 다니면 큰일이었다. 성이 하나도 없는 영지라니! 아무리 돈이 많아서 군대와 고용 용병을 많이 보유한 린델 백작가라 해도 곤란했다.
린델 백작은 그날 즉시 기병대원 한 명을 시켜서 서신을 카록이 있는 쿤트 영지로 보냈다. 힐링포션까지 챙겨서 쉬지 말고 달리라고 했다. 비밀리 만나고 싶다는 뜻이 담긴 서신이었다.
***
신나게 분탕질을 치고 쿤트 영지로 돌아왔다. 트레이스 성은 린델 성처럼 크지 않아서 정령친화력도 완전히 고갈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찾아온 손님이 에반과 함께 있었다.
30대 중후반쯤 된 건장한 사내였는데, 척 보기에도 강해보이는 무인이었다.
정령의 감각으로 보니 체내에 상당량의 오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오러 엑스퍼트 중급쯤 되어 보인다. 30대의 나이에 이 정도의 무위라면 패트릭이라 릭 형님 같은 천재는 아니라도 상당한 재능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저 나이 땐 저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사내는 날 보고는 벌떡 일어나 예를 갖췄다.
“명성 높으신 리간드 자작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린델 백작가를 섬겼던 앤드류 게릴 준남작이라고 합니다.”
앤드류 게릴이라는 이름을 듣자 나는 큰 흥미를 느꼈다. 전생 때도 익히 들어본 이름이었다.
“얼마 전까지?”
내 물음에 앤드류를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은 얼마 전의 불미스러운 문제로 백작 각하의 뜻에 반대하다가 축출 당했습니다.”
약간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하는 앤드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