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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39화 (239/529)

<-- 239 회: 10권 - 5장. 인간의 증거 -->

무려 100개나 되는 어스 스피어! 100개의 거대한 흙의 창이 하늘에서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은 재앙 그 자체일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다시 한 번 권고한다. 살고 싶거든 항복해라.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면 살려주겠다. 생매장 당할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까 항복한 자들은 땅속에 만들어놓은 공간 안에 감금시켜놓았을 뿐이다.”

용병들은 절망에 빠진 표정들이었다. 100개의 흙의 창을 보면 내가 상급 정령사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 항복하겠소.”

“시키는 대로 따를 테니 제발 죽이지 말아주시오.”

몇몇 용병들이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절반에 가까운 용병들이 항복을 했다. 나는 항복하는 자들을 족족이 땅속의 공간 안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여전히 항복하지 않는 자들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거짓말! 우릴 손쉽게 죽이려는 술책이야!”

“속지 마! 카록 리간드는 비열한 책략을 잘 부리기로 소문이 나 있다고!”

언제 그런 소문이 났어? 내가 언제 비열한 책략을 부렸는데? 하여간 유언비어란…….

한편, 전혀 흔들림이 없는 자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에 주시했던 프로 암살자와 그 부하들로 보이는 10인의 무리는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냉정함은 그들이 전문 훈련을 받은 암살집단임을 짐작케 했다.

결국 여기까진가.

항복해서 땅속에 가둬둔 용병의 숫자는 총 43명. 살려줄 수 있는 숫자는 그 정도뿐이었다.

난 할 만큼 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독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노움.”

-응!

노움은 어스 스피어 100개를 모조리 발사했다. 그야말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공격이었다.

콰콰콰쾅―! 콰르릉! 우르릉― 꽝!

천둥치는 소리가 이러할까. 아니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소리가 이러할까.

어스 스피어가 대지를 때릴 때마다 쩌렁쩌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굉음은 용병들의 비명마저도 묻히게 할 정도였다.

그 공격은 약 60초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승패를 결정짓기에 충분한 공격이었다.

공격이 끝났다.

지상은 흉한 구덩이가 사방에 패여 있었다. 아예 조각조각 박살이 나버린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내가 만들어낸 끔찍한 참상을 보며 나는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런데 그 순간,

“뒈져 이 괴물 새끼!”

용병 하나가 시체더미 속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롱 소드를 휘둘렀다. 롱 소드에 오러가 맺혀 있었다. 눈여겨봤던 오러 엑스퍼트 용병이었다. 용케 살아남았지만,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모래가 피어올라 방어막을 만들었다.

콰앙!

오러가 모래 방어막 위를 때렸다. 모래 방어막은 약간 금이 간 것으로 그쳤다.

“……썅.”

최후의 일격이 허망하게 막혀버린 용병은 나직이 마지막 유언을 내뱉었다.

나는 운디네의 힘으로 물의 칼날을 만들어 휘둘렀다.

촤악―

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오러 엑스퍼트 용병은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즉사하였다.

나는 시체로 가득한 사방을 둘러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오시지? 아무리 기척을 잘 숨겨도 내 감각은 못 속여.”

촤아악!

그러자 땅속에서 괴한이 불쑥 뛰쳐나와서 나에게 숏 소드를 휘둘렀다. 나는 순식간에 모래로 방어막을 만들어 막아냈다.

까앙!

숏 소드에는 오러가 맺혀 있었으나, 내 모래 방어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래봬도 마음만 먹으면 오러 블레이드도 한 번쯤은 견딜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땅속에서 두더지처럼 숨어 있다가 뛰쳐나와 기습한 남자는 바로 암살자.

처음에 눈여겨본 그 프로 암살자였다.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지.”

“회심의 기습이었는데 상급정령사에게는 이마저도 안 통하는 모양이군.”

암살자는 날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눈빛은 차갑게 유지하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침착함. 역시 암살자였다.

그런데 이 암살자는 조금 이상했다.

몸 안의 오러 홀에는 오러가 있었다.

그런데 심장에는 마나도 있었다. 오러와 마나가 공존하다니,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설마 저건 말로만 들었던…….

“마검사?”

“그렇소. 오러와 마법, 둘 다 직업상 유용할 것 같아서 둘 다 익혔소. 생각대로 둘 다 유용하더군.”

“대단해. 마검사는 오러 마스터의 자질에 비견되는 재능이라고 하던데.”

“과찬이시오.”

“그런데 그런 재능으로 하는 짓이 겨우 청부살인이라니.”

“암살자가 어디가 어떻소?”

“고작 돈 때문에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항복해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그 능력을 올바른 일에 쓸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다.”

내 말에 암살자는 피식 웃었다.

“이 세상에서 동족을 살해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소. 심지어는 몬스터 중에서도 동족 살해는 드문 일이오. 내 존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 그 자체이지. 내 인생의 의미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오.”

“인생의 보람치고는 서글프군.”

“본래 인생 자체가 덧없는 것 아니겠소? 어차피 죽으면 소멸할 존재.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 인생에서 의미를 느끼려면,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최후까지 지키는 수밖에 없지. 항복은 없소. 난 죽는 날까지 프로 암살자요. 게다가…….”

암살자는 숏 소드 또 한 자루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숏 소드 두 자루를 양손에 쥔 암살자는 히죽 웃었다.

“아직 내가 패배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 이르오.”

운디네의 감각에 그가 가진 두 숏 소드 칼날에 이상한 성분이 느껴졌다.

독이군.

암살자가 가진 독이면 스쳐도 즉사인 맹독일 것이다. 아마도 저 독을 믿는 모양이었다. 스쳐도 이긴다는 자신감인가.

스치지도 못하게 해주마.

나는 모래를 조종했다.

모래는 하나로 뭉쳐져서 덩어리를 이루더니,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이윽고 나와 똑같은 모양이 되었다.

바로 모래 골렘!

대 오러 마스터용으로 개발한 모래 골렘을 마침내 실전에서 써먹게 된 것이다.

모래 골렘을 만들어놓고, 나는 안전하게 땅속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암살자 또한 날 쫓아 땅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게 아닌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암살자는 땅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날 쫓아왔다. 나야 정령술로 이런다지만, 저놈은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거지?

암살자는 나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속도로 추격해왔다. 둘 다 땅속에 있으면 모래 골렘은 소용이 없게 된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땅속에 숨는 걸 포기하고 지상으로 나갔다.

그러자 뒤이어서 암살자도 땅속에서 나왔다.

“신기한 재주를 갖고 있는데?”

“마법의 응용이오. 그리스(Greece)로 온몸을 미끄럽게 만들고, 디그(Dig)로 땅을 파면 땅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다니지.”

그리스와 디그는 각각 3서클과 1서클 마법이었다. 그런데 두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최소한 5서클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오러 엑스퍼트에다가 5서클 마법사라니.

한낱 암살자로 썩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능력이었다. 어째서 저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올바르게 살지 않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훌륭한 능력 잘 봤다. 이제 장난은 끝났어.”

그렇게 말한 나는 모래로 내 온몸을 감싸버렸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감쌌고, 오러 블레이드로 내리쳐도 버틸 수 있도록 단단하게 했다.

내 시야도 컴컴하게 막혀버렸지만, 정령들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나에게 시각은 불필요한 감각이었다.

암살자는 그런 날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불친절하군.”

“미안하군. 날 암살하는데 조금의 배려도 하지 않아서.”

그리고 나는 모래 골렘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모래 골렘은 암살자에게 달려들어 오른팔을 휘둘렀다. 오른팔은 3미터 길이의 칼날이 되어서 암살자의 목을 베어갔다.

슈앙!

암살자는 온몸을 활처럼 뒤로 꺾어서 피해냈다. 그러나 모래 골렘의 특기는 지금부터였다.

모래 골렘의 오른팔이 수십 개의 칼날이 되어서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파파팟!

“큭!”

암살자는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다리를 관통 당했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자유자재의 공격. 내 모래 골렘의 공격은 대 오러 마스터용으로 개발한 전법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도 피할 수 없다.

“크흐흐, 제길.”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암살자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제야 나는 모래로 둘러싼 방어막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기회다. 항복해. 의뢰인이 린델 백작임을 증언만 하면 된다.”

“말했잖소. 나는 최후까지 프로 암살자요. 당신 눈에는 그게 하잖게 보이겠지만, 나에겐 평생의 의미가 이거 하나요. 자, 죽이시겠소? 아니면 내가 스스로 죽으리까?”

“자살이라면, 독 말인가?”

내 물음에 암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온몸의 혈관이 터지오. 직접 겪어보진 못했으나 꽤나 괴롭지.”

“내가 죽여주겠다. 그 편이 낫겠어.”

“선한 분이시구려.”

암살자는 나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린델 백작 같은 작자보다는 당신 같은 사람이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들지.”

“…….”

“세상만사에 선(善)도 악(惡)도 없다고 믿고 살았소만, 나보다는 당신이 더 올바르다는 것 하나만은 인정하겠소.”

“이름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모르나, 긴 세월 크로넬리라 불렸소.”

“잘 가라, 크로넬리.”

나는 물의 칼날을 날려 크로넬리의 목을 일격에 베었다.

땅에 떨어진 그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휴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란즈헬 백작가로 돌아가서 아내들을 데려와야지. 땅속에 가둬둔 이 용병들을 싣고 갈 마차도 빌려야 하고.

이젠 내 차례다, 린델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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