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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15화 (215/529)

<-- 215 회: 9권 - 6장. 승리의 행방 -->

탈라크 대왕의 반란군은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렸다. 태어나고서 줄곧 말 위에서 생활해온 바람의 일족들. 식사도 달리는 말 위에서 하면서 그들은 계속 움직였다. 그야말로 바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반나절 뒤, 탈라크 대왕은 마침내 카르스 황제가 이끄는 6군단, 11군단을 급습했다.

"죽여라!"

"카르스 황제를 찾아라!"

유목민족들은 활을 쏘고 돌팔매질을 하고 시미터를 휘두르며 날뛰었다.

혼트 제국군 병사들은 질서정연하게 맞섰지만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퍼붓는 유목민족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탈라크 대왕을 따르는 각 족장들은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해 앞장서서 싸웠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면 바람의 왕국이 탄생한다. 신 왕국의 주요 관직은 이번 싸움의 전공에 달린 것이었다.

족장들이 진두지휘하니 전사들도 용기백배하여서 목숨을 도외시하고 싸웠다.

"생각보다 공격이 매섭군."

혼란에 휩싸인 아군의 진지를 보며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아니, 혼란에 빠진 것 같지만 사실 혼트 제국군 병사들은 미리 대비한 그대로 질서정연하게 맞서고 있었다. 다만 반란군의 기세가 너무 강할 뿐이었다.

"할슈타인 백작."

"예, 폐하."

그의 그림자, 할슈타인 백작이 대답했다.

"적의 기세를 조금 꺾어 놓아라."

"누구의 목을 원하십니까? 하명만 해주십시오."

"저기 저 족장의 목이 좋겠군."

카르스 황제는 맹렬히 활약하는 어느 족장을 덤덤한 표정으로 가리켰다.

"5분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러고 할슈타인 백작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달렸다.

황제의 그림자.

카르스 황제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오러 마스터.

할슈타인 백작이 이빨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여파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콰콰콱!

"크아악!"

콰지직!

"아악!"

"사, 살려줘!"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러 블레이드가 네댓 명의 육신을 조각냈다.

피가 쏟아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할슈타인 백작은 피와 시체의 길을 만들며 달렸다. 그가 달리는 방향에는 카르스 황제가 가리켰던 족장이 있었다.

족장은 놀라서 휘하의 전사들에게 소리쳤다.

"마, 막아라!"

족장을 호위하던 전사들이 시미터를 뽑아들고 달려갔다. 그러나 맞붙은 지 10초도 되지 않아 모조리 도륙되었다.

비로소 유목민족 전사들은 그의 정체를 깨달았다.

"오러 마스터!"

"할슈타인 백작이 나타났다!"

"화, 황제의 검이다!"

황제의 검.

카르스 황제의 수족, 할슈타인 백작을 일컫는 별명이었다. 오러 마스터라는 위대한 경지를 이룩했음에도 황명을 받들어 자신의 존재를 감춰온 그의 절제심과 충성심을 경외하며, 사람들은 그에게 '황제의 검'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기꺼이 붙여준 것이었다.

"으, 으아아!"

족장은 두려움에 질려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러나 할슈타인 백작은 악귀처럼 쫓아가서 기어코 그의 목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콰지직!

비명조차 없었다.

족장의 목이 데굴데굴 땅에 떨어져버렸다.

족장이 지휘하던 전사들은 통솔자를 잃고 우왕좌왕했다. 그러자 혼트 제국군 병사들은 그 틈을 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전사들을 하나둘 도륙해나갔다.

임무를 마친 할슈타인 백작은 다시 카르스 황제에게로 되돌아갔다.

"완수했습니다."

"수고했다."

카르스 황제는 간단히 대꾸하곤 전황을 살폈다.

분명 할슈타인 백작의 활약 덕분에 반란군의 기세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자갈돌의 파문에 불과했다.

반란군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카르스 황제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전군 후퇴."

***

레던 왕실은 들끓었다.

카르스 황제가 직접 반란군의 공격을 받아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황제가 전투에서 직접 후퇴했다.

그 바람에 다른 경로로 진군하던 군단들도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후퇴를 개시!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 컸다.

'재상이 오판을 했다.'

'클레비우스 백작이 도박에서 이겼다!'

'듀론 후작의 실각은 시간문제다.'

국제정세의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은 부족해도, 정계의 분위기 살피는 데에는 귀신같은 왕실 관리들이었다.

클레비우스 백작에게 인사하러 찾아가는 중고위 관리들의 행렬이 뒤를 이었다. 앞으로 왕실의 국정을 주도할 핵심 인물은 클레비우스 백작이었다. 값진 선물과 함께 얼굴도장을 찍어야 출셋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따르지 않는 왕실 관리도 두 사람 있었다.

"재상 각하께서 실각하시면 나도 자연히 이 자리에서 쫓겨나겠지? 푹 쉴 수 있겠군."

"평생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벌어놓은 사람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뇌물이라도 챙겼습니까?"

루이는 낙천적인 제론에게 말을 걸었다.

제론은 휘휘 손을 저었다.

"설마 관리직 자체를 박탈당하기야 할까? 다만 일도 별로 없고 권력과도 무관한 한직으로 인사발령 나는 것뿐이지. 별로 하는 일 없이 녹봉을 받는 꿈이 이루어진다고나 할까?"

"글쎄요. 카록 리간드 자작님께서 무너지지 않는 한 데커드 준남작님이 편히 쉴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클레비우스 백작은 재상 각하는 몰라도 리간드 자작님을 왕실에서 쫓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바스크 쿤트 자작님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그, 그런가?"

제론은 아쉽다는 입맛을 다셨다.

묘하게도 카록은 왕실파 내에서 안전한 입지를 확보해둔 상태였다.

바로 오러 마스터가 된 부친 바스크 쿤트 자작의 존재였다.

쿤트 자작이 경지에 올랐다는 소식에 군사부상서 클레비우스 백작은 내심 뜨악했을 것이다.

만약에 에릭 국왕이 바스크 쿤트를 왕실에 입관시켜서 군사부 소속으로 배정시키면 어떨까?

오러 마스터에다가 성격도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은 쿤트 자작을 클레비우스 백작이 감당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한 부담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기 싫은 게 분명한 클레비우스 백작은 카록에게 직접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왕실파는 클레비우스 백작과 카록의 공존 구도가 될 터였다. 클레비우스 백작이 국정을 주도하지만, 엄청난 배경을 둔 카록의 존재 역시 무시당하지는 않으리라.

물론 그것들은 클레비우스 백작이 듀론 후작과의 도박에서 승리했을 경우의 일이었다.

"그런데 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명단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루이는 간단히 대꾸하며 계속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제론은 그게 무슨 명단인지 금세 눈치 챘다.

"그거, 설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러면서 루이는 히죽 웃었다.

"무서운 놈……."

제론은 질렸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루이는 지금 클레비우스 백작을 찾아가 얼굴 도장을 찍고 있는 관리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아직 클레비우스 백작이 이긴 게 아니다.

만약 카록의 예견대로 반전이 벌어져서 듀론 후작이 이겼을 경우, 이 명단은 고스란히 숙청 리스트가 될 것이었다. 

  

***

"이제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에릭 국왕은 듀론 후작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눴다.

에릭 국왕의 걱정스런 물음에 듀론 후작은 입을 열었다.

"내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신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듀론 후작은 솔직하게 말했다.

카록은 카르스 황제가 일부러 패배를 해서 유목민족 독립 세력을 싸움판에 끌어낼 거라고 예견한 바 있었다. 그 말대로 해석하자면, 지금의 패전은 카르스 황제가 반란군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봐야 옳다.

하지만 카르스 황제가 정말로 진 거라면?

현재 상황이 정말로 카르스 황제가 위기에 처한 거라면, 클레비우스 백작의 승리가 된다.

물론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기는 하지만, 만약에 카르스 황제가 정말로 패배한 것이라면 그에 따른 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

듀론 후작이 말했다.

"폐하, 리간드 자작에게 사람을 보내지요."

"리간드 자작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것이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에릭 국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듀론 후작은 웃으며 말했다.

"판단을 리간드 자작에게 맡기는 겁니다. 만약 그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카르스 황제의 진짜 패배라면, 이제라도 내전에 개입하자는 주장을 하게 하는 겁니다."

"개입에 가장 먼저 반대를 표한 건 리간드 자작 아니오. 그에게 이제 와서 다시 말을 바꾸라는 말이오?"

"예. 입지야 좁아지겠지만, 그렇게라도 하면 적어도 자리는 보전할 수 있습니다. 오러 마스터인 쿤트 자작의 아들에 상급 정령사이기도 한 리간드 자작이라면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겠지요."

듀론 후작은 자신의 거취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에릭 국왕은 한숨을 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겠소. 사람을 보내서 급히 이 사실을 알려야겠군."

"중요한 문제이니 믿을 만한 인물을 보내시지요."

"스페이 백작을 보내겠소."

에릭 국왕은 로열나이츠의 부단장인 랜달 스페이 백작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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