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30화 (230/529)

<-- 230 회: 10권 - 2장. 아버지의 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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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버지와 밤늦게까지 와인글라스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들, 술, 여자 이야기.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마법처럼 시간이 훌쩍 가는 법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3층에 있는 내 침실로 향했다.

……응?

내가 방을 잘못 찾아왔나?

침실에 들어오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시스와 줄리아가 보였다.

나는 순간 2층에 있는 얘들 침실로 잘못 찾아왔나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노움과 운디네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내가 착각을 할 리가 없었다.

으음.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는군.

시스가 나와 함께 자기 위해 내 침실에서 잠들자, 이를 질투한 줄리아도 덩달아 내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는 스토리겠지. 귀여운 것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줄리아가 부스럭거리며 내 품에 파고들어왔다.

“아직 안 잤어?”

“네, 여보. 전 원래 잠을 잘 못자요.”

“왜? 불면증?”

“아뇨. 잠들기 전에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러면 ‘내일도 열심히 일을 해서 그것들을 쟁취하고 말겠어!’ 하고 결심하게 되죠.”

“아하하…… 그게 네 악착같은 삶의 원동력이었구나.”

“후후훗.”

“근데 원하는 건 죄다 내가 사줄 테니 그만 자려무나.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잠을 못자면 안 되잖아.”

“전부 사줄 거예요?”

“……응.”

“잠깐. 방금 망설였죠? 2, 3초 정도.”

“아, 아냐. 내가 언제 망설였다고…….”

“솔직히 말해 봐요!”

“실은 잠시 망설였어. 네가 ‘궁전 사줘요’같은 소릴 할까봐.”

“정말 너무해요. 아무리 저라도 그런 소리를 할 리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미안해.”

“근데 레던 왕성에 궁전 같은 집을 지으면 좋긴 할 것 같아요.”

“…….”

“농담이에요.”

줄리아는 깔깔 웃으며 내 품에 안겼다.

“그런데 대공자님이랑은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아. 아버님의 혼담 문제로 상의를 좀 했지.”

“네? 시아버님에게 혼담이요?”

줄리아가 깜짝 놀라 언성을 높였다. 나는 ‘쉿’ 하며 검지로 입을 막았다. 그제야 줄리아는 반대편에 잠든 시스를 흘깃 보았다. 시스는 잠시 몸을 뒤척였지만 다행히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나는 란즈헬 백작가 측에서 혼담 제안이 들어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럼 육제후랑 사돈지간이 되는 거예요? 아니, 잠깐! 그럼 자칫 잘못하면 제가 그 여자를 시어머니로 모셔야 하잖아요? 게다가 란즈헬 백작가 출신이니 콧대도 높을 텐데. 이 결혼 반드시 파토내세요!”

“……얘야. 아버님의 결혼 문제인데 무조건 훼방 놓을 수만도 없잖니.”

“제가 책임지고 훨씬 예쁘고 참한 여자 찾아놓을게요. 여보는 시아버님께 그 여자 오크처럼 생겼다고 말해서 파토내세요.”

“에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그 여자가 실제로 콧대 높고 제수 없는 여자일지 아직 모르잖아. 게다가 시어머니가 된다고 하지만 설마 네게 함부로 대하겠어? 넌 리간드 자작가의 안주인이라고. 쿤트 가문과 비교해도 꿀릴 게 없어요.”

그 말에 줄리아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한 것.

“헤헤, 정말요? 제가 리간드 자작가의 안주인이죠?”

“그래그래, 네가 안주인이지.”

“그럼 시스는요?”

왜 꼭 시스랑 비교하고 싶어 하니?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가 리간드 가문의 안주인이라면, 시스는 리간드 가문의 가보라고나 할까?”

“뭐예요, 그게?”

“나도 몰라. 하여튼 시스는 그런 느낌이야.”

“뭐, 하긴.”

줄리아도 왠지 납득한 모양이었다.

“실은 시스가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어요.”

“엥? 네가 아니고?”

“시스가 낳은 아기는 왠지 천사일 것 같지 않나요?”

“네가 낳은 아이도 천사일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줄리아는 눈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뇨. 제 아이는 가문의 후계자예요.”

“……어이.”

후계 다툼을 암시하는 복선 같은 거 깔지 마. 무섭잖아!

그런데 줄리아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럼 저도 따라갈래요.”

“응? 어딜?”

“란즈헬 백작가요. 갈 거잖아요?”

“응, 그야 그렇지. 근데 거길 따라가겠다고?”

“네. 바덴 강 유역은 보석과 고급 의류의 천국이라고요. 저도 차기 재상의 아내다운 패션을 갖춰야 하잖아요. 물론 시스도 데려가고요.”

“일은 괜찮고?”

“닐 페리 부사장이 있잖아요. 금방 업무에 적응하더라고요. 일주일쯤 자리 비워도 문제없을 거예요. 당분간은 만나야 할 중요한 거래처 사람도 없고요.”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신혼여행 가는 셈 치면 되겠다.”

바덴 강 유역은 사실 레던 왕국 최고의 관광 명소였다. 물류의 중심지이다 보니 혼트 제국이나 오리엔 왕국 등 각국에서 건너온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팔고 있고, 즐길 거리도 많았다.

이왕 란즈헬 백작가를 방문하는 김에 조선소 합작 투자 건도 진행해봐야 할 것 같았다.

***

이틀 후.

나는 줄리아, 시스와 함께 란즈헬 백작령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짐을 꾸려서 마당으로 나왔다.

“자, 어서 출발하자고요.”

“마차로 여유롭게 갈까?”

“아뇨. 마차는 흔들려서 싫어요.”

줄리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심지어 시스도 거들었다.

“하늘 날고 싶어.”

“그래그래. 그럼…….”

나는 정령술을 펼쳤다.

노움의 힘으로 둥그런 모양의 흙집을 만들었다. 세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줄리아와 시스가 흙집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 역시 안으로 들어간 뒤, 흙집을 공중에 띄웠다.

“아참. 여보, 저 안 씻고 그냥 나왔어요. 씻겨줘요.”

“……나도.”

두 마누라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얘들, 어째 점점 생활 전반을 내 정령술에 의존하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려나?

나는 운디네를 시켜서 두 사람을 말끔하게 씻겨주었다. 하기야 운디네라면 2초 만에 깔끔하게 씻겨주는데 번거롭게 목욕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빨은 안 닦아줘요?”

“혼날래?”

우리 운디네를 네 칫솔로 생각하지 마!

“깔깔깔!”

줄리아는 자지러져라 웃었다.

역시 다함께 가니 혼자서 길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물론 정령친화력의 소모는 3배 이상으로 들었지만, 얼마 전에 운디네가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면서 정령친화력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시스는 언제 준비했는지 호밀 빵과 딸기잼, 구운 치즈를 꺼내 나눠주었다. 맛있게 먹으면서 칭찬을 해주자 시스는 부끄러워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음, 역시. 칭찬에 약한 시스도 너무 귀엽다니까.

사흘째 아침에 우리는 란즈헬 백작령에 도착했다. 전에 바덴 강 통행세 협상 때도 와봤던 곳이라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란즈헬 성이 보였다.

성문은 통행자를 검문하는 병사들이 보인다. 워낙 통행하는 사람이 많아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려면 한참이 걸릴 듯했다.

“어쩔까. 문명인답게 줄을 서서 검문을 받고 들어갈까?”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냥 건너뛰자.”

나는 흙집을 하늘 높이 상승시켰다. 성문의 병사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이동한 후, 란즈헬 성 내부의 한적한 골목으로 착지시켰다. 좋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자, 가자!”

흙집을 없애며 말했다. 줄리아와 시스가 각자 짐을 들고 따라왔다. 줄리아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일단 구두부터 사요. 그 다음에 구두에 어울리는 드레스, 드레스에 어울리는 장신구를 사는 거예요.”

우리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살 것이 무척 많았다. 줄리아는 물론이고 시스도 여성스러운 옷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란즈헬 백작가는 과연 육제후의 본거지답게 고급스러운 의류를 많이 팔았다.

경량화 마법이나 미끄럼 방지 마법이 걸린 구두는 물론이고, 최고급 양모나 실크로 짠 화사한 드레스까지. 마음에 드는 것은 닥치는 대로 샀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쇼핑이 끝났을 때, 줄리아와 시스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변신했다.

줄리아는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붉은색 계통으로 꾸몄다. 매혹적인 붉은 드레스, 깊이 파인 가슴께를 둘러서 가린 연분홍빛 숄, 굽 길이가 10cm는 족히 되는 빨간색 하이힐, 세 개의 세공 루비가 장식된 목걸이 등등. 줄리아의 성격에 어울리는 도발적인 패션이었다.

반면 시스는 티 없이 맑은 호수에 사는 요정과도 같았다. 연한 하늘색 드레스와 굽이 낮고 경량화 마법이 걸려서 걷기 좋은 파란 구두, 진한 푸른색 에메랄드가 장식된 머리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새삼 하늘에 감사했다.

정말 저 두 미녀가 나의 아내라니! 땡큐, 신이시여. 다시 태어나길 정말 잘했어.

“좋아, 이제 무장도 단단히 갖췄으니 그 여자를 보러 가자고요.”

한껏 꾸며서 아름다워진 줄리아는 기세 좋게 외쳤다. 지금까지의 쇼핑은 미란다 제드를 만날 때를 대비한 무장이었던 모양이다. 압도적인 미모로 기를 죽여 놓겠다는 심산!

“좋아, 가보자.”

우리는 란즈헬 백작가의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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