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32화 (232/529)

<-- 232 회: 10권 - 3장. 경고 -->

3장. 경고

그날 저녁, 6인이 함께 식탁에 앉았다. 직사각형의 탁자의 한쪽에는 나와 줄리아, 시스가 앉았고, 반대편에는 제이슨과 그의 부인인 로나, 그리고 여동생인 문제의 미란다 제드가 자리했다.

“안녕하세요, 리간드 자작님. 명성은 많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젊으시네요.”

란즈헬 백작 부인 로나는 20대 후반의 예쁘장한 여인이었다. 목소리가 작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보아 온순한 성품으로 보였다.

나는 웃으며 화답했다.

“별말씀을요. 백작 부인이야말로 듣던 대로 미모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호호, 웬걸요. 함께 자리한 분들이 하나 같이 미인이셔서 제가 주눅이 드는 걸요.”

뭐, 그야 그렇지.

그녀의 미모도 나쁘지 않았지만, 줄리아나 시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제이슨의 여동생 미란다 제드 또한 미모가 상당했다.

뭐랄까, 절세미녀는 아니지만 귀여운 타입이었다. 체구는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깜찍한 타입. 실제 나이보다도 몇 살쯤 더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다.

아버지가 요즘엔 귀여운 타입이 끌린다고 하셨는데, 과연 좋아하실 만한 여자였다.

내 시선을 받자 미란다는 쑥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해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레이디가 바로 백작 각하의 여동생 분이시군요. 백작 각하께서 여동생이 참 예쁘다고 자랑을 하시던데 과연 사실인 듯합니다.”

“아, 아녜요.”

미란다는 몹시 쑥스러워하며 간신히 대꾸한다.

어라? 조금 의외로군.

볼프강 란즈헬의 딸에 제이슨의 여동생이니 한 성깔 하는 여자를 상상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주 순둥이였다.

하기야, ‘육제후의 두뇌’라 불렸던 전 란즈헬 백작을 닮은 새어머니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정치 모략에 뛰어난 여자를 아버지의 짝으로 붙여주고 싶지는 않거든.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이 내숭일 수도 있으니 좀 더 관찰을 해봐야겠다.

“저희 아버님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실 테지요?”

나는 일부러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네, 네.”

미란다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고, 또한 제이슨은 그런 내 눈치를 살폈다. 혼담이 성사될지 말지의 여부가 지금 이 자리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 아버님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제게 뭐든 질문해보십시오. 제가 아주 성실하게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미란다는 머뭇거리면서 슬쩍 옆자리의 제이슨을 보았다.

기질이 약하고 수동적인 여자로군. 기질이 강하고 활동적이지만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기를 귀찮아하는 아버지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성격은 대충 합격점을 줄만 했다.

제이슨도 그녀에게 권했다.

“저렇게 말씀하시니 뭐든 물어보아라.”

“네, 오라버니.”

그제야 미란다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스크 쿤트 자작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평범한 질문이군.

평범하게 답해줘야지.

“오러 마스터에 오르신 강인한 무인이시라는 점이야 잘 알려진 사실이죠. 성격적인 측면을 보자면, 남자에게는 거칠지만 여자에게는 따듯하신 분이지요. 저희 집안이 오랫동안 사내들만 우글거렸던 탓에 그만큼 여자에게는 더 자상하게 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놓은 아들 취급을 하시는데 며느리와 손녀딸은 끔찍이 아끼시거든요.”

내 설명에 미란다는 살포시 웃었다. 나는 문득 뭔가가 생각나서 말을 이었다.

“아버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아버님께서 어떻게 생기셨는지도 궁금하실 테죠?”

“……네.”

미란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나이도 어느덧 50대에 이르러 있었다. 장남인 아서 형님이 얼마 전에 서른을 넘기셨으니 그 정도 연세이신 게 당연했다. 워낙 고강한 오러를 가져서 노화가 잘 진행되지 않았을 뿐, 나이는 어느새 그렇게나 많이 드셨다.

……뭐, 이젠 오러 마스터가 되어서 확 젊어지셨으니 별로 서글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보다도 오래 살 지 모르거든, 그 양반. 릭 형님이 마스터가 되지 않으면, 세 아들이 무덤 들어가는 걸 다 보실 지도 모르겠다.

“제가 직접 보여드릴까요?”

내 물음에 미란다 대신 란즈헬 백작 부인 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게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정령술은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노움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본뜬 흙 인형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창문 틈새로 흙들이 날아와 한데 뭉쳐졌다.

다들 놀란 눈으로 그 조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뭉쳐진 흙덩이는 꿈틀거리며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만들어지고, 얼굴은 눈코입이 형성되었다. 팔다리와 몸에 단단한 근육이 붙고, 머리에 풍성한 머리칼이 뻗어 나왔다.

마침내 흙덩이는 완전히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턱선 굵은 호쾌한 얼굴과 건장한 육체를 가진 사내의 모습.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니 우리 아버지도 참 잘생긴 편이군. 분하지만 줄리아 말대로 나보다 잘생긴 건 인정해야겠어. 아, 분하다!

응?

근데 어쩐지 좀 허전한 느낌이 드네. 내 착각인가?

“어, 어머나!”

로나가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 여보!”

줄리아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마구 툭툭 쳤다.

“꺅!”

미란다는 아예 홍시처럼 빨개진 얼굴로 푹 숙여버렸다.

제이슨은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고, 이 자리에서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애피타이저를 먹는데 열중하는 시스뿐이었다.

헉, 아차!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흙 인형은 아주 완벽하게 아버지의 알몸 형상을 띄고 있었던 것이다!

강철처럼 단단한 복근과 말 뒷다리 같은 튼튼한 허벅지, 그리고 우람한 그것까지!

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란즈헬 백작가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알몸을 공개하고 만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노움을 시켜서 아버지에게 바지를 입혔다. 그리고는 험험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 이 일은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푸훗!”

결국 란즈헬 백작부인 로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이슨은 날 보며 혀를 쯧쯧 찼고, 줄리아는 이게 무슨 망신스러운 짓이냐며 내 허벅지를 마구 꼬집었다.

그리고 혼담의 당사자인 미란다는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색이 돌아오질 않았다.

노움, 운디네와 공유하고 있는 감각에는 그녀의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미란다는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흥분한 모양이었다. 하하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잘 됐구나.

과연 아버지.

자신의 압도적인 강철 복근과 위용에 찬 물건(?)으로 좌중을 압도해버리다니. 물론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건 뭐 다 지난 일이니 이제 신경 쓰지 말자.

아무튼, 지금은 일단 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해야했다.

나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미란다에게 물었다.

“어때요? 참 크죠?”

“……?!”

내 물음에 미란다는 움찔 놀랐다.

쾅!

“지금 내 여동생을 성희롱하는 건가?”

제이슨이 벌컥 화를 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직이 대꾸했다.

“저는 키를 말한 건데…….”

결국 란즈헬 백작부인 로나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어색한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뭐, 아무튼 목적은 이뤘으니 문제없었다. 미란다 제드는 미모는 물론이고 성격도 괜찮은 여자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