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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17화 (21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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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진면목

황제란 제국의 절대적인 권력자를 뜻한다.

인간은 제각기 개성이 있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의 집단은 통일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방향성이 주어져야 사회가 원활하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방향성, 즉 그들 집단이 나아가야 하는 미래를 제시하는 존재가 바로 군주다.

황제는 그 자체로도 제국의 법률이 되는 존재로 고귀하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자신을 섬기는 백성과 신하에게 어떠한 빈틈도, 약한 모습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나 가장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패배(敗北)!

그래서 무릇 군주는 되도록 전쟁터로 직접 가지 않는 법이었다.

이따금씩 군주가 군대를 끌고 직접 친정(親征)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이번 전쟁을 중시 여기고 있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때뿐이었다.

황제라는 존재가 주는 중요성은 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유목민족 독립 세력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거사의 성패가 이번 싸움에서 황제를 꺾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서 황제가 병사들과 함께 달아나는 모습에 정신을 팔릴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달아난다!”

“우리가 이겼다!”

유목민족 전사들은 흥분했다.

반역이 시작되면서 줄곧 꿈꿔왔던 자신들의 자유로운 나라, 바람의 왕국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저기 보이는 황제의 목을 칠 수만 있다면! 그러면 다 끝나는 것이다!

선두에서 전사들을 이끌며 열심히 싸운 족장들은 흥분하여서 탈라크 대왕에게 달려가 말했다.

“대왕! 쫓읍시다.”

“여기서 황제를 죽이면 승리입니다!”

“하늘이 준 기회요!”

흥분으로 피가 들끓는 것은 탈라크 대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신성을 꺾고, 자신을 일국의 절대자로 거듭나는 기회가 아닌가!

누구보다도 위대해지고 싶다는 남자의 욕망이 대왕 티란 탈라크의 투지를 부추겼다.

“당연히 추격한다! 이 기회를 어찌 놓친단 말이냐?!”

마침 황제의 곁에는 15만 대군도 없었다. 네 개로 군대를 쪼갠 덕에 지금 황제를 보위하는 것은 고작해야 4만 가량이었다. 다른 군단들이 황제와 합류하기 전에 끝장을 봐야 했다.

“쫓아라! 황제의 목을 따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탈라크 대왕이 명령을 내렸다.

반란군은 썰물처럼 후퇴하는 카르스 황제의 군대를 뒤쫓기 시작했다.

유목민족 전사들의 빠른 기동력은 추격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빠르게 말을 타고 접근한 반란군은 특유의 돌팔매질로 혼트 제국군 병사들을 쓰러뜨려나갔다. 계속 공격을 받으면서 황제의 군대는 피해가 속출하였다. 이대로라면 혼란에 휩싸여서 자칫 전멸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때, 때마침 6군단장 쥬르덴 백작이 카르스 황제에게 다가왔다.

“폐하, 폐하의 깃발과 투구와 망토를 감히 제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쥬르덴 백작의 침착한 표정에는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카르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투구와 망토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살아 돌아와 일등 공신이 되어라.”

“알겠습니다, 폐하. 논공행상을 하실 때 제 자리를 남겨주시옵소서.”

그러면서 쥬르덴 백작은 6군단과 함께 일제히 반전하였다. 6군단은 그의 명령으로 혼트 황실의 깃발을 드높이 치켜세웠다.

“지금부터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눈앞에는 영광이, 뒤에는 오욕이 있다.”

쥬르덴 백작의 한 마디가 6군단 전체에 전달되었다. 연이은 패배로 이미 1만 6천여 명이 조금 넘는 6군단 병사들의 얼굴에 비장한 투지가 어렸다.

혼트 제국의 최정예 군단!

뼈를 깎는 훈련과 엄격한 군기는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전의를 주었다

6군단이 전열을 가다듬자 쥬르덴 백작이 명령을 내렸다.

“황제 폐하 만세.”

그 이상의 명령은 필요 없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윽고 그들은 노도처럼 밀려오는 반란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방패로 벽을 만들어 화살과 돌팔매를 막고, 창날을 세워서 돌격에 대비했다.

전장 전체를 보면 그것이 유인책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는 그 전체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정면에 보이는 적을 열심히 뒤쫓던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눈앞에 황제의 깃발이 넘실거리자 눈이 뒤집혔다.

“황제가 눈앞에 있다!”

“다 죽여 버려!”

반란군과 6군단이 뒤엉켰다. 피가 흐르고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고함과 비명이 비산했다.

6군단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뒤에는 후퇴할 길이 있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달아날 곳이란 없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살아온 병사들은 동료를 놔두고 도망가는 비겁행위는 체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쥬르덴 백작 역시 카르스 황제의 투구와 망토로 무장한 채 미친 듯이 싸웠다. 눈앞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들려도 특유의 냉정함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6군단을 지휘했다.

그러나 명백한 열세였다.

6군단은 급격히 그 숫자가 줄어들었다. 병사들은 아군 병사가 죽으면 그 틈새를 메워서 전열의 빈틈을 없애면서 계속 싸웠다. 군기가 센 혼트 제국의 정예 다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반란군 또한 유목민족 전사로서의 싸움법이 따로 있었다.

적의 주위를 대머리 독수리 떼처럼 빙빙 돌며 돌팔매질을 하거나 시미터를 휘두른다. 계속 맴돌며 공격하면 마치 석공이 바위를 깎는 것처럼, 어느새 적의 숫자는 극히 줄어들어 있다.

한참이 지났을 때, 전장에 서 있는 혼트 제국군은 쥬르덴 백작과 병사 몇 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반란군에게 에워싸여져 있어서 살아 달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여기까진가.’

쥬르덴 백작은 생각했다.

‘폐하께서 추격을 뿌리치시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술적 목표는 달성되었군.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내 인생의 마무리뿐이다.’

위기 상황에서 초인적일 정도로 침착하게 결론을 내린 쥬르덴 백작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심장이 뛴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6군단 병사들이여.”

쥬르덴 백작의 목 쉰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너희가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다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일어나라. 살아 있거든 싸워라. 아직 숨을 쉬거든, 싸워라!”

그러자 시체 속에 한데 뒤엉켜 쓰러져 있던 병사들 몇 명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한 번만 더 싸우자꾸나. 너희는 아직 살아 있지 않으냐. 일어나라!”

시체인 줄로만 알았던 피투성이의 병사들이 좀비처럼 일어났다. 큰 부상을 입고서 널브러져 있던 병사들이 쥬르덴 백작의 말을 듣고 다시 싸우기 위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흐느적거리며 쥬르덴 백작에게 모였다.

이를 본 반란군은 기가 질렸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덧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무엇을 얻고 싶어서 저렇게 끝까지 싸우려 한다는 말인가.

약탈과 함께 한 삶으로 물욕에 찌든 유목민족 전사들은 그들의 충성심과 군인 정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결의는 반란군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멍청한 놈들, 전부 비켜라!”

말을 탄 거한이 쏜살 같이 말을 타고 뛰쳐나와 쥬르덴 백작에게 달렸다. 병사들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거한은 홀로 거침없이 덤벼들었다.

콰직! 슈칵! 파아악!

오러가 실린 시미터가 병사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쥬르덴 백작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롱 소드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거한이 가까이 접근한 순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휘잉!

거한은 간단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했다.

거한은 오러를 없앤 시미터의 칼등으로 상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빡!

쥬르덴 백작은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쥬르덴 백작을 기절시킨 거한은 다름 아닌 탈라크 대왕이었다.

“뭘 꾸물거리느냐, 이 머저리들아! 이놈은 황제가 아니다. 황제는 이보다 훨씬 나약하고 겁이 많은 놈이야!”

그러자 반란군은 술렁거렸다. 탈라크 대왕은 계속 말했다.

“뭐, 하지만 황제 놈이 아끼는 부하쯤은 될 것 같군. 이놈은 포로로 잡아두고 계속 황제를 뒤쫓는다! 서둘러라!”

비로소 반란군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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