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23화 (223/529)

<-- 223 회: 9권 - 8장. 채결 -->

***

클레비우스 백작의 사퇴는 금세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레던 왕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듀론 후작의 승리!

재상과 정면으로 대립했던 클레비우스 백작은 물론이고, 내전 개입을 주장한 최고위 관리들 또한 물갈이를 당할 거라는 추측이 돌면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궁 내에 이상한 루머가 떠돌았는데, 재상부 소속인 루이 콘체른이 그동안 클레비우스 백작에게 선을 대던 관리들의 명단을 비밀리 작성하여서 숙청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했다는 소문이었다.

육제후 끄나풀 노릇을 하던 최고위 관리들과 에릭 국왕 일파의 대립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신빙성 있는 소문이었다.

숙청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각 부서의 상서들이 모두 내전 개입을 주장했는데, 카르스 황제가 유목민족 독립 세력을 완전히 섬멸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시류를 읽지 못한 최고위 관리들의 무능을 물어서 숙청시키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리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숙청이 과연 언제 시작되는지의 타이밍 여부.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

카록 리간드 자작!

그가 오리엔 왕국에서 돌아오는 순간 시작된다.

오리엔 왕실을 상대로 얻어낸 공로를 치하함과 동시에 숙청은 시작될 터였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이 레던 왕성에 나타났다.

한 남자가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녔다.

20대 중반 정도 된 젊은 남자는 놀랍게도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을 자는 채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왕궁의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기가 차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저, 저걸 어쩌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모르겠다고, 이런 상황!”

하늘을 날며 쿨쿨 자고 있는 사내가 똑바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누군들 당황하지 않겠는가? 마법사도 비행마법을 펼치면서 잠을 자지는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레드 미스릴 코트 차림으로 보아 무척 높은 신분으로 보이니, 두들겨서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신분 확인도 없이 통과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 아닌가.

자면서 떠다니는 남자는 점점 가까워졌다.

병사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이한 남자의 등 위에 웬 황금빛으로 빛나는 귀여운 소녀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이제 갓 14살쯤 된 듯했다.

안전모와 자기 덩치만 한 삽을 들고 있었고 커다란 눈망울은 반짝반짝 빛났다.

온몸에 감도는 황금빛으로 보아 인간은 아닌 듯했다.

“저거…… 정령 같지요?”

“어, 정령이네. 아아! 그럼 카록 리간드 자작님이다!”

병사들은 그제야 카록의 정체를 알아챘다.

“정말이네요. 왕실을 드나드는 정령사는 그분밖에 없으니까요.”

“그나저나 저 양반 정말로 소문대로 괴짜군. 어떻게 하늘을 날며 잘 생각을 하지?”

“똑똑하긴 한데 제정신은 아니라는 소문은 저도 들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이군요.”

병사들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카록과 그의 정령이 가까이 왔다.

정령으로 보이는 황금빛의 소녀가 말했다.

-아빠가 국왕 만날 때까진 깨우지 말랬어. 우리 아빤 카록 리간드 자작이야.

“아, 알고 있소.”

“당장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은 즉시 왕궁의 문을 열고 카록과 정령을 통과시켰다.

카록은 둥실둥실 공중을 떠다니며 안으로 향했다.

병사들은 그런 그를 황당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지금 폐하를 만날 때까지 저러고 있겠다는 거야?”

“그, 그런 것 같은데요.”

“자면서 국왕 폐하를 알현하겠다니, 소문보다 더한 미친놈이었군.”

“예. 저도 살다 살다 저런 또라이는 처음 봅니다.”

병사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한 채 카록은 궁전 안으로 날았다.

***

-아빠, 일어나.

누군가가 조막만한 손으로 나를 흔들어 깨운다.

으음, 노움이니?

나 좀 더 자게 내버려두렴. 아빤 너무 피곤해요. 왕도 오리엔에서 쭉 스트레이트로 날아왔으니 아무리 내가 상급 정령사라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거든.

다행인 것은, 운디네에게 내 체액을 조종해서 비행하게 해놓고, 온도조절마법이 걸린 내 레드 미스릴 코트와 내 체온을 조절하는 샐러맨더의 능력으로 찬바람에도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세 정령에게 내 몸을 맡겨놓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아빠가 좀 더 잘 거니까 내버려두래.

으음?

노움, 얘야.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니?

“허허허.”

저 약간의 당혹에 찬 너털웃음은 듀론 후작님의 목소리 같은데.

“으음, 내 생전 이런 신하는 처음 보는군. 재상, 이럴 땐 짐이 어찌 해야 하오?”

에릭 국왕의 목소리도 들린다.

“폐하, 상대는 리간드 자작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약간 체념에 찬 듀론 후작의 음성.

……어라?

그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 눈을 떴다.

에릭 국왕, 듀론 후작, 제론, 루이 등 네 멤버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들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빤히 보고 있었다. 다만 제론은 ‘하늘을 날면서 낮잠을 잘 수 있다니, 부럽다!’라는 눈빛을 했다.

잠이 완전히 깬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제가 너무 열심히 폐하의 명을 수행하느라 피곤한 바람에 추태를 보였군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폐하.”

“공이 많으니 차마 처벌할 수도 없고, 참으로 곤란한 신하로다.”

에릭 국왕은 혀를 차며 평했다. 아하하.

“폐하의 관대함에 감격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싫으면 그냥 날 내쫓던가. 나도 일은 때려치우고 집에서 두 마누라랑 알콩달콩하게 살고 싶거든?

역시 욕심 없는 인생은 좋은 거야. 이렇게 배 째라는 듯이 살 수 있거든.

“참,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나는 품속에서 몇 장에 걸친 서류를 꺼내 에릭 국왕에게 바쳤다.

동맹 서약서였다.

에릭 국왕은 흐뭇하게 웃었다.

“해냈군. 정말 수고 많았다, 리간드 자작.”

“폐하의 은총이옵니다.”

“오리엔 국왕을 만나서 조인식을 마치는 대로 그대를 백작으로 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받고 싶은 상이 더 있거든 말해보아라.”

그러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휴가를 주십시오.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폐하.”

“하하핫!”

에릭 국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욕심이 없구나, 그대는. 좋다. 휴가를 줘야지. 짐이 신혼인 남자를 그동안 너무 부려먹었구나. 2개월의 휴가를 줄 테니 마음껏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그대의 상단이나 영지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감사를 표했다.

몹시 부럽다는 제론의 시선이 거슬린다. 뭘 봐? 부러우면 너도 공 세워서 휴가 타던가!

그렇게 나는 그날 오후, 줄리아와 시스가 있는 쿤트 영지로 출발했다.

레던 왕성 근처에 집을 마련해야 하고, 카록 상단 문제도 처리해야 하고, 일전에 떡밥을 뿌려두었던 란즈헬 백작가와의 합작투자로 내 영지에 조선소를 설립하는 문제 등 해야 할 일은 태산이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일단 아이부터 만들어야지, 히히히.

나는 휘파람을 불며 쿤트 영지로 날아갔다.

9장. 새 시대의 태동

“황제 폐하 만세!”

“카르스 혼트 황제 폐하 만세!”

카르스 황제의 귀환.

10만 대군과 함께 개선한 그를 황실의 모든 신하가 나와서 반겼다.

육제후의 은밀한 자금 지원까지 받으며 기세등등했던 반란군을 단시일에 격파! 압도적인 쾌승! 게다가 반란군 수괴 티란 탈라크를 사살한 것은 ‘황제의 검’ 할슈타인 백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