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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암살
프란츠 린델 백작은 결코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날의 그는 굉장히 난폭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육제후의 여섯 가문의 하나인 린델 백작가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형을 암살하고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가주가 된 뒤에는 형을 따랐던 가신들을 하나둘 축출해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뜻을 거스르면 누구든 가만 두지 않는 폭군이 바로 린델 백작이었다.
다행인 점은 린델 백작 스스로 자신의 성질머리가 가문을 통치하는데 좋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훨씬 현명한 볼프강 란즈헬 백작에게 정치적 방향성을 맡겼다. ‘육제후의 두뇌’는 육제후의 리더 격이 되어서 훌륭하게 여섯 가문을 이끌었고, 그래서 린델 백작은 그를 신뢰했다.
하지만 그 신뢰는 바덴 강 협상 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카르스 황제가 10만 대군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점령한 카슈텔 성은 바로 린델 백작가의 성이었다. 또한 그때 린델 백작의 셋째 아들까지 포로가 된 치욕까지 겪었다. 일을 이렇게 만든 볼프강 란즈헬 백작에게 불만이 생겼다.
그래도 지금껏 오랫동안 육제후를 잘 이끌어온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었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러나 혼트 제국 내전이 결정타였다.
육제후는 유목민족 독립 세력을 지원하는데 엄청난 자금을 동원했다. 바덴 강 협상 때의 굴욕을 앙갚음하겠다는 각오로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찌 되었나.
카르스 황제는 15만의 제국군만으로 반란 세력을 격파하여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만방에 과시했다. 실력 행사로 육제후의 엄청난 자금력을 단숨에 꺾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레던 왕실 쪽은 어떠한가.
유목민족 독립 세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최고위 관리들이 전부 바보가 되었다. 그동안 육제후와 은밀한 관계를 형성해서 에릭 국왕의 통치를 방해해온 그들은 이제 왕실 정계에서 쫓겨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에릭 국왕은 오리엔 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서 자신의 치적을 쌓았다.
린델 백작은 이제 분통이 터져서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보니 예전의 현명함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원흉은 딱 두 놈이다. 혼트 제국의 황제 놈, 그리고 카록 리간드!”
특히 카록 리간드.
바덴 강 협상에서 통행세를 하향 동결하게 만든 것도 그였고, 오리엔 왕국과의 동맹을 성사시켜버린 것도 바로 그놈의 작품이었다.
심지어 카록 상단은 혼트 제국의 내전을 이용해서 크게 돈벌이까지 했다. 자신들 육제후가 퍼부은 자금이 카록 상단의 배만 불려준 셈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카록 리간드는 보통 비범한 놈이 아니다.
그런 놈이 재상이 되어서 에릭 국왕을 보위하면 두고두고 육제후의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
하지만…….
“내 형도 잘나고 뛰어난 인간이었지. 하지만 결국 가주가 된 건 나란 말씀이야.”
린델 백작은 생각했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은 때때로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똑똑한 탓이다.
사실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놈을 처치해 버리면 되는 일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일이 어디에 있어?”
정치에 정당함도 비겁함도 없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쪽이 승자이고, 돈과 힘이 있는 놈이 최고다. 특히 돈. 세상만사의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도 죽고 없으니, 이제 내 방식대로 한다.”
그렇게 결심한 린델 백작은 신뢰할 만한 암살조직에게 연락을 넣었다. 예전에 형을 암살한 뒤로 종종 이용한 실력 있는 조직이었다.
연락을 넣자 곧바로 접선 장소와 방법이 답장으로 도착하였다.
다음날 늦은 밤, 린델 백작은 마차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마부 한 명과 호위기사 두 명만 대동한 채였다.
마차는 천천히 거리를 나아갔다.
린델 백작은 마차 문의 잠금 장치를 풀어놓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마차 위로 조용히 올라탔다.
후드 달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다. 약간 마른 듯한 평범한 체격에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은 굳은살이 잔뜩 있었다. 눈썰미 좋은 기사라면 그 굳은살이 평범한 노동으로 생긴 것이 아님을 눈치 챌 터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로브의 사내가 말했다. 저음의 음침한 목소리. 린델 백작도 익히 알고 있는 그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
린델 백작은 함께 타고 있는 호위기사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두 호위기사가 밖으로 나가자, 린델 백작은 로브의 사내를 응시했다.
“오랜만이군. 실력은 정정한가, 크로넬리.”
“세월은 사람을 발전시키기도 퇴보시키기도 하지요. 저는 아직 운 좋게 전자입니다.”
“다행이군.”
“무엇이 백작 각하의 심기를 불편케 합니까?”
크로넬리라 불린 사내가 저음으로 묻는다.
“카록 리간드.”
“……중급 정령사. 카록 상단 단주. 리간드 자작령의 영주. 레던 왕실의 실세. 차기 재상. 오러 마스터의 셋째 아들.”
“맞다.”
“쉬운 의뢰가 아니군요.”
“불가능하다고는 안 하는군.”
린델 백작은 씨익 웃었다.
“3만 레디나. 그중 선금은 2만입니다.”
크로넬리는 곧장 비용 견적을 내놓았다.
“3만?”
린델 백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육제후의 한 사람인 그에게는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었지만, 액수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금은 의뢰 수행 시 드는 비용과 위험성, 그리고 의뢰 완수 시 의뢰인이 얻는 이익을 환산하여 책정합니다.”
“음…….”
“그리고 추가적으로 백작 각하께서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용병단 세 개, 3서클 이상의 마법사 둘.”
“그렇게나 필요한가? 듣기로 놈은 수행하는 경호원 하나 없이 혼자 다니길 즐긴다던데.”
“대신 정령술의 힘으로 날아다니지요. 비행하는 목표를 격추하여 지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마법사 두 명과 활을 다루는 용병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령술은 저희로서도 접해본 바가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백작 각하께 그런 수고를 끼쳐드리기에 의뢰금은 4만이 아니라 3만입니다.”
“그렇군.”
암살조직은 보통 외부와의 접촉을 무척 꺼린다. 의뢰를 함께 수행할 마법사와 용병단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암살조직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린델 백작에게 직접 요구한 것이었다.
린델 백작도 그런 더러운 일을 맡길 수 있는 용병단 몇 개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알겠다.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지. 마법사 둘과 용병단 셋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
“카록 리간드는 조만간 란즈헬 백작가를 방문할 모양입니다만, 란즈헬 백작령에서 의뢰를 수행하도 괜찮겠습니까?”
크로넬리의 말에 린델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곤란하다. 란즈헬 백작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란즈헬 백작가의 신임가주 제이슨은 막 가주가 된 상태라 예민해져 있었다. 이럴 때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암살당한다면 몹시 화를 낼 터였다. 제이슨 란즈헬이 그 부친만큼 무서운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카록 리간드의 행방을 잘 아는군?”
란즈헬 백작가와 쿤트 가문 사이의 혼담 문제는 고급 정보였다. 그걸 크로넬리가 알고 있다니 의외였다.
“의뢰 대상이 될 만한 인물은 감시를 붙여놓습니다. 카록 리간드 자작의 경우는 오리엔 왕국에서 돌아온 보름 전부터 감시를 시작했습니다.”
“과연.”
린델 백작은 그 말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이래서 크로넬리를 신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란즈헬 백작령에서 빠져나갈 때 의뢰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내로 마법사 둘과 용병단 셋을 구해놓지.”
“그럼 연락 방법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다.”
대화가 끝나자 크로넬리는 문을 열고 마차를 빠져나갔다. 어둠속에 스며든 그의 신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날, 저택으로 돌아온 린델 백작은 자신의 심복 샘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백작 각하.”
40대 중반의 왜소한 남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이름은 샘 린델 남작.
린델 가문의 방계 쪽 인물로 린델 상단의 부단주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지만, 상단 업무보다는 린델 백작의 심복으로서 굳은 일을 도맡는 인물이었다. 어떤 더러운 일이든 서슴지 않고 한 덕에 린델 백작의 마음에 들어 심복이 된 케이스였다.
“은밀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마법사 둘, 용병단 셋을 구해라. 용병단은 활을 다루는 자가 많을수록 좋다.”
그러자 샘의 표정이 굳었다. 어떤 일인지 대충 짐작한 까닭이었다.
“용병단 셋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마법사는 조금 걸릴지도 모릅니다.”
“나흘 내로 구해.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까.”
“예…….”
샘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연신 흐르고 있었다.
귀족가문의 방계란, 가문의 가주 눈에 띄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분이었다. 특히나 현 가주인 린델 백작은 혈연관계라고는 자기 자식들 외에는 전부 필요 없다고 여기는 인물.
아무리 미심쩍고 낌새가 안 좋은 일이라도 충실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 이 가문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가문에서 쫓겨나면 평민이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흔히 말하는 몰락귀족의 인생인 것이다.
다음날부터 샘 린델 남작은 용병단과 마법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린델 백작가의 불온한 움직임이 에반의 정보망에 포착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에반은 훨씬 전부터 샘 린델 남작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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